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61)
낭선기환담-560화(561/600)
낭선기환담 – 2부 270화
푸르스름한 새벽녘.
다른 도포를 입은 수선 몇몇이 한 데 모여 어느 고풍스러운 선산 하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곳이… 그 천선산이요?”
“그렇소, 그 소문 자자한 천선산이라 하오.”
유명한 이야기다. 어느 소선이 저곳에서 길을 헤맸는데.
“그곳에서 어느 신비한 아이와 만나 큰 기연을 얻었다 하더이다.”
“호오….”
“어느 기연을 말이오?”
“들어본 이야기로는, 한 입만 먹어도 선기가 가득차고 벽을 허물 수 있게 해준다 합니다. 그 선초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찰나와 같은 환상을 보게 해주는데 복용자의 잠재력을 일깨워 큰 깨달음을 준다 하지요!”
“!!”
그런 대단한 선초라니!
모여있는 여럿 수선들의 눈에 욕망이 타올랐다.
“이름을 아시오?”
“환몽여락이라 합니다. 그것을 먹은 자는 고작 소선에 불과 했으나 단번에 상선 후기가 되어 그 공로를 인정받아 통천수궁의 쌍선이 됐고! 후에는 향선으로 승선해 부와 명예는 물론 권세까지 얻었으니 어찌 대단치 아니하다 할 수 있겠소!”
상선이 된 이후에는 총 세 개의 벽을 허물어야 할 터.
그래야 향선의 승선 자격이 주어짐은 두말해야 입 아프다.
한데 그런 벽을 한 번에 허물어주는 선초라니! 욕심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대단한 분이라면 우리 또한 그 성함을 모르지 않을 터!”
“혹시 알 수 있겠소?”
“어허! 지금 날 못 믿는게요?”
“그게 아니라, 확실히 하자는 게지요. 뭐든 확실한 게 좋지 않겠소.”
“하긴, 그럼 잘 들으시오. 딱 한 번만 말씀해 드릴 터이니!”
속닥속닥.
이름을 듣자 수선들의 눈동자가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뭣! 비, 비해?! 쌍선 비해라니!! 그분께서 이곳에 있으셨다고?”
“어허! 목소리가 너무 크지 않소!”
“크, 크흠. 미안하오….”
“그러고보니 내 들어본 적 있소. 그분께서 일전에는 상서에 몸 담으셨고 지금의 천씨 세가와도 친분이 있어 자주 이곳에 들리신다 하셨소.”
쌍선 비해.
수계에서도 유명한 신선이다.
어릴 적에는 천둥벌거숭이였으나 어느 계기로 인해 누구나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는 신선이 된 인물.
지금은 쌍선부대의 대장을 맡고 있는 명예 높은 수선이다.
“그, 그럼 빨리 가봅시다!”
“이럴 시간이 없긴 하지! 갑시다!”
수선들은 부푼 마음을 안고 산을 올랐다. 안개가 상당히 짙고, 남다른 기운을 풍기는 천선산이라 둔술을 부릴 수는 없었다.
한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데 어찌 둔광을 뿌릴 수 있겠는가.
하여 그들은 서로에게 금제를 걸어 길을 잃지 않게 하고, 천천히 한 발 한 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산을 오르기 시작한지 사흘.
천신만고 끝에 그들은 어느 건물 하나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오, 저기….”
약재원으로 보이는 곳이었다.
얕은 담이 사방으로 둘러쳐져 있었고 문은 없었지만 지나들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안에는 여러 선초들이 파릇파릇하게 기운을 뽐내고 있었다.
안개가 자욱하여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언뜻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현묘함을 보이고 있다.
수선들은 이곳이 응당 쌍선대 대장 비해가 기연을 얻은 곳이라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오! 저기 보시오. 누군가가….”
안에는 선초들을 관리하는 듯 보이는 어린 아이 하나가 있었다.
“저기….”
바구니를 들고 있는 아이는 계집 아이였는데, 희한하게 머리가 하얗고 벽안을 지녔었다.
입고 있는 옷 또한 고풍스러워 척 보기에도 귀한 집의 자제였다.
가히 신비로운 모습을 두른 어린아이의 등장에 수선들은 서로 시선을 나누다 헛기침을 뱉었다.
“크흠, 내 물을 것이 있어 그러니 잠시 이리 와줄 수 있겠느냐.”
수선 중 하나가 그리 아이를 불렀으나, 아이는 멀뚱멀뚱 처다만 볼 뿐 그의 말에 따르지 않았다.
