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28)
낭선기환담-527화(528/600)
낭선기환담 – 2부 237화
“선등음석이라 하심은….”
“내 알기로 미가에서 가장 자랑하는 보물은 선등음석이라 들었다.”
천범이 이곳으로 온 여러 가지 이유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오랜 전통이자 가보로 이어져온 선등음석은 본래, 외부인은 함부로 볼 수조차 없는 것.
원선태사라 하여도 본래라면 보여 주기를 꺼려 할 것이다.
허나.
‘명분이 생겼군.’
더할 나위 없는 명분이 생겼는데, 감히 그들이 거절할 수 있을까.
“나 또한 원선태사가 된지 얼마 되지 않은 몸. 구태여 피를 보고 싶지 않을 뿐더러 아직 어린아이가 저지 른 잘못인데 피까지 봐서야 쓰겠나.”
“…….”
“허나 마냥 어리다하여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그냥 넘어가는 건 저 아이를 위해서도 좋지 못하지.”
허니 내놓으라는 소리다.
선등음석을.
좋게좋게 에둘러 말했으나, 죽기 싫으면 내놓으라는 소리나 다를 바 없었다.
당연히 미가의 가솔들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안색이 파리해졌고, 미씨를 대표하는 가주도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는 듯 낯빛이 좋지 못했다.
“보…여드리는 건 가능합니다.”
“보여주는 건 가능하다?”
눈썹을 치켜 올리며 언짢다는 듯 답하자 가주의 머리가 더욱 바닥을 향했다.
“오랜 전통이 깃든 물건이고, 옛 선조의 금구로 잠겨져 있는 것이라….”
금구.
천범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선등음석을 만든 원선의 금제가 걸려 있나 보군.”
“예. 선조께서는 후손들을 위하여 안배해 놓은 것이지요….”
그렇다면 대강 이해가 된다.
아마도 누군가가 함부로 훼손하지 못하게, 또는 훔쳐가지 못하도록 금제를 걸어둔 것이리라.
“하여 저희들은 그것을 마음대로 하지도 못하고 있는 사정인지라….”
어쩌지 못한다는 말이다.
원선의 금제라면 저들로서도 어찌 풀어내지 못할 터.
납득은 간다.
내심 안심하는 듯 보이는 얼굴이 그닥 보기 좋지는 않았지만.
“다른 것으로 보상해드릴까 하는데 어떠십니까.”
“다른 것?”
“제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선등음석을 가져가셔도 딱히 쓰일 곳은 없을 것입니다.”
“호오, 왜 그렇지?”
“선등음석은 그저 밀집된 기운을 표시하고 조금의 분석을 할 뿐입니다. 저희 같은 아랫것들은 큰 위험을 보고 피할 수 있겠으나, 금천대사님 정도 되는 분에게는 그다지 필요치 않은 물건이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다.
애초에 원선태사의 기운은 일반적인 신선의 기와는 궤를 달리한다.
의도적으로 기운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면 근처에 있는 것을 모를 수가 없다. 너무도 방대하기에 숨기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글쎄, 물건의 가치는 다른 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하는 것이지 않겠나.”
“그, 그렇지요… 허나 저희도 드리고 싶어도 드릴 수가 없는지라.”
“그럼 우선 내 한 번 보도록 하지. 그 이후에 정해도 되지 않겠나.”
“예….”
그때였다.
“축, 거기 있었느냐.”
“예, 증조부님.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잠깐 나갔다 왔더니 미씨의 가솔들이 전부 넙죽 엎드려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범은 별 것 아니라는 듯 축의 어깨를 두드렸다.
“별 것 아니다.”
별 것 아닌 게 아닌 듯 했지만 축은 더 묻지 않았다.
무슨 일을 벌였던 그것은 자신의 증조부이고 상계의 하늘에 오른 인물이니 자신이 뭐라고 더 물을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으리라.
털썩.
그때 천축의 앞에 한 여인이 나타나 오체투지했다.
누군가 하고 보니 낯빛이 꼭 귀신처럼 허여멀건 해진 미미아였다.
“미미아 소저가 아니십니까. 갑자기 왜… 일어나시지요.”
당황한 천축이 그녀를 붙잡아 일으키려 했으나 듣지 않았다.
축과 뒤에 자리한 서단은 갑자기 석고대죄 하듯 고개를 조아린 그녀의 심중을 종잡을 수 없었다.
“아닙니다! 제가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가, 감히 제가 분수도 모르고 그랬습니다!!”
“갑자기 무슨….”
