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29)
낭선기환담-528화(529/600)
낭선기환담 – 2부 238화
얼추 예상하고는 있었다.
호리의 모습을 한 신위는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다.
충계에서 큰 전투가 벌어졌고, 그곳에서 잠복하고 있던 도중, 오경계주 신위가 피폐한 몰골로 도망치는 것을 자신이 사로잡았다고.
‘자기 자신이었겠지만.’
본래 남을 속이기 위해서는 진실 속에 거짓을 넣어야 하는 법.
그 점을 미루어보았을 때, 천범은 충계에 있는 자가 오경계주와 싸웠던 자라 생각했다.
충계의 왕이라 불리우는 녹면위왕일지도 모른다 생각했으나, 자신이 알기로 그와 신위는 은원이 없었다.
그러니 남은 건 하나.
일신홍성 예동이 아닐까 생각하고는 했다.
설마설마하며.
청명의 스승이 그놈은 아니겠지라고 생각하며 생각하기를 그쳤다.
‘세상 참 좁군.’
속단할 수는 없으나 아마 그놈이 맞는 듯하다.
어찌하여 아직까지도 충계에서 저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그렇고 선등음석의 신통이 꽤 뛰어나군. 이리 자세하게 표시될 줄은 몰랐다. 구름의 형태이기도 하고, 이곳에 금구 되어 있는 것을 보니 어찌하여 내가 지닐 수 없다 했는지 알겠어.”
“알아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미 가주는 한시름 놓았다는 듯 안도하며 고개를 숙였다.
“한데… 선등음석. 이거 자네들은 이렇게밖에 쓰지 않는 건가?”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는 모양이군.”
투웅-
선등음석을 조금 건드리자, 이내 상계를 표시하던 모양에서 다른 형태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구름처럼 변한 선등음석은 천범의 손으로 빨려 들어가듯 모이더니 고풍스러운 접선으로 변모했다.
“아, 아니…!”
“몰랐나 보군. 왜 굳이 열두 개의 기둥이 이곳에 있고 각기 다른 문양으로 조각되었는지.”
천범의 손에서 접선으로 변한 선음등석은 다시금 새롭게 모습을 바꾸더니 봉으로, 검, 창, 솥, 쇠사슬, 활, 산, 화차, 륜, 만개한 꽃으로 여러 형태로 그의 손에 들려졌다.
“본래 물건이란 것이 그렇지.”
누구의 손에 들렸냐에 따라 천하에 또 없는 무기가 될 수도,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고철이 될 수도 있는 법.
손에 쥔 자가 누구냐에 따라 물건의 가치 또한 달라지는 것이다.
이들에게 선등음석은 단순히 원선의 명부가 적힌 것일 뿐이었으나, 천범의 손에 쥐어진다면 다른 무구로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묘한 보물이로군.’
여러 형태로 변할 수 있는 보물.
실체는 안개와 같은데 형태를 달리하는 것 자체로 여러 신통력을 부릴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검일 때와 창일 때의 신통이 다르고, 봉일 때는 법칙이 스며들어 있으며 그것은 다른 형태일 때도 그렇다.
전부 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열두 가지의 형태에서도 몇몇은 아주 강력한 법칙 신통이 깃들어 있어서인지 흥미롭기 그지없다.
“신기한 체계를 지니고 있군. 분명 원선이 만든 것이라 할만하다.”
휘릭.
금고봉으로 변한 선등음석을 바라본 천범은 묘한 감각을 느끼며 눈가를 가늘게 떴다.
이내 그의 동공이 넓어지며 순식간에 육문이 개안 됐다.
지이잉-
일순 천범이 자리한 주변의 분위기가 달라지며 피부가 따가울 만큼 날카로운 기운이 뿌려졌다.
“윽….”
천축과 미서단은 갑작스레 날카로워진 천범의 기운에 힘겨워하고 온몸을 짓누르는 압박감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것은 미 가주 또한 마찬가지.
“갑자기 무슨 일이십니까…!”
미 가주가 힘겨워 한마디 외치자.
“이놈이 자기를 풀어달라는군.”
알 수 없는 소리를 해댄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 물으려는 찰나.
후우우웅!!
천범의 손에 금고봉의 형태를 띤 선등음석에서 세찬 바람이 휘몰아친다.
지잉, 지잉!
묘한 파동을 흩뿌리며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선등음석의 앞에 천범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축아, 성족을 아느냐.”
“알고 있습니다!”
“하늘의 변덕으로 만들어진 천지원기의 결합체를 우리는 연자보라 한다. 연이 닿은 보물이라는 뜻이지.”
