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47)
낭선기환담-546화(547/600)
낭선기환담 – 2부 256화
법적으로 스무 살이 되어 시설에서 나와 이사를 했다.
보증금 삼백에 월세 삼십.
작은 원룸을 잡아 용이와 함께 살기로 시작한 날.
치익.
딱.
“마셔! 마셔! 먹고 뒤져!”
이사한 기념으로, 소소하게 베란다에서 맥주 한 캔을 땄다.
“야, 넌 이제 뭐할 거냐.”
고아를 보살펴 주는 정부의 혜택도 이제는 사라졌다.
법적 성인이 됨과 동시에 사회로 내던져지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고등학교를 다니는 틈틈이 해둔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작은 원룸을 잡았으니 이제 시작이었다.
시작.
하지만 시작은 다르게 말하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말.
숫자 0에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따라 하늘은 깜깜했고 아득했다.
우리 앞에 펼쳐진 사회는 저 하늘처럼 어두웠고 금세라도 쏟아져 우리를 덮칠 듯 무거워 보였다.
“직장 구해야지.”
둘이서 반씩 낸다고 해도 월세로 달달이 내야 하는 돈이 15만원. 그리고 생활비랑 이것저것 들어갈 돈이 많을 테니 당장 직장을 구해야 한다.
이제는 기댈 곳도 없으니까.
“너 여자 친구는?”
“헤어졌어.”
“왜? 기둥서방 한다더니, 걔네 집안이 좀 별로였나?”
“언제 적 얘기를 하냐… 그냥, 사귀다 보니까 알겠더라고.”
어릴 적에 헛소리한 거까지 다 저렇게 기억한다.
어제 뭐 먹었는지도 기억 못하면서.
쓸데없는 곳에 기억력을 쓰는 게 김용이기는 하지만.
“뭘 알았는데.”
“난 걔가 좋아서 사귄 게 아니라 단순히 이성이라는 호기심을 설렘으로 착각했었다는 거지.”
“뭔 개소리야 그게. 쉽게 설명 좀 해봐.”
“그러니까. 걔라서 특별한 게 아니라 그냥 단순히 여자라서, 동성이 아닌 이성이라서 느낄 수 있는 걸 사랑이라 착각한 거였다고.”
“그게 그거 아니냐?”
아니지. 다르지.
“걔만 특별한 게 아니니까. 다른 여자가 옆에 있으면 그 여자랑도 똑같은 걸 느끼는 거니까. 쉽게 말하면 그냥 남자의 본능이었지.”
“오, 그래서 어디까지 갔는데?”
“꺼져 임마.”
좀 진지해져볼까 싶었더니.
저렇게 장난질을 한다.
뭐, 지금은 그래서 좋지만.
진지하기만 하면 너무 퍽퍽하니까.
“착각하고 싶지 않아서.”
“뭔 소리야. 그냥 사귀고 물고 빨고 하면 서로 좋잖아.”
“의미가 없다는 거지.”
육체적인 관계만으로 이어질 인연을 어떻게 소중하게 대할 수 있을까.
결국에 파국으로 이어질 사이다.
그것도 연인이라면 연인일 수는 있지만 그것에 나의 시간을 소비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면 컸다.
“넌 너무 이성적이야. 가끔은 본능에 몸을 맡기지?”
“글쎄, 그러기엔 날 둘러싼 상황이 본능으로 해결될 게 아니라서.”
스무 살.
다른 이들 같았다면 부모님이 내 주시는 돈으로 대학에 다니고, 한창 신나게 맞이한 이십대를 즐길 나이.
하지만 조금의 여력도 없는 우리들에게 대학은 사치일 뿐이다.
일찌감치 포기하고, 어디 공장이라도 다녀서 입에 풀칠할 수 있다면 그걸로도 만족할 상황.
“…하긴, 덜컥 애라도 가지면 우리 상황에 어떻게 키우겠냐. 내 코가 석 자인데 시부럴.”
몹쓸 짓이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고, 있는 것이라고는 젊은 혈기뿐. 혈기만으로 세상 모든 일이 해결됐다면, 이렇게 막연한 사회가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도 좀 그렇긴 해. 만약 좋은 사람 만나도 결혼할 용기가 없어. 고아라고 하면 색안경부터 끼니까.”
“그렇지.”
자존감.
우리에게는 자존감이라 부를만한 것도 없다.
그래서 일찌감치 포기하게 된다.
그게 무엇이든.
어떤 특별한 것이든.
가진 것이 없었기에, 가질 수도 없었기에, 우리가 제일 먼저 배우게 된 것은 바로 포기였다.
포기하는 법.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우리는 그걸 제일 먼저 배워버렸다.
갖지 못하여 샘나지 않도록.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하기 위해서.
우린 스스로 지레 먼저 포기한다.
툭.
괜히 짠한 마음에 용이의 맥주캔을 부딪쳐 씨익 웃었다.
