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03)
낭선기환담-502화(503/600)
낭선기환담 – 2부 212화
창천금화와 신위의 창이 맞닿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파장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름이 금화라 지어져 있을 뿐, 범이 이루어낸 화신통인 창천금화는 태천외양신공을 극성으로 이루어내고, 삼세삼신의 창조 법칙이 다분하게 들어가 있는 태양이었다.
당연히 그것이 만들어낸 여파는 쉽사리 잠재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신위가 만들어낸 공간 자체가 단숨에 무너져 내렸고 폭발의 여파에 휘말려 깨져버렸다. 공간이 깨졌다는 말이 영 이상하게 들릴 수 있었으나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공간 자체가 박살이 나서 깨져나갔기 때문이었다.
“달아났나.”
주변을 살핀 천범은 아무 기운도 감지되지 않는 것을 느끼며 힘을 거두어들였다.
신위가 만들어낸 공간은 부서진 지 오래고, 그녀 또한 폭발과 함께 모습을 감춰버렸다. 조금 아쉬웠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이곳에서 신위와 결판을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곳은 신위가 그동안 자신의 적들을 피해 숨어있던 공간이다. 어떻게든 달아날 방법 한 둘은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렇기에 애초에 천범 또한, 그녀에게 물을 것이 있다고만 했었을 뿐, 결착을 지으러 왔다 하지 않았다.
“벽공부촉멸… 시간 법칙은 영 까다롭군.”
그녀가 익힌 법칙과 공법들은 지금의 천범이 보기에도 영 기괴한 것이 많아 갈피를 잡기가 어려웠다.
지나치게 강한 힘을 지닌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손쉽게 손아귀에 잡힐 만큼 호락호락하지도 않았다.
“상관없나. 어차피 이번엔 인사차 들린 것이니.”
인사치고는 소란을 꽤 많이 떨었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고… 여긴 어디야.”
신위의 촉명공간이 무너져 내린 뒤, 천범은 어두컴컴한 기이한 공간 속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신식을 펼쳐도 이렇다 할 것이 감지되지도 않았고, 무언가의 기가 느껴지지 않는 희한한 곳이었다.
유무간의 공간이라기엔 꽤 좁고, 다른 어딘가라 하기에는 너무 아무것도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본래 그녀가 숨어있던 공간이 부서졌다면, 상계 어딘가에 나타나야 하는 것이 정상이 아니던가.
한데, 그런 기색은 없고 알 수 없는 기묘한 공간만이 천범을 맞이하니, 묘한 감정이 그를 덮쳤다.
원선이 된 직후, 천범의 신식은 놀라울 정도로 늘어나 있었다.
하여, 상계 전역에 있는 거대한 기운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그렇기에 모든 원선태사의 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자모월에 있던 천범이 신위의 공간으로 스며든 것 또한, 그러한 신식의 영향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녀의 공법을 익힌 천범이기에, 신위가 만든 공간 자체가 일심만천옥경의 심경으로 만든 것이라는 걸 알아채 손쉽게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일심만천옥경이 극에 달하면 심경. 즉 마음의 거울이 대천옥경으로 이루어져 형상화된다.’
대천옥경을 이룰 수 있는 경지가 된다면 제아무리 강력한 공격이라도 막아낼 수가 있고, 그것에 더해 상대의 공격을 튕겨내 돌려줄 수도 있다.
일심만천옥경을 깊게 들여다보지 않은 천범이야 대천옥경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에 근접할 성취는 이루었기에 대강 알 수 있었다.
‘허나 대천옥경으로 만든 공간이 깨어지면 어찌 되는지는 나도 모르지.’
하여 이 사달이 벌어진 듯 하다.
“꼭 의도적으로 날 가둔 듯 하군. 그러한가 신위?”
허공에 대고 물었으나, 대답이 들려오지는 않았다.
천범은 이 공간 또한, 신위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또 하나의 독립된 공간이라 생각했다.
그러자 자연스레 떠오른 공법은 당연, 어령태행결.
자신의 몸이나 어령이란 것을 만들어 봉하는 봉인술이 떠올랐다.
천범은 어령태행결을 탐화에게 건넸기에 익히지 않아 확신할 수는 없었으나 떠오르는 것이 그것이다 보니 자연스레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이곳에 가두고 신위 본인은 유유히 달아난 것이 틀림 없다.