연이 닿아야만 손에 쥘 수 있는 보물이라는 뜻이다.
허나 그 연자보라는 보물이 오랜 시간이 지나 어떠한 방식으로 지성을 갖추게 되면 어찌 될까.
연자보가 지성을 갖추고 다른 모습으로 수선하는 자들과 부부의 연을 맺게 되면?
상계에서도 그런 사례가 없지 않다.
그런 이들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들을 우리는 성족이라고 부른다.
천범이 지니고 있는, 귀걸이의 형태를 하고 있는 여위 또한 성족.
절반은 보물. 절반은 다른 것의 피를 이은 녀석이다.
“설마 선등음석이 성족이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바로 맞췄다.”
그것도 꽤 고강한 성족.
“성족의 수생이 어떠한지는 잘 모르나 이놈은 단순한 원선의 보물이 아님을 잘 알았다.”
지금도 들려온다.
-풀어라. 봉인을 풀어라.
천범의 귓가에 외쳐대는 음성.
울분에, 원한에 가득 차 있는 음성은 자신의 봉인을 풀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원한다.
‘알겠군.’
이것을 만들었다는 미가의 원선이 어찌하여 후손들에게 이 보물의 자세한 사용법을 알리지 않은 줄 알겠다.
들려오는 음성에 강한 마성이 스며들어 있다.
이런 쪽에 강한 천범이니 아무렇지 않은 것이지, 그 밑의 수선들이라면 놈의 목소리에 이끌려 꼭두각시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너의 바람을 이루어주겠다.
피식.
바람을 이루어 준다라.
“네깟 게 나의 바람을 아느냐.”
-네 마음속에는 복수심이 불타고 있지 않은가. 풀어라. 그리하면 내 너의 복수를 대신하리라.
천범의 입꼬리가 내려간다.
미소를 유지하던 낯빛이 차갑게 식어간다.
“그래?”
쿵!
촤르륵!
발을 구른 천범의 주위로 연못이 튀어 오르고 그와 동시에 열두 개의 기둥이 조각조각으로 열려 기이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철컥 철컥!
“보, 봉인이…!!”
위이이잉!!
천범의 머리칼 한 올 한 올이 치솟아 오르며 입가가 비틀린다.
선등음석의 봉인을 풀어내려 하는 것임을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미 가주는 말리고 싶었으나, 뿜어내는 기운이 너무도 강렬하여 차마 접근할 수조차 없었다.
더불어 천범이 뿜어내는 기운 말고도 선등음석에게서 드러나는 불운한 기운 또한 워낙 강했던지라 불안한 마음을 담아두고도 떨칠 수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쩌적! 쩌저저적!!
열두 개의 기둥 모두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서단!”
천축이 서단을 감싸고 결계를 만듦과 동시에 커다란 폭발음이 퍼져 나왔다.
콰아앙!!
그리고 나타나는 모습은.
“백거원?”
금고봉을 쥐고 힘껏 들어 올리고 있는 백색 거원의 모습이었다.
이윽고.
쾅!
쿠우웅!!
“기껏 힘써서 풀어줬더니 돌아오는 게 이건가? 너무 야박하군.”
내리쳐진 금고봉을 붙잡아 대치하는 천범의 낯에는 여유가 있었다.
반대로 봉인이 풀린 선등음석.
아니, 백거원의 모습이 도리어 어둡기 짝이 없었다.
[네놈, 어찌 봉인을 풀었지?]“풀어달라 해서 풀어줬거늘. 고작 묻는 것이 그거뿐인가.”
꽈드득.
금고봉을 붙잡은 천범의 손아귀에 힘을 가득 들어간다.
‘내 생각보다….’
더 귀찮은 존재의 봉인을 풀어버린 것 같다.
금고봉을 쥔 백거원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내려친 봉을 막아 세우는 것이야 쉬웠으나 힘과 힘의 대결에서는 승부가 나지 않는 듯하다.
‘뭐지 이놈은.’
범의 눈빛이 가라앉는다.
본래는 조금 강한 정도의 성족이라 생각했으나 단순히 그러한 것은 아닌 듯하다.
풍기는 분위기나 은연중 흘러나오는 기의 정순함이 남달랐다.
성족은 태생적 특성상 수선처럼 경지가 나뉘어지지 않는다.
허나 지금 천범의 앞에 드리운 백거원이 뿜어내는 기운은 단연코 향선 이상의 것이라 말할 수 있으니 예상 밖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봉인을 풀어준 것은 감사하지. 이렇게 쉽게 풀어낼 줄은 몰랐다. 수완이 좋군.]쉬운 편은 아니었다.