계집아이에게 무시당한 수선의 얼굴은 붉어졌다.
척 보기에도 느껴지는 기운이 여타 소선과 다를 바 없는데 저리 자신을 무시하니 화가 날 법도 했다.
‘정말 귀한 집 자제라면 약초 관리 따윌 할 리가 없다.’
그리 생각하니 화가 들끓었다.
“이놈! 냉큼 달려오지 못할까!”
허나 수선의 호통에도 아이는 가만히 있었는데, 그러다 문득 바구니에 들어 있는 선초 하나를 들었다.
“저것이 설마 환몽여락이오?”
“범상치 않은 자태를 보니 가히 그런 듯하오! 어서 냉큼 내놓거라!”
마치 자기 것이라도 되는 듯 내놓으라는 태도에 이름 모를 계집아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나쁜 사람들이네.”
쩌저적!!
아이의 발밑에서부터 새하얀 한기가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 나왔다.
“헉!”
찰나의 순간에 반경 넉 장을 얼어붙게 만든 아이의 모습에 수선 둘은 비명 한 번 질러보지 못한 채 꽁꽁 얼어버렸다.
그나마 뒤에 자리해 있던 자들은 겨우 피했는데 너무 놀라 입과 눈만 동그랗게 열어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소선의 힘이 아니다.’
하지만 풍기는 기운은 소선의 것이라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다.
“자신의 것도 아닌 걸, 어디 맡겨 놓은 것처럼 내놓으라 하는 건 도둑질을 하는 거나 다름이 없어요. 왜 그런 기본적인 예의도 없는 걸까.”
에휴. 한숨 쉬는 아이의 태도에 수선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누, 누구십니까….”
“이 선산의 이름을 알아요?”
“천선산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네, 제 이름은 천가 성에 고울 선을 씁니다. 이 산은 제 산이에요.”
산의 주인!!
“당신들이 이 산에 발붙인 순간, 저는 침입자인 당신들을 처단할 명분이 있습니다. 그만 가주시지요.”
천가 성에 고울 선.
천선(天鮮).
수계에서 감히 천씨 성을 쓸 수 있는 자는 몇 없다.
금천대사의 피를 이은 천씨 세가의 자제들이 아닌 이상은 말이다.
‘허나 거짓일 수도….’
이름 모를 수선은 긴가민가한 마음에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럼 혹시, 천씨 가문의 천축이라는 자를 아시오?”
“압니다. 항렬로는 제 손자니까요.”
그러자 수선은 하! 하고 헛웃음을 터트리며 검을 뽑았다.
“천씨 세가의 가주인 천축의 조모가 너 같은 소선일 리 없잖느냐! 어디서 감히 그런 거짓을 내뱉어!! 네년은 하늘이 두렵지도 않더냐! 뭣들 하시오 내 당장 저년의 혀를 잘라야겠소!”
법기를 휘둘러 천선을 공격하려는 소선의 태도에 그녀는 한숨을 내뱉었다.
“맞는데….”
허나 소선들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각자 법기를 꺼내고 그녀를 죽이려 하니 어쩔 수 없었다.
“그대들이 택한 선택이니, 늦었음을 원망치 마시어요.”
“흥, 감히 소선 따위가 무슨 사술로 저들을 얼렸는지 몰라도 내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소선의 주변으로 불길이 치솟았다.
단번에 안개가 걷히고 수분이 싹 메말랐다.
화신통이 주가 되는 신선이었다.
“저는 분명, 경고했습니다.”
후우웅.
그때였다.
“그, 금광(金光)이….”
천선의 하얀 머리칼과 푸른 벽안은 이내 금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주변을 금빛으로 물들이니 사방이 찬란하게 빛난다.
어둠을 물리치는 금광의 모습에 수선들은 아연실색했다.
게다가 그것을 타오르게 하는 금색의 화염, 천씨 세가 중에서도 직계만이 익힐 수 있다는 금천지화가 모습을 드러내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그, 금천지화!!”
“저 계집의 말이 사실이었소!!”
대경실색하여 달아나려는 찰나.
“말했지요. 이미 늦었다고.”
콰아아아아아!!
발밑이 타오르며 일대의 불기둥이 하늘까지 치솟았다.
어리석은 수선들은 단번에 금천지화의 불길에 불타 사라졌고, 이내 해가 떠오르며 아침을 맞이한다.
잿더미조차 남지 않은 풍경.
