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02)
낭선기환담-501화(502/600)
낭선기환담 – 2부 211화
천범이 원선이 될 수 있었던 경위는 산의 혼과의 합일과 죽음으로 인한 깨달음. 그리고 월모자녀.
봉황의 희생으로 인한 기운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범은 산이 아니지만 산의 사무친 원한을 대신 풀어주어야 할 의무는 있었다.
그에게 온전한 죽음을 선사하기로 약조한 몸이고, 그 누구보다 그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본 자이니까.
하여 지금 그는, 산을 대신하여 이곳에 자리한 것이고 지금만큼 천범은 산이었다.
‘그녀늘 날 산이라 착각하며 제자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어찌하여 그랬을지 알 수 없었으나 썩 좋은 취지는 아니었을 거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범에게 보인 호의를 생각한다면 다소 애매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오랜 세월 가깝게 지낸 친우를 배신할 정도의 여인이다.’
무슨 꿍꿍이를 지녔는지 알 수가 없는 여인.
손속에 정을 둘 필요는 없으리라.
“네게 배운 것이 퍽 쓸모 있었으니 가볍게 여기지 않음이 좋을 거다.”
딱.
천범이 손가락을 튕기자 땅밑에서 금색의 불꽃인 금천지화가 사방에서 뿜어져 나왔다.
화르르륵!!
불기둥이 여기저기 만연하자, 오묘한 안개가 걷히고 촉면공간의 모습이 여실하게 나타났다.
그녀의 등 뒤로는 거목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척 보기에도 보통 나무가 아니었다. 키는 하늘에 닿을 만큼 높았고 두께는 한눈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두꺼웠다.
게다가 거대한 크기만큼 커다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는데, 범은 그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절명신목?’
그녀의 등 뒤에 자리한 신목.
그것은 혼계에서도 본 적 있었던 절명신목이었다.
영아들의 육신을 영양분처럼 삼키고 그것들을 열매로 낳으면 새로운 화신으로 태어나는 수호신이 된다.
혼계에서도 직접 절명에게 삼켜진 적이 있었던 천범이다.
그것을 몰라볼 수 없었다.
‘그때 보았던 것은 새발의 피였나.’
신위가 보인 절명신목은 이전에 보았던 신목을 새순처럼 보이게 하는 위엄을 지니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생명을 취한 것인지 웅장한 자태로 뿜어내는 기운이 정순함은 물론 위압감을 주었다.
매달려 있는 열매는 몇 되지 않았으나 하나하나 품은 기운이 엄청나다.
쩍, 쩌적.
열매가 찢겨지듯 열리며 안에 자리하던 것들이 나타난다.
쿵! 쿵쿵쿵!!
열매가 갈라지며 나타난 화신들은 대부분 용의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바닥으로 떨어진 검은 용들은 흉포한 괴성을 내질렀고, 천범의 금천지화에 저항하듯 불을 내뿜는다.
“오랜 세월, 키워온 아이들이다. 네가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구나.”
신위는 묘한 미소를 지은 채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절명신목에서 나타난 화신들은 달랐다. 용의 형상을 취하고 있는 화신은 천범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흔아홉 마리의 거대한 흑룡들의 입에서 뜨거운 화염이 내뿜어졌다.
영혼마저 불사를듯한 강렬한 열기에 대기의 수분이 증발하고, 순식간에 땅이 메말라 쩌적 갈라졌다.
강력한 일격.
“내게 화신통이 통하리라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
허나 상대가 나빴다.
그가 누구던가.
봉황의 진전을 이어받고, 원선으로의 승선 중에서는 천외천에 떠있는 태양의 화기마저 흡수했던 천범이다.
아무리 절명신목의 흑룡들이 뿜어 낸 강렬한 멸화(滅火)라도, 그에게는 그저 불.
불은 불일 뿐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아!!
패도적인 멸화의 화염이 천범을 휘감았다.
허나 그의 곁에는 반투명한 원형의 보호막이 펼쳐져 있었다.
“일심만천옥경….”
신위의 공법 중 하나인 신식을 이용해 만드는 심경(心鏡)이었다.
“꽤 쓸만한 공법이더군.”
천범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흑룡들의 화염을 막아냈다.
그의 신식이 얼마나 강경한지를 알려주는 부분이었다.
일심만천옥경으로 몸을 보하지 않았어도 흑룡의 화염이 그에게 해를 끼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허나 그는 그럼에도 그러했다.
