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56)
낭선기환담-555화(556/600)
낭선기환담 – 2부 265화
떨어져 내리는 태양.
그것에 물들어 가는 바다.
마치 석양과도 같았다.
평범한 일상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어찌 보면 아름답고, 어찌 보면 일상이며 기적과도 같은 풍경.
그것이 눈앞에 펼쳐졌다.
세상이 새하얗게 물들고, 오감이 모두 무너져 내렸다.
후드득.
물기 하나 없이 모든 것이 증발해 버린 땅.
그곳에서 천외양군은 피를 토했다.
치익, 치이익.
토해진 피가 끓어 올라 부글부글 끓어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천외양군은 한참을 지면에 엎드려 피를 쏟아냈다.
쿠웅.
그리고는 이내 쓰러져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척 보아도 굉장히 지쳤고, 많은 원기를 쏟아내 내상을 입은 듯 보였다.
[하아….]그러나 미약하게 내뱉는 숨에는 더 이상 미련 따위는 존재치 않았다.
[뭘 아직 버티고 있으신가.]천외양군의 앞에는 거대한 용이 입을 벌린 채로 굳어 있었다.
[그만 편안해지시게나, 그리 뚫어져라 쳐다볼 것도 없지. 단순히 싸움에서 패배한 것뿐인 일이지 않나. 자네가 대의를 위해 오랜 벗을 영락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그러했을 뿐이니.]잠시 뒤.
잿가루로 변해 바스라져 바람에 날리는 지란위의 죽음을 목도한 뒤에야 천외양군은 크게 숨을 내뱉었다.
천범이 만들어 놓은 환계가 사라지고 본래의 풍경이 돌아온다.
그때였다.
검 한 자루가 은밀하게 천외양군의 목을 노리고 쏘아졌다.
[흡!]검노의 검이었다.
지란위의 목에 박혀 있던 검 자루와 똑같았다.
지란위는 죽었으나 검으로 변한 검노의 술법은 유지되고 있는 것.
이전과는 달리 미약한 힘이었으나 모든 걸 쏟아낸 천외양군은 막을 방도가 없었다.
‘피할 수 없다….’
죽음을 예견했다.
어쩔 도리가 없는 바.
두 눈을 질끈 감은 순간.
채앵!!
“뭘 그리 가만히 있소! 젠장 아파 죽겠네!!”
[만각변왕?]만각변왕이었다.
몸통에 검이 꽂힌 상태 그대로 갖은 인상을 다 구기며 검을 튕겨냈다.
“이걸로 빚은 갚았소.”
풍덩.
반으로 쪼개져 수면 아래로 떨어진 검을 바라본 천외양군은 다시금 안도할 수밖에 없었다.
안일했다.
설마하니 지란위의 몸속에 박혀 있던 검이 날아들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고, 고맙소.”
“빚을 갚은 것뿐이오. 게다가 그대 또한 사위님의 장인 아니신가. 죽는 것을 방관했다가는 우리 사위에게 미움을 받을 수도 있으니 말이야.”
“…별로 달갑지 않은 이유인데.”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이나 이 또한 인연이 아니겠나. 천외양군.”
만각변왕이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나 서로가 서로를 부축했다.
“저쪽도 이미 끝났군.”
“그런가….”
우백자를 상대하기로 한 절마대군과 녹면위왕은 전투의 끝을 향하고 있었다. 둘이 합세하여 북을 치고 방울을 울리며 여러 법진을 구축했다.
척 보기에도 우백자의 힘을 빼놓고 봉인하고 있는 듯 보였다.
꽤 힘든 전투였는지 절마대군은 물론이요 녹면위왕까지 몸이 성한 데가 없었다.
녹면위왕은 팔 한 짝이 없기도 했다.
쿠웅.
이내 거대한 종이 나타나 우백자를 가두니 소 울음소리만이 맴돌았다.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 줄 일.
“남은 건 그럼 사위뿐인 겐가.”
“그런 거지.”
슬쩍 고개를 돌리니, 안개에 쌓여 있는 오묘한 색의 공간이 느껴졌다.
저 안에, 천범과 검노가 있으리라.
“만각변왕, 그대는 어찌 생각하나.”
“수 싸움 아니겠나. 시간을 더 끌면 끌수록 사위님께 불리할 게야.”
“어찌 그렇지?”
천외양군의 물음에 만각변왕은 자신의 몸을 눈짓했다.
꽂혀 있는 검은 그의 신체와 하나 되기를 원하는 듯 붙어 있었다.
“자네도 그러하고, 나 또한 검노의 신검합일에 잠시 당했지. 우리 또한 어느 사이에 검노의 검이 될지 모른다네. 하니 시간을 끌면 끌수록 적이 많아지는 사위가 위험할 게야.”
맞는 소리였다.
“다 늙어서 젊은 놈 발목이나 붙잡는 처지는 영 서글픈데 말이지.”
