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32)
낭선기환담-531화(532/600)
낭선기환담 – 2부 241화
마윤정을 떠난 이후.
천범은 천축 부부와 함께 유유자적 수계 이곳저곳을 누볐다.
마윤정에서 혼례를 올리고 난 후.
천범은 아직 신혼인 둘의 관계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기일을 두고 조금 더 돌아다니고 싶었으나, 빨리 상서로 향하여 폐관에 들고 싶어 하는 호리의 재촉에 어쩔 수 없었다.
틈틈이 수계를 여행하기를 몇 년.
드디어 상서 인근에 도착했다.
“용마골이구나.”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천범은 중천에 떠 있는 태양 아래의 안개 그득한 골짜기를 보며 말했다.
꽤 추억이 묻어 있는 곳이다.
촤르륵.
선등음석으로 이루어진 접선을 펼쳐 부채질하며 천범은 옛 기억을 흥미롭게 상기시켰다.
“이곳입니까.”
불과 몇 년 사이에 조금 어른스러워진 천축이었다.
혼인을 하여서 그런 건지, 이제는 지켜야 할 부인이 있어 그런지 어딘가 모르게 어른스러워졌다.
증조부된 마음으로서는 조금 아쉬웠으나 그래도 보고 있으면 흐뭇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 상서와 크게 떨어져 있지 않은 장소인 용마골이다. 내가 막 등선했을 때… 아니지. 등선하고 처음으로 수계의 땅을 밟은 곳이 바로 용마골이었다.”
이제 와서는 참 오래된 기억이다.
등선하고 처음으로 수계의 용마골에 다다랐을 때 많이도 실망했었다.
신선에 대한 환상이 많이 깨지고 현실을 빨리 깨닫게 해준 곳이기도 하니 고마워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그래, 등선하자마자 풍비박산내고 다 부숴버렸다는 곳이 이곳이냐?”
절벽 아래에 펼쳐져 있는 안개 가득한 용마골을 보며 호리가 말했다.
“넌 하나도 변치 않았구나. 가는 곳마다 다 부숴버리면 남는 게 뭐가 있는 게냐. 하계에서도 그러더니….”
“크흠.”
파괴신인 거냐고 핀잔을 주자 천범은 헛기침을 했고, 천축과 서단은 애써 웃으며 눈치를 살폈다.
“그럴 만하니 없애버린 것이다. 모름지기 신선이라는 자들이 사리사욕을 위해 남의 가문에 의도적으로 피해를 입히고 차도살인을 서슴지 않았으나 마땅히 받을 벌을 받은 게지.”
조금 과격했던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나 천범은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똑같은 선택을 반복했을 것이다.
용마골의 황씨 일가는 충분히 그런 벌을 받아도 쌌다.
“이야기가 조금 샜구나. 축아. 그리고 며늘아가.”
“네. 증조부님.”
“너희들이 지낼 곳이 바로 이 용마골이다. 어찌 마음에 드느냐.”
“물론입니다.”
고개 숙여 그렇다고는 하고 있으나 내심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수계에는 용마골보다 더 좋은 땅도 많이 자리하고 있다.
용마골은 쉽게 말해 수계에서도 남쪽에 자리한 외곽이고 지명 그대로 골짜기가 즐비한 곳이다.
게다가 습도도 높아 안개가 자욱한 곳이라 그리 기름진 땅이라 하기엔 조금 어긋나는 부분이 많다.
“내 어찌 너희들 마음을 모르겠느냐. 이곳이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을 것이다. 조용한 것 빼고는 큰 장점이 없는 곳이니 말이다.”
“아닙니다. 저희 부부는 혼인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이리 조용한 곳이 제격입니다. 게다가 천씨 가문을 새로 만들기 위함이라 하지만 증조부님이나 처가에 손을 벌리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네, 그이 말씀처럼 차근차근 저희가 가꾸어 나가기에는 이 정도의 땅도 감지덕지입니다.”
말은 참 이쁘게도 한다.
“말이라도 그리 해주니 고맙구나. 그래도 이 땅을 너희에게 전한 것은 단순히 조용하기만 하여 택한 게 아니다.”
“그럼….”
“첫째로는 상서와 가깝지. 상서는 내가 가장 애착이 많은 땅이다. 내 처의 가문이 자리 잡은 곳이기도 하니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
가문은 집만 짓는다고 되지 않는다.
주민이 모이고 상업적인 무언가가 나타나고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비로소 마을이 되지 않던가.