“장난질은 적당히 하도록 하지.”
딱,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천범의 금천지화가 뿜어낸 불기둥이 수천 개의 날카로운 창으로 변해 흑룡과 신위를 겨누었다.
일대 전역에 천범의 금천지화가 금색의 창으로 변하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라 할 수 있었다.
“가라.”
촤자자자자자작!!
이어 보여진 것은 그저 난무.
꼬챙이처럼 꼬여진 흑룡들의 모습과 피바람의 향연이었다.
한순간에 살풍경이 벌어졌으나 신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이내 신위의 등 뒤에 자리한 절명신목에 글자가 새겨지며 신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천범의 창이 박혀 들었던 흑룡들의 살점이 아물고 빛을 잃었던 동공이 다시 돌아온다.
“시간 법칙인가.”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 그들의 떨어진 살점이 떠올라 서로 붙기 시작하고 천범의 창은 다시 불꽃으로 화해 타올랐다.
‘이 공간 자체의 시간의 흐름을 돌린 거군.’
특정 대상의 시간에 간섭하는 것이야 천범도 할 수 있지만, 공간 자체의 시간을 간섭하는 것은 저리 간단히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곳에 신위가 만들어낸 공간이기 때문이리라.
말인즉슨.
이곳에서는 그 어떤 공격을 펼쳐 낸다 하더라도 신위에게는 먹혀들지 않을 것이라는 말과 같았다.
스르르륵.
시간 법칙의 힘은 색채를 흐려놓는 듯 점점 천범에게도 다가왔다.
서서히 몸이 움직여지지 않고 시간이 정지된 듯 멈추자 범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한참이 지나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자 신위가 천천히 다가갔다.
그녀의 발 아래로 멀쩡해진 흑룡들이 다가와 신위를 떠받치고 범의 곁으로 천천히 부유하듯 날아들었다.
“이곳의 시간은 내게 있다. 산, 네가 아무리 스승님과 같은 창조를 다룬다 해도 이 공간에서만큼은 나의 시간 아래 존재할 수밖에 없지.”
신위의 벽공부촉멸이었다.
절명으로 그의 시선을 잡아둔 채, 은밀히 시간 법칙을 펼친 것이었다.
신위는 천천히 그를 바라보았다.
온전히 시간이 멈춰버린 그는 이 세상과 동떨어진 존재만 같았다.
그런 그의 뺨을 손으로 감싸 매만진 그녀는 다양한 감정이 깃든 눈으로 원망하듯 바라보다 그리운 얼굴을 보는 것처럼 보고는 손을 떨쳤다.
“안일했구나. 그 점만큼은 그리 변하지도 않았어.”
오랜 기억을 떠올린 신위는 씁쓸하게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
이내 천범의 전신에 색채가 돌아오고 다시금 시간이 흘렀다.
꾸드득! 촤악! 범의 눈동자는 깊게 가라앉아 있었고, 어느새 그의 손에는 붉은 피가 적셔져 있었다.
천범의 손아귀에는 가녀린 여인의 팔 한 짝이 들려 있었는데, 그것은 눈앞에 자리한 신위의 것이었다.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난 신위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어찌 풀어냈지… 나와 같은 공법을 익혔다 한들, 이 공간은 내가 만든 촉명공간. 아무리 너라도 원칙을 풀어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텐데!”
있을 수 없다는 듯 소리친다.
허나 그에 대해 천범은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뭔가 잊었나 보군. 창조는 그 모든 법칙을 포용하며 아우른다. 게다가 겨우 그 정도도 하지 못해서야 어찌 지난 원한을 갚아줄 수 있을까.”
신위가 입술을 질끈 깨문다.
그리고 이내 입을 달싹이니, 그녀가 만들어낸 촉명의 공간에 선축문의 글자가 떠오르며 눈부신 빛을 발한다.
천범이 뜯어낸 그녀의 팔 한 짝이 안개로 변해 흩어지고 다시금 본래 그러했던 것처럼 신위의 손이 원래대로 복원됐다.
자신의 시간을 되돌린 듯 보였다.
‘귀찮군.’
참으로 귀찮은 법칙이기 그지없다.
시간을 다룬다는 것 자체로 자신의 일격을 없던 일로 만들어버리니 범의 입장에서는 까다롭기 그지없다.
“신위, 아직도 내 질문에 답할 마음은 들지 않았나?”
“평생 궁금해 해보거라.”
범은 고개를 주억였다.
