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07)
낭선기환담-506화(507/600)
낭선기환담 – 2부 216화
“신위가 왜 여기에….”
“다 죽어가는 것을 내가 잡았다. 충계에서 거대한 기운의 충돌이 느껴졌기에 혹시 몰라 잠복하고 있었는데, 누군가와 싸우고 치명상을 입어 달아나던 것을 어렵지 않게 잡았지.”
운이 좋았다며 말하는 린의 말에 범은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을 느꼈다.
그는 마음속으로 과연 이게 진정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를 되새겨보고 다시금 몇 번이고 생각해 봤다.
환술은 아닐까.
무언가의 속임수는 아닌지 고민해 보고 살펴봤으나 그런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린은 린이었고, 신위는 신위였다.
눈앞에 피칠갑을 한 채로 철쇄에 묶인 자는 분명한 신위가 맞다.
“내 손으로 끝낼 수도 있었지만, 그래서는 우리의 한이 풀리지 않아. 그래서 산, 널 기다렸어.”
츠즈즈즛.
린의 손에서 검은 기류가 모여 비검이 만들어졌다.
린은 그것을 범에게 건넸다.
“내 본명원칙의 힘이 담긴 야천(郡千)이다. 이걸로 찌르면 아무리 너라도 혼이 멸하여 윤회할 수도 없겠지. 기분이 어떻지 신위?”
“….”
신위는 말 없이 린과 산을 바라보고는 눈을 감았다.
어서 죽이라는 듯한 태도였다.
“산, 네게 맡길게.”
범은 검은 비도를 받아 살폈다.
법칙의 힘이 다분하게 스며있는 린의 본명원칙이었다.
하나의 법칙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원칙으로 삼은 신기다.
야천을 꽉 말아 쥔 범이 신위의 앞에 섰다.
이윽고 야천을 겨누며 물었다.
“아직도 답할 생각이 없나.”
이전의 물음에 대한 질문이었다.
어찌하여 자신을 제자로 받아들이는 수고를 했냐는 물음이었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어찌하여 그러했는지, 범은 아직도 궁금했다.
허나 답할 마음이 없는 듯 그녀는 린을 힐긋 올려다보고는 고개를 떨궜다.
“죽여라.”
신위의 목 끝에 검이 닿았다.
그리고 천천히 내려가, 몸 중심에 검을 겨누었다.
원선태사들은 원옥도 원신도 없기 때문에 그들을 죽이기 위해서는 법칙의 힘을 몸속에 퍼트려야 한다.
그래야 안쪽에서부터 파멸되어 확실하게 죽일 수 있다.
잠깐의 틈만 줘도 혼을 분열시켜 부활을 꿈꾸기 때문에 한 치의 방심도 있어서는 아니 됐다.
빠르고.
확실하게.
“이걸로 오래된 악연도 끝이구나.”
중얼거리는 주린의 말이 들려옴과 동시에 천범의 검이 찔러들어갔다.
폭.
야천이 깊게 박히고, 신위의 전신에 검은 거미줄 같은 표식이 퍼지더니 한순간에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촤르륵.
철쇄와 함께 신위가 입었던 옷가지만이 바닥에 떨구어졌다.
오랜 세월 상천의 절대자로 군림했던 자의 말로라기에는 너무도 허탈하고 허무한 죽음이었다.
“…죽은 건가.”
“응.”
린은 슬픈 듯한 얼굴로 범의 곁에 다가와 손에 쥔 야천을 거두어 들이고 그의 어깨에 머릴 기댔다.
신위의 기운은 린이 건넨 야천이라는 본명원칙에 담겼다.
‘허무하군.’
정말로 죽은 게 맞는지 의아할 정도로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산의 혼과 합일되어 원선이 된 천범인 만큼, 그의 원수는 자신의 원수와도 같다 생각하고 행동하려 했으나… 이런 허무한 복수는 이도저도 아닌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리 오랜 세월을 살아온 원선 또한 이리 허망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인가.
아니면 산의 기억 이전에 남아 있던 그녀에 대한 정 때문인가.
하지만 범은 그것이 무엇인지 판가름 할 수 없었고, 이제와 생각해 봤자 좋을 게 하등 없었다.