그런 마을이 되고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곁에 있는 지역과 상업 등의 교류를 통해 성장하는 게 빠르다.
“오고가며 들은 이야기로 상서는 법기의 유통이 활발하여 얼마 전에는 까다로운 심사기준을 가진 통천수궁에도 납품을 하기 시작했다더군. 상서가 커지는 것은 시간문제이고, 돈도 많을 테니 함께 발전시켜나가면 금세 가문의 번영을 이루어낼 것이다.”
허나 생각보다 용마골의 상태가 그다지 좋지는 않다.
사람의 발길이 끊겨서 그런지 수풀이 우거지고 환수나 선충들이 많이 몰려든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이야 금세 정리가 가능하니.
“용마골 특유의 습기 또한, 내 손을 봐줄 터이니 걱정할 것 없다. 앞으로 너희들이 터를 잡고 살아갈 곳이니 잘 한 번 눈여겨 봐 보거라.”
황씨 일가가 터를 잡았던 곳은 천범이 다 부숴버려서 무너져 내렸으니 새롭게 적당한 선산을 골라야 할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가문이 평생토록 자리 잡을 지반을 새롭게 만들어도 되는 것이고.
“그래, 이것을 주마.”
천범의 손아귀에서 다섯 개의 소산이 빙그르르 회전하며 나타났다.
하나하나가 강력한 기운을 품고 있는 선산.
오행극산이었다.
각각 품고 있는 속성이 다른 오행극산은 법기로 사용해도 강력한 보물이지만, 굳이 그렇지 않아도 좋다.
“용마골이란 이름은 황씨 일가의 선조격 되는 황룡이 이곳에 묻혀 산이 되어 골짜기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범은 그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골짜기를 전부 지워버리고 이 오행극산을 세워놓아도 좋지.”
오랜 세월 법기로 존재해온 극산이고 천범이 품었던 것이라 담겨 있는 기운의 충만함이 남다르다.
“뭐? 그중 하나는 하계에서부터 지니었던 산이 아니냐? 지금 그걸 주겠다고 하는 것이야?”
그중에는 하계에서부터 지니었던 탄한여산. 그것을 제련하고 봉황이 몸을 의탁하여 수봉여산으로 변모한 극산 또한 함께하고 있다.
천범에게는 나름 각별한 것이지만 이제는 그에게 그닥 효용이 없는 물건이니 증손주와 자신의 성을 딴 가문의 시작과 함께 한다면 이보다 값질 수 없다.
“내게는 계륵 같은 물건이다. 게다가 증손주를 위해서라면 내 무엇인들 주지 못하겠느냐.”
“증조부님….”
“말 나온 김에 새롭게 정리하자. 내가 도륙한 놈들의 땅이었으나 이제는 바뀔 것이다.”
화르륵.
삼색의 오묘한 빛이 천범의 손아귀에서 발화된다.
창조의 법칙이 깃든 천범의 화염.
삼천초화였다.
“나 천범의 이름아래. 이곳의 황룡의 기운을 지우고, 이제는 새롭게 가꾸어 나의 혈육을 위한 땅이 되게 하리라.”
휘이잉.
바람과 함께 삼천초화가 용마골의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허나 이내 특유의 오묘한 빛과 함께 중심으로부터 안개를 말끔히 걷어내고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낸다.
“아… 숲이.”
사르르륵.
죽은 잎과 나무들이 금빛의 잿더미로 변해 사라지더니 이윽고 살아있는 싱싱한 숲이 모습을 드러낸다.
쿠르르릉!!
얽히고설켜서 사방을 가리는 골짜기들 또한 무너져 내리며 말끔히 불태워지고 평탄치 못한 지형도 모래 사장의 모래알이 부드러운 파도에 바로잡히듯 평탄화 되었다.
“가라.”
어마어마한 크기를 지닌 땅을 단번에 평탄화시킨 천범은 손안에 맴돌던 다섯 개의 극산을 날려 보냈다.
쿵! 쿵! 쿵! 쿵! 쿵!
차례차례 날아가 떨어진다.
본래 거대한 극산의 모습으로 떨어지자 천범의 손안에 있을 때도 엄청난 기운을 품었던 녀석들은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자 더욱 강렬하면서도 온화한 기운을 사방에 떨쳤다.
“세상에….”
손짓 한 번에 용마골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색다른 장소로 변모했다.
