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42)
낭선기환담-541화(542/600)
낭선기환담 – 2부 251화
터벅, 터벅.
후두두둑, 쿠웅!!
하늘에 부유했던 땅과 석탑이 천천히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그 밑에 금광을 흩뿌리는 천범이 유유히 내려섰다.
담담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것은 팔과 다리. 그리고 한쪽 얼굴이 사라져 있는 반쪽 자리의 사내.
일신홍성 예동이었다.
“자신만만하게 내기를 걸길래 뭐가 있나 했더니, 딱히 그렇지도 않았나 보군.”
“즉, 크큭… 꼴만… 우습게 됐군.”
역류하는 피를 토하며 쓰게 웃는 예동의 척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스윽. 예동의 가슴 한켠에 꽂혀 있는 화살을 바라본다.
심상치 않은 화살.
저것으로 위기를 타파하려 했으나 실패한 것이다.
“한쪽 가슴에 화살을 꽂아서 천외공과 천내공 사이에 숨어들려는 속셈이었던 건가.”
“…맞다. 허나 통하지 않는군. 내 이걸로 많은 위기를 피했건만.”
“어리석기는. 나의 여명은 시간과 공간과 기를 역천시킨 것.”
그 정도 꼼수는 통하지 않는다.
천범은 다 죽어가는 예동의 모습에 쯧 혀를 찼다.
그와의 전투가 이리 허망하게 끝날 줄은 몰랐다.
척.
창 끝을 놈의 목에 들이민다.
“내기는 내기다. 검노의 꿍꿍이가 뭔지나 말하고 죽어라.”
묻자 예동은 무슨 생각인지 허허 웃으며 하늘을 보았다.
“열쇠다.”
“열쇠?”
“아검이 왜 건원해목에서 그들을 모아놓고 기다리고 있으리라 보나.”
“…그건.”
대라천을 위함이라 알고 있다.
막연한 생각일 뿐이지만.
“건원해목의 끝에 뭐가 있는지 알고 있나.”
꼭 자신은 알고 있다는 투다.
“뭐냐.”
“문이지.”
“대라천으로 가는 문 말인가.”
“글쎄.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우리들은 열 수 없는 문이었다.”
우리들이라.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꽤나 흥미로운 내용이기는 하다.
“그 문을 우리는 대라천도라 부르기로 했다.”
“그러니까 그 대라천도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나라는 건가?”
“그렇다.”
“어째서 나지?”
“그녀는 죽었으니까.”
‘그녀?’
신위를 말하는 건가.
아니면….
곰곰이 생각해본 범은 그것이 이내 다른 여인을 뜻함이라 알 수 있었다.
“월모자녀를 말하는군.”
왜냐면 그녀 또한 창조의 법칙.
삼세삼신을 익혔었으니.
“대라천도를 만든 구조와 양식은 생전에 스승님의 신통과 맞닿아 있다. 오래도록 보았던 우리였으니 그것을 열 수 있는 것 또한 삼세삼신의 신통임을 알 수 있었다.”
삼세삼신.
그것을 익힌 자는 열쇠가 된다.
대라천도.
새로운 하늘로 향할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열쇠가 말이다!
“대라천은 하계에서 상계로 향하는 것과는 다르지.”
하늘의 시험? 시련?
아니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역천.
“하늘을 꺾어, 하늘을 지배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수선 아니겠는가.”
하늘은 등졌다 한들. 결국에는 하늘을 향하게 될지니.
“산, 스승님이 등선하실 적, 왜 구태여 땅을 다섯으로 나누고 건원해를 만연하게 하셨는지 아느냐.”
“글쎄.”
“바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르는 걸 말인가.”
“그래.”
그것이 제자들에게 내리는 벌인지, 상인지는 모르지만.
“산.”
“뭐냐.”
“지금의 상계는 잘못되었다. 길이 막혀 있어.”
올라가되, 오를 순 없다.
지금의 하늘은 막혀 있다.
“우리의 스승이 길을 막았다. 어찌하여 그런 것인지는 모른다. 그것이 우리를 위하여서인지, 우리에게 노하여서인지는. 허나 그 뜻이 어찌 되었든 우리는 나아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 그럴 수밖에 없지 않느냐. 우리는 수선이니까!! 항상 정진할 수밖에 없는 놈들이니까!!”
그 길을 뚫을 자가 없다.
아니, 없었다.
“우린 줄곧 기다렸다. 삼세삼신을 익힐 열쇠가 될 자를.”
“너희들은 왜 익히지 못했나. 익혔으면 될 것을.”
“큿, 크크큭. 그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산, 네가 죽은 이후, 우리들은 삼세삼신을 익히려 했으나 그 누구도 익히지 못했다. 알고도 익히지 못하는 게 삼세삼신이요, 창조이니 어찌할까!!”
삼세삼신은 아무나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 쉽다면 이 오랜 시간 동안 그것을 익힌 이가 왜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을까.
