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67)
낭선기환담-566화(567/600)
낭선기환담 – 외전 6화
쪼르르륵.
그윽한 향이 콧가를 맴돈다.
상서에서도 가장 높은 선산이라 알려진 화매봉.
그곳의 한켠에 앉아 차를 마시는 여인 둘의 모습은 자체로도 아름다웠으나 뒤로 내려앉은 여명이 화사함을 더했다.
“천 부인께서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십니까.”
차를 음미하던 여인들 중 하나.
화기린의 문양이 새겨진 궁장을 입은 사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겸사겸사 상서에 온 김에 사 부인과 이렇게 차 한 잔 나누러 왔죠. 별다른 연유가 있어 온 것은 아니랍니다. 아시다시피 그분은 기적적으로 재회한 부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으실 테니… 눈치껏 바깥바람을 쐬러 나온 것이지요.”
초아의 답변에 사하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건 그렇고 상서는 점점 더 커지는군요. 예전에 보았을 때보다 크기는 물론, 인구 밀도도 높아지고 많은 발전을 이뤘어요.”
“수궁에서도 많이 도와주는 편입니다. 천씨 세가와 사씨 세가를 가만히 내버려 둘 수도 없을 테니까요. 알아서 여러 편의를 봐주고 있으니 당연한 수순이지요. 게다가 이곳은 그분께서 자주 모습을 드러내시니까요.”
찻잔을 내려놓은 초아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절벽 아래의 광경을 눈으로 훑었다.
그녀의 벽안이 물결처럼 흐르다 하나의 장소에 시선이 멈추었다.
그곳은 천선산이 있는 곳이었다.
천씨 세가가 있는 천정과 사씨 세가의 상서 그 중간에 자리잡은 천선산.
그곳을 잠시 바라보던 초아는 이내 뒤돌아 사하를 향했다.
“예, 그 때문에 저치들이 필요 이상으로 저희들에게 관대하고 또, 많은 것을 은연중 바라고 있지요.”
사하의 눈가가 좁혀졌다.
초아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사씨 세가의 현 가주인 그녀 또한 모를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바람 쐬러 오신 건 아니군요.”
“겸사겸사지요.”
“부인께서 우려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그녀가 바라본 천선산.
그곳에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선이가 걱정되시겠어요.”
“천이 또한 제가 신경 쓰는 자식 중 하나입니다.”
자식 중 하나라.
사하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말씀이라도 감사합니다.”
“고개 숙이지 마세요. 사 부인. 저희는 모두 같은 남편을 지닌 여인일 뿐이에요.”
“어미 된 도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예의를 차린 것뿐입니다.”
초아의 입가가 둥글어진다.
허나 이내 씁쓸함이 감돌았다.
“…천이가 이번에 승선에 실패했다 들었어요.”
“예, 안타깝게도 그리 되었죠.”
아직 터무니없이 나이가 어리긴 하다. 백년도 채 살지 않았는데 승선에 도전한 거부터가 시기상조였다.
“제 욕심 때문에, 그 아이가 너무 큰 짐을 지고 있어요. 제 탓이죠.”
“그게 어찌 사 부인 탓일까요. 자신의 아이가 잘 자랐으면 좋겠는 건 어느 부모나 똑같을 겁니다.”
소복소복.
새벽녘 쌓인 눈을 밟으며 잠시 걷던 초아의 모습은 참으로 단아하다.
눈밭과 어울리는 새하얀 머리칼과 아름다운 벽안은 저도 모르게 그녀를 넋놓게 보게 되었다.
“그 아이의 자질은 서방님께서도 보증하셨습니다. 사씨 세가의 혈통을 위해 서방님의 피가 다소 옅지만 그럼에도 뛰어나다 칭찬하셨지요.”
홀로 사씨 세가를 책임져야 했던 사하를 위한 천범의 배려였다.
먼저 떠난 천외양군을 위해서 한 결정이기도 했다.
화기린 일가.
사씨 세가의 명맥이 이어지도록.
의도적으로 화기린의 피가 짙어지게 아이를 잉태했다.
그리 태어난 것이 바로 사천.
“과찬입니다.”
“이번에 조금 삐긋했다고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겁니다.”
초아는 잠시 입을 벙긋거리며 말을 할까말까 망설이는 듯 보였다.
“그보다 제가 우려하는 바는 그게 아니라….”
“그 아이에게 도사릴 유혹이겠죠.”
