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15)
낭선기환담-514화(515/600)
낭선기환담 – 2부 224화
“살아, 있는 것이냐.”
그의 물음에 대천무장의 안색이 바뀌었다. 꼭 죽었다 생각한 것처럼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생각해보니 그가 그리 여기는 것이 당연했다.
그녀는 몸을 빼앗긴 상태였었고, 그런 호리와 함께 등선한 홍연이다.
몸을 빼앗긴 것을 지켜봤을 테니 신위 입장에서야 굳이 살려둘 필요가 없는 여인이다.
쓸모가 있었다 하더라도, 호리의 몸이 원선이 된 시점에서는 가치가 분명 없어졌을 터.
하니, 그의 입장에서는 죽었다 생각하는 것이 타당했다.
“제가 알기로는… 살아 계십니다.”
그러자 그의 낮이 환해졌다가, 먹구름 낀 듯 다시 어두워졌다.
“그렇구나.”
“왜 그러십니까.”
“분명, 그녀가 살아있음은 기뻐할 일이다만.”
주인을 잃은 그녀가 어떤 낯으로 삶을 이어갈지는 불 보듯 뻔했다.
주인 잃은 적뇌주랑은 목숨을 끊기 마련이니… 천범은 그녀가 살아있음에도 순수하게 기뻐할 수 없었다.
그녀가 호리의 죽음을 어찌 받아들이고, 어떤 선택을 할지.
너무도 뻔했기에.
“그래도 우선은 만나봐야지.”
우선은 얼굴을 봐야, 말을 하든지 말든지 할 것이다.
“…물론입니다.”
대답이 한 박자 늦다.
꼭 뭐가 걸리는 게 있는 듯.
“뭔가 걸리는 것이라도 있는가.”
“아닙니다. 태사께서 신경 쓰실 것이 아니지요.”
뭔지 알듯 했다.
“전장의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겠지. 수계의 전장을 진두지휘하는 자네가 오래 자리를 비우게 되는 걸 우려하는 것 아닌가.”
아마 이곳에서 대천궁까지의 거리는 꽤 된다. 3, 4년 정도 소요되는 시간이 걸리니 그간의 전장이 어찌 될지 내심 마음에 걸리는 것일 터.
그녀는 퍽 책임감이 넘치니까.
“….”
아무 말도 못하는 것을 보니 맞는 모양이다.
“하기사, 수계에 자리한 원선태사 둘 중 하나는 곧 죽을 거고. 나머지 하나는 영 속세에 관심이 없으니.”
남부전선은 화양의 사계 군대가 치고 올라오고, 서부는 영 불안하니까.
이내 대천무장의 귀가 쫑긋 솟는다.
“죽게 될 거라니, 그게….”
천범은 그제야 뒷짐을 풀고 몸을 그녀에게로 돌렸다.
“수계가 걱정되거든 내게 붙어 있는 것이 낫지 않겠나. 자네가 걱정하는 남부 전선은 지원병이 도착할 것이고, 그들은 싸우지 않고 인질을 양도 받을 것이다.”
“화양부동(花樣不同)에게 말입니까…?”
“화양부동?”
“아, 수궁에서 그녀를 칭하는….”
명칭인 모양이다.
무슨 뜻인지 물으니.
꽃 화 자와 모양 양.
그리고 아닐 부와 한 가지 동자를 써서 화양부동.
뜻을 풀이하자면….
“꽃의 모양이 한 가지가 아니다?”
“여러 방면으로 뛰어난 그녀를 그런 별호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 뜻이 아닌 거 같은데?”
전장에서 지어진 별호다.
사계의 군대를 지휘하는 화양에게 듣기 좋은 별호를 지었을 리 없다.
“꽃 모양이 하나가 아니다라… 꽤 짓궂은 별호군.”
여성의 은밀한 부분을 꽃잎에 비유하는 편이다.
그 모양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은…
방탕한 행위를 비꼬는 것일 터.
“송구합니다.”
“아니네. 자네가 사과할 필요가 있나. 그녀가 이끄는 군대가 수궁의 군사를 도륙하는 중이니 충분히 악감정을 가질 수 있지.”
