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31)
낭선기환담-530화(531/600)
낭선기환담 – 2부 240화
휘리릭.
척.
금고봉으로 변한 선등음석을 손에 쥔 범은 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의식을 금고봉에 집어넣자 안에서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산행에 오르고 있는 놈의 모습이 보인다.
“제법 버틸 만한가 보군. 지옥을 창조한다는 게 생각보다는 쉽지 않아.”
무언가를 견식하여 참고할 수 있다면 모를까 그런 것도 없으니 조금 아쉬운 법술이기도 했다.
삼천지옥.
지옥을 창조해 냄으로써 창조 법칙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았다.
지금은 선등음석에게 사용하는 것이라 환계 비슷한 것으로 만들었으나, 그가 이후에 상대해야 할 적에게는 고작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진짜를 만들어야겠지.”
그때가 온다면 심상의 구현이 아닌, 현실에 구현해야 할 것이다.
“정리를 해볼까.”
척.
검지와 중지만을 펼쳐 입을 달싹이자 금고봉이 부들부들거린다.
몇 가지 금제를 걸어 넣고, 삼천초화의 삼천지옥을 해제하자 순식간에 반응이 왔다.
덜덜덜.
떨리는 금고봉에서 새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이내, 백거원의 형체를 갖춘 선등음석이 나타난다.
[개자식…!!]선등음석은 천범을 보자마자 욕지거릴 내뱉으며 달려들었으나.
“물을 것이 있다.”
담담히 내뱉는 천범의 말 한마디에 몸이 우뚝 멈춰섰다.
[뭐야, 내 몸을 어찌한 것이냐!!]“금제를 걸어 놓았다. 힘으로 파훼하려고 했다가는 죽을 게야.”
허나 그 말을 들은 선등음석은 기세등등한 낯으로 힘을 드러낸다.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의지였다.
허나.
“또 지옥에 들어가고 싶은가.”
지옥이라는 말 한마디에 선등음석의 몸이 저도 모르게 떨렸다.
천범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가고 싶은 모양이군. 생각보다 살 만했던 것 같으니 원한다면 다시 보내주는 거야 어렵지 않다.”
[…원하는 게 뭐냐.]“내 진즉부터 말하지 않았나. 묻고픈 것이 있다고.”
검노에 관한 것.
그에게 당하여 존재가 사라졌다는 원선. 그리고 그와의 관계.
궁금한 것은 많다.
“그런데 자네 태도를 보니, 별로 궁금하지 않군. 다시 지옥이나 들어가시게. 이번에는 산이 아니라 펄펄 끓는 바다는 어떠한가.”
꿀꺽.
선등음석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왔다. 꼬챙이로 꿰이고 활화산을 거닐던 세월이 수천 년이다.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달아나려 해도 어느샌가 다시 산행에 오르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비명을 내지르며 그렇게 수천 년이 지났다.
죽지 못해 견뎌내야 했던 것이 바로 천범의 삼천지옥.
‘펄펄 끓는 바다….’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
지옥을 경험했던 선등음석이니 말 몇 마디에도 다시금 지옥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수많은 망자들이 바다와도 같은 녹쇳물에 빠져 죽지도 못하고 비명을 내지르며 고통을 감내할 것이다.
빠져나가려는 자들은 꼬챙이를 든 마귀들이 나타나 찔러대는 모습을 상상하니,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리고 정신이 파탄날 것 같은 풍경이지 않을 수 없다.
“일평생 죽지 않으며 펄펄 끓는 쇳물에 담궈지는 거지. 배가 고프면 쇳물을 먹고, 바깥도 안쪽도 계속 익어가며 사는 거네. 내 불가의 지옥에 이런 게 있다 얼추 들었거든.”
팔열지옥이었던가.
“나 또한 지옥을 만들어본 것이 처음이라 아직 미숙하기 짝이 없지. 다음에는 팔대지옥을 만들어 1층부터 8층까지 단계별로 고통을 주는 지옥을 만들어볼 생각인데 어떠한가. 그래도 내 지옥의 첫 번째 시행자이니 다음 것도 겪어보고 후일담 좀 말해줄 수는 있잖아?”
팔대지옥!
상상조차 하기 싫은 것들의 총집합이 아니던가.