이미 죽어 없어진 자에 대해 고민해 봤자 무엇 하겠는가.
흠뻑 젖은 천처럼 미련 가득한 물기를 뚝뚝 떨어뜨릴 뿐이니 머릿속에서 빨리 지워버리는 게 낫다.
“린, 천외양군은 어디 있느냐.”
“그자는 지금 건원해목에서 몸을 숨기고 있을 거야. 그가 노리는 것은 지란위니까.”
왜 함께하지 않은가 했더니, 지란위가 나타날 때까지 몸을 숨기고 있을 생각인 듯했다.
천외양군은 본래, 선살전으로 어지러운 때에 나타나 대대적인 복수를 행하려 했던 자이니….
범은 잠시 가만히 생각을 정리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가?”
“마음이 어지러워서.”
“산…? 드디어 우리가 만나고 복수도 했는데 날 두고 어딜 가려고?”
린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것도 그렇다.
린 입장에서는 드디어 일차적인 복수를 완료하고 서로 만나게 된 기적 같은 일이지 않은가.
한데 정작 반응이 뜨뜻 미지근하니 어이가 없을 만도 하다.
“급한 게 아니라면 나와 있자. 못 다한 이야기가 많아. 이전의 너와는 하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가.”
허나 범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의 원수이기도 했으나, 오래된 친우이기도 한 녀석이었다. 지금은… 잠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다오. 너무 갑작스럽고 혼란스러워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하다.”
“그건 나도 그래! 그러니까 같이 있으면 되는 거잖아?”
린의 말은 합당했다.
불구대천지원수를 죽였으나, 그녀 또한 본래 오랜 세월을 함께한 친우였으니 함께하며 마음을 다스리자.
전생에서 그리 죽임당한 부부였으니 당연히 그러하는 게 맞다.
허나 안타깝게도 범은 산이 아니었고, 전생의 기억 또한 그의 것이 아니었다.
하여 그러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범은 묘한 낯으로 린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발길따라 걷던 순간.
지이잉.
돌연 기묘한 기의 파동과 함께 범의 주변 풍경이 모두 지워지고 새까만 어둠이 몰려왔다.
“무슨 짓이냐.”
등 돌린 채로 물으니, 기묘한 대답이 들려온다.
“항상 날 두고 어딘가로 가버렸잖아. 예전에도 그러했고, 이번에도 그러했지. 항상 넌 그랬어.”
뒤를 돌아보니, 린은 울고 있었다.
그 일그러진 얼굴을 보니 내심 미안한 감정이 치솟았다.
너무 자신의 감정만 앞세워서 린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였다. 그녀가 이리 나오는 것도 이해는 간다.
“왜 날 똑바로 보지 않아? 옛날과는 많이 달라졌다 해도, 지금의 나는 너와 사랑을 속삭이던 린이잖아.”
천범의 미간이 좁혀진다.
그것과 달리 린은 한걸음씩 그에게 걸어간다.
“왜 피하는 거야. 왜 달아나려고 해. 왜 내 마음은 신경 쓰지 않아? 내가 대체 어떤 마음으로 줄곧 널 지켜보고 널 도와온 줄 알기는 해?”
모른다.
알 리가 없다.
자신은 그녀가 아니기에.
생각해보니 충분히 화낼 만하다.
뭔가 꺼림칙한 기분 때문에 그녀의 마음을 상하게 한 듯하다.
“….”
잠자코 있으니 그녀 또한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허나 이내 범의 손을 슬며시 꼬옥 잡았다. 놓고 싶지 않다는 듯.
“가지 마.”
내 곁에 있어.
떠나지 마.
“줄곧 떠나 있었잖아. 그러니 이제는 떨어지지 말자. 응?”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올려다보니 마음이 약해진다.
“난 솔직히 복수를 하지 않아도 좋아. 너와 함께 할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도 돼. 그냥 이전처럼, 우리 둘이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살자.”
산도 좋고, 달도 좋다.
그 어디라도 둘이 함께라면 행복하기 그지없으니.
