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60)
낭선기환담-559화(560/600)
낭선기환담 – 2부 269화
상계의 하늘 아래.
온 세상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이내 세상의 빛을 한 점에 모은 듯, 위태롭게 일렁인다.
허나 위태로운 것은 처음뿐.
활활, 눈부시게 타오른다.
작디작았던 불이 선불처럼 사방으로 번진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불길은, 이윽고 하늘이 되어 상천을 모조리 밝혔다. 금빛의 하늘.
“금…천.”
사르르.
천범을 옭아매던 가시덤불 같던 아검의 칼날이 사라진다.
재가 되어 먼지처럼 바스러진다.
강렬한 태양빛에 얼음이 녹아내리듯 금색의 물결에 강철이 스러진다.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알처럼 바깥부터 사라져 천천히 중심만이 남는다.
그 중심에 자리한 것은 금천.
금천이었다.
“초라하기 짝이 없구나.”
가장 오래된 원선.
한때 가장 강력한 신선이자, 무엇이는 베어내고 어떠한 것에도 부러지지 않으리라 일컫던 검.
검노일택.
허나 최후에 그가 남긴 족적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모든 칼날이 재가 되어 사라지고.
남은 것은 그가 변한 검 한 자루.
이빨 빠지고 구멍이 숭숭 뚫린 곧 부러질 듯 금이 간 검.
그마저도 만들다 만 것처럼 길이가 애매해 검이라 부를 수도 없는 그것.
“아검(兒劍).”
자신을 베어내 나약함을 지워내고자 했으나, 결국에는 그것이 강함이었음을 깨닫지 못한 어린 검이여.
“내 너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하늘이 되어 천겁(天法)을 내리니.”
금천의 손길에 불길이 모여들어 하나의 검집을 만들어낸다.
영원히 타오르는 검집.
염원정(炎院淨)이라 이름 붙이니.
죽지 말고 살아 나의 겁을 견디라.
철-컥.
화르륵!
금천은 염원정에 아검을 담아 바다를 향해 툭 던졌다.
이내 기포를 만들며 수면 아래로 떨어지는 그를 바라보다 등을 돌렸다.
“영원히 고통스러워 할지, 아니면 나의 불에 기대어 구멍 난 네 검을 채워 넣을지는 네 하기에 달렸겠구나.”
금천은 금색으로 물든 하늘을 올려다보며 두 팔을 펼쳤다.
그러자 그의 곁에서 수많은 형형색색의 불씨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불타는 것들은 사방 천지에 깔려 제각각의 모습을 내비쳤다.
그것은 일전, 그가 삼킨 하계의 하늘들.
하천이었다.
그는 그것들을 아련하게 바라보다 어느 한 불씨를 가져와 손 안에 두어 어루만졌다.
“그곳에 있으셨나.”
혼자 중얼거리며 불씨를 안아 사라지려는 찰나.
“그, 금천대사!! 어딜 가십니까!”
홀로 남은 이가 그를 불렀다.
상천해월의 원선태사.
붕계의 절마대군이었다.
“검노일택은 어찌 된 겁니까…! 그리고 지금 상황은….”
“그는 나의 겁을 받는 중이지.”
“겁…이라니. 그럼, 아니…. 설마 당신이 이곳의 하늘이 되신 겁니까?”
끄덕이는 그의 모습에 절마대군은 “아….” 짧은 탄식을 뱉어냈다.
겁.
하계의 존재부터 상천의 존재까지.
일개 검선부터 원선태사까지 그 누구도 어찌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필연적인 시련.
그런데 그것을 내렸다는 것은.
하물며 원선인 검노일택에게 내렸다는 뜻은 일목요연했다.
“새로운 하늘을 뵈옵니다.”
고개를 조아리는 절마대군.
허나 그는 감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 오르지 않으셨습니까.”
대라의 길은 여전히 열려 있다.
어느 누구도 오를 수 없는 계단이건만, 새로운 하늘이 된 그에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 이곳에 남아 있다.
그리 묻자 그는 답했다.
“본래, 하늘은 나의 목표가 아니었고 하늘 또한 내가 목표가 아니니, 오를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하늘은 그저, 하늘일 뿐.
“허나….”
절마대군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 또한 안주하는 삶을 바랐지만 그것은 분수를 잘 알기 때문이다.
자신의 분수에 대라천은 감히 꿈 꿀 수도 없는 것.
허나 눈앞의 존재는 달랐다.
갈 수 있음에도 가지 않았다.
오르지 못한 것과 않은 것의 차이는 명백하지 않은가.
“더 넓은 하늘이 있었겠지. 고작 이것으로 안주할 이유는 없었겠지. 허나 그 하늘에는….”
금천은 말을 삼켰다.
“나는 본래,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도는 낭선이니 말일세.”
언제든 물이고 불이고 될 수 있다.
“단지 지금은 내가 원치 않을 뿐.”
언제고서야 원한다면.
그 날로 떠나리라.
“어, 어딜 가십니까!”