선등음석은 슬슬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눈동자가 이리저리 종횡무진 움직였다.
‘미친놈이다.’
제대로 미친놈이다.
누구보다 빠르게 달아나야 한다!
허나 전신에 금제란 금제는 죄다 걸려있고 몸을 함부로 움직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선등음석 울며 겨자 먹기로 그가 원하는 대로 해줄 수밖에 없었다.
[워, 원하는 것을 말해보시오.]“보시오?”
[보, 보시지요….]“하하하! 원하는 것을 말하라니. 그 거참 말이 이상하군!”
[무엇이 이상하단 말입니까….]“내가 짖으라면 짖고, 구르라면 굴러야 할 놈이. 감히 나와 동등한 입장에서 거래하는 장사치 같은 말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당연히 이상하다 할 수밖에 없지.”
선등음석의 표정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썩어들어갔다.
허나 놈의 낯이 어두워지는 것과 달리 천범의 얼굴은 만면에 미소가 가득했다.
“우선… 너무 높구만. 좀 엎드려보게. 눈높이가 맞지 않잖나.”
딱.
천범이 손가락을 튕기자 선등음석의 몸이 풀어지며 엉거주춤한 자세가 되었다.
그는 산길을 타고 흘러내리는 계곡물처럼 자연스럽게 천범의 앞에 엎드려 자신의 머리를 낮추었다.
“이제야 맞구만. 본래 대화를 하기에 앞서 가장 중요한 것이 눈높이를 맞추는 거지. 눈을 보고 대화해야 하지 않겠나.”
그러기에 선등음석의 머리는 땅에 닿을 정도였고, 범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모양새였지만 말이다.
“그래… 자네에게 궁금한 게 조금 있지. 우선 검노일택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군.”
존재의 거세.
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째서… 그자에 관해 물어보시는 것입니까.]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건방진 태도에도 천범은 미소를 띠었다.
“내가 죽여야 하는 자니까.”
* * *
잠시 뒤.
마윤정의 근처 산등성이에서 금고봉 하나를 쥐고 터벅터벅 내려오는 사내를 맞이하는 자가 있었으니.
“소란을 피웠더구나.”
“별일 아니었다. 방해한 것이냐?”
“그 정도는 아니었고, 그냥 시끄러워 나와봤을 뿐이야.”
금고봉을 쥔 사내는 천범이었고, 맞이한 여인은 당연 호리였다.
호리는 산청에서 얻은 원천강을 자신에게 맞게끔 이곳에서 잠시 녹여 내고 있었는데, 천범이 선등음석의 봉인을 풀어내 소란스러워지자 나와 본 것이었다.
“잘 해결은 했고? 미씨 세가의 가선들은 모두 난리더구나. 이래저래 네가 벌인 짓 때문에 고민하는 듯 보였다. 자신들의 가보가 어쩌고저쩌고 하던데 그게 그것이냐?”
“그런 편이지. 갖고프냐?”
손에 쥔 금고봉을 보이자 호리는 슬쩍 바라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성성이 냄새가 난다.”
저리 치우라는 듯 질색을 한다.
이곳에 올 때도 그러했으나, 호리는 원숭이 비슷한 놈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언제까지 있을 게냐. 이제 슬슬 떠나도 되지 않아? 난 하루빨리 상서로 가보고 싶다.”
“상서? 상서는 왜?”
“네가 그러지 않았더냐. 수계에서 나름 애착이 있는 곳은 그곳뿐이라고. 그리고 그곳에 네 부인도 있다 하니 만나보고 싶기도 하다.”
그런 소리를 하긴 했다.
애초에 수계를 돌아다니기 시작한 이유가 호리를 위해서였다.
그러니 상서에도 언젠가 발이 닿을 테니 둘러볼 계획이기는 했다.
충계와 가까운 위치에 있어 들렸다 가기 좋으니 말이다.
“…만나서 뭐하게.”
“뭘 하기는, 네가 택한 여인이니 만나보고 싶은 것이지. 그리고 원천강을 녹여내는 것도 시일이 오래 걸릴 듯하니, 조용한 곳에서 시간을 두고 집중하고 싶을 뿐이다.”