“내 생각이 맞느냐.”
그러자 천범의 손목에 감겨 있었던 작은 지네가 휘리릭 허공을 선회하며 어여쁜 소녀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바로 천범의 딸.
탐화였다.
“맞아. 여긴 누군가의 어령 속인 것 같아 아버지.”
탐화는 곧장 고개를 끄덕거리며 주변을 신기하게 살폈다.
그리고는 어느 한 지점을 골똘하게 바라보더니 입을 쩍 벌렸다.
와그작!
무언가를 씹어먹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와장창!! 봉인이 깨졌다.
“오, 맛있어!”
탐화는 신이 났는지 무언가를 씹어 먹기 시작했고 천범은 그것이 어령이란 것임을 알고 내버려 두었다.
본래라면 원선태사가 만들어낸 봉인술을 깨트리는 것은 같은 원선이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허나, 공법의 갈래가 같고 모든 걸 집어삼키는 탐의 핏줄을 이은 탓인지 그것을 가능케 했다.
탐화가 아니었다면 원선태사가 된 천범이라도 꽤 오랜 시간을 이곳에 잡혀 있었을 것이다.
잠시 후.
탐화가 씹어먹는 부분의 허공으로 나가자 이내 상계의 하늘이 엿보였고, 퍽 익숙한 건축양식이 천범의 동공에 내비쳤다.
“이곳은….”
금색과 은색의 구름이 만연하고, 그 위에 우뚝 솟아 있는 건물.
바로 사계 인근에 자리잡아 있는 만각변왕의 만각정이었다.
“나 이외에 다른 손님이 찾아올 줄은 몰랐군. 그것도 한참 원선들 사이에 가장 화제가 되는 인물일 줄은 더더욱 말이야.”
천범은 자신을 둘러싼 병사들과 강대한 기운을 흘리는 원선 둘을 바라보며 눈가를 좁혔다.
하나는 그도 익히 잘 알고 있는 만각정의 주인이자, 화양 공주의 부친인 만각변왕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웬 누더기를 걸치고 있는 기괴한 꼴의 노인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천범은 그를 보자마자 시체 썩는 냄새에 눈살을 찌푸렸다.
“허허… 반가운 얼굴을 이곳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군!”
만각변왕의 얼굴에는 반가움이 깃들었으나, 어딘가 모르게 석연찮은 기색도 역력했다.
천범은 그것이 곁에 있는 자 때문임을 모르지 않았다.
왜나하면 옆에서 누더기를 걸치고 시체 썩는 냄새를 풍기는 자가 바로, 사계의 원선태사 중 하나.
천범과 척을 져버릴 대로 져버린, 바로 옥별천왕이었기 때문이다.
‘우연은… 아니겠군.’
여기까지 내다본 신위의 안배이리라.
꽤나 귀찮은 짓을 벌여주었다.
범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만각변왕과 옥별천왕에게 포권했다.
“오랜만입니다. 만각변왕. 그리고 처음 뵙는군요. 옥별천왕.”
“호오, 본좌를 이미 알고 계시는가.”
“알다마다요. 화양의 지아비 되는 자가 바로 나이니, 모를 수가 없죠.”
그러자 옥별천왕의 눈초리가 날카롭게 변했다.
“네가 화양을 취한 그놈이라고?”
강렬한 천살기가 일대를 내리누르며 살벌하게 물어왔다.
주변에 자리한 만각정의 병사들은 천살기가 내려앉아 혼절하거나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대부분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데, 멀쩡한 것은 만각변왕과 옥별천왕.
그리고.
“천범이라 합니다.”
천범뿐이었다.
* * *
한편.
충계 어딘가에 은밀하게 숨겨진 공간과 공간 사이. 공허(空虛)라고 불리는 공간 속에 웬 새하얀 안색을 지닌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의 머리칼은 녹음진 듯 짙은 녹색을 지녔고, 팔 한 짝은 어디다 두고 왔는지 온데간데없었다.
전신이 성한데가 없었는데, 옷가지가 그을린 것은 둘째치고 큰 내상을 입은 듯 위태로워 보였다.
툭, 툭툭.
한 짝 남은 팔로 자신의 혈도를 찌르더니 이내 입을 달싹이며 고통에 찬 신음성을 내흘린다.
