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65)
낭선기환담-564화(565/600)
낭선기환담 – 외전 4화
평범한 하계의 하늘이 금천으로 물드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푸른 하늘은 천지가 개벽하는 굉음과 함께 금빛 물결을 일으켰다.
무언가가 갈라지는, 또는 깨어지는 듯한 소리. 전신을 고동시키는 굉음이 하계의 존재들을 무릎 꿇렸다.
감히 고개를 들 수조차 없는 거대한 기시감과 맞물린 강렬한 존재감이 범인들의 머리를 일깨웠다.
밤을 몰아내는 강렬한 태양이며 보잘 것 없는 미물들을 어루만지는 따사로운 햇살과도 같다.
하여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절로 고개를 조아리는 것뿐.
일종의 본능이었다.
태양을 바라보면 눈이 먼다는 것을 알고 있는 본능.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경계하며 두려워하는 본능.
다분히 당연한 것. 본능처럼 그렇기에 경외한다. 경배하기 시작했다.
범인들의 머리가 땅을 조아리고 두 손은 하늘을 떠받드니, 눈물이 대지를 적시고 입은 하늘을 부르짖었다.
찬란한 금광을 몸에 두르고 나타난 존재야 말로 하늘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겠는가!
“저분이야 말로 하늘… 하늘 그 자체이리라!”
이 척박한 땅에.
도가 사라진 땅에 대도의 화신이자 궁극의 끝에 도달한 자가 강림하셨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쏘냐.
“금빛의 물결….”
백산의 이름 모를 산지기는 눈이 멀어도 좋다는 듯 금빛 찬란한 하늘의 존재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줄곧 기다렸다는 듯 말이다.
애타게 애원했었다는 듯 무릎을 꿇고 주변의 날카로운 돌을 집어 자신의 손목을 몇 번이나 그어 내렸다.
투둑.
찢겨진 살갖과 베어 나오는 방울진 핏방울이 흘러 지면에 떨어졌다.
뜨겁게 흐르는 산지기의 피를 본 금빛 휘광이 찬란한 금천의 주인.
그의 눈가가 좁혀졌다.
그리고는 눈부신 금광에 휘감겨 언뜻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나의 아이야. 무얼 원하느냐.]다정하게 물어오는 하늘의 목소리에 산지기는 목 놓아 부르짖었다.
“대도를 원하옵니다!!”
산지기에 피 속에 담긴 것은 엄연히 그의 것.
희미하지만 그는 하늘의 혈육.
허나 그가 원하는 것은 대도이며, 이 척박한 하늘에서는 그 뜻을 펼칠 지기가 부족하니.
하늘은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한마디를 내던진 채 사라졌다.
[불씨를 건네노니, 뜻을 펼치라.]화아아아아아악!
후웅!!
세찬 돌풍이 휘몰아치고 등을 돌린 천씨 후예의 눈이 치켜떠졌다.
그곳에 척박해진 백산은 없었다.
있는 것은 은은한 금빛이 맴도는 고귀한 백산이 남아 있을 뿐.
“불씨….”
그리고 자신의 손아귀에도.
금빛의 작은 불씨가 맴돌았다.
불꽃과 같이 따듯하지만 손을 대어도 해를 끼치지 않는 불씨.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 기이한 불꽃이야 말로 백산의 전설로나 전해지던 금화(金火)이리라.
수십 년을 찾아 헤맨 보상을 얻게 된 남자는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 * *
탓.
내려앉은 발은 수면 위에 안착했고 작은 파문이 잔잔하게 퍼졌다.
끝없이 펼쳐진 잔잔한 수면과 그것이 비추는 푸른 하늘.
그리고 드리워진 안개의 공간은 편안하면서도 가슴 한 건을 채우는 충족감이 자리한 곳이었다.
그림 같은 풍경이라는 말이 썩 어울리는 이곳에 수면 위로 내려앉은 발은 두 사람.
“요호.”
“부군….”
요호와 천범의 것이었다.
“……어디서부터 물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군.”
하고픈 말은 많으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해야 할지 몰랐다.
힘들지 않았냐, 어찌 그런 생각을 했냐. 잘 버텼다. 그러나 무모했다.
그런 말들이 목 끝까지 차올랐으나 차마 하지 못했다.
‘살았으면, 지금 내 앞에 이리 서 있으면 되었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 다행이다.
충분한 축복이다.
천범은 요호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아 포개어 매만졌다.