“그러니까 성공해야지.”
“그치.”
막연하기 그지 없는 희망적인 말.
욕망에 대한 포기는 쉽사리하면서도 삶에 대한 건 포기 않으며 지푸라기 같은 희망을 들먹인다.
이율배반적인 행동과 말이어도, 그리 해야 살 수 있어서.
이제까지 이렇게 살아왔어서.
모순됨을 알고도 이렇게 말한다.
“캬! 맛 없는데 잘 들어가네.”
스무 살에 처음 먹어본 맥주는, 별로 맛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른들이 왜 그렇게 맥주를 마셨는지는 알 것 같았다.
답답함에 막히는 목구멍을 그나마 뚫어줄 것이 우리네에게는 맥주밖에 없으니 그렇게 먹어대는 것이다.
슬프고도 잔인하지만 한 줌 위안이 되기도 하는 맥주가 나는 좋아질 것 같았다.
* * *
5년 뒤.
부모의 행적을 알 수 없는 고아이기에 군대는 면제 받았다.
덕분이랄지 취직한 공장에서 일하며 근근이 먹고 살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딱 그 정도였다.
“납품이 모레까지인데, 시발 이렇게 해놓으면 나보고 어쩌란 건데! 다 같이 사표 쓰던가!!”
고레고레 소리치는 발성이 얼마나 뛰어난지, 철판을 자르거나 용접하는 것 때문에 주변이 시끄러운데도 지랄하는 소리가 똑똑히 들린다.
덕분에 괜히 각종 소음으로 시끄러워할 공장에 정적이 흘렀다.
“뭔데 저래.”
용이가 옆으로 다가왔다.
“괜히 지랄하는 거지 뭐.”
빨리 일하라고.
야근하라고.
그렇게해서 기일 맞추라고.
혹시 몰라서 기일에 납품을 맞추지 않으면 자기한테 불똥이 떨어지니까.
“근데 순조로운 거 아니었냐. 대충 이대로만 가면 기한 맞출 텐데 왜 저 지랄이야 저 새끼는.”
“말했잖아. 괜히 지랄 한 번해서 긴장하고 하라는 거지.”
괜히 누구 다치면 큰일 나기도 하고, 기일도 못 맞출 테니까.
“강 반장 개새끼.”
“그러게, 씹새끼.”
꼭 저렇게 사람 기분 개같이 만들어서 일 시켜야 하나 싶기도 하다.
“야 거기 둘! 일 안하고 뭐해!?”
“합니다~”
용과 나는 눈으로 강 반장을 욕하고 다시 작업에 몰두했다.
퇴근 시간.
가볍게 샤워실에서 샤워하고 맥주나 한 잔 하러 가자는 용이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이고 차에 올라탔다.
“야, 너 또 그 소설 보냐?”
“엉. 방금 올라왔다. 이것만 볼게.”
“재밌냐?”
“그냥저냥.”
현실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아무리 이렇게 일하고 입에 풀칠해도 미래가 밝지 않아서일까.
나는 정신차려보니 소설 감상이라는 취미를 가지게 되었다.
“난 그런 거 보면 졸려서 못 보겠더라. 뭔가 몰입이 안돼.”
“그런 사람도 있는 거지 뭐. 나도 그냥 보다 보니까 궁금해서 보는 거야.”
“궁금해서?”
“응.”
현실에서 영 동 떨어져 있는 세계와 그 안에 사는 주인공.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좋아.”
정말 말이 되질 않는 세계들과 그 속에 사는 주인공들이 좋다.
그래서 궁금하기도 하다.
내가 처한 상황과 세계는 극적인 상황이 나타날 수 없기에.
찬란한 미래를 그릴 수 없기에.
비현실적인 세계와 비현실적인 주인공이 비현실적인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비현실적인 것만 모아져 있으면 그게 현실인 것 같았으니까.
“뭔 소릴 하는 건지… 제수씨는? 불러서 같이 먹자!”
“제수씨는 무슨.”
“네 여자친구면 제수씨지 뭐. 어차피 근처 살잖아. 불러불러!”
“됐어. 아까 연락했는데 오늘 야근하느라 바쁘다고 그랬어.”
한 이 년 전쯤 어쩌다가 연이 닿아서 만나고 있는 여자친구가 있다.
“그리고 곧 헤어질 거야.”
“뭐? 왜!!”
“슬슬 헤어질 때 됐어.”
“또 뭐 이성인지 본능인지 뭐시긴지 하는 거 때문이냐?”
“아니. 그런 거 아니야.”
“그럼 왜 헤어진다는 건데?”
“난 어차피 결혼할 마음도 없는데 계속 사귀는 건 걔한테 몹쓸 짓이지. 이제 슬슬 헤어질 때 됐어.”
“…야, 아무리 그래도.”