조소를 머금은 천범을 보고 대천무장은 겨우 안도했다.
“화양부동이라… 큭큭, 재밌군.”
하기사.
그 아름다운 여인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누가 알까.
‘나도 모르는데.’
하지만 한 가지 그가 아는 것이 있다면….
“벌꿀주가 쓰다는 것이지.”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니네. 아무튼 걱정할 것 없네. 내 팽 가주에게 전한 것이 있으니까.”
“무엇을….”
“맡겨놓았다. 그녀에게 건넬 전언을. 그것이면 걱정할 필요 없을 거다.”
‘그녀가 내 말을 들어줄지는 모르겠지만 더 억지 부리지는 않겠지.’
애초에 그녀가 이렇게까지 전쟁에 열중한 것 또한.
‘나름의 표현일 테니.’
그제야 대천무장은 대강의 내용을 이해하고 고개를 숙였다.
“태사님의 전언이라면 그녀 또한 더 이상 진군하지 못하겠지요. 수계를 위한 배려, 감사드립니다.”
“내 사람들이 다치는 걸 보고 싶지 않을 뿐이네.”
화양에게 잡혀 있다 들은 자는 다른 이도 아닌 가연.
그리고 싸우는 이들은 쌍선대.
게다가 화양은 남부전선을 뚫어내며 진군하고 있다.
거기서 더 올라가면 바로 사하가 있는 상서가 닿을 테니, 괜한 충돌을 피하게 함이 옳다.
“그리고 시간은 걱정할 것 없다. 대천궁까지 얼마 걸리지 않을 테니.”
이내 천범과 대천무장의 곁에 금천지화가 피어오르며 기묘한 진을 이루기 시작했다.
* * *
며칠 뒤.
“군수님. 이것을.”
철가면을 쓴, 금과 은의 아름다운 머리칼을 늘어뜨린 사계의 군수.
화양은 자신의 군대 앞에 자리한 수계의 군대를 내려다보았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눈빛이 사나운 사내가 선두로 있었다.
노인의 모습을 한 사내였으나 기백이 남다른 것을 보니 수계에서도 꽤 높은 인물인 듯 했다.
“무엇이냐.”
“서신이옵니다. 수계의 오대세가 중 한 가문의 가주로, 인질로 잡혀 있는 쌍선의 아비라 하더군요.”
“딸이 붙잡혀 직접 온 건가? 부녀 간에 정이 꽤 돈독한 모양이구나.”
화양은 잡혀있는 상선들 중 붉은 머리칼을 늘어뜨린 여인을 보며 말했다. 그녀는 두 손과 몸이 부적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여러 겹으로 꽁꽁 싸매듯 봉인부를 붙여 놓은 듯 했다.
입도 뻥긋하지 못하는지 아미를 좁히며 인상만 쓰고 있었다.
“어디, 네 아비가 무슨 말을 써 놓았는지 한 번 보자꾸나.”
허나 여유로웠던 표정은 온데간데 없고 화양의 눈살이 찡그려졌다.
적혀 있는 것이라곤 딱 네 글자.
[朕不甘好]“짐불감호?”
직역하자면.
“나는 달지 않아서 좋다….”
달지 않아서 좋다.
뜻을 생각해보던 화양은 이내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스르륵.
일어나자마자 순식간에 연기로 변해 군대의 선봉에서 나타난 화양은 말을 타고 있는 붉은 머리칼의 사내에게 외쳤다.
“누구에게, 누구에게 받았습니까!”
공력을 실어 넣은 음성은 일대에 널리 퍼졌고, 그녀의 감정이 얼마나 격해져 있는지 모두가 알 수 있었다.
하여 질문을 받은 팽 가주.
팽종연은 답했다.
“수계의 새로운 상천께 받았소.”
수계의 새로운 상천!
“하늘 천 자를 쓰시는 분입니까.”
“그렇소.”
아아.
화양의 탄식이 새어나왔다.
이내 서신을 다시 한번 바라보곤 화사한 꽃과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나는… 달지 않아서 좋다.”
쓰디쓴 벌주를 마시고도 이런 소리를 적어 보낸 것이다.
