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53)
낭선기환담-552화(553/600)
낭선기환담 – 2부 262화
탓.
떨어지는 만각변왕을 안아든 천범은 가슴에 꽂혀 있는 검을 확인했다.
“크으윽!”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린다.
검은 기괴하게도 만각변왕의 살점과 얽혀 있었다.
척.
손잡이에 손을 대자, 기묘한 법칙의 힘이 느껴졌다.
‘화담이 지닌 것과 흡사하다.’
흡성에 관련된 법칙일까.
가만히 내버려두면 만각변왕의 살점은 물론이요, 그 기운 자체를 앗아가 존재까지 소멸시킬 듯 보인다.
‘미씨 세가의 원선을 없앤 힘인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했더니, 당한 자의 생명과 힘은 물론이고 남겨진 자의 기억까지 앗아가는 힘이었다.
“사위님 앞에서 이거 참,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는군….”
“그런 말씀 마시지요.”
검을 잡은 천범의 손아귀에 힘줄이 돋는다.
허나 동시에 만각과 범의 낯이 일그러진다.
한 명은 고통에 의해.
다른 한 명은 한 발 앞지른 생각에 의해서였다.
‘위치가 좋지 않다.’
원선태사는 심기체가 하나된 자.
향선이라면 몰라도 원선에 올라서 자신의 신체를 훼손당하는 것은 이전과 다른 의미를 갖는다.
“위치가… 좋지 않지?”
그 또한 알고 있는지 입가에 피를 토하며 씁쓸하게 웃는다.
“그렇지 않습니다.”
심장을 관통당한 상태.
게다가 검노의 검은 만각변왕의 기운과 살점에 기생중이다.
얽혀있는 살점을 무작정 힘으로 뽑았다가는 주요 장기라 할 수 있는 심장이 파손 당한다.
그런다 한들, 죽지는 않겠으나… 죽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다른 곳이었다면 몰라도 이곳의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검을 뽑아도….’
뽑지 않아도 죽을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죽는다.
“역시 단번에 눈치챘나. 검을 뽑았다면 꽤 볼만했을 것을.”
“….”
스르륵.
칠색변운이 옅어지며 나타나는 검노일택의 모습.
그의 주위에는 어느새 지란위와 우백자 또한 함께다.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그제야 대강 알 것 같았다.
‘아검은 강하다.’
같은 원선태사라 해도 그 힘의 차이가 있음은 분명하다.
허나 이리 쉽게 당할 만각변왕이 아니었다.
하지만 셋의 합공이라면 다르다.
“우백자! 지란위, 네놈!! 지금 상황이 되어서도 검노일택을 따르는가!!”
천외양군이 진노하여 소리쳤으나 지란위와 우백자는 답이 없다.
게다가 분위기 또한 조금 이상하다.
천외양군이 눈살을 찌푸리자 입가에 흐르던 피를 닦던 만각변왕이 입을 열었다.
“소용없네…. 둘은 진즉, 검노의 손아귀에 들어간 지 오래야.”
“그게 무슨… 설마?”
그에 대한 답은 만각이 아닌, 검노의 입에서 들을 수 있었다.
“진법으로 검이 되었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으나, 혹시나 싶어 내 그들에게는 진즉 수를 써 놓았네. 자네들과는 달리, 이들과는 오랜 세월 교류를 했었으니까.”
이미 그들은.
“나의 검이네.”
* * *
중앙에는 백발이 성성한 검노.
그 양 옆에는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는 지란위와 우백자.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아연함을 감출 수가 없는 다섯의 원선이 있었다.
그러니까.
결국 이 또한.
“네놈의 안배라는 뜻이군.”
“그 정도도 대비하지 않고 어떤 거사를 치를 수 있겠나. 옛날 자네를 칠 때는 이것보다 더 했다네.”
검노는 아득한 옛일이 떠오르는지 다소 들뜬 기색이었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자네는 항상 화내기만 하는군.”
콰드득.
범의 손은 주먹을 말아 쥐었으나 시선은 검노에게 향한다.
그와 동시에 산의 기억이 선명하게 천범의 머릿속을 스치운다.
건원해정으로 빠뜨려지는 그의 자식들과 그들을 구하기 위해 희생했던 산의 모습이.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을 내려다보는 저 비열한 눈.’
잊을 수 없다.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분노할 수밖에 없는 놈의 얼굴.
그것이 눈앞에 있는데 어찌 화가 차오르지 않을 수 있을까.
“신검합일이 파훼당한 일은 꽤 예상 밖이었지. 설마하니, 자네도 아닌 예동 그 친구가 남긴 것들이 파훼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네.”
허나 그뿐.
“고작해야 그뿐이라는 게지. 쯧쯧, 내 옛 정을 생각해 굳이 목을 거두지 않았거늘, 그리 갈 운명이었다면 내 직접 거두었을 걸 그랬네. 화살이 변한 검 또한 흥미로웠을 테니.”