창조를 이루는 법칙은 셋.
하지만 셋의 법칙은 하나하나가 삼천법칙의 집합과도 같은 아득한 깨달음을 지니어야만 하니.
마치 천과 지의 이상을 깨닫는 것과 다를 바 없음이라.
하나만해도 평생을 수행해야 하는 것을 세 가지나 하며 그것을 조화로이 이루어내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삼세삼신.
‘산, 스승님과 같은 창조를 다루는 것 자체로 너는 이미….’
예동은 남아 있는 한쪽 눈으로 멀거니 하늘을 보았다.
다 죽어가는 터라 그러한가.
‘아득하니, 두렵구나.’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은 그것.
하늘은 아득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그러함에도 두렵고도 아득함에도 오르고 싶으니.
그것이 바로 하늘이어라.
“월모자녀 또한 삼세삼신을 완벽하게 이루어내지 못했다. 그녀는 반쪽짜리였어. 그렇기에 달에 처박혀 나오지 못했지. 애초에 그녀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힘이었다.”
그러나.
“그러나 너는….”
먼 옛 일을 떠올리듯 깊은 눈동자는 천범을 보며 다른 무언가를 투영하였다.
그것은 너무 오래된 기억.
오래 전, 이제는 꿈인지 추억인지도 헷갈릴 오래된 스승의 모습.
“스승님을 많이 닮았어. 역시… 우린 줄곧 어리석었던 거야. 네가 있었는데. 가만히 있었으면 네가 대라천도를 뚫었을 텐데.”
후우.
가는 숨을 길게 뱉어낸 그는 천천히 하나 남은 눈을 감았다.
“산. 이제 끝을 내라.”
“구걸하지 않는가.”
목숨을.
“해서 무얼할까.”
이미.
네가 있는데.
“…그런가. 알겠다.”
파지직, 쿠릉.
자색의 뇌전이 번뜩이며 불천불벽의 뇌창이 범의 손에 잡힌다.
두 개의 날을 지닌 창.
쌍멸의 모습을 하며.
서슬퍼런 쌍날은 숨이 옅은 예동의 목으로 겨누어 진다.
그리고 이내 단조롭게, 덤덤하게.
찔러 들어간다.
“멈춰주십시오!!”
그때였다.
푸른 둔광을 번쩍이며 나타난 사내가 천범의 앞을 막아섰다.
“창을 든 것은 나인데, 찌르는 것은 오히려 네 목소리구나.”
“……형님.”
푸른 도포를 휘날리며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사내.
“오래간만이구나. 아우야.”
청명이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그였으나, 어릴 적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건장한 청년이 되었다.
모르래가 모를 수가 없다.
그의 모습은 하계에서 만났던 유정과 꼭 닮아 있었으니까.
“형님. 아니 됩니다!”
비통하다는 듯한 얼굴.
금세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다.
그러는 이유를 모르지 않다.
처음부터 알고 왔다.
알면서 벌인 일이고.
감내하며 생긴 일이며, 이리 될 것을 내심 짐작하고 있었다.
“안다. 네 스승이겠지.”
“그걸 어찌….”
“네가 환망을 두고 새로운 스승을 받게 된 연유 또한.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허나.”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무언의 눈빛을 보내자, 청명은 흠칫 몸을 떨다가도 의지를 다잡은 듯 눈을 부릅떴다.
“그렇다 해도 제 스승님을 형님의 손에 죽게 둘 수는 없습니다!!”
“어째서냐.”
“제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네 하나뿐인 형인, 날 죽였던 놈이라 해도 말이냐.”
“!!”
“너와 헤어지고 수계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을 때. 난 일신홍성 예동을 만나 격돌했고, 그때 이 자의 화살에 맞아 죽임을 맞이했었다. 미리 익힌 윤회절온공 때문에 부활했으나 그게 아니었다면 너와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또한.
“넌 자신의 형제를 죽인 자를 스승으로 모셨겠지.”
언젠가.
먼 훗날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땅을 치고 후회하였을 터.
“그럼에도 내가 놈을 죽여서는 아니 된다는 말이냐.”
쿠르르릉!!
천범의 감정에 동화한 듯 먹구름이 천둥을 일으키고, 굵은 빗방울이 투둑 투둑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러자 청명은 뒷걸음질 치다 비틀거렸다.
‘향선인가.’
화를 내는 중임에도 청명이 놈의 경지가 눈에 선하게 들어온다.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다.
예동이 스승이 된 일은 하늘의 뜻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단기간에 향산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을 터.
장하다. 장한 일이다.
어찌 기쁘지 않을까.
이놈이 눈앞에 없었다면 잘했다, 장하다 칭찬했을 것이다.
흐뭇한 얼굴로 하나 뿐인 아우의 어깨를 두들겨 줬을 것이다.
허나.
하늘은 본디 그러하다.
언제나 그러하듯 엇갈린 운명을, 그리고 선택을 강요한다.