그녀의 신분에 분수라니.
축과 서단이 서로를 바라보며 의아해 하니, 미미아는 두려움에 떠는 낯으로 천범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내 미미아가 서단과 서단의 어미를 흉보았음을 말하자 그제야 왜 이러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이렇게까지 사죄하니 이럴 필요까지 있나 싶었으나, 그것을 들은 자가 바로 하늘에 닿은 원선태사.
금천대사이니 축과 서단은 무어라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들이 떨떠름한 낯으로 머뭇거리자 범은 담담한 눈으로 말했다.
“따르거라. 선등음석을 한 번 살펴보러 갈 것이다. 원선이 만든 보물 이니 네 견문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겠지. 서단, 너도 오거라. 너 또한 내가 아끼는 아이의 딸이자, 증손주의 짝이 될 아이니 마땅히 챙겨 주는 것이 맞겠지.”
“예, 어르신.”
지면에 이마가 닿은 채로 눈물 흘리는 미미아를 내려다보던 서단은 천축과 금천대사의 뒤를 따랐다.
그녀의 뒤를 미가의 가솔들이 색다른 눈으로 바라보았다.
* * *
쿠구궁….
육중한 소리가 들려오며 지하의 석문이 먼지를 뿜어내며 열리고 다소 산뜻한 풀내음과 밝은 채광이 그들을 반겼다.
“별다른 금제는 없군.”
선등음석으로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지하로 통하는 석문 하나만 넘으면 갈 수 있는 쉬운 길이었다.
미씨 세가의 최고 보물이 있는 장소라면 여러 금제가 겹겹이 쌓여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할 필요가 없을 뿐입니다. 애초에 선등음석은 자체에 금제가 걸려 있을 뿐더러 웬만한 자들은 미씨 세가의 보물에 손대려 하지 않죠.”
“그렇군.”
예전에 들었던 미씨 세가의 일화를 떠올리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옛날, 어느 비승수선이 뭣 모르고 미가의 자제를 건드렸다가 수계 전역에 수배령이 내려져 결국에는 목이 잘렸다고 한 이야기가 있다.
천범이 막 등선에 올랐을 때 사하의 입으로 들었던 것이라 잠시 잊고 있었지만 미씨 세가는 본래 호전적인 가문이라 웬만해서는 저들의 눈에 거슬리는 짓을 하지 않는다.
집요할 만큼 자신의 은원을 확실하게 따지는 자들이니 말이다.
‘내 앞이라 숙이는 것이지.’
본래 저렇게 고분고분한 자들이 아니다. 그들의 본신은 거원(巨猿)이니.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천범은 의아해하며 미 가주에게 물었다.
“한데, 미씨 세가에 원래 원선태사가 없었나?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러자 미 가주는 처음 듣는 소리 인양 고개를 저었다.
“꽤 오래전 일입니다. 존재하셨으나 하늘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셨지요.”
“…그런가?”
천겁을 견디지 못했다는 뜻.
허나 범은 의아함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이상하군. 분명 미씨 세가에도 원선이 존재한다 들었던 거 같았는데….’
허나 자신의 머릿속에서도 그 기억이 모호하고, 미씨 세가의 입에서도 그렇지 않다 하니 더 물을 수 없었다.
그저 의아하다 여기며 지하로 통하는 길을 거닐 뿐이었다.
“이곳입니다.”
“음. 화사하군.”
몇 개의 석문을 더 지나니 화사한 정원과 함께 작은 연못이 나타났다.
지하에 만들어진 정원과 연못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듯했으나, 주변에 드리운 안개와 정교하게 조각된 여러 개의 기둥이 그것을 어울리게 했다.
‘흠.’
바닥 또한 보통의 흙바닥이 아니다.
여러 그림으로 조각되어 있었는데 대부분은 갑주를 입고 봉을 휘두르는 원숭이의 우람한 모습이었다.
하나는 봉을 들고, 또 다른 것은 부채를 들고 있는 등, 열두 개의 거원은 각각 지닌 무기가 다 달랐다.
지면에 그려진 열둘의 그림과 같이 장대한 기둥 또한 지면의 그림과 연결되는 듯 각각의 문양이 조각되어 있었다.
봉, 검, 창, 부채, 호리병 등등의 여러 가지 물건들이 기둥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는 것이었다.
그 주변에 안개가 자욱하고, 중심에는 정원이 만들어져 있으니 묘한 분위기를 풍길 수밖에 없었다.
“선등음석은 어디 있는 거지?”