“그렇다한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없지.”
얌전히 기다릴 수밖에.
* * *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애써 잊으려 했던 기억이다.
곱씹지 않으려 했던 추억이다.
허나 한 번 터져 나온 것들은 바늘로 찌르기라도 한 듯 계속 흘러나왔다.
“신위, 넌 그게 문제다. 그 더러운 성깔이 너의 위신을 잡아먹지.”
“뭐래, 못생긴 게.”
그녀는 꽤나 입이 험했다.
난 그런 그녀가 어처구니 없었고, 마음에 들지 않아 자주 부딪쳤다.
“지금과 같은 언변은 적을 늘리는 아주 모자란 행동이지.”
어린아이의 치기였는지도 몰랐다.
아니면 이미 그때, 쓸데없이 마음을 주고 있는지도 몰랐다.
“적을 만드는 것을 두려워할 정도라면 하계에서 촉명천녀라 불리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상계에 자리한 너희들과 내가 같은 줄 아니?”
신위는 뻗친 머리를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녀의 날카로운 성질마냥, 머리칼 또한 자꾸만 뻗쳐갔다. 익힌 신통 탓에 항상 머리가 뻗친다는 모양이다.
그래서 항상 이상한 물을 머리에 바르는데, 그 때문에 예동은 항상 그녀를 미역머리라고 부른다.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다!”
“네가 날 적으로 생각하든 말든 그 또한 내가 상관없다는 소리야. 괜히 시비 걸지 말고 꺼져.”
으르렁거리는 모습이 마치 짐승과도 같다. 하계에서는 촉명천녀라 추앙 받았던 그녀지만, 자신의 앞에서는 그저 한낱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마음에 드는군. 검을 겨루자.”
“미치기라도 한 건가….”
“싸워보면 어느 쪽이 미쳤는지 바로 알 수 있겠지!”
“좋아.”
왜 그랬는지는 몰랐다.
그 시절의 나는 그녀만 보면 검을 겨루자 귀찮게 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대로의 호감을 표한 것이 아닌가 싶다.
얄궂게도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신위와 검을 겨루어 봤자 나는 항상 지기만 했으니까.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는 게 무슨… 대체 뭘 믿고 까부는 거니? 네 단짝인 예동인지 뭔지랑 싸워!”
“그놈은 내 적수가 못 된다.”
코피를 닦으며 답하면 신위는 더럽다 질색하면서도 손수건을 건넸다.
난 그것으로 코피를 막으며 다시금 검을 잡고는 했다.
“너랑 딱 수준이 고만고만한 거 다 알아. 저번에 호각으로 싸우다가 둘 다 무기 하나씩 부러뜨려 먹었잖아.”
“내가 약한 게 아니다. 지닌 검이 약했을 뿐.”
그 시절엔 시시콜콜한 짓거리를 일삼기도 했다.
스승님은 나를 눈여겨보아 제자로 들이셨지만 뭔가의 가르침을 내리신 적이 없다.
나를 제외하고도 대부분의 제자들은 그러했다.
그것에 관해 스승님은 가르침은 자신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야만 한다 하셨다.
“쯧, 그만 귀찮게 하고 꺼져. 날 상대하려면 사부님의 첫번째 제자인 산 정도는 데려와야 할 거다.”
“너도 산을 찾는군.”
“당연하지. 강하고, 인망이 넓으며 무엇보다 잘 생겼잖아.”
“사내는 외면이 아닌 내면이다.”
“아검, 네가 잘 모르나본데 넌 내면도 그리 좋지 못해.”
딱,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똑.
검이 부러졌다.
“뭣! 어떻게 한 거냐!”
“그걸 모르면 영영 날 이기는 건 무리일 거야. 깨닫고 와.”
.
.
.
머나먼 추억이다.
그리고 다시 펼쳐진 풍경이다.
“이제는 안다.”
그녀는 시(時)에 재능이 있었다.
우리와는 달리 하계에서 태어나 스승에게 눈여겨 등선한 존재.
나 같은 것과는 달랐다.
“그 시절, 넌 나의 검에 자리한 부족함을 가속화 시킨 것뿐이었지.”
일정 부분이 의도적으로 시간이 빠르게 흘러 부러진 것뿐이었다.
그녀가 대단함과 나의 모자람이 만난 결과물이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그러니 이제는….”
“뭐라는 건지… 야, 할일 없으면 나 좀 따라와.”
자리에서 일어선 신위는 어디론가 향하다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고 보니 궁금한 게 있어.”
“무엇이냐.”
“넌 왜 검에 집착하는 거야?”
“부모가 날 죽이려 했을 때, 날 구한 것은 다름 아닌 검이었다. 내 목숨은 검에게 빚졌다. 아니, 그날 이후로 난 나를 죽이고 검이 되었다.”
그뿐인 이야기다.
“이상한 놈이네.”