“예. 예견하셨나요?”
사하는 고개를 주억였다.
“어떻게든 엮이고 싶어 안달난 놈들은 있기 마련이니… 슬슬 어떤 것들이든 손을 뻗을 때라 생각했습니다. 천 부인께서 혹시 뭔가 알고 계시는 바가 있으신지요.”
수계에서도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흘러 사씨와 천씨라 하면 그 누구라 한들 함부로 하지 못한다.
다른 계의 수선들 또한 마찬가지이니 그 유명세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좋으리라.
“서방님께서 언질을 주셨어요. 하늘에 닿으신 후, 종종 천공을 꿰뚫어 보시고는 앞일을 내다보시는 듯이 몇몇 말씀을 던지시잖아요.”
“예, 그렇죠.”
그의 언질이라면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필히 무슨 일이 생기려는 터.
사하는 귀를 곤두세웠다.
장차 사씨 세가를 책임질 아이가 바로 자신과 범 사이에서 나온 사천.
사천의 앞길에 대해 상계의 주인인 그가 한 말을 허투루 들을 수 없다.
“구를 조심하라 하셨습니다.”
“구? 구라고요?”
“예. 아홉을 뜻하는 구를 조심하라 일러주셨습니다.”
“구… 구가 뭘……까요?”
“글쎄요. 아홉을 상징하는 이는 의외로 많이들 있죠.”
숫자 자체를 상징하는 자들.
아홉 형제.
아홉 자매 등등의 악명이 널리 퍼진 자들도 있기는 하다.
그게 아니더라도 눈이 아홉이라던가 머리가 아홉이라던가 하는 자들도 꽤 많은 편이니.
“아, 혹시….”
“말씀하시지요.”
“호리님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우뚝.
돌연 적막함이 흘렀다.
둘 모두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라는 듯.
“그분께서는-.”
“…저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닙니다만 그렇다면 그리 말씀을 해주시지 않았을까요.”
정말 그가 말했던 구가 호리를 뜻한다면 구태여 그렇게 말했겠는가.
그냥 호리라 했겠지.
“물론 사 부인께서 말씀하시는 부분도 일리는 있기는 합니다.”
여간 사고를 많이 친 여인이지 않던가. 그러니 저리 생각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허나 아무리 그래도 그분께서도 원선의 경지에 오르신 분입니다.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릴 짓을 하지는 않으시겠지요.”
그때였다.
삐이이.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는 검은 새 두 마리가 그녀들에게 날아들었다.
펄럭이며 검은 연기로 화한 새는 서찰로 변해 허공에 둥둥 떠있었다.
단번에 낚아채 눈알을 굴리며 내용을 읽은 초아의 이마에 힘줄이 도드라졌다. 사하 또한 언짢아진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마도 같은 내용인 듯하군요.”
“예….”
콰직.
서찰을 구긴 초아는 차게 식은 눈으로 입을 열었다.
“서방님께서 말씀하신 구는 호리님이 맞았나 봅니다. 하필,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는 곳이 유무간이라니….”
“어떡하실 겁니까.”
어떡하고 자시고가 있을까.
채 백 년도 세월을 견뎌보지 못한 아이들이다.
그런 젖먹이들을 유무간에 데려간다니 말이나 되는 소리일까.
“사 부인께서는 이곳에 계셔야지요.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서찰에는 아이들의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라 적혀져 있으나, 초아는 오랜 세월 그녀를 곁에서 보았다.
겨우 그런 일로 유무간에 들어가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쓸데없는 짓을 벌이는 거겠지.”
“예?”
“아닙니다. 서찰에는 우선 선계로 향한다고 나와 있군요. 바로 출발해야 따라잡을 수 있겠어요.”
선계….
“선계라면 아마도 부군의 제자이자 천궁의 천녀이신 그분을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닌지 싶습니다.”
“그렇겠지요. 유무간은 극도로 위험한 공간이니 보다 안전한 통로를 찾으려면 선계의 천궁으로 가야겠죠.”
“아, 그러고 보니 천궁에는… 그분 또한 계시지 않으십니까?”
누굴 말하는 건지 물으려던 초아는 이내 탄성을 자아냈다.
“그러고 보니….”
* * *
“청명이요?”
검은 둔광을 뿌리며 하늘을 가로지르는 일행은 재빠르게 사라지는 풍경을 뒤로 하며 이야기를 꽃피웠다.