하지만 보려 했던 선등음석은 보이지 않았다.
범이 묻자 미 가주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연못 위로 발을 올려 파문을 만들며 나아갔다.
“직접 보셔야 제가 어찌하여 드릴 수 없다 하였는지 아실 것입니다.”
휘이잉.
묘한 바람이 연못의 파문을 만든다.
이내 미 가주의 손에 작은 단검이 들려지고 그것을 손바닥으로 감싼다.
스걱.
서늘한 소리가 들리고 손바닥에서 흘러내리는 핏방울이 단검을 타고 흘러 연못으로 투둑 떨어졌다.
후우웅!!
그러자 열두 개의 기둥들이 옅게 빛났고, 각각의 묘한 색상을 지닌 안개들이 뿜어져 나와 중심으로 모였다.
소용돌이치며 몰려든 안개는 이내 구름처럼 뭉쳐져 형태를 견고히 하기 시작하고, 그것의 움직임이 멎어들고 나서야 범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군. 이래서 그랬던 거군.”
연못 위에 나타난 것은 구름.
구름으로 이루어진 지형의 형태.
그것이 그린 것은 바로 상계였다.
다섯으로 나뉘어진 상계의 땅을 표방한 듯한 모습. 구름으로 이루어진 상계의 축소된 모양이었다.
“헤아려 주실 수 있겠지요. 이 때문에 저희는 드리고 싶어도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범은 물론, 뒤에 자리한 천축 또한 놀라워하며 선등음석을 바라봤다.
구름으로 이루어진 무언가는 그리 놀랄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선등음석은 상계의 형태를 그리면서도 밀집되어 있는 기운의 크기를 정확하게 표시하고 있었다.
“맞군.”
수계를 보니 마윤정에 하나.
그리고 우씨 세가가 자리한 북부 쪽에 표시가 되어 있다.
마윤정에는 금천.
물론, 글씨가 쓰여져 있는 것은 아니다. 금색의 불빛이 떠올라 있을 뿐이었다.
“여긴….”
“우씨 세가의 백부라는 곳이지요. 이곳에 계신 분은….”
백부에 떠오른 백색의 빛은 당연 우씨 세가의 원선태사.
우백자이리라.
“증조부님 이곳은….”
축이 어느 곳을 가리켰다.
여러 빛이 떠있는 곳.
수계에서 조금 벗어난 건원해.
그곳에는 선등음석에 떠오른 여러 불빛이 있었다.
다섯 정도가 모여 있다.
미 가주가 소매를 접어 팔을 휘두르니 불빛의 형태가 뒤바뀐다.
하나는 검.
또 하나는 용으로.
다른 것은 검은 불꽃으로, 도깨비 등등으로 변하여 자신을 드러낸다.
‘천외양군도 이곳에 있군….’
화기린의 모습이 당당하게도 그곳에 자리하여 있다.
“원선분들이 이곳에는 왜….”
축과 미서단은 의아해 했으나, 범은 구태여 답변하지 않았다.
천범의 눈은 그들에게서 벗어나 다른 빛을 찾았다.
“이곳은 충계로군.”
떠오른 빛은 둘.
‘내 알기로 충계의 원선태사는 하나라고 알고 있는데.’
실질적으로 현 충계를 군림하되 지배하지 않는다는 원선태사.
“녹면위왕….”
허나 그 근처에 있는 다른 빛.
그것을 보며 천범은 눈가를 가늘게 떴다.
[무엇이냐.] [지금이라면 충계에 있을 것이다.] [누가 말이냐.] [나의 스승. 내 스승을 도와주게. 아마 너와도 인연이 깊은 자일 테니.]옥별천왕. 그리고 유정이자 청명인 놈이 사라지기 전 부탁했던 말이다.
충계에 있을 자신의 스승.
청명이었을 적, 자신을 돌보았던 스승이 충계에 있으리라 말했었다.
녹색의 빛은 충계의 원선태사.
녹면위왕일 것이다.
하면 남은 이 빛무리는 그가 스승이라 부르는 자의 것일 터.
첨벙, 첨벙.
연못 위의 선등음석으로 가까이 다가가 손을 뻗는다.
그러자 빛무리가 흩어졌다 다시금 모이며 하나의 형태를 이룬다.
그 형태는 활과 화살.
“역시 그랬나….”
다시금 손을 휘저어 활과 화살을 흩어버리니 이내 빛무리가 모여 글자가 허공에 새겨진다.
일신홍성.
“일신홍성 예동….”
범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