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68)
낭선기환담-567화(568/600)
낭선기환담 – 외전 7화
선계의 천궁.
그 장엄한 궁궐의 입구에는 때 아닌 인산인해가 펼쳐져 있었다.
허나 대부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우물쭈물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한 여인 때문이었다.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글쎄….”
연통 없이 찾아온 수계의 여인.
상천해월에 한 석을 차지하고 있는 원선태사 때문이었다.
“으어….”
장엄한 천궁의 대문 앞에서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들다는 원선태사가 골골대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왜 아니 그럴까.
“이분은 혹시, 수계의 광멸호사(光滅好事)님이 아니십니까?”
“내 보기에도 그러하다….”
광멸호사.
빛을 멸하는 호사라는 뜻이다.
“일전, 하늘의 주인께서 세상을 이롭게 하시려 애쓰던 불을 꺼뜨려버리시고 천벌 받고 어디 갇히셨다고 들었는데….”
“천주(天主)께서도 그리 모질지는 못하신 게지… 아무리 그래도 부부의 연을 맺으신 분이 아니신가.”
“크흠….”
어쨌거나 저쨌거나 원선태사이며 동시에 한 사내의 반려라는 여인이 이런 추태를 부리고 있으니….
“함부로 원선태사의 몸에 손을 대어서는 아니될 것인데….”
“그렇다고 안 대기도 좀….”
어찌할지 고민하던 찰나.
펄럭!
하늘에서 궁장을 펄럭이며 내려오는 한 여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헉!”
선녀가 내려오는 듯 기품있는 여인의 모습에 궁병들과 궁선들은 모두 고개를 조아리고 뒤로 물러났다.
“천궁의 천녀님을 뵈옵니다.”
천궁의 천녀.
그리고 하늘의 제자.
연아였다.
“물러나라.”
그녀의 말 한마디에 삼삼오오 모여있던 이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모두가 사라진 것을 보고나서야 연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랜만에 나타나셔서 무슨 꼴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스승님께서 보셨다면 또 경을 치셨을 겁니다.”
한심하다는 듯 내려다보며 말하자 골골대던 호리가 슬쩍 눈을 떴다.
“못 봤을 테니까 괜찮을…걸?”
연아의 한숨이 짙어졌다.
“진정으로 그리 생각하십니까. 상천이 금천으로 바뀐 뒤, 스승님께서는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듣는 존귀한 존재가 되셨습니다. 우리의 눈에, 귀에 들리지 않는다 하여 그분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말이 어렵다.”
“다 보고 계실 거란 말입니다.”
그러자 호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콧방귀를 꼈다.
“흥, 보면 나오라지? 난 무서울 게 없느니라!”
“…대면하지 못하신 지 꽤 되셨나 보군요.”
그래서 또 사고를 치러 온 듯 하다.
“그, 그런 게 아니다!”
“아니면 아이들은 어찌 데리고 오신 겁니까. 분명 천선과 사천이었지요. 그 아이들이 막 태어났을 때 보고, 처음 보는지라 장성한 모습에 눈은 즐거웠습니다만….”
아이들을 데려온 것이 호리다.
또 무슨 짓을 벌이려고 데려온 것인지 벌써부터 눈앞이 깜깜하다.
수계와 선계의 거리가 거리이다 보니 함부로 아이들을 데려와서 좋을 게 없다.
“몇년만에 당도하신 겁니까.”
백년? 그래도 원선태사이니 십년?
“사흘.”
“…사흘, 이요.”
“그래서 이렇게 골골대고 있잖느냐. 어찌나 성질이 급한지 한 달이면 도착하는 걸 한시진마다 다 왔냐고 묻던지. 그놈 자식이 맞긴 맞더구나!”
사흘.
천년이 걸리는 거리다.
전쟁이 없어진 탓에 이제는 여러 전송진이 존재한다지만 그렇다 해도 백년은 넘게 걸리는 거리다.
‘사흘이라….’
역시 원선은 원선이랄까.
“사모님들께 언질은 주고 데려오신 것이겠지요?”
“무! 물론이지!”
연아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정말입니까.”
“본녀의 말을 믿지 못하겠느냐.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느니라.”
그렇다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호리는 품에서 술병 하나를 꺼내 꿀꺽꿀꺽 마시고는.
“캬아!”
기운을 조금 차렸다.
“근데 애들은 어디갔어?”
“청전대사께서 데려가셨습니다.”
“그래? 그럼 안내해주거라. 나도 청명이 놈에게 할말이 있느니라.”
그러자 연아의 안색이 그늘졌다.
“뭔데?”
“죄송하지만 그건 어려울 듯 싶습니다. 어디 계시는지 잘….”
“네가 모르면 천궁의 누가 안다는 것이냐.”
선계의 천궁에는 많은 인재들이 있는 곳이며 왕가의 혈통도 여럿 있지만 서열 계도는 극히 간단하다.
천궁의 원선태사 천정대사.
그리고 그의 아내이자 천녀 연아.
둘의 아래로 뻗어 있는 수직 계도인 것이다.
하니, 모른다는 것이 말이 안 됐다.
“아들까지 낳았다면서 안내를 못한다는 게 무슨 소리야.”
아무 말 하지 못하는 연아의 모습에 호리는 헛웃음을 흘렸다.
“싸웠네 싸웠어.”
“…그런 거 아닙니다.”
* * *
콰과광!!