이내 합장하며 입을 달싹이자, 쿠구궁! 하며 천지가 뒤흔들린다.
순식간에 사방에서 금천지화가 만연하고 등 뒤에 거대한 만다라가 펼쳐지며 범의 전신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이내 그의 몸이 셋으로 분열되어 삼세삼신이 이루어지자, 신묘한 기운이 사방으로 만연하여 펼쳐졌다.
삼세삼광의 기운이 은연 중 뿜어지자 허공에 균열이 일어나고 사방으로 뻗어나가 경천동지할 굉음을 자아낸다.
“삼세삼신….”
콰가가가가가가가!!
쩌저저적!!
“이곳에서는 그 어떤 짓을 해도 널 죽일 수 없겠지. 허나 이 공간 자체가 무너져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이내 삼세삼광이 퍼져나간다.
창조의 생명의 힘이라 할 수도 있다. 온갖 법칙으로 이루어진 공간은 신위의 원칙이 다분한 곳.
그러한 곳에 창조의 생명이 비집고 들어가면 어찌될까.
교묘하게 짜여진 법칙에 이변이 발생하고 그것만으로도 틈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틈을.
천범은 놓치지 않는다.
삼세삼신이 된 천범의 입가에서 불경을 외우는 듯한 음성이 셋으로 나뉘어 들려오고, 공간이 비틀림과 동시에 쩌저적 갈라지기 시작한다.
“그리 둘 것 같으냐!”
허나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볼 신위가 아니다.
쾅!
진각을 밟자, 지면에서부터 신목의 뿌리가 뻗어 나와 천범을 덮쳤다.
허나 그것을 예상하지 못한 그가 아니다. 입을 멈추지 않고 수결을 잠시 바꾸자, 천범의 주위로 화마가 치솟더니 금천지화로 이루어진 화룡이 나타나 그를 온전히 감쌌다.
신목의 뿌리는 이윽고 화마 속으로 재도 남지 않고 불타 없어졌다.
그야말로 속수무책.
“감히…! 모여라!!”
신위의 입가가 비틀리고, 절명신목에서 태어난 화신들이 그녀의 부름에 따라 모여든다.
아흔아홉의 흑룡들이 그녀의 손아귀에 순식간에 모이더니 검은 흑창으로 바뀌었다.
쿠구구구궁!!
요사스러운 기운을 흩뿌리는 흑창이 그녀의 손에 들리고 단숨에 투창하듯 천범에게 날아들었다.
다시 한번 천범의 수결이 바뀌고, 그를 감싸던 화룡이 몸을 부풀리고 흑창을 막아서려 입을 벌린다.
허나 그때.
콰앙!!
단번에 천범의 화룡이 터져나간다.
삼세삼신으로 변한 천범의 미간이 좁혀졌다.
보통 창이 아니다.
천범은 품에서 날이 두 개인 창을 꺼내 곧장 내던졌다.
쌍멸은 단숨에 날아가 자색 벼락을 흩뿌렸고, 흑창과 맞닿아 경천동지할 굉음을 천지에 뿌렸다.
콰아아아앙!!
끼긱끼기기기기기!!
창과 창이 맞부딪쳐 나올 수 없는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와 비슷한 굉음이 뻗어 나온다.
허나 천범은 쉬지 않고 입을 달싹였고, 이내 셋으로 나누어진 삼세삼신은 다시금 하나로 합일되었다.
이내 범의 모습은 머리는 셋이요, 팔은 여섯인 삼두육비로 변했다.
머리 둘은 쉼 없이 주술을 외우고, 넷의 팔은 수결을 맺었다.
콰장창창창!!
쌍멸과 흑창의 여파에 공간의 비틀림은 더욱 심해지고 균열은 이제 터져나가기 일보직전이라는 듯 여기저기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불천불벽.”
그때였다.
쌍멸이 그만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터져나갔고, 깃들어 있던 불천불벽이 뇌조의 형상으로 날개를 펼치며 사방으로 벼락을 뿌렸다.
쿠르릉 콰앙!!
콰자자자자자자!!
“산!!”
신위가 허공을 휘어잡더니 공간이 비틀렸다.
비틀린 공간 속에서 신위의 손아귀에 흑색의 단창이 들렸다.
그것을 다시금 내던짐과 동시에, 천범의 눈이 번쩍 떠졌다.
“창천금화(蒼天金火).”
여섯 개의 손에서 각각 피어난 태양이 신위의 흑창과 부딪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