그 광경에 한숨을 내쉬던 천선이 발걸음을 돌리던 찰나.
“너무 심한 것 아니었느냐.”
흠칫.
놀라 주변을 돌아보니 어느새 웬 사내 하나가 미소를 띤 채 천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포근하고 따뜻한 기운을 흘리는 그는 세간에는 금천이라 불리우는 금색 하늘의 주인인 사내.
그리고 자신의 하나뿐인 아비.
“아버님.”
천범이었다.
“저는 경고했는걸요.”
자신도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는 듯 입술을 삐죽 내민다.
그 귀여운 모습에 천범은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딸의 어깨를 토닥였다.
“어미를 쏙 빼닮아 손속이 매서운 것은 여전하구나.”
“요즘 들어 이상한 소문이 생겨나서 자꾸 제 산을 침범하는 자들이 많아졌어요.”
“허나 너는 구태여 도움을 청하지 않더구나. 말만 했다면 강력한 금제로 저들이 오지 못하게 했을 것을.”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너 또한 즐기고 있지 않느냐. 속 시꺼먼 녀석.”
콧잔등을 손가락으로 튕겨주자 머쓱한지 희희 웃는다.
“전 그저, 마음씨 착한 이들에게는 상을 내리고, 악한 이들에게는 벌을 내리고 있을 뿐이에요. 아버님처럼!”
“녀석”
천범은 딸아이를 번쩍 안아 들어 산 정상으로 축지했다.
천선산이라 이름 붙인 산의 정상으로 올라서자, 구름 위에 올라선 듯 땅 아래가 훤히 보였다.
얼마나 높은지 맞닿아 있는 상서와 천정이 함께 보였다.
하지만 천범이 한 번 손을 뒤집자, 풍경은 변하고 단번에 상천의 하늘 아래의 전역이 보이게 됐다.
“우와- 이곳 전부를 아버님이 다스리시는 거예요?”
천선의 물음에 범은 고개를 저었다.
“난 다스리지 않는다.”
“네? 왜요?”
“본디 그런 것이다. 그저 바라만 보고, 존재하는 것으로도 충분한 것이 바로 하늘이란 것이니.”
하늘이란 존재할 뿐.
존재함으로 본분을 다한다.
그가 바라는 하늘이란, 그러하다.
“전 잘 모르겠어요. 더 잘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좋은 거 아니에요? 아버님은 그럴 힘이 있으시잖아요.”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게 관여한다면 더 많은 자들이 삶을 편안하게 살지도 모른다.
허나 그것은 그가 바라는 이상도, 하늘도 아니다.
“네가 조금 더 크면, 이 아비의 마음을 이해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구나.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범은 선을 내려놓고 산을 내려갔다.
그 뒷모습이 꼭 오래도록 보지 못할 것만 같아 선은 새침하게 외쳤다.
“어디 가세요? 어머님이 아버님 또 사라지시면 경을 치신댔어요!”
그러자 그는 이리 답했다.
“구름 따라, 바람 따라 흐르는 것이 나의 운명이다.”
나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것이니. 마음 먹고자 하면 언제든 볼 수 있으니 슬퍼하지 말라.
필요하다면.
“언제든 하늘을 물들일 것이니.”
알쏭달쏭한 화법에 선은 그저 입을 삐죽 내밀 뿐이었다.
“네 어미 또한 괜찮을 터이니 너무 걱정 말거라.”
“왜요?”
아이의 물음에 천범은 그윽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답했다.
“새로운 하늘을 창조할 것이다.”
이곳과는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낭선기환담 (浪仙奇幻談)
完
후기.
2년 전이었던가요.
별 생각 없이 썼던 글이 이렇게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필명을 낭선으로 한 탓인지 이곳저곳의 플랫폼을 떠돌게 되기도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다 추억이군요.
지금까지 천범의 이야기를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먼저 전하는 게 예의일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제 비루한 글 솜씨를 보며 지루하기도 하고, 졸리기도 하셨을 텐데 완결까지 읽어주시니 어찌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외전으로 보답하라 하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외전은 백산파의 이야기를 조금 보여드릴까 합니다.
물론, 천범이 없는 세월이 흐른 백산파와 궁금해 하실 요호의 이야기도 조금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외전을 바로 보실 수는 없으실 것 같습니다.
마음이 굴뚝같으나, 이벤트라던가 그러한 어른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 잠시 기다려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사설이 길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 인사드리며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동안 낭선기환담을 사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낭선기환담 저자- 낭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