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34)
낭선기환담-533화(534/600)
낭선기환담 – 2부 243화
“네 말대로 만나기는 만났구나.”
천범의 말대로 상서로 오니 달아났던 놈을 만나기는 만났다.
다만, 뒤에 사계의 군대를 둔 채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을 뿐이다.
“저놈들입니다!”
의기양양하게 외치는 꼴이 영 마뜩찮다.
일백정도 되는 군대.
견고한 갑주로 무장하고 창을 드리운 사계 복식의 병사들이다.
사방의 원으로 둘러싸 천범과 호리를 겨누고 있었는데, 그 뒤로 여우 같은 사내가 입을 나불대고 있었다.
“분명합니다! 저를 죽이려 한 자들이 맞습니다. 아마도 요즘 사군을 거역하려 하는 요사스러운 움직임이 보인다던데 아마 저들도 필히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엄히 다스려 법도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저, 저…! 저놈 말하는 것 좀 봐라!”
참으로 여우같은 놈이로다.
없는 말까지 지어내서 고자질하는 모습이 심히 화를 돋우는데 천부적인 자질이 엿보인다.
미소까지 어찌 저리 재수가 없을까.
호리는 열이 뻗치는지 벌써부터 씩씩거리며 달려들 준비를 마쳤다.
“이번에는 말리지 마라. 내 활어처럼 팔딱거리는 놈의 세치 혀를 당장에 잘라놓지 않으면 안 되겠다!!”
당장에 날뛰려 하자, 병사들의 창 수십 개가 그녀의 목을 향한다.
그녀는 천범의 허락만을 기다리며 아미를 좁혔다.
허나 그런 그녀와는 달리, 천범은 흥미롭다는 듯 길게 늘어진 흰 턱수염을 매만지기만 했다.
“범!”
범은 호리를 무시하고 한 발 앞으로 뻗어 포권했다.
“뭔가 오해가 있는 듯하오.”
“…이 자는 우리의 군병이다. 군병이 공격을 받았는데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면 상서에 자리한 모든 이가 사군을 우습게 볼 터. 그럼에도 오해라 할 수 있나.”
“물론이오, 말 몇 마디를 나누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 이 노인네의 말을 한 번 들어보시겠소.”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저놈들에게 당한 상처가 보이지 않으십니까. 필시 사군에게 반하는 역도들과 한 통속인 놈일 것입니다!”
“닥쳐라. 비해.”
그러자 비해라 불린 청년은 움찔하며 고개를 숙였다.
“한 번 들어보지.”
“우선 우리는 놈을 공격한 적이 없소. 오히려 공격을 받았지.”
“공격을 받았다?”
“우리는 그저 수계를 오고가고 하는 한낱 낭선일 뿐. 그저 상서와의 인연이 있어 저 산을 넘으려는 찰나.”
범은 비해를 보며 실소를 머금었다.
“저 수상한 놈이 산꼭대기에 상처를 입은 채로 있더이다. 생각해보시오. 상서에서 벗어나 있는 산꼭대기에 상처 입고 있었다는 말은, 전투를 겪었다는 뜻이고 곧장 상서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말은 무언가 켕기는 것이 있어 그랬지 않았겠소.”
그러자 누가 말을 덧붙이기도 전에, 비해가 나서서 입을 열었다.
“거짓입니다! 저놈들이 절 죽이려 공격해서 나타난 상처입니다! 놈의 말대로 다른 놈에게 얻은 상처라면 곧장 상서로 돌아갔겠지요! 어서 이 사실을 알려야 함이 사군에 소속된 자로서 마땅히 할 일이니까요!”
“그럼 상처를 한 번 보면 되겠군.”
비해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상처를 본다면 어떤 무구에 당했는지, 어떤 신통에 당했는지 정도는 판가름할 수 있지 않겠소. 우리가 지닌 무기와 비교해보면 되겠지.”
“그렇군. 비해, 상처를 보자.”
“놈들의 말을 믿으시는 겁니까!”