이곳은 너무 소란스러우니까.
괜히 불안하지만 호리 말대로 상서는 조용히 수행하기는 나쁘지 않은 곳이다.
‘상서 옆에 자리를 잡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근처에 노는 땅도 조금 있지 않던가. 용마골이라던가 하는 망해버린 곳도 있고 천범이 조금 손을 써 뒤집어엎으면 살만한 곳이 여럿 나올 테니 말이다.
아니면 상서의 몸집을 조금 키워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축을 데려가면 되겠지.’
적임자가 있으니 잘 하겠지.
“안 그래도 이제 곧 갈 것이다. 이것도 챙겼고, 듣고픈 이야기도 들었으니 이곳에 더 있을 이유는 없지.”
선등음석에게 검노일택과 존재가 사라진 원선태사에 대한 이야기도 얼추 들었다.
‘애초에 이놈도 아는 게 없었지만.’
뭔가 엄청난 비밀을 알고 있는 듯했던 녀석이었지만, 아쉽게도 딱히 그런 게 있지는 않았다.
검노일택이 갈고 닦은 법칙은 검에 관련된 것이고, 그 탓에 놈의 능력 중 하나가 존재 자체를 베어버리는 힘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연에 관한 것인지, 무엇인 지는 자신도 모르고 그저 그의 검에 당한 자들은 존재가 지워져 애초부터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했다.
그것을 네놈이 어찌 아냐 물으니.
‘본래 상천에 속하는 존재가 아니니 그런 것이지.’
‘것이지?’
‘것입니다….’
그렇다 한다.
선등음석은 본래 상계와 비슷한 다른 하늘에서 건너온 놈인데, 어쩌다 보니 미씨 세가의 원선 놈에게 잡혀 이런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다른 하늘….’
이곳과 닮았으나, 조금 다른 곳으로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는 않으나 특정한 조건이 맞물리면 닿을 수 있는 곳이라 한다.
선등음석은 그곳을 성천이라 하였는데, 본래 수선계를 감싸는 하늘은 수천, 수만 개가 있다고 했다.
그 밑에 연결된 하계는 그보다 숫자가 많아 헤아릴 수조차 없다 하니,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내심 짐작은 했지만, 이리 들으니 마음이 어지럽군.’
선등음석이 말하기를.
상계, 상천이라 불리는 이곳은 자신들의 관점에서는 다른 하늘과 연결되지도 않은 촌구석이라 탐구해볼 가치가 있다고 떠들어댔다.
성천에는 없는 물질자원이 존재할 수 있다며 선등음석 또한 그것을 위해 찾아왔다가 잡혔다니 그 말에 거 짓은 없어 보였다.
“그럼 이제 떠나는 게냐.”
어린아이처럼 재촉하는 호리의 머리를 툭툭 쓰다듬은 그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긍정했다.
“이제 가야지. 얻을 것도 얻었고, 축이 또한 마음을 정했을 테니.”
“마음을 정해?”
호리의 물음에 시선을 옆으로 흘리니 그곳에는 헐레벌떡 뛰어오는 미씨 세가의 가솔들과 미가주가 있었다.
“마윤정을 대표하여 감사드립니다. 금천대사시여”
“무엇을 감사한단 말인가.”
“마윤정에 드리운 악운을 직접 없애주시지 않으셨습니까. 당연히 저희가 감사 인사를 드려야지요!!”
“감사까지 할 필요 없네. 나 또한 필요에 의해 한 일이니.”
자신이 벌인 소란이다.
감사까지 들을 이유는 없다.
“그런데… 선등음석은 어찌 되었습니까…?”
왜 저러나 했더니 결국 이유는 선등음석이었나 보다.
알만하다.
자신들의 가보로 여기는 선등음석이 궁금해서 저리 찾아온 것이리라.
허나 이것을 어찌할까.
범의 손에는 이미 선등음석이 변한 금고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은 지 오래였다.
“복수에 눈이 멀어 살심을 뿌리던 선등음석은 내가 알아서 처리했지. 끝없는 지옥을 보여줬으니 괘념치 않아도 될 것이야.”
“아, 예….”
미가주는 선등음석에 관하여 더 묻고 싶었으나, 감히 물을 수 없었다.