그러자, 그녀의 옷가지와 상처가 도로 아물고 훼손된 신체도 회복된다.
그러나 내상까지는 어찌하지 못하는지 안색은 여전히 파리한 채였다.
입술이 보랏빛으로 변하고, 전신을 덜덜 떨어대며 웅크렸다.
“내 잊고 있었구나. 그리 상냥한 너라도 싸울 때만큼은 그토록 무자비했었던 사실을.”
그녀는 천범과 부딪치고 상처 입어 달아난 신위였다.
너무 갑작스러운 등장에 제대로된 대처를 하지도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처구니 없이 당하고 말았다.
“본명원칙을 꺼내지 못했다. 미리 대비할 수 있었다면 이리 당하지는 않았을 것을.”
완벽하다면 완벽한 기습이었다.
설마하니 원선이 되자마자 기억을 되찾고 자신을 치러 올 줄이야.
막연하게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생각 정도는 했었으나 정말로 실현될 줄은 몰랐다.
신위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산은 적어도 그리 행동력이 빠른 사내가 아니었다. 신중하고 생각이 깊어 이리 과격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이게 맞는 거겠지. 어차피 이리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으니까….”
신위는 회한으로 뒤덮인 눈을 차분히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는 이내 자신의 손목을 그어 피를 내고는 지면에 법진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핏방울은 마치 살아있는 듯 절로 움직여 법진을 그려 갔고, 이내 법진 안에서는 녹음진 거문고 하나가 나타났다.
이 거문고의 이름은 촉멸금.
신위의 본명원칙이 깃든 보물 중의 보물이었다.
“촉멸금(蜀滅琴)인가….”
흠칫.
놀란 신위가 고개를 돌리자, 불현듯 들려온 음성의 주인이 당연하다는 듯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신위, 네 본명원칙을 보는 건 오랜만이군. 얼굴을 이리 마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예동.”
그는 일신홍성 예동.
줄곧, 그녀와 아검을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난 사내였다.
“요 근래 많은 일이 있었지. 갑자기 달무리가 사라지고, 새로운 원선이 나타난다 싶더니 네 공허가 사라지고 도통 찾을 수도 없었던 네가 상천 아래 모습을 드러낼 줄이야. 그러한데 같은 스승을 둔 동문이자, 오랜 친우인 내가 와보지 않을 수 없었지.”
그런 것 치고는 비틀린 입가와 눈빛이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하다.
마치 오래 전에 점 찍어둔 사냥감을 보는 사람처럼 말이다.
“이런 기회가 또 어디 있겠는가. 상처 입었다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내가 존경하던 친우의 복수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 불명예는 감수하고도 남지.”
일신홍성 예동은 기꺼이 명예를 저버릴 수 있다는 듯 화살을 잡아 활 시위에 걸었다.
“오랜 세월 묵은 원한을 청산할 때가 왔다. 오경계주 신위. 네가 조금이라도 지난날을 반성하고 있었다면!! 나의 화살을 피하지 못하리라!”
후우우웅!!
일신홍성 예동의 강력한 기파에 충계의 선충들이 놀라 달아나고 콰가강!! 한바탕 폭풍이 휘몰아친다.
허나 그런 용맹한 모습에도 신위는 헛웃음을 흘린다.
“뭐가 우습지.”
“…그저, 조금 우스울 뿐이었다. 산이 그리되었을 때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목석처럼 자리했던 네가 이제 와서 복수를 한다고? 그런 너 또한 산의 죽음으로 은혜를 입었어. 결과적으로 우리 덕분에 너도 원선에 한 발 걸칠 수 있게 되었지!”
신위의 언변에 예동은 그저 불쌍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어찌 그리 영락했는가. 누구보다 향상심이 강했던 네가 아니냐!”
“강했기 때문이지. 너무나도 원하고 절망했기 때문에!! 그리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모르지 않잖아!!”
“나에게 네 생각을 강요하지 마라.”
“너 또한 마찬가지야. 예동.”
예동과 신위의 입이 꾹 닫혔다.
더 이상의 대화는 불필요하다는 것을 서로 느낀 것이다.
설전을 펼쳐봤자 변하는 것은 없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러했다.
그나마 남아 있던 그리움의 잔향이 미련한 대화를 나누게 했을 뿐.
이내 예동의 화살이 그의 손을 떠나고, 신위의 거문고의 현이 퉁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