화양은 입술을 깨물며 가슴 한 켠이 벅차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 * *
대천궁의 하늘이 비틀리고, 순식간에 금색 화염이 피어올랐다.
쿠구구구구궁!!
그리고는 불기둥이 내려 앉아, 대천궁 일대에 격한 진동이 일어나자 주변의 수선들이 모두 놀라 혼비백산하여 흩어지고 여파에 휘날려 백 리 밖으로 날려지기도 했다.
그나마 강한 힘을 지닌 이들은 금색 불기둥이 내려앉은 곳을 겨우 바라볼 수 있었는데, 그곳에는 한 사내와 여인의 인영이 엿보였다.
검은 너울과 궁장을 입고 있는 여인. 그리고 금색의 눈동자를 지닌 사내.
대천무장과 천범이었다.
“태사님.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과한 것이 아니신지….”
어떠한 방법으로 공간을 넘어 온 것인데, 그 여파가 엄청나다.
“이렇게 안 하면 자네 몸이 성하지 않을 것이니 그리 한 것이네.”
천범은 공간을 뚫어내 이동하는 공간이동 술법을 사용했는데, 화신통을 이용하는 것이라 그런지 주변에 여파가 조금 심하긴 했다.
허나 공간을 뚫어내 이동하는 것이다 보니 이리하지 않으면 대천무장이 공간의 압력을 버텨내지 못할 거라 어쩔 수 없었다.
“빨리 왔으니 되었지 뭐. 가세나.”
그때였다.
촤자자자자작!
곧장 대천궁 지하로 들어가 보려 했으나 그를 막는 이가 있었다.
대천궁을 지키는 군사들이었다.
“비켜라. 내가 누구인지 모르더냐.”
“대천무장께서는 현재 최전선을 지키는 중이시지요. 오신다는 연락을 받지도 못했으니 저희는 저희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전쟁 중이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
“상황은 알겠지만 내 마음이 조금 급하군.”
천범이 한 마디하자 대천무장은 자신의 품에서 명패를 꺼내들었다.
대천무장임을 증명하는 대천패였다.
그것을 보이자 병사들의 기세가 조금 누그러들었다.
“알아보았으면 비켜라. 지금 이분은 너희들이 함부로 막을 분이 아니시다!”
“그분이 누구신데 함부로 막을 분이 아니랍니까!”
후우웅!!
세찬 바람이 몰아침과 동시에 나타난 사내가 지면으로 내려섰다.
대천궁의 다른 주인.
대천문장이었다.
“음? 아니… 문무관장이 아닌가?”
“대천문장. 예를 다하시는 게 좋을 것입니다.”
“예를 다하라니. 원선태사분들을 제외하고 제가 예를 다해야 할 분들은 몇 없습니다. 당연히 문무관장 또한 제외되지요. 제 말이 틀립니까.”
“당연합니…!!”
반박하려는 찰나.
천범이 그녀를 제지했다.
“자네 뒤에 누가 있군.”
“그게 무슨 말이신가.”
쉬이이익!
천범이 대천문장을 향해 한 손을 펼치자 그의 몸이 사슬에 엮이기라도 한 듯 끌려왔다.
턱!!
“컥!”
천범의 손아귀에 목을 넘겨준 대천문장은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대경실색하며 빠져나가려 했다.
“태사님!! 왜, 왜 그러십니까!!”
다짜고짜 대천문장을 공격하다니.
너무 급작스러웠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일은 아니었기에 더욱 그랬다.
퍼엉!!
그때 대천문장의 전신이 펑 소리와 함께 여러 깃털로 변해 흩어졌다.
“판단은 좋았으나 상대가 나빴군.”
수천 개의 깃털로 변해 사라지려 했으나 통할 리 만무.
수천 개의 깃털들은 시간이 도로 감아지기라도 한 듯 천범의 손으로 다시금 모여들어 대천문장으로 변한다.
“헉!!”
말도 안 된다는 듯 경악한 그의 앞에 천범은 담담한 눈으로 물었다.
“누구신가.”
대천문장을 보지만, 그를 보고 있지 않은 듯한 눈이었다.
끄득! 끼드득!
