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46)
낭선기환담-545화(546/600)
낭선기환담 – 2부 255화
“끈질기긴 끈질기군.”
흘러가는 나룻배에 앉아 두 동강 난 검을 매만지는 천범은 쯧쯧 혀를 차며 그리 중얼거렸다.
“내다버리지 그걸 왜 아직도 가지고 계십니까.”
“내 마음이야.”
란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눈초리를 흘겼으나, 그러해도 어찌 버릴 수 있는가.
옛 모습은 사라졌음에도, 나찰은 본래 구환도였다.
하계에서부터 나름대로 잘 써왔던 무기이니 두 동강 났다는 이유만으로 버릴 수는 없었다.
‘알아서 고쳐지고 있기도 하고.’
안에 담긴 나찰이 알아서 자가복구 중이라 내버려두면 붙을 것이다.
워낙에 끈질긴 여인이니.
“허나 애매하긴 하지.”
오른손에는 나찰.
왼손에는 선등음석을 꺼내자, 천범의 낯이 묘해졌다.
이제 앞으로 원선태사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한데 수중에 남아 있는 법기가 영 시원찮으니 걱정이 일었다.
나찰과 선등음석.
둘 모두 훌륭한 법기라 할 수 있으나 원선들과의 전투에서 활약하기엔 다소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아 있다.
‘둘 모두 훌륭하지만 한 방이 부족해. 한 방이….’
결정적인 강력한 한 방이 부족한 무구들이다.
선등음석은 수신통에 치중된 것이고 나찰은 사신통에 치우쳤기에 천범이 힘을 이끌어내기도 쉽지 않다.
‘아니… 정말 그러한가?’
오행이라는 것은 결국, 하나에서 파생되어 나누어진 것.
그것을 달리 생각해보자면 뿌리가 같다고도 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법칙 또한, 결국 창조라는 뿌리에서 갈라지지 않았던가.
그러니 결국….
“산군. 이제 다 왔습니다.”
“…아, 그렇군.”
생각의 정리를 머릿속으로 이어가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이 흘러 건원해를 건너 이곳에 왔다.
촤악.
란이 검을 휘두르자, 짙은 안개가 벌어지며 저 멀리 거대한 건원해목.
뻥 뚫려 선회하고 있는 소용돌이가 장엄하게 자리해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줄곧,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 원선태사들의 기운이 보다 선명하게 느껴졌다.
“선등음석을 꺼낼 필요도 없군.”
충계에서 느꼈던 녹면위왕부터.
사계의 만각변왕.
붕계의 절마대군.
수계의 지란위, 천외양군, 우백자.
마지막으로 선계의 검노일택.
“어쩌다보니 수계의 원선이 아주 넘쳐나는군.”
허나 숫자에 의미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를 복수를 위해.
또 누군가를 자신의 일념을 위해 이곳에 자리했을 것이니.
결국 살아남는 자는 하나뿐.
톡.
나룻배에서 내려와 수면 위에 발을 대니, 파문이 퍼지며 주변의 안개가 삽시에 날아간다.
이내 그의 주변으로 금빛의 물결이 자욱하니, 건원해목에 자리하여 눈을 감고 있던 원선태사들의 눈꺼풀이 천천히 뜨여진다.
“왔는가, 금천.”
담담하게, 또는 날카롭게.
수면 위를 걸어오는 금천을 바라보는 눈빛이 다양하게 흐른다.
“사내들의 이목까지 끌 정도로 잘난 얼굴은 아닌데 말이지.”
실 없는 소릴 내뱉은 천범은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좌측부터 절마, 만각, 지란위, 검노, 우백자, 천외양군이 자리하고 있다.
슬쩍 뒤를 힐긋거리니 란은 이미 모습을 감춘 상태.
온전히 앞을 향할 수 있었다.
“친히 마중까지 보내어 부르기에 뭘 하려나 했더니. 다 같이 모여 강강술래라도 하려는 참이던가.”
“그보다는 더 재미진 일일 듯하여. 자넬 여태 기다렸겠지.”
답을 꺼낸 자는 검노일택.
산의 기억으로 본 것을 제외하고는 순수한 첫대면이었다.
허리춤까지 내려오는 긴 수염과 눈썹이 인상적인 노인의 모습이다.
허나 기골은 장대하여 덩치는 웬만한 사내보다 나으니 절로 뿜어지는 기운이 퍽 남달랐다.
‘내 기억보다는 더 늙었군.’
그 시절보다 더 늙어버린 모습.
주름진 눈꺼풀이 눈을 대부분 덮고 있으나 눈동자는 한가득 열망을 품어 절로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안면 있는 놈들보다는 없는 놈들이 더 많았다.
지란위 또한 제대로 본 적은 이번에 처음이었다.
‘저번에는 본신을 보았지.’
탈형의 모습을 보진 못했었다.