“유무간은 말 그대로 공간과 공간 사이의 비틀림 속에 자리된 혼돈.”
본래라면 제대로 된 방법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미지의 공간이다.
“네 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은 청명이라는 놈을 아느냐.”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있어요.”
천선이 알고 있다는 듯 더듬더듬 청명에 대해 아는 것을 말했다.
“아버님과 하계에서부터 인연이 있으셨고, 때문에 상계에서도 인연이 닿아 의형제를 맺었다고요. 항상 고마운 녀석이라며, 저한테는 숙부에 해당 되는 분이라고 하셨어요.”
천선의 말에 사천은 아미를 찌푸리고는 고개를 홱 돌렸다.
“아무튼 놈을 만나러 갈 거다. 너희들을 데리고 유무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안전한 통로로 가는 것이 맞고, 그런 것에 정통한 놈이 바로 네 숙부니까 말이다.”
상천이 금천으로 뒤덮히고 난 뒤.
청명은 그의 안배로 원선으로 승선에 성공했다.
그 이후, 선계에 터를 잡고 줄곧 공간 법칙에 대해 파고 들었다 한다.
“지금은 뭐, 청전대사라 불린다지?”
청전대사(靑電大師).
“작은 어머님은 숙부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는 모양이네요?”
말끝마다 놈, 놈 하는 걸 보니 자연스레 그리 생각하게 된다.
“흥, 그놈이 자꾸 네 아버지를 뺀질나게 만나러 오지만 않았어도 내 자식이 셋은 더 있었을 것이다!”
더 물어봤자 좋은 꼴을 보지는 못하겠구나 싶었다.
“작은어머니. 이대로 더 얼마나 가야 도착하는 거야? 내가 알기로 수계에서 선계까지는 천년이 넘는 거리라고 알고 있어.”
그러자 호리는 훗 웃으며 팔짱을 끼웠다.
“작은 어미를 너무 얕보지 말거라. 이래뵈도 원선태사의 몸이시다. 선계까지 한달이면 충분하다!”
“한달? 너무 긴데….”
“아버님이었으면 공간을 넘어 한순간에 도착하셨을 텐데.”
“…사흘! 사흘이면 충분하다!!”
사흘 뒤.
털썩.
“으어어.”
탈진이라도 한 듯 쓰러진 호리를 뒤로하고 사천과 천선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원선태사라도 선계와 수계의 거리는 천년 이상.
그것을 사흘로 완주했으니 호리의 상태가 말이 아닌 건 당연했다.
애초에 어떻게 정말 사흘 만에 도착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작은 어머니가 원선태사가 맞기는 맞으셨구나. 간혹 거짓은 아닐까 의심하고는 했는데.”
“그건 나도 동감.”
사천과 천선은 자신들을 맞이하러 온 수많은 대신들과 궁병들을 보았다. 궁병들은 가만히 있어도 뿜어내는 기운이 남달랐고, 대신들의 눈과 입매에는 탐욕이 얼룩져 있었다.
허나 그것들 모두 담은 그릇은 천선과 사천의 뒤에 자리한 존재에 대한 경외감.
사천은 아미를 찌푸렸다.
저치들과 이야기를 섞기도 싫었다.
그때였다.
[들어오거라.]엄숙한 목소리와 함께 사천과 천선을 둘러싼 풍경이 뒤바꼈다.
보이는 것은 거대한 나무.
그리고 한켠에 마련된 정자.
하늘의 기둥처럼 커다란 나무는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화살이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그리고 이내 보이는 것은 미청년과 곁에 있는 사내아이.
사내아이는 천선과 사천을 향해 단번에 활을 겨누었다.
“아버지. 쏴도 되나요?”
“네가 쏘는 것인지, 아니면 활이 쏘는 것인지 명확하다면.”
알쏠달쏭한 답변에 사내 아이는 활 시위를 거두었다.
“봐. 네 볼품없는 화살따위가 위협이 되지는 않아.”
사천의 입가가 비틀렸다.
어깨에 멘 쌍멸을 휘두르자 단번에 불길이 치솟았다.
호전적인 그녀의 태도에 사내 아이의 눈가가 좁혀졌다.
“…내 이름은 청연. 천궁의 위대한 청전대사님의 아들이며 장차 선계를 책임질 사내다.”
그리고.
“네게 화살을 쏠 사내지.”
타앗.
순식간에 활 시위가 놓이고.
이내 사방에서 푸른 번개의 형태를 한 화살이 소녀들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