그러자 대천문장의 목이 기괴하게 꺾이며 흰자위가 검게 물들었다.
“헛!”
그들을 감싸던 병사들도 놀라고, 대천무장 또한 아연실색한다.
대천문장의 몸에서 나타나서는 안 되는 기운이 흘렀기 때문이다.
그들의 숙적.
진득한 붕마의 기운이 삽시에 사방으로 뻗어 나왔다.
“태사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대천문장의 안에 다른 이의 기운이 숨어져 있었을 뿐이네.”
대천문장은 붕마의 기운으로 천범의 손을 빠져나갔다.
이내 나타난 모습은 진즉 알던 대천문장이 아닌 전혀 새로운 사람.
새하얀 피부와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미청년이었다.
허나 목에 천범의 손자국이 새겨진 것을 보면 대천문장의 몸을 빌린 다른 무언가가 맞을 것이다.
“만골대사가 죽어 사라졌으니, 당신은 붕계의 절마대군이겠군.”
붕계의 원선은 둘이었으나 만골이 죽었다.
그럼 이런 붕마기를 뿜어내며 향선 최고봉에 올라있는 대천문장을 지배할 자라면 당연히 원선.
상천해월의 한 석을 차지하며 만골과 함께 붕계를 지배한 원선태사.
절마대군(節魔大君)밖에는 없다.
[그러는 당신은 얼마 전, 원선으로 승선한 금천이시겠습니다.]“금천?”
[온 하늘을 금색으로 물들여 우리는 그리 부르고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모르셨나 보군요.]몰랐다.
허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절마대군. 수계의 수선에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별 것 아닙니다. 제가 세상일에 관심이 많아 이런저런 아이들에게 씨를 뿌려 놓은 것뿐이죠. 저는 때때로 이들에게 제 힘을 쥐어주고 그들의 생명을 지켜주며, 그들은 저에게 약간의 정보를 건넬 뿐입니다.]그러니까 한마디로.
“세작 질을 시킨 것이군요.”
[흐하하! 말하자면 그런 게지요. 상천에서 남들이 모르는 정보는 웬만한 법기나 법보보다 귀합니다. 그걸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편이라… 제가 들은 이야기 중, 어느 하나가 제 목숨을 구명해 줄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까.]틀린 말은 아니다.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아서 나쁠 게 없으니.
더구나 지금처럼 혼란할 때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해서, 많이 얻으셨습니까.”
[많이 얻었지요. 당신이 죽인 원선들 또한 알 수 있었고요.]천범의 눈썹이 껄끄러운 듯 움찔거렸다. 허나 주변에 자리한 대천무장과 병사들은 그와 반대로 얼굴색이 급변했다.
원선태사가 죽고, 그것을 죽인 자가 천범이라니 그들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그것까지 아는 건가.’
허나 완벽하게 아는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아마 옥별천왕마저 천범이 죽였노라 생각하는 듯 했으니.
[덕분에 저는 금천, 당신에게 귀중한 한 표를 실어주기로 했습니다.]“한 표요.”
무슨 한 표를 말하는지는 대강 유추해볼 수 있었다.
원선태사들을 말하는 것이리라.
[당신을 원하는 자가 있지 않습니까. 알고 있을 텐데요?]“그 검에 미친놈 말입니까.”
[하하하! 예, 그렇지요. 검에 미친 그 작자가 말입니다.]“제 목을 가지러 온답니까.”
[아뇨,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당신이 오기를 목이 빠져라 말이죠.]그곳은 아마 건원해목.
그곳일 것이다.
[어쨌거나 전 중립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싸움 구경은 꽤 좋아하는 편이라 관여하지 않기로 했죠. 제가 나서면 그 재밌는 구경, 하지 못할 테니.]‘중립….’
절마대군은 자신이 중립을 지킨다 하였다.
말인즉슨.
‘다른 이는 아니라는 거군.’
중립을 지키지 않는 자가 있다.
그건 즉.
‘검노와 함께 날 치겠다는 이도 있다는 것인가.’
대체 무엇을 위해?
홀로 질문하고 답을 생각한 천범은 무심코 고개를 위로 올렸다.
“또 하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