“믿는 것은 아니지만 네 상처를 한 번 보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다. 게다가 난 진상을 규명해야 할 의무가 있지. 어서 상처를 보여라!”
할 수 없다는 듯 웃옷을 벗어 팔뚝의 상처를 내보인다.
길게 이어진 자상,
자상 근처가 검퍼렇게 변하였고, 목신통의 기운이 물씬 풍겼다.
“이번에는 자네들이다.”
범과 호리는 천천히 지닌 무기들을 내보였다. 그러면 그럴수록 비해의 낮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들의 법기와 수행하는 신통의 오행이 목신통과는 연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그것을 확인한 군대의 부대장은 서늘한 눈빛으로 비해를 내려다봤다.
이제는 입장이 역전되었다.
천범과 호리의 기세가 등등해졌다.
말재간으로는 천범 또한 어디 가서 빠지지를 않는다.
이제까지 험난한 수선계에서 살아남은 이유가 그의 자질과 운 때문만은 필시 아닐 것이다.
그 중 절반은 입을 잘 놀려서이기도 하다. 그런데 고작 코흘리개의 말 몇 마디로 그를 해할 수나 있을까.
어림없는 소리.
말 몇 마디로 상대를 도탄에 빠트리는 능력은 오랜 세월을 살아온 천범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아직 멀었다. 애송아.’
그리고 이내 군대를 이끄는 군장의 판결이 내려졌다.
“여봐라, 거짓을 고한 비해와 저들 모두를 하옥시켜라!”
* * *
어둡고 습하고 더러운 지하 감옥.
많은 죄수들은 하나같이 손목에 수갑을 차고 있었다.
이것을 차면 선기의 수발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고, 신체적 능력 또한 봉해지는 법술이 담긴 수갑이었다.
소선이든 상선이든 그 힘이 범인만도 못하게 되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런 지하 감옥.
그곳에 여인과 노인, 그리고 청년이 함께 하옥 되었으니.
바로 천범과 호리.
그리고 비해였다.
“그래, 네가 본 것이 이곳이었느냐.”
호리가 투덜거리며 눈을 흘겼다.
무슨 소리냐 묻자.
“이런 더럽고 눅눅한 옥살이가 네가 내다본 곳이었느냐 이 말이다.”
불만이 가득한 듯 보였다.
“물론이다.”
머쓱함에 장난을 치니.
“거짓말하지 마라! 이놈이 이제는 입에 침도 하나 안 바르고 거짓말을 막 내뱉는구나!”
천불을 토해낸다.
호리는 벌떡 일어나 전신에 힘을 바짝 주었다. 아마도 수갑을 풀어내려 하는 듯했다.
“소용없다. 사씨 세가에서… 그러니까 극양상산에서 만들어낸 수갑이야. 향선도 몇 가지 금제가 갖추어지면 풀어내지 못하는 건데 네가 그렇게 힘줘서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해의 말이 사실인 듯,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힘을 주는데도 호리는 수갑을 풀어내지 못했다.
아니, 풀어내지 못하게 했다.
그의 뜻을 알기에, 더더욱 열이 뻗쳤는지 비해를 노려보고는 으르렁거렸다.
“이 개자식 이게 다 너 때문이다! 왜 가만히 있는 우리를 걸고 넘어져서 이 사달을 만든 게냐!”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니었지. 네놈들도 날 죽이려 했잖아?”
“빌어먹을 놈이…!!”
발길질을 뻗으려는 찰나.
쾅쾅!!
감옥을 지키는 간수가 조용히 하라는 듯 철창을 두들겼다.
그러자 호리의 시선이 천범을 향하고 잔뜩 일그러졌다.
“언제까지 이리 있을 것이냐.”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을까. 본래 대부분의 일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게 내 오랜 삶의 지혜인지라….”
“왜 시간을 들여 이곳에 있어야 하는 것이냐! 그냥 나갈 수도 있잖아!”
뭐 그것도 그렇긴 하다.
호리는 물론 천범에게도 이런 수갑은 애들 장난 같은 수준이었으니.