그가 마윤정의 상공에서 보여준 힘은 감히 마주할 수 없는 차원의 것.
“내 손주 놈은 어디 있나.”
“천 공자라면… 저곳에 있습니다.”
미 가주가 손짓하는 곳에는 천천히 다가오는 천축과 미서단이 있었다.
이전과는 다르게 거리감이 꽤 가까워진 모습이 눈에 보이는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범은 다가오는 그 둘을 보자마자 히죽 웃으며 명했다.
“혼례 올리거라.”
그러자 서단은 부끄러운 듯 붉게 물들고 축은 사내다운 웃음을 흘리며 호기롭게 답했다.
“그러겠습니다.”
그렇게 3년 뒤.
마윤정에서는 아주 성대한 혼례식이 이루어졌다.
물론, 신랑은 천가성의 축이요, 신부는 미가성의 서단이었다.
많은 자들이 축복하러 마윤정에 나타났고, 금천대사가 직접 주례를 서 혼례를 축복해주어 그들의 이야기는 널리널리 수계 곳곳에 퍼져 나갔다.
혼례식이 끝이 나고.
즐겁게 먹고 마시는 만찬의 자리.
미세파는 천범에게 감사를 표했다.
“떠나시는 겐가.”
“가야지. 동행이 이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더군.”
“고맙네.”
“자네 하나뿐인 딸을 채가는데 그리 고마우신가.”
축과 서단은 천범과 동행하여 상서로 갈 것이다.
그들은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았고 미가와 천가를 잇는 다리이니, 이곳에 있어서는 아니되었다.
천범은 그들을 상서의 곁에 있는 좋은 땅에 데려다 놓을 작정이다.
천씨 가문의 시작을 하기 딱 좋은 장소로 말이다.
하니 괜히 짓궂게 묻는 것이다.
허나 미세파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듯 사람 좋게 웃었다.
인상이 달라졌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것이던가.
그의 미소를 보고도 천범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름 마음이 쓰기는 하지만, 뭐 어쩌겠나. 내가 사라지고 나면 든든한 버팀목이 있는 게 안심되네.”
“실없는 소릴 하는구만. 난 부모가 있어 본 적은 없으나 아이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을 걸세. 왜 벌써 죽은 사람처럼 행동하나.”
“…그럼 내가 어찌 사나.”
원망이 깃든 말이었다.
상처를 치료한다 해도 천겁을 버텨 내기 어려운 상태다.
그의 앞에 죽음이란 두 글자 외에는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와 호각을 다투던 사내의 입에서 듣고 싶지 않은 말이군.”
“그게 언제적인데….”
“자네의 약해진 모습 따위 보고 싶지 않으니 꺼지게.”
“뭐?”
발끈하자 천범은 자신의 손에서 작은 빛을 그에게 쏘아냈다.
오묘한 빛의 무언가가 미세파의 옆구리로 쏘아지자 본능적으로 피하려던 그의 몸이 우뚝 멈춰선다.
미세파는 작은 빛이 만들어낸 변화를 몸소 느끼며 슬쩍 옆구리를 들춰 냈다.
옆구리의 흉측했던 상처는 마치 시간이 돌려지기라도 한듯 아물고 죽음의 기운이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게다가 이루 말할 수 없는 활력이 전신에 솟구치기 시작했다.
“저 아이들은 미숙하니 말일세. 아직 어른의 그늘 아래 있어야 할 어린아이들이지. 그런 아이들이 평생 가약을 맺었으니 아직은 우리가 지켜봐 주어야지 않겠나.”
그리 말하며 천범은 슬쩍 뒤돌아 자신의 갈 길을 가며 말했다.
“다음에 또 보세. 그때는… 다 죽어가는 얼굴이 아닌, 예전에 보았던 내 친우 미세파를 보았으면 좋겠군.”
담담한 그의 말에는 친우를 잃고 싶지 않아 하는 애틋함이 담겨 있었다. 다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투박하기 짝이 없는 태도였으나 그 따스한 마음을 모를 리 없는 미세파는 털썩 무릎 꿇었다.
그리고 그가 향한 방향을 향해 몇 번이고 이마가 땅에 닿도록 고개를 조아렸다.
“반드시.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