단령금정으로 술법을 파악하고, 법칙의 힘을 이용해 파훼하는 것이 천범의 특기이니 쉽게 한 것이지 다른 원선이라면 어려웠을 것이다.
창조의 법칙을 익히고 삼세삼신을 익혀낸 덕분에 간단했다.
[감사의 의미로 죽여주지.]“그것참 고마운 말이군.”
거원의 입이 쩌억 열린다.
크아아아아아아아!!
귀청이 떨어져 나갈 정도의 사자후에 동굴이 뒤흔들리고 동시에 쥐고 있던 금고봉은 빛을 발한다.
[커져라 금고봉!]콰아아앙!!
거원의 외침과 동시에 금고봉의 크기가 한순간에 늘어나 동굴을 뚫고 하늘 높이 치솟았다.
“꺄아악!”
미씨 세가의 본가 지하였기에 그곳을 뚫고 올라온 금고봉은 당연히 지상의 가문을 박살 냈다.
‘여의봉이나 다를 바가 없군.’
함께 지상으로 올라오게 된 천범은 거대한 거원을 바라보며 숨을 가다듬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수선하는 놈들은 네놈만이 아니라, 모두 내 손에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그것참 뜻깊은 목표로군. 어째서 그런 원대한 목적을 세웠나? 지하에 봉인된 것과 연관이 있는 건가?”
[그렇다!!]백거원의 금고봉은 이제 접선을 바뀌어 수기를 뿜어냈다.
그가 접선을 폈다 접었다 하며 살랑살랑 부채를 움직이니 단숨에 먹구름이 몰려들고 습기가 다분해졌다.
‘좋지 않군.’
접선이 뿜어내는 습기가 아니다.
땅에서, 나무에서, 풀에서,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서 수분이 뽑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당연 미씨 세가의 가솔들은 물론, 마윤정의 모든 이들에게서 서서히 빠져나오는 것과 같았다.
땅이 갈라지고 수풀과 나무가 메마르며 짐승이 쓰러진다.
“탐화. 그들을 지켜라.”
휘리릭. 천범의 손목에서 빠져나온 탐화는 순식간에 몸이 여러 개로 분열되어 사라졌다.
[모두 죽일 것이다! 수선하는 가증스러운 역천자들을 내 손으로 처단할 것이야!!]동시에 하늘에서는 거대한 수분이 모여들어 마치 해일처럼 천범을 덮치기 일보 직전.
“단단히 미쳤군. 내 괜한 짓을 한 것은 아닌가 싶은데.”
괜히 풀어줬나 조금 후회되기도 한다. 그러나 놈이 지닌 힘은 진짜.
어찌하여 미씨 세가의 선조에게 붙잡혀 봉인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럴 만하니 봉인됐겠지.”
하는 짓을 보니 봉인될 만하다.
게다가 애초에 관심사도 아니다.
범이 관심 있는 것은 하나.
성족으로서의 놈의 힘.
백거원의 모습을 한 놈의 실체는 지니고 있는 무구.
지금은 부채의 형태를 한 보물이다.
열두 가지의 모습으로 각기 다른 신통을 부릴 수 있는 놈의 힘은 고작 이게 전부가 아닐 터.
그러니 탐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이전의 미씨 가문의 원선은 어찌저찌 저놈을 봉인한 것에 그쳤겠지만, 천범은 그걸로 끝낼 생각이 없다.
“미친놈한테는 매가 약이니.”
그때였다.
[크하하하하하하!!]정말 미친놈처럼 갑자기 광소하는 선등음석은 아주 기쁜 듯 커다란 웃음을 흘려댔다.
왜 그런가 싶어 눈살을 찌푸리니.
[미가놈의 존재가 정말로 완전히 사라졌어!! 그 잘난 놈도 결국에는 죽은 모양이야! 크하하하하!]미가놈?
누굴 말하는건지 모르겠다.
미씨 세가의 선조인가.
“미가놈이라면 널 봉인시킨 자를 말하는 건가?”
[그래! 허나 내가 말한다고 네가 알 수 있을까? 자신의 후손들조차 그를 기억하지 못할 텐데!!]후손조차….
심히 거슬리는 말이다.
“…왜지?”
[존재의 기억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금천, 너는 아직 모르는 듯하군! 그 검에 미친놈에게 당하면 이렇게 되는 거다!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게 하늘과 땅에 기록된 존재의 기억 자체가 베어져 떠올리지 못하는 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