뼈가 내깎이듯 내던지는 질문에 우리는 답을 강구하여야 하니.
감정은 절제하고 이성은 날카롭게 꾹꾹 눌러 곧추 세워야 한다.
“….”
감정을 지운 천범의 서늘한 눈초리가 청명을 찌른다.
싸늘한 비수와도 같은 눈초리는 형의 것이 아닌, 하늘 높은 원선태사의 그것이니.
청명은 입술을 베어물어 위태롭게 버틴다.
그러다 이내.
쿵.
무릎을 꿇었다.
“그게 너의 답이냐.”
“술잔에 피를 나누어 마심으로서 저희는 피를 나눈 형제가 되었습니다.”
“그래, 넌 내 아우다.”
허나 고작 그것뿐이라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
똘똘한 아우이니, 나름의 꾀를 준비하여 행동하는 것일 터.
하니 이것뿐이라면 형님된 자로서 대단히 실망할 것이다.
“하니, 아우로서 부탁하겠나이다. 제 스승님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시간을 달라.”
살려달라도 아니고 시간이라.
“알고 있었습니다.”
“무슨 소리냐.”
“제 스승님께서, 형님의 목숨을 한 번 거두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
뚝. 천범의 눈가가 깊어졌다.
이내 전신에서 퍼져나오는 아득한 천살기가 사방을 뒤덮는다.
“너는 내 아우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형을 죽인 자를 스승으로 삼고. 그걸 알고도 형의 앞을 가로막는 게냐.”
바늘처럼 날카로운 천살기에 청명은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한다.
피부는 팽팽해진 실에 칼을 가져다 대듯 툭툭 찢겨지니, 금세 피가 흐르고 살이 벌어진다.
청명의 입가에서 피가 베어나오고 눈은 피눈물이 흘러내린다.
허나 그럼에도 그는 피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목청을 높인다.
“물론입니다!! 왜냐면 스승님께서는 애초부터 형님께 죽고 싶어하셨으니까요!!”
“…그게 무슨 말이냐.”
“스승님께서는 충계에서 오경계주와 큰 싸움을 벌이시고 큰 부상을 당해 지금껏 요양하셨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그 싸움에서 자신이 친우를 손수 죽이셨다는 걸 깨달아 크게 슬퍼하셨지요!”
“…….”
예동을 바라보니 그는 침통한 듯 눈을 감고 있었다.
“허나 친우가 살아있음을 알고 크게 기뻐하셨고, 일부러 죽기 위해! 마지막으로 친우와 손속을 겨루고 후회 없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줄곧 당신을 기다렸던 겁니다!”
“… 몰랐다 하더라도 그는 날 죽였다. 내가 살아났으니 용서하라는 거냐. 그런 안일한 답을 하는 게냐.”
“아닙니다! 그러니 조금의 말미를 주셨으면 합니다!”
“무엇을 위해서.”
“적어도, 가슴에 품은 이야기를 풀어낼 시간을 말입니다!”
그를 화살로 만들겠다는 말은 어디까지나 도발에 불과했다.
생각해보면 그러했다.
허무하기까지 했다.
‘화살 하나도 남아 있기는 하지.’
화담이 잡아두고는 있다지만, 마음만 먹으면 어찌할 수 있을 거다.
허나 그는 하지 않았다.
불천불벽이 변한 창을 거두자 청명이 자리를 옆으로 비킨다.
“내 손에 죽고 싶었나.”
묻자 픽 웃었다.
피칠갑이 된 얼굴로 허탈하다는 듯 그리 웃었다.
“늘그막에 얻은 제자 놈 때문에 홀랑 발가벗겨진 기분이로군….”
“말해봐라.”
“이제 와서 그게 뭐가 중요하겠나. 난 죽고 너는 산다. 내가 못 갔던 길은 너는 가겠지. 지난 생과 더불어 이번 생에서도 너는 하늘에 도달할 것이다. 인과가 어찌 되느냐는 우리들에게 중요치 않지. 하늘이 바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결과일 뿐. 산, 너는 나아가라.”
“그게 다인가.”
“이게 나의 전부다. 더 할 말은 없다. 사내로 태어나 자신의 친우를 지키지도 못하고 오히려 내 손으로 죽였는데 무슨 할 말이 더 있을까. 끝을 내라. 죽음으로 속죄할 수 있다면 골백번이고 더 하겠으나, 내 삶은 여기서 마지막이라 그러하지 못하는 게 작은 한일 뿐이다.”
작은 한.
그러며 당부의 말도 덧붙였다.
“복수에 눈 멀지 마라. 복수는 복수일 뿐이다. 네가 향할 길은 복수가 아니라 하늘일 뿐이야. 그걸 잊지 말고 끝없이 나아가라. 우리들의 스승님처럼.”
범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
눈을 감았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땅 위에서.
천범의 창은 소리 없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날.
상계의 하늘 하나가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