“그럴지도 모르지.”
“검으로 뭘 하고 싶어?”
“하늘을 베고 싶다.”
“베어서 뭘 하려고?”
“그곳에 하늘이 있기 때문이지.”
그것은 지금도 같다.
이유 따위 없다.
이제는 기억이 나지도 않을 시절부터 나는 그러했다.
하늘을 보면 가슴이 답답했다.
저것을 베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할 것처럼 온몸이 간질거렸다.
“그럼 너는?”
“난 하늘을 멈추고 싶어.”
“멈춰서 뭘 하지?”
“글쎄….”
아련한 눈빛을 흘리는 신위는 이내 픽 웃으며 답했다.
잘 웃지 않는 그녀의 웃음을, 나는 이날 처음 보았었다.
“나도 너랑 같지 않을까. 그곳에 하늘이 있기 때문이지.”
“대도인가.”
대도.
우리는 말 같지도 않은 것들을 가슴에 품을 때, 그것을 대도라 한다.
비웃음 받지 않기 위해.
옛 시절, 나는 대도를 그런 것이라 생각해 왔다.
누군가에게 비웃음 받지 않기 위해서는 대도란 단어가 필요로 했다.
그때의 나는 그러했다.
“근데 우린 어딜 가는 거냐.”
“스승님께.”
“스승님께? 하지만 지금은….”
“난 언제든 상관 없으시댔어. 그러니 너도 상관없겠지.”
그게 무슨 소리인지는 한참이 지난 후 알았다.
가만히 좌선하여 있는 사내는 황천.
우리의 스승님이셨다. 스승은 하나면서 셋으로 나뉜 특별하신 분.
그런 스승님 한 분은 언제나 이에 좌선하여 계셨다.
“내가 말하면 검으로 찔러.”
“뭐?”
휙.
신위의 신형이 사라졌다.
허나 이내 스승님의 곁에 나타나며 허공에 그대로 멈춰져 있었다.
주변으로 그녀의 머리칼이 휘날리며 입에서는 기묘한 축문이 흘러나왔다.
그 시절의 나는 몰랐지만, 그녀는 그때 이미 시간 법칙의 묘리에 도달해 있었다.
“지금!”
척.
흠칫 놀란 나는 곧장 검을 뻗었다.
그저 뭐가 뭔지도 모른 채로 그녀가 시키는 대로 검을 뻗었다.
결과는 당연히 실패였다.
스승님은 눈 하나 뜨지 않고 우리를 튕겨내셨다.
감히 스승에게 검 끝을 향하여 두려움에 떨었으나, 신위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실패했나. 뭐 처음부터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니까.”
실제로 스승님은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그 뒤로도 신위와 나는 함께 스승님을 기습하는 일을 벌였다.
허나 언제나 스승님은 눈 하나 뜨지 않으셨고, 고요했다.
그러다보니 나는 그것을 이상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수행이었다.
물론 무슨 짓을 해도 단 한 번도 터럭 하나 건드려 본 적이 없었다.
스승님은 우리에게 드높았다.
너무도 높아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경지에 계신 분.
하늘과 맞닿으신 분.
그런 분이셨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어느 날.
“이 정도면 괜찮군.”
난 빗을 하나 깎아 만들었다.
여차하면 검으로도 변해 무기로도 쓸 수 있는 빗이었다.
투박하지만 나름대로 꽃문양도 그려 넣은 회심의 걸작이었다.
“신위! 이거….”
신위를 찾아 건네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곁에는 놈이 있었다.
“산? 네가 여기 웬일이냐.”
“아, 신위한테 어울리는 게 있어서.”
그녀와 썩 어울리는 꽃이었다.
짙은 녹빛이 영롱하게 반짝이며 활짝 피어난 이름 모를 꽃
그것을 굳혀 만든 머리장식이었다.
아름다웠다.
내가 만든 빗이 초라해 보일 정도로.
난 만든 빗을 등 뒤로 숨긴 나는 이내 몰래 그것을 품에 감췄다.
“…….”
표정 변화가 별로 없는 게 신위였는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순간이었으나 입가에 미소가 조금 피어올랐다.
난 그 모습을 내려놓지 못했다.
신위를 쳐다봤다.
모르는 척 그를 돌려보내자는 눈빛을 보냈다. 평소처럼 같이 수련을 하자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흥미로워 보였다.
산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 이후.
스승님의 소매가 찢겨졌다.
나와 그녀가 하지 못했던 것을, 산은 해냈다.
허탈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생각했다.
놈은 그런 놈이니까.
당연할지도 몰랐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도 조금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산처럼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내게 부족한 것은 시간일 뿐이라며.
그것뿐이라며 위안 삼으며 다음 기회가 있다고,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하늘이 야속한 것인지, 스승이 야속한 것인지.
내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날 이후.
땅은 다섯으로 갈라지고 스승님은 등선하셨다.
나의 기회는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