아쉽다는 듯 말하는 검노의 태도에는 진정성이 엿보였다.
천범은 품의 만각변왕을 내려다보고 입을 달싹였다.
이내 작은 불씨가 그의 검으로 옮겨 붙고 손목에 붙어있는 오룡의 팔찌에서 작은 분신이 나와 검으로 흘러들어 갔다.
그제야 천범은 그를 천외양군에게 맡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법칙의 힘과 탐의 분신을 넣었습니다. 완전한 치료를 어려울지라도 술법의 진행을 멈추어줄 겁니다.”
삼세삼신의 힘 조금과 탐의 분신이라면 어느 정도 막아줄 것이다.
검을 뽑아서는 아니 되고, 그렇다고 뽑을 수도 없다면 우선 멈춰두는 것이 제일이니.
‘자, 이제 어떡할까….’
다행이라고 한다면, 검노의 검이 된 원선은 지란위와 우백자뿐.
다른 원선들은 아직 멀쩡하다.
충계의 녹면위왕.
붕계의 절마대군.
수계의 천외양군.
‘사계의 만각변왕은….’
어려울 듯하니 싸울 수 있는 건 자신을 포함하여 넷.
‘상대는 셋.’
우백자, 지란위, 검노일택.
“수적으로는 유리한가.”
허나 그 의미가 희석되듯 검노일택의 힘은 무시무시할 정도다.
‘상대의 힘과 존재 자체를 검으로 만들어버리는 신통이니….’
듣도 보도 못한 힘.
어찌 보면 창조계열의, 법칙성이 두드러지는 힘이지만 묘하게 다르기도 하다.
‘창조라기보다는….’
뒤섞이는 힘이라 보는 게 더 타당 할 터. 마치 탐의 힘과도 흡사하다.
“혼돈인가.”
마치 그것과도 같은 힘.
꽤 껄끄러운 힘이다.
“지란위는 내가 맡지.”
천외양군이었다.
만각변왕은 어딘가로 대피시켰는지 두 손이 자유로웠다.
“그럼 난 이쪽.”
녹면위왕이었다.
“그럼 저도 이쪽으로 하죠.”
절마대군.
녹면위왕과 절마대군은 우백자를 함께 마주하고 있었다.
“나 혼자면 충분하다.”
“같이 끝내고 빨리 도우면 서로서로 좋지 않겠습니까.”
때가 때니까요.
라고 말하는 절마대군의 말에 녹면위왕은 더 답하지 않았다.
마음대로 하라는 듯.
“금천, 괜찮으시겠지요.”
절마대군의 물음에 천범은 검집에 꽂힌 검을 뽑아들며 말했다.
“물론. 일단 판을 뒤집어 볼까.”
휘이잉.
묘한 바람이 일렁인다.
함께 사방으로 금빛 물결이 일렁거리니, 어느새 그의 검은 꽃잎으로 휘날려 사라진다.
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지면에는 금색의 봉오리가 피어올랐다.
“호오….”
기지개를 피듯 피어오른 봉오리는 이내 활짝 만개한다.
만개한 꽃은 금련.
금색의 연꽃이다.
그것이 품고 있던 것은 화정.
불꽃의 정수.
순식간에 수천, 수만 개의 금련이 피어나 품어온 화정을 내보인다.
금색의 연등이 사방을 환히 밝혀 태양이 피어오른 듯 세상을 비춘다.
“태화만등-겸세(泰華萬燈-兼世).”
사르르륵.
만연하게 흩날리는 꽃잎 사이로 화정이 폭발한다.
수만에 이르는 태화만등이 삽시에 터져나갔으나, 검노와 천범의 표정은 무엇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내 태양빛처럼 찬란한 폭발 속에서 검노와 천범의 시선이 마주친다.
귀가 먹먹해질 태화만등의 폭발 또한 잦아들고 어느새 고요한 호수처럼 잠잠해진다.
이내 검노일택이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퍽 고요한 정원.
새하얀 돌로 만들어진 외길 하나와 그 주변으로 가득 찬 연꽃 밭.
금색의 연꽃으로 가득 찬 정원이다.
연꽃 위로는 안개가 자욱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어딘가 모르게 몽환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곳이었다.
“환계… 아니, 단순한 환계는 아니로군. 환(換)과 현(現)의 중(中)이야.”
이곳을 만든 자가 누구인지는 구태여 묻지 않아도 될 터.
검노일택은 그가 의도적으로 자신과 이제는 검이 되어버린 그들을 갈라 놓기 위하여 만든 곳임을 안다.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니.”
검노일택은 새하얀 돌로 만들어진 외길을 걷고 걸었다.
외길을 걸으며 주변을 살피다 보니 어느새 그의 앞에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 또한 안개가 자욱하여 끝이 보이지 않았다.
“흠, 계단이라.”
그가 보기에, 이 계단은 굉장히 수상한 곳이었다.