“나 같은 놈한테 시집와서 뭐가 좋겠냐. 그리고… 그 집 부모님들도 고아한테 자기 딸 시집보내고 싶지는 않을 거 아냐.”
그러자 운전대를 잡은 용이의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입은 꾹 닫고 있지만, 속에서 화가 들끓고 있는 모양이었다.
“세상 참, 좆같네.”
“큭큭큭, 그렇긴 하지.”
고아라는 이유 하나로.
나는,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금세 이렇게 쉽게 포기하고 만다.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도, 나는 대부분의 것을 이렇게 포기할 것이다.
몇 년이 지나고.
내 나이가 삼십 줄이 넘어가서도, 그건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내가 지금껏 살아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지금의 성향 때문이니까.
“범아.”
“왜.”
“나는 포기도 용기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뭔데. 명언 타임이냐.”
“포기한다고 해서 널 너무 비굴하게 만들지 말란 거야. 포기도 쉽게 못하는 거야. 용기가 있어야 하는 거지. 이런 저런 이유가 겹치기는 하지만, 넌 그래도 제수씨의 미래를 위해서 포기하려고 하는 거잖아. 그건 용기다.”
포기도 용기다.
김용의 말이 순간 내 가슴을 찔러 들어왔지만, 이내 포근함으로 바뀌어 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뭔데.”
“어차피 제수씨랑 헤어질 거면 나랑 이따 클럽 고?”
“미친 새끼.”
그나마 내 비루한 삶에, 한 줌 웃음이 지어질 수 있는 건.
친구와 소설이 있기 때문일 거다.
“개소리 말고 삼겹살에 소주나 먹자. 클럽은 뭔 클럽이야 시끄럽게.”
“오케이- 그럼 내가 삼겹살에 쇠주 먹다가 헌팅 시도 해봄.”
“미친 소리 말고.”
한참 동안 개소리하며 낄낄대던 와중, 김용이 뭔가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저거 제수씨 아님?”
“어디.”
“저기, 저거.”
횡단보도 옆.
길을 거닐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내 여자친구였다.
“옆에 누구냐.”
모르는 남자였다.
“야, 김범. 저 새끼 누구냐고. 아는 친구거나, 남동생 이런 거 아니지?”
김용의 목소리가 사나워진다.
나도 덩달아 가슴이 뛰었다.
그러나 이내 차갑게 식었다.
억지로 식혀야 했다.
“아, 여친 동생이네. 잠깐 서울 올라왔다더니 동생 저녁 먹이려고 나왔나 보다.”
“그래? 그럼 다행이네. 인사라도 잠깐 하고 갈까?”
“됐어. 걍 가자. 가족끼리 있는데 어색하기도 하고… 우리 작업복 입고 있어서 모양도 안 난다.”
“그건 그렇네.”
나름대로 납득한 모양이다.
그제야 난 작게 안도하고 씁쓸한 눈으로 여친의 뒷모습을 지나쳤다.
여친에게 남동생은 없다.
원래 아는 남사친도 잘 없었다.
아마 몇 번 언급한 적 있었던 같은 회사 대리일 거 같다.
‘상관없지.’
어차피 헤어지려고 했었으니까.
나보다는 저 남자가 더 잘해줄 거다.
대기업 회사 대리에 나와는 달리 부모님도 살아계시고 집도 잘 살 테니.
이럴 때마다 쉽게 포기하는 내 성격이 좋다.
보다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으니까.
“야, 용아.”
“왜, 범아.”
“빨리 소주나 먹으러 가자.”
“좋지.”
상관없다.
어차피 제대로 가진 적도 없었다.
가지려고 한 적도 없었다.
나 같은 놈한테 무슨.
슬쩍 운전 중인 용을 봤다.
뭔가 고민하는 듯 했다.
아까 내 여자친구를 보고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기라도 했을까.
처음에 분명 야근중이라고 이야기해서 잘 생각해보면 들킬 텐데.
“무슨 생각 하냐.”
“소주 먹을까, 소맥 먹을까 고민 중.”
괜한 걱정이었다.
“소맥 먹다가 소주 먹으면 되잖아.”
“그럴까?”
“병신.”
“크헤헤헤헤!”
욕하니 병신처럼 웃는다.
저 머저리 같은 웃음을 보니 나도 웃음이 난다.
그러며 안도한다.
‘그래도 다행이다.’
고아지만, 현실에 치이며 한 줌 빛도 없는 미래가 쏟아지는 삶이지만.
그래도 용이가 있어서.
가족이나 다름없는 친구가 있어서.
그래서 다행이다.
이 놈마저 없으면 내 삶은 무던히도 지루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내 생각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일은 없었다.
사차선에서 신호가 바뀌고 나아가던 우리 차를 트럭이 덮쳤다.
덕분에 단번에 차가 전복되고 뒤차가 들이박아 몇 번을 굴렀다.
그리고 내가 병원에서 의식을 차렸을 때.
내 친구 김용은 이 세상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