지란위는 의외로 말끔한 사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머리에 돋아난 푸른 뿔과 서늘한 벽안은 탈형이라도 해룡임을 언뜻 짐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근처의 우백자 또한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사내였는데, 본신이 흰 소인 것과 달리 검은 머리를 지녔다.
전체적인 인상은 산적처럼 덩치가 컸고 한쪽 눈은 오래 전 다쳤는지 큰 흉이 그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어디 한 번 설명 좀 해 주지 않겠나.”
“그건 제가 하도록 하지요. 저 또한 금천과 나름의 친분이 있기에.”
절마대군이었다.
새하얀 낯의 미청년의 모습 그대로.
그의 본신은 하나가 아닌 둘로, 붕계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었는데….
‘그렇군.’
범은 가까이 다가오는 절마대군을 보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지금 모습은 본신이고, 또 하나의 신을 안에 숨겼다는 것을.
“금천,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오랜만이오. 다들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걸 보니 내가 꽤 늦은 모양인데, 빠르게 설명하실 수 있겠소.”
“물론이지요.”
대충 어떠한 목적인지는 알고 있다.
“건원해목이 무엇인지는 아시지요.”
“알고있소. 만골의 죽음을 시작으로, 상계에 맺힌 천지원기가 건원해로 떨어져 발생한 것이 아니오.”
“예, 그럼 여기서 한 가지 문제를 내드려도 될 것 같군요.”
“문제?”
“그럼 우리는 어째서 건원해목으로 들어가보려 하는 걸까요?”
“대라천도를 위한 것이겠지.”
“오!”
숨길 것도 없는 내용이다.
어차피 밝혀질 이유이니.
“맞습니다. 건원해목에는 대라천도라 이름 붙인 문이 있지요. 굳건하게 잠겨 열리지 아니하는 문이나, 당신의 삼세삼신이라면 열릴 겁니다.”
-문만 열린다면 누구 하나 죽지 않아도 될지 모르지요.
“우리 모두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새가 아니겠습니까. 문이 열리면 그 이후는 각자의 판단으로.”
-걷거나, 뛰거나.
-죽이거나 하겠지.
절마대군의 입가에 호선이 짙어진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대체 무엇을 꾸미는 것인지.
‘하기사.’
나 또한.
크게 다를 것 없으니.
“그럼 시간 끌 것 없이 가보실까요.”
이내 검노를 기준으로, 대부분의 원선들이 건원해목으로 뛰어 들었다.
잠시 후.
그들이 사라진 건원해목에, 부적 하나를 위태로이 들고 있는 사내 하나가 나타났다.
청명이었다.
“형님께선… 예나 지금이나 제게는 참 어려운 것을 맡기십니다.”
중얼거린 그의 신형이 다시금 연기처럼 사라지고, 모두가 사라진 건 원해목은 기이한 소음을 자아내며 휘청거리는 파도에 덮여 사라졌다.
* * *
칠흑 같은 어둠.
건원해의 의지인지 오감이 차단되어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곳.
건원해목의 안.
떨어지는지, 올라가지는지도 느껴지지 않는 무의 공간이나 다를 바 없는 이곳에 천범은 가부좌를 틀고 머릿속을 괴롭히는 상념을 지워내야 했다.
‘이것인가.’
일전, 만각변왕이 자신에게 건원해목에 대해 이야기 해준 적이 있었다.
일 년, 십 년, 백 년, 천 년이 지나도록 이러한 공간에 자리하게 되면, 무릇 수만 년의 수행을 쌓은 원선태사라도 가슴 속에 공포가 생긴다고.
터럭만한 미련은 공포로 성장하고, 그것은 두려움이 되어 머리를 잠식하고 눈과 귀를 가리우니.
-없던 것도 되살아나 너의 심마를 만들어낼 것이니. 부디, 사사로운 것에 현혹되지 말기를.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번쩍 눈을 뜨자.
풍덩!
순간 물속에 빠져 물거품이 모래 알처럼 퍼져나가 나의 숨을 막고, 나의 몸을 옥죄인다.
헐레벌떡 손발을 뻗어 물의 장력을 밀쳐내 수면 위로 머리를 들이미니.
“허억!”
나를 비추는 것은 따사로운 햇빛과.
“흐히힛! 범아! 거기서 뭐해! 공을 치라니까!?”
나를 부르는 어린 아이들이었다.
“야, 김범! 뭐해! 괜찮아?”
열 살 정도 되었을까 싶은 아이.
사내아이가 내게 다가와 걱정스레 물었다.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은 해변이었고, 여름 휴가로 많이 찾는 피서지였으며 나는 고아원 친구들과 함께 놀러온 아이였다.
그렇다.
나는 이곳에서 산해발산고의 산군이자 천범이 아닌.
“김범. 너 얼굴이 왜 그래? 라면 먹으러 갈까?”
현대의 김범이었다.
* * *
이제는 잘 기억나지도 않는 시절.
나의 어린 나날.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도 애매하던 오래된 기억.
나조차 잊고 있던 그 시절의 추억.
“아, 개덥네. 안 그러냐?”
“그러네.”