타오르는 불씨들 사이를 거니는 금천의 모습은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절마대군은 헐레벌떡 그를 쫓았다.
“그리 가시면 저는 어디로 향해야 한단 말입니까!”
출구가 없으니 하는 말이다.
다급히 외치는 절마대군의 음성에 금천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여유로운 미소를 흘리며 뒷짐 지며 천천히 걸음을 내질렀다.
“나의 하늘 아래에, 자네를 제외하고는 원선태사가 없으니 이제야 좀 평안하지 않겠는가.”
괜히 상계에 내놓는 것보다는 이곳에 얌전히 갇혀 있는 게 상천이 편안하지 않겠는가.
“그럼 저는…!”
평생을 이곳에서 지내야 하느냐 물으려는 찰나.
금천의 걸음이 멎는다.
“내 상천의 배를 가르지 않고, 아득한 하늘의 한켠이 되었으니 제법 바빠질 요량이다.”
“예? 그게 무슨….”
하천의 힘을 이용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으나 아직은 애매하다.
게다가.
‘하천의 힘을 무리하게 뽑아 썼으니 그 여파가 나타날 것이다.’
자칫하면 하계의 하늘이 무너져 내릴 테니 여유도 없다.
슬퍼할 겨를도, 보고파 할 마음도 잠시는 접어야 하니.
“한동안은 하천을 돌볼 예정이다. 자네도 여유 있다면 한 번 날 따라 다녀 보겠나.”
새로운 하늘의 권유에, 절마대군은 감히 거절하지 못하였다. 애초에 선택권도 없으니 어찌 거절하랴.
“…받들겠나이다.”
그리고 몇 만년이 흘렀다.
* * *
상천해월의 원선태사들이 모조리 자취를 감춘 뒤.
금천의 물결이 세상에 내려 깔리고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다.
건실한 청년이 아비가 되고, 그 청년의 아들이 다시 아비가 되어 많은 자손이 번성하게 될 시간 동안.
하늘은 한번도 금색으로 물들지 아니하였다.
“이곳에 계셨습니까.”
바람이 찬 초저녁.
황혼이 내리깔린 불그스름한 하늘을 바라보는 여인이 있었다.
땅거미진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으나 여인의 미모만큼은 더 빛이 났다.
새하얀 머리칼과 울고 있는 듯 촉촉하게 반짝이는 벽안.
그의 첫번째 아내, 천초아였다.
“상서는 평화롭구나.”
“사씨세가의 기둥이신 사하님과 주변의 자리한 분들께서 힘 쓰신 덕분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조금 나아가면 자리한 천씨세가의 천정 또한 권세를 누리고 있으니까요.”
수계에서도 떠오르는 세가가 이 둘이다. 부와 명예.
둘을 확실히 사로잡아 권세를 이루고 있으니 왜 아니 그럴까.
“천 부인께서는 어째서 천정에 계시지 않으십니까.”
“내가 그곳에 있으면 그 아이가 날 극진히 모시니까. 괜한 부담을 주고 싶지 않더구나. 게다가… 천축은 서방님을 너무 닮아서 보고 있기가 괴롭더구나.”
천초아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아련한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늘은 또 무엇을 보셨습니까.”
붉은 머리를 한 여인의 물음에 초아는 멍한 얼굴로 답하였다.
“너머로 사라지는 해를 보았어. 가만히 보다 보면 금색으로 빛날 때도 있거든.”
“부군을 생각하셨군요.”
여인의 말에 천초아는 힐긋 그녀를 바라보다 싱긋 미소지었다.
“가연, 너 또한 서방님을 모신 적이 있다 하였지. 네가 보기에는 내가 죽기 전에 그분을 다시 한번 뵐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물론입니다. 주인께서는 원체 앞만 보시는 분이시라 저희가 따라갈 틈이 없을 뿐. 한 번씩 뒤돌아 봐 주시니 다음 천겁이 돌아오기 전, 필히 나타나실 것이옵니다.”
이에 초아는 쓰게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떠난 후.
온 세상에 빛이 사라지고 다시금 나타났을 때.
상천은 금천으로 바뀌었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그 어떤 원선태사도 다시 볼 수 없었고, 그에 따라 천지원기도 예전만 못해졌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고갈되어 가는 천지원기는 이제는 모든 이들의 목숨을 노렸다.
가볍게는 상선이었고 크게는 향선의 목숨을 노리게 되었다.
사유는 천겁이었다.
향선의 끝자락에 있던 자들은 연이어 강해지는 천겁의 강도에 버티지 못했다.
부족한 천지원기로 인해 이제껏 만들어 두었던 진법과 법기등을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충수들은 예전만큼 장성하지 못하였고 그들의 부산물로 강한 법기를 만들던 수선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로 상천은 망해가고 있었다.
그 여파를 몸소 체감중인 것이 바로 향선의 끝자락에 있는 여인.
천초아였다.
“일 년 뒤…. 그 천겁이 내게는 마지막 천겁이 될 거야.”