허나 그럼에도 범은 구태여 수갑을 풀어내지 않았다.
“오랜만에 찾아온 상서다. 이 또한 하나의 즐거움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
이 이야기를 사하에게 들려준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그리고 아직은 괜찮다. 상서의 변 화 또한 궁금하고… 며칠 지나면 축이 놈도 이곳으로 올 것이지 않느냐. 상서가 어찌 바뀌었는지 알아야 도움을 줄 수 있겠지.”
상서와 전혀 관련이 없는 사계의 군대가 주둔해 있는 것이 천범은 의아하기만 하다.
완전히 뜻밖의 상황이다.
물론 그가 걱정할 만한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님은 진즉 알 수 있었다.
그의 신식은 잠깐 펼치는 것으로도 수계 전역으로 퍼트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딱히 점령하여 식민지를 삼은 것 같은 그런 느낌은 아니던데.’
그래서 좀 더 알아봐야 하는 필요성이 있다. 혹시라도 사계의 군대가 상서를 점령하여 핍박하고 있다면 다 태워버리면 그만.
“하니, 좀 물어도 되겠나. 내 듣기로 상서 토박이라고 하던데.”
그러자 비해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노인장, 너무 긴장감이 없는 것 아닙니까? 이곳은 사군의 관리 하에 있는 감옥이오. 한 번 갇히면 죄가 가볍든 무겁든 쉽게 풀려나지 못해.”
“그럼 자네 또한 마찬가지인가?”
“아니, 나는 곧 풀려나지.”
“호오, 어찌 그런가?”
“나는 당신네들처럼 신원이 불분명하지 않으니까. 아마 몇 가지 심문을 마치고 나면 금세 풀려나겠지.”
하는 짓과 말투와는 달리, 자신의 신분에 꽤 자부심을 지닌 태도다.
그런 놈이 왜 사군의 병사가 되었을까. 별 같잖은 놈이 참으로 이상하게 천범의 흥미를 채운다.
“그렇구만.”
상서와 사군이 함께하게 된지 꽤 오랜 시일이 흐른 모양이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상서가 사군을 받아주고 사군은 상서의 치안이나 외세의 침략을 막아주는 상호 방위조약이라도 맺었나 보지?”
“잘도 눈치챘군. 그렇게 된지 꽤 시간이 지났지. 몇 백 년 됐나.”
“그럼 슬슬 상서에 녹아들고 있는 사군 또한 욕심을 부릴 때겠어.”
그러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다.
“노인네가 뭘 좀 아는데? 맞아. 그 때문에 본래 상서에 자리한 자들과 사군과의 분쟁이 최근에 자주 일어났었다니까!? 어… 근데 내가 왜 이런 것까지 말하고 있지?”
비해는 흠칫 놀라며 자연스럽게 여러 이야기를 꺼내게 한 노인네의 언변에 저도 모르게 놀랐다.
“그럼 자네는 첩자 짓을 하고 있는 상서 쪽 인물이겠군.”
“…글쎄? 그럴지도 아닐지도 모르지. 사군의 군수께서는 꽤 아름다운 용모를 지녀 상서의 사내들은 모두 그분의 마음에 들고자 하거든.”
사군의 군수가 아름답다라.
천범은 실소를 감추지 못했다.
왜 이곳에 사군이 자리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만 알려주니 왠지 손해 보는 것 같은데… 노인네는 이곳에 왜 온 거야? 하필 좋지도 않은 상황에 와 가지고 괜한 고생이잖아.”
몇 마디 나눠서일까.
비해의 태도가 전보다는 많이 경계심이 누그러진 듯 보였다.
말투부터 조금 편해보였으니까.
그래서일까.
“이곳에 만날 사람이 있다.”
“누구? 숨겨둔 애인이라도 있나?”
“뭐, 그런 셈이지.”
애인은 아니고 부인이지만 말이다.
“오… 능력 좋은데? 상서 여인들은 하나같이 억세서 꼬시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찌 그랬대?”