무언가를 숨겨 놓기에도, 꽤나 알맞았다. 예를 들면 덫이라든가.
검노일택은 긴 수염을 쓸어내리며 매만지다 비웃음을 머금고 계단에 발을 올렸다.
“허나 알면서도 나아가는 것이 바로 사내대장부 아니겠는가.”
턱.
한 발, 한 발.
검노일택은 가뿐히 계단을 올랐다.
기다렸다는 듯 금제가 발동되거나 관련 진법이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성큼성큼.
새하얀 계단을 오르면 오를수록 가슴까지 내려온 수염이 짧아진다.
이내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지고, 새하얗게 변한 머리와 수염이 짙어지기 시작한다.
자글자글한 주름은 건장한 청년의 그것이 된다.
탁.
그리고 이내, 계단의 끝에 다다랐을 때.
검노일택.
아니, 아검은 그 옛날.
젊은 사내의 모습을 하게 되었다.
“시답잖은 짓을 하는군.”
자신의 상태를 확인한 아검은 콧방귀 끼며 팔짱을 꼈다.
그의 시선이 머무르는 곳은 계단의 정상.
그곳에 마련된 고풍스러운 정자 안에 자리한 사내였다.
정자 안에 마련된 옥좌에 앉아 있는 노곤한 눈을 하고 있는 사내.
천범이었다.
“이제 왔나. 생각보다 한참 걸려서 잠시 졸아버렸다.”
도통 무슨 생각인 건지.
아검은 헛웃음 짓다 그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마련된 의자에 앉아 물었다.
“시간을 끌 생각인가.”
“시간을 끈다라… 내가 말인가?”
그럴 필요가 있냐는 말투였다.
“오히려 시간을 끌면 안 되지. 원선 태사들은 모두 자네의 신검합일의 검옥에 갇혔던 몸. 그 요사스러운 네놈의 신통에 검이 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뭣하러 시간을 끌까.”
“그럼 왜 이런 짓을 하는 거냐.”
왜 구태여 이런 공간을 만들고, 자신의 모습을 젊게 만들었냔 말이다.
“글쎄. 그건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무슨 소리지?”
“아검, 자네는 어찌 계단을 올랐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말 그대로일세. 본디, 계단을 오르는 자는 원하는 게 있어서이지.”
그게 무엇이든.
바람이 있기에 계단을 오른다.
없다면 오르지 않기 마련.
아주 당연한 이치이다.
“그리 말한다면 계단을 만든 자 또한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산.”
계단을 만든 자 또한 마찬가지라는 말에 천범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자네가 바라는 건 아마 나를 검으로 만드는 일이겠지. 그 이후라면 아무 미련 없는 상천을 떠나 대라천도를 향하게 되어 운이 좋다면 진선이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야.”
“그렇다. 내 손으로 널 두 번 죽이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다. 하여 너로 하여금 고대하던 나의 목표를 이루고자 함이다. 허나 넌 순순히 내 뜻에 따라주지 않겠지.”
“따르는 게 이상하지. 네 검이 되기 위해 살아온 삶이 아니다.”
“설득해볼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의미 없는 짓이겠군.”
“알면서 말하는군. 널 죽이지 않고서는 난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검령도에서부터 이어져온 악연이다.
아니, 어쩌면 그 전부터.
그러니 이제는 질긴 악연의 고리를 끊어내야 할 때.
“어떻게 할까 수없이 고민을 해보았다.”
복수는 이미 당연한 것.
하지만 그를 끌어내리고, 목숨을 거두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검령도에서 연을 맺은 사숙들의 원한.
원치 않게 형제가 된 후, 자신에게 뒤를 맡긴 검들의 유지.
산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은 아이들의 울부짖음까지.
그것을 짊어진 이상.
그의 심장을 꿰고, 목을 거둔 후 윤회하지 못하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아검, 혹시 이런 말 아는가.”
옥좌에서 일어난 천범은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무엇을.”
“생자의 삶에는 세 번의 윤회가 있다고들 하지.”
“….”
세 번의 윤회.
세 번의 생과 사.
“세 번이나 생을 주는 이유를 아나.”
“글쎄. 세 번이나 살아보질 않아서.”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더군.”
“기회?”
“그래, 기회. 죄를 뉘우칠 기회를 말이다.”
허나.
“난 그리 자비롭지 못하여….”
세 번이나 기회를 주지는 않을 거다.
“네가 오른 계단의 이름은 벽공부촉멸단(碧空不觸滅段). 총 일만삼천쉰여섯 개의 계단이다.”
하나의 계단은 하나의 세계이며.
하나의 계단은 하나의 인생이다.
“네놈이 하나씩 올랐던 계단.”
그것은 때론 누군가의 하늘이었으며, 또는 누군가의 땅이었으니.
“너의 죄를 심판하는 것은 네가 짓밟은 하늘이며 땅일 테니.”
나는 그것을 지옥이라 부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