“우리네가 힘을 갈구하고 단련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영생을 위한 것이고 영생은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겠어? 그러니 우리들만 평생 행복하다면 그거야 말로 영생 이나 다를 바 없는 거야… 산. 우리 부부의 연은 깊고 깊어. 그걸 억지로 갈라서려 하면 안돼. 전생에도 이번 생에도 우리의 붉은 실은 이어져 있으니까.”
그러니 이제는.
“떨어지고 싶지 않아. 부부잖아.”
울며 매달리는 그녀의 말에 범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괜한 짓을 했구나.’
그저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산이라 했었는데, 이런 모습을 보이게 될 줄은 몰랐다.
차라리 산이 아니라 할 것을.
산의 기억을 보았으나 자신은 그가 아니라고, 그리 말할 것을 잘못했다.
“린, 나는….”
“내가 다른 걸 원하는 게 아니잖아! 그냥… 나와 함께 있어줘…!”
간절히 말하는 모습이 애처롭기 그지없다.
범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차마 아니라 대답할 수 없었다.
“…알았-”
그때였다.
쇄에에에에.
어디선가 바람 새는 큰 울림이 떨려오고 린이 만든 어두운 환계 전체가 크게 진동했다.
마치 태풍이라도 몰아치는 듯 새까만 공간이 호숫가에 흘린 먹물처럼 흩어진다.
린이 한 짓인가 했으나 그렇지 않은 듯 그녀의 낯이 심상치 않다.
이윽고 환계가 사라지고 보이는 풍경은 이전의 상천.
그리고.
누더기 옷차림의 썩은 내를 풍기는 원선태사.
바로 옥별천왕이었다.
“옥별천왕? 어찌 이곳에….”
범이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가운데 린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만 갔다.
그 변화를 눈치 챈 범이 린의 앞을 막아 세우고 옥별을 보았다.
그는 여전히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으나 풍기는 기운으로 보건대 당장이라도 누구 하나를 죽일 듯한 천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천 선사. 아니, 범. 네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게 있다.”
돌연 자신을 친근하게 부르는 옥별천왕의 말투에 당황하던 것도 잠시.
이내 목소리가 변했음을 눈치 챘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듯한 익숙한 음성이었다.
조금 갈라지고 메말랐으나 범의 기억 속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음성이 틀림없었다.
“산, 듣지 마라. 저놈이야 말로 우리의 주적이다!”
린이 급작스레 옥별에게 달려든다.
콰앙!!
진각을 밟자 삽시에 검은 연기가 사반으로 휘몰아치고, 옥별과 천범을 갈라서게 만든다.
허나 옥별도 가만있지 않았다.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내 벗을 위태롭게 하는구나.”
콰아아아아!!
옥별의 전신이 별빛으로 반짝이며 성운지력이 빛기둥으로 폭발한다.
린의 검은 안개가 기를 쓰지 못하고 허물어지자 그녀의 손에 신위를 죽였던 야천이 들려진다.
그녀가 본명원칙을 꺼내자 옥별의 두 손이 수결을 맺었고, 등 뒤에서 성운지력으로 빛나는 무형의 팔들이 뻗어 나왔다.
천수관음처럼 수 없이 뻗어 나오는 성운지력으로 형상화된 거대한 부처의 손이 뻗어 나와 린의 공격을 매섭게 받아친다.
린의 검은 안개는 퍽 강력한 법칙을 가지고 있는 듯 옥별의 천수관음을 점점 어둡게 물들여 가루로 변하게 만들었다.
쾅, 콰아아앙!!
부딪치면 부딪칠 때마다 천지가 떨려오고 강렬한 기의 파동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범!! 넌 속고 있다! 이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지! 저 요망한 년에게 속아 네 도생을 잃지 마라! 저년은 네 짝이 아니다!!”
“헛소리!! 나야 말로 진정한 산의 반려다!”
콰앙!!
“큭!”
옥별의 누더기가 린의 공격에 의해 찢겨진다.
그리고 드러나는 모습은.
얼굴 대부분이 썩어들어 뼈가 보이고 모습이었다.
허나 그런 기괴한 모습 외에도 범은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썩지 않은 얼굴 부분만 보아도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얼굴은 상계에서 우연찮게 이어진 인연 중 하나.
“…청명?”
청명의 얼굴과 똑 닮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