부모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천애고아라, 나는 시설에서 키워졌다.
그나마 가족이라 부를 만한 것은, 나와 비슷한 신세의 또래 놈들.
“근데 너… 이름이 뭐였지.”
“뭐? 아까 물 처먹더니 기억도 같이 날아갔냐? 용이잖아, 김용.”
“아.”
맞다. 용.
김용.
이름도 성도 없던 우리는 시설의 원장님의 성을 따라 김씨.
그리고 왜인지 외자의 이름을 주로 가지게 되었다.
나는 범.
얘는 용.
그제야 그늘에 가리어져 있던 용의 얼굴이 제대로 보인다.
맞다.
이런 얼굴이었다.
“못생겼군.”
“뭐야!?”
“아니, 실언이다.”
“실언? 실언이 뭔데?”
용은 날 이상하게 쳐다보고는 더위에 흘러내린 아이스크림을 낼름 핥아 먹었다.
아이스크림.
막대기 하나에 꽂혀 있는 빙과.
나도 먹고 싶었다.
“나도 줘라.”
“…한 입만 먹어라.”
새 거를 사달라는 소리였는데, 자신이 먹던 걸 내준다.
침 범벅이 되어 조금 더러웠으나 이상하게 생각보다 입이 먼저 나갔다.
절반이 넘게 크게 한 입 베어물자 용이 단번에 성을 낸다.
“이 새끼가!”
역시 어린아이라 그런가.
대번에 화를 참지 못하고 주먹이 얼굴로 날아든다.
참으로 보잘 것 없이 작고, 고사리를 말아놓은 듯 볼품없는 주먹이다.
난 무표정하게 아이스를 씹으며 용의 주먹을 피했다.
퍽!
“악!”
피하지 못했다.
“가, 감히 날 때려?”
“감히는 얼어 죽을. 뒤져 새꺄!”
멧돼지처럼 돌격해 주먹을 휘두르는 김용의 난타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하지만 나 또한 가만히 맞고만 있지는 않았다.
놈의 손 하나는 아이스크림에 묶여 있었고, 나는 양손이 가벼웠다.
난 용의 머리카락을 잡아 모래사장에 처박았다.
“퀙!”
이내 발로 엉덩이와 등을 밟아주니 기괴한 신음이 자아났다.
타악기를 두드리는 듯 때려주니, 어디선가 어른이 나타나 나와 용을 떼어내고 우리 둘은 모래사장 한 가운데서 두 손 들고 벌을 서게 됐다.
굴욕적인 결말이다.
“선생님! 범이가 내 아이스크림 다 먹어서!!”
“한 입 먹어도 된다 해서 먹었을 뿐. 난 큰 잘못을 하지 않았소.”
“얘 갑자기 이상해요 선생님! 말투 사극시대 말투 쓴다니까요!”
코피가 터진 용과 뺨이 부어오른 날 잠시 보더니 선생이라 불린 여인은 우리 둘 다 잘못이 있다며 해변가의 쓰레기를 줍게 만들었다.
“원통하군.”
“또 뭐라는 거야. 빨리 주워.”
“왜 네가 쓰레기봉투를 들고, 내가 쓰레기를 주워야 하지? 내 노동이 더 많지 않은가.”
“이따가 바꿔주면 되잖아.”
고개를 끄덕이며 쓰레기를 주우려는 찰나.
뉘엿뉘엿 지는 해는 노을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중이었다.
해변가에 서 있는 우리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우리는 의식의 흐름대로 그림자놀이를 하게 됐다.
두 손을 모아 개의 형상을 만들고 새끼손가락을 움직여 멍멍 짖거나 토끼를 만들다보니 금세 어두워졌다.
“야, 김범.”
“뭐냐.”
“넌 커서 뭐가 될 거냐.”
“글쎄. 너는?”
“난 아빠.”
“아빠? 아빠가 되서 뭐하려고.”
“아빠는 힘도 세고, 강하고 돈도 잘 벌고 엄마도 있잖아. 그리고 아내도 있고 자식도 있고, 직장도 있겠지.”
“그래서 아빠가 하고 싶다고?”
“응. 그럼 내 자식은 우리처럼 시설에서 키워지지 않을 거잖아.”
“시설이 싫냐? 너 선생님이랑 결혼하고 싶다고 했잖아.”
“선생님 남친 생겼다.”
“싫어질 만하군.”
한창 세상이 원망스러울 나이다.
그럴 만하다.
“넌 뭐할 거냐니까.”
“나? 난 기둥서방이나 할까.”
“기둥서방? 그게 뭔데?”
“음… 글쎄. 그게 뭐지?”
“뭔지도 모르면서 되고 싶은 거냐.”
“뭔지는 기억 안 나는데 엄청 좋은 거라고만 알고 있어.”
“병신.”
“응, 반사.”
“응, 무지개 반사.”
우리는 그리 티격태격하며 쓰레기를 주웠고 나름의 바람대로, 시간은 빠르게도 흘러 성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