그녀는 죽음을 예감했다.
“하지만….”
“천지원기가 모이지 않아. 원천강을 만들 수 없으니 천겁을 버텨내기가 쉽지 않겠지. 그나마 이제까지는 서방님이 안배해두신 힘으로 버텼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하지만 그 때문에 부인들께서 방도를 찾고 계신다 알고 있습니다.”
사내는 하나이고 여인은 여럿.
허나 그 사내가 없으니 여인끼리 친분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사하, 화양, 호리.
저 셋은 이미 포기한 초아를 향해 자신들이 방도를 찾아 보겠다 나선 지 어언 수만 년이 흘렀다.
“마음만은 감사히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못하겠구나. 그날 이후 하늘은 변해버렸으니.”
그렇게 하루 하루.
해가 지고 떠오르는 것을 바라보던 그녀의 시간은 어느새 다가올 천겁을 맞이하게 되었다.
쿠구구궁!!
먹구름이 몰려온다.
그것은 이제껏과는 달리 이지를 갖춘 듯 용의 몸처럼 파리를 틀듯 움직여 하늘에 구멍을 연다.
그 사이로 세상 느껴본 적 없는 천기가 흘러들어와 전신을 오싹하게 만든다.
쿠궁, 쿠구구궁!
콰지직, 콰즈즈즉!
“뇌겁….”
천겁 중에서도 가장 단순하지만.
그럼에도 가장 살아남는 이가 적은 뇌겁이었다.
새하얀 뇌겁은 살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용의 형상을 하여 고개를 내밀었다. 거대한 용의 머리처럼 뇌의 형을 하고 있는 천겁은 그 아래에 자리한 자그마한 존재를 눈여겨보았다.
마치 먹이를 감지한 짐승처럼 자신의 육중하고 강력한 몸체를 서서히 드러냈다.
‘내가 살 길은 없겠구나.’
상천에서 그녀의 힘을 따라올 자가 없음에도 단념할 수밖에 없을 천겁의 기세였다.
초아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아무도 자신의 겁에 휘말리지 않도록 이미 주변은 비워두었다.
삶의 미련은 내려놓은 탓에, 남은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허나 단 하나
남아있는 것이 있다면….
“언니!!”
그때였다.
아무도 자리하지 않아야 할 천겁을 치를 하늘에서, 웬 여인들이 나타나 둔광을 뿌리며 날아들었다.
“너희! 뭐하는 거야!!”
초아가 화들짝 놀라 화를 냈으나 그들은 멈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여러 깃발을 내던지며 입을 달싹여 축문을 외웠다.
초아는 단번에 그들이 무얼 하려는지 알았다.
“불필요한 짓이다! 그로 인해 너희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나뿐만 아니라 너희 또한 윤회의 굴레로 갈 수도 있다. 운이 나쁘면 그대로 영멸당하는 것임을 모르느냐!”
“흥! 어찌 죽든 내 마음이다!”
“맞아요, 그리고 그분께서도 언니의 죽음을 원치 않으실 테니까요!”
꾸드득.
겨우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온다.
몇 년을 내리 누르고 참아왔던 뜨거운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그분.
마지막까지 내려놓을 수 없는 미련.
사하의 말에 억눌러두었던 삶의 갈망이 다시금 끓어올랐다.
콰과과과곽!!
허나 그와 동시에 뇌겁 또한 그녀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꺄아아악!”
그녀들의 노력이 가상하기는 하나 상황은 좋지 못했다.
한순간에 그녀들이 준비한 법기는 터져나가고 진법은 증발했다.
오히려 더 강한 힘으로
천겁의 기세는 여전히 강렬하고 상천을 압도했다.
“너희들…!”
노력했으나 어림없다.
막을 수 없다.
“아아…!”
뇌룡이 방해꾼을 치워버리고 고개를 돌린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굳어 버리는 것만 같은 강렬한 기운.
초아가 뒤늦게 원기를 끌어 모아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녀들처럼.
발버둥을 쳐보았다면 달라졌을까.
삶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이 운명이 조금이라도 달라졌을까.
그랬더라면, 그분을 눈에 담은 채로 잠들 수 있지 않았을까
뒤늦은 후회를 하며 초아는 눈을 감았고.
이내 천겁이 떨어졌다.
허나.
“…어라?”
죽음을 예감했던 때와 달리 고통이 없다. 고통은커녕 오히려 힘이 급속도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아!!”
동시에 하늘이 금빛으로 바뀐다.
금색 물결이 요동치고 금천이 만연했다.
“언니! 뇌겁의 색이!!”
새하얗던 뇌겁은 어느새 금빛으로 변하여 찬란한 빛을 내뿜었다.
이윽고 금빛의 빛줄기가 반으로 갈라지더니, 그 사이에서 새하얀 손이 모습을 드러냈다.
턱.
“기다리게 했구나.”
여린 어깨를 감싸 안은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사내.
“서방님!!”
금빛 하늘의 주인.
금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