후웅.
폭연이 걷히고 보이는 것은 쌍멸을 치켜든 사천의 모습.
그리고 치솟는 불길은 화기린의 그것이었다.
“건방지네.”
“건방져?”
“쪼꼬만 게 사내는 무슨. 실지렁이 같은 화살이나 쏘는 놈이잖아.”
근데 사내?
픽, 실소를 머금은 사천은 휘리릭 창을 휘둘러 청연에게 겨눴다.
“실수한 거다 너.”
“내가? 무슨 실수를 했는데?”
“앞으로는 알아야 할거야. 네 알량한 화살을 쏘기 전에 상대가 누구인지, 감당할 수 있는 상대인지.”
“네가 누군데?”
“네가 자리한 모든 땅과 모든 하늘의 주인이신 분의 딸이다.”
“!”
쩌적.
콰아앙!
청연의 발밑이 터져나가고 순식간에 붉은 불길이 치솟는다.
“흥, 천주의 딸은 기품있고 눈처럼 새하얗다 들었어! 네가 아니라 저기 있는 아이겠지!”
빠직.
사천의 힘줄이 도드라졌다.
“죽어.”
동시에 그녀의 쌍멸이 뱀처럼 찔러 들어갔다.
스윽.
핏. 간발의 차이로 피했으나 쌍멸은 뱀처럼 휘어 청연의 목을 노린다.
“핫!”
화살 없는 활시위를 당긴다.
대앵-
실 없는 소리가 사방을 적시니.
동시에 청연의 모습이 화지에 떨어진 먹물처럼 흘러내렸다.
“환계?”
승기를 잡았다 생각한 사천의 안색에 짜증이 서렸다.
“사내새끼가 쪽팔리지도 않나. 조잡한 환계나 써대고 있어.”
한눈에 보아도 조잡한 환계다.
공간 전체를 장악하지 못해 바뀌지 않는 풍경과 맞물리지 않아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도 많다.
‘우리 가문의 가선들이 보여준 것보다 훨씬 못 미쳐.’
위기의 순간에 급조한 것치고는 나쁘지 않다 할 수 있으나 그래봤자 소선이 만들어낸 수준.
쿵!
창으로 땅을 찍자, 파문이 일어나는 것처럼 풍경이 일렁거린다.
입꼬리를 끌어 올린 사천의 입술이 달싹이고, 동시에 불경 옮는 듯한 소리가 공간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사특하면서도 오묘한 주술이었는데 듣고 있노라면 전신에 실지렁이가 꿈틀거리는 듯 기분 나쁜 느낌이었다.
환계가 흔들리려는 찰나.
쿠구구궁!
하늘에서 돌연 천둥번개가 요동쳤다. 먹구름이 가득해졌다.
그 끝에.
“같잖은 짓을.”
청연이 활시위를 가득 당기며 연신 입술을 달싹이고 있었다.
우렛소리가 연신 먹구름 속에서 터져 나온다.
푸른 벼락.
콰지직 굉음을 자아내며 청연의 활과 함께 번쩍번쩍 빛을 뿜었다.
“….”
한눈에 보아도 심상치 않은 신통.
사천은 입을 다물고 창을 뽑아 자신 또한 전신에서 불길을 뿜었다.
피처럼 붉은 적화.
그것이 작은 소녀의 몸에서 폭발적으로 터져나와 사방을 가득 메웠다.
하늘은 푸른 벼락이.
땅에서는 대조되듯 붉은 불길이 타오르니 대비가 명확했다.
그리고 그 순간.
피융!
청연의 활시위가 놓아지고.
먹구름 속에 내재되어 있던 푸른 벼락이 화살처럼 쏘아졌다.
마치 용의 모습을 한 것처럼 커다란 벼락이 떨어져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 사천 또한 쌍멸을 내던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경천동지할 폭발이 일어나고, 거센 바람이 모든 것을 날려버렸을 때.
휘이이잉.
휘리리리릭, 푹.
새하얀 김을 모락모락 피워내는 쌍멸이 바닥에 힘 없이 꽂혔다.
“하아….”
그 모습에 잠시 안도하던 청연은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활을 잡은 두 손에서는 핏물이 베어나와 끈적거렸다.
‘강해.’
자기 또래에 이 정도로 자신과 동등한 실력을 가진 아이는 처음이었다. 천궁의 적자.
청전대사와 천녀의 아들로 태어난 청연으로서는 처음 겪는 일.
당연히 다양한 감정들이 가쁘게 뛰는 심장처럼 들쭉날쭉 솟구쳤다.
“뭘 넋놓고 있냐.”
그때였다.
지면에 꽂힌 쌍멸의 창대 위에 사천이 발가락으로 잡고 매달려 있었다.
“!”
사천의 모습도 그리 멀쩡하지는 않았다. 벼락을 직격으로 맞았는지 여기저기 그을린 모습.
하지만.
“네놈 멱을 딸 힘은 남았다.”
단숨에 짓쳐들어온다.
쌍멸이 땅에서 뽑히고, 사천의 그것을 휘둘러 내려찍는다.
두 개의 날카로운 창날.
그것이 청연의 동공에 비쳤다.
이내 두 눈을 질끈 감은 그때.
척!
쩌저저저적.
“그만해.”
사천의 쌍멸이 새하얗게 얼어 붙었다.
“너도 죽고 싶냐?”
“숙부님의 아들인