그런 일을 이루어낸 천범을 바라보는 천축과 서단의 눈은 경외심이 가득 찰 수밖에 없었다.
“이만하면 내가 할일은 다 한 것 같구나. 어때. 마음에 들더냐.”
“물론입니다!! 너무도 과분한….”
“축아, 넌 이제 천씨 가문을 이끌어나갈 주인이 아니더냐. 이 정도를 가지고 과분하다 하지 말거라. 본디 사내의 가슴에는 바다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있어야 하는 법이니.”
“명심하겠습니다.”
툭툭.
어깨를 두들겨준 천범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만면에 걸쳤다.
“그거면 되었다.”
천범은 극산에 몇 가지 강력한 금제와 공정강에서 남아돌던 선초와 개계오경에서 가져온 신목 몇 개를 심어두고, 그로도 조금 부족하여 작은 못과 정자를 하나 만들기도 했다.
“후우- 오늘은 이 정도만 하자꾸나. 너희들 신혼집도 하나 만들어줄까 했으나 그건 너희들의 즐거움이겠지. 아직 해가 지려면 멀었으니 어서 자리를 정해 만들어 보거라.”
“넵! 감사합니다!”
날아가려던 서단은 이내 축과 함께 멈춰서며 범을 바라봤다.
“왜 그러느냐.”
“증조부님. 이제 이곳은 용마골이라 부를 수 없지 않습니까.”
서단이었다.
“그렇겠지.”
“그렇다면 증조부님께서 정해주시는 게 어떨는지요. 천씨 일가의 시작이 될 이곳은 오늘 새롭게 태어났으니 그리 해주신다면 이름에 힘을 얻어 대대손손 번영할 것입니다.”
이제는 자신도 천씨 가문의 일원이 된 서단이다.
증손주의 며늘아기가 저리 똑 부러지게 말하는데 어느 누가 거절할까.
“좋다. 그리 말하니 내가 이곳의 새 이름을 한 번 지어보마.”
범은 잠시 고민하다 생각났다는 듯 뒷짐을 지고 말했다.
“천정(天庭). 천정이 좋겠다.”
하늘 천에 뜰 정.
하늘의 마당이라는 뜻이다.
“하늘이란 집으로 들어서기 전, 마당에 자리한 곳이라는 뜻이다.”
즉석에서 지어낸 이름이었으나 천범은 퍽 마음에 들었다.
“천정… 이보다 좋은 이름이 있을까 싶습니다.”
“좋은 이름입니다, 증조부님.”
“그래, 어서 가라.”
탓.
순식간에 빛줄기로 변해 사라진 천축과 서단은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오행극산 중에서도 수봉여산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천범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다 곁의 호리를 힐긋였다.
“상서까지 안 가도 네가 내려보낸 금신통이 가득한 극산에 내려가 수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그래도 상관없지. 꽤 오래 걸리는 일이 아니더냐.”
“됐다. 네가 저 아이들을 위해 쥐어준 것인데, 어른된 자로서 아이 것을 뺏을 수는 없지.”
“네가 언제 그렇게 어른스러운 짓을 했다고 세삼 그러느냐.”
“나도 축이는 내 손주처럼 보고 있었다. 아이 선물에 손을 뻗을 정도로 몰염치한 자는 아니야.”
천범의 증손주라면 자신의 증손주와도 같다는 걸까.
언제 정이 들었는지 나름대로 어른이라는 인식은 있는 모양이다.
“상서로 가볼 테냐.”
“응. 가보고 싶다. 네가 이런저런 것들을 많이 주어서 발전을 이룩한 곳이라 하지 않았더냐. 게다가 그곳의 안주인이 네 처라고 했고… 하계의 인연이 환생한 여인이라 했으니 한 번쯤은 꼭 보고 싶다.”
괜히 소란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으나 저리 보고 싶다하니 못 보여줄 것도 없다.
마지막으로 상서를 떠난 지 오랜 시간이 흐르기도 했고, 상서에 만들어둘 것도 있으니 말이다.
천범은 하늘 위에 뜬 태양을 슥 보고는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한 번은 인사하게 할 생각이기는 했었다.”
사하는 호리를 본 적이 있겠으나, 그것은 몸을 차지한 오경계주였으니.
다시금 소개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초아도 불러야겠지.’
천범이 만든 공간에 대해서도 설명할 겸, 인사하는 자리를 가져야 할 것이다.
겸사겸사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을 터이니.
“왜인지 모르겠지만, 부르지 않은 자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