“너처럼 새파랗게 어린놈은 모르겠지만, 오래 묵은 술처럼 진중한 맛이 있으면 여인들은 알아서….”
저도 모르게 헛소리를 내뱉던 천범은 가만히 쳐다보는 호리의 눈치를 살피고는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럼 상서에서 쭉 살면 됐잖아. 왜 떠났던 거야?”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인장은 자기 여인보다 더 소중한 일이 있었다는 거야?”
훅 찔러 들어온 질문에 그는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던 비해가 자기 멋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럴 수도 있지. 나 또한 큰 뜻을 품고 있으니까.”
“이리 만난 것 또한 인연인데 어떤 건지 알려줄 수 있나.”
“그 정도는 알려줄 수 있지. 노인장, 날 만난 걸 영광으로 여겨. 난 상서의 왕이 될 남자니까.”
한낱 도시에 불과한 상서의 왕이 되겠다라.
그릇이 크다 해야 할지, 작다 해야 할지 참 애매한 말이었다.
소선이 내뱉을 포부로는 크다 할 수 있으나, 원선이 보기에는 뭔가 애매하기 짝이 없었다.
“상서의 왕이 되어 무엇 하려고?”
“우선 상서의 여인들을 모두 내 것으로 할 생각이야. 상서 인근의 모든 가문의 여식과도 혼례를 맺어 분쟁을 없애고 상서를 키울 거야.”
“…뭔가 바보 같으면서도 실용적인 대답이군.”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얼추 말이 되기는 한다. 괜히 가문끼리 정략혼을 하는 게 아니다.
한 나라의 왕이라 할지라도 정략혼으로 분쟁을 없애는 일은 많다.
“난 무도에도 재능이 없고, 오행에도 재능이 없는 편이라, 괴뢰술이 특기거든.”
소선 치고는 괴뢰를 다루는 거나 만드는 게 제법이기는 했다.
심계에도 조금 능해 보이니 잘만 써먹는다면 자기보다 강한 힘을 다루는 자들도 잘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똑닮은 괴뢰들을 이용하면 정략혼 따위는 식은 죽 먹기지.”
“…….”
진심으로 말하는 건지 속이기 위해 장난질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호리도 미친놈이 아니냐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괴뢰술로 상서의 왕이 되어 보일 거야. 날 무시했던 놈들도 그때가 되서는 아무 말 못 하겠지?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사계의 군수의 밑으로 먼저 들어가는 게 우선이지만.”
“군수의 밑으로?”
그러고 보니 그녀는 법기 만드는 재주가 뛰어났다.
괴뢰 또한 잘 다루기는 할 거다.
‘본적은 없지만.’
“노인장은 모르겠지만 사계의 군수는 수계로 망명했거든. 그래서 임시로 상서에서 지내고 있는데… 듣기로는 향선 중에서는 수계의 대천무장과 동수를 이룰 정도의 강력하다는 이야기가 허다해. 물론 군수가 다루는 괴뢰술은 수계의 쌍선대를 농락할 정도로 강력했다고 했어.”
가슴이 벅찬 듯 동공이 반짝인다.
“그래서 군수의 밑으로 들어가 출세도 하고 괴뢰술도 익혀 상서의 왕이 되시겠다?”
“바로 그거지.”
뭔가 숨기는 게 더 있어 보인다.
천범은 묘한 눈빛으로 실없이 웃는 비해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이쪽입니다.”
창살 바깥에는 간수병과 웬 단아한 여인이 나타났다.
“비해, 나와라.”
비해는 자신의 이름이 들리자 활짝 웃었다가 흠칫 놀라며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그것은 천범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비해를 찾는 여인의 얼굴이 퍽 낯이 익었기 때문이었다.
“왜 여기까지….”
비해는 차마 얼굴을 들지 못했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여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그를 애틋하게 안아주며 수갑을 풀어주고는 데리고 나갔다.
“음….”
잠시 멍하니 있는 천범의 곁에서.
호리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게 부인의 외도란 것이냐?”
천범의 낯이 와락 찌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