“고생했소.”
짧은 말 한마디.
허나 그것에 담긴 온갖 감정들을 요호는 모르지 않았다.
주르륵.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흐르는 눈물은 턱 끝으로 흘러 떨어져 내려 수면 위로 떨어졌다.
“꿈은 아니겠지요.”
“꿈이었으면 좋겠나.”
“아니요. 아니… 아닙니다. 이것이 꿈이라면 하늘도 참 짓궂은 게지요.”
스르륵.
폭 안기는 요호의 모습에 천범의 입가가 호선을 그린다.
토닥토닥.
등을 두드리자 그녀의 어깨가 들썩인다.
그동안의 고통과 인내, 그리고 설움과 그리움이 뒤섞인 듯 했다.
하지만 소리 없는 울음이다.
울음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눈물만 흘리니 더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 한참을 울었을까.
지난 감정을 흘려보내고 싶은 듯 한참을 울던 그녀는 이내 주변을 돌아보고는 천범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이곳은… 어디인가요.”
“눈가가 벌겋게 부어서 귀엽군.”
“장난치지 마시어요.”
짓궂은 장난에 요호는 다시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허허 웃던 그는 다시 품에 안아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네들이 부르는 선계라는 곳이며, 또는 상계라고도 하는 곳이지. 지금은 금천이기도 하고.”
“그럼 제가 등선했다는 말입니까?”
“그런 셈이오.”
본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
허나 금천의 주인인 그에게는 그리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다.
“제가 어찌… 그게 어떻게 가능한 겁니까…?”
저물어가는 해처럼 희미해져 사라지는 자신의 혼은 금이 간 화병이나 다름 없었다.
채워 넣는다 한들, 균열 사이로 새어나가는 물은 밑 빠진 독처럼 줄줄 흘러나가기만 한다.
의미가 없다.
아니, 본래 그랬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득 찬 화병처럼 채워졌다. 충만한 힘과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청아함이 전신에 흘렀다.
얼떨떨한 힘이 자신의 몸속에 흐르자 당연히 믿기 어려웠다.
“잘 버티셨소. 덕분에 부인을 데려올 수 있었어.”
천범은 요호의 두 손을 잡고 가슴 깊이 감사했다.
그녀의 생존에, 그녀의 결정에.
“저는… 살아 있는 건가요?”
“물론이지.”
본래는 사라지는 파편이었다.
세월에 허물어지는 잔재.
허나 그에게 닿은 순간 바뀌었다.
화신을 촉매로 본신을 하계에 현현한 천범의 힘으로 그렇게 되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은 금색 하늘의 주인이자 상천의 지배자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비록, 많은 힘을 소비했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덕분에 줄곧 가슴 한켠에 남아 있던 멍에가 지워졌으니.
“갑시다. 내 오랜 세월, 많은 것을 이루어 놓았소.”
그것 모두를 내주어도 아깝지 않으니, 이제는 아파할 시간도 후회할 시간도 주지 않을 것이다.
남은 여생을 그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그리 하는 것이 그녀에 대한 자신의 속죄이리라.
“제가… 제가 짐이 되지는….”
“내 짐이 되고 싶지 않다면, 나라는 놈에게 어울리는 여인이 되면 되는 것이 아니오.”
애당초.
“그대가 아니라면, 대체 어떤 여인이 내게 어울린다 할 수 있을까.”
영겁의 세월을 견딘 여인이다.
오직 자신 하나만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혼의 소멸 직전까지 겪은 지고지순한 여인이 아닌가.
그런 여인이 어울리지 않는다면 대체 누가 어울린다 하겠는가!
“갑시다.”
“네!”
손을 잡고 한 발을 뻗자, 미끄러지듯 풍경이 지나간다.
짙은 구름이 걷히고 보이는 것은 가히 선경이라 부를 만한 풍경.
높게 솟은 선산 위에 자리한 누각.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익숙한 얼굴들이 요호를 반겼다.
“언니!”
“소망!!”
그녀는 바로.
죽은 줄 알았던 소망이었다!
기대조차 못하던 요호는 화들짝 놀라 천범을 돌아보았다.
“부군!”
“운이 좋았소.”
잔재가 남아 있었다.
소망은 요호의 봉인이 어그러지는 것을 느끼고 스스로 뛰어들었지만 자신을 봉인한 것은 아니라서 그곳에서 죽었다.
자신의 한계에 한계까지 끌어내어 봉인이 깨지는 걸 막으려 했으나 제대로 된 준비가 없었다.
허나 인생사 길흉화복이라 하던가.
어처구니없게도 어그러진 봉인으로 인해 소망의 혼은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기운 아래 가려져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를 소생시킨 것이 바로 천범이었다.
어려울 것도 없었다.
무너져 내리는 혼을 복구시켜 본래의 신체를 창조하면 되는 일이었다.
창조의 법칙에 통달하고 이제는 금천이라 이름 붙인 하늘의 주인이 바로 천범인데 뭐가 그리 어려울까.
그녀들의 격이 높았다면 어려웠을지도 모르겠으나, 하계의 존재를 되살리는 것 정도는 어려울 것도 없다.
“우리가 살아서 다시 만나다니, 정말 꿈만 같은 일이에요!”
“미안해, 미안해 망아, 나 때문에!”
상계로 오른 소망과 요호는 당연히 기뻐하며 얼싸 안았다.
그리고 이내 그들을 상서로 데려간 천범은 다른 이들과 인사시키며 부인들에게 그녀들을 인도했다.
초아와 사하.
그리고 화양과 호리는 요호와 소망을 데려가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천범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슬그머니 등을 돌렸다.
“직접 안내해 주시면 좋을 텐데요.”
화란이었다.
새침한 얼굴을 보니 괜히 또 시비를 걸러 온 것이 분명했다.
범은 뒷짐을 진 채로 먼 산을 바라보며 답했다.
“어차피 밤이 오면 보게 될 테지. 지금은 해가 떴으니, 자주 보게 될 부인들과 친분을 쌓는 게 그녀에게도 좋을 것이다.”
초아와는 언니 동생하며 잘 지냈으니 지금은 저리 두는 게 낫다.
“아주 잘나셨습니다.”
“내가 잘나긴 했지. 이 하늘에 나보다 잘난 사내가 어디 있겠느냐.”
란의 아미가 찌푸려졌다.
짜증이 한 가득이었다.
범은 피식 웃고는 몇 걸음 거닐었다.
그럴 때마다 풍경이 휙휙 바뀌었다.
어느새 천범의 발밑에는 상계의 하늘이 발아래에 있었다.
“여인이 참 많으셔서 좋겠습니다?”
“복이라 생각하고 있다. 나 까짓 것에게는 분에 넘치는 여인들이지.”
놀려 먹으려던 화란이었으나 어째 그의 심사가 좋지 못해 보였다.
“당신보다 높은 하늘에 계신 분이 없는데 왜 그리 자신을 낮추십니까.”
“영원불멸이란 없는 법. 적어도 나의 하늘에서는.”
화란의 눈이 좁혀졌다.
그가 무얼 생각하고 있는지 알듯하다는 눈치였다.
“다른 하늘에는 있답니까. 산군과 같은 상계의 하늘을 가진 자는?”
“글쎄, 그까짓 것이야 문제가 되지 않지. 싸워 이기면 될 뿐이니.”
“하면….”
남은 것이 뭐가 있겠는가.
“대라천입니까.”
란의 물음에, 그는 답하지 않고 뒷짐을 쥐었다.
이내 하늘 아래에 요호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 다른 부인들을 보았다.
반가움과 눈물, 그리고 묘한 긴장감도 흐르고 있었다.
꽤나 진귀한 장면이지만 이 또한 즐거운 한 때였다.
“천겁은 예외가 없지.”
“하지만 산군께서는 하늘의 겁 또한 자신의 것으로 하지 않았습니까.”
상계.
이곳 금천은 그의 것.
대라천에서 내려오는 천겁 또한 그의 영역에 들어온다면 어느 정도의 통제권을 갖기 마련이다.
“허나 그 또한 한계가 있다.”
천겁은 결국 천겁이다.
상계의 하늘은 천겁을 내리지 않는다.
천겁을 내리는 것은 그 위.
하늘 위의 하늘.
대라천뿐.
“한계라면….”
“점점… 눈치를 채고 있단 말이지.”
여러 감정이 뒤섞인 눈으로 그는 야속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주해야 할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야.”
하늘 위의 하늘.
대라천의 통제에 따르지 않는 그에게는 언제고 천벌이 올 것이다.
그때가 오면.
“난 또 다시 선택을 해야겠지.”
그 선택이 어느 것이건.
녹록치는 않을 테니.
“준비를 해야지.”
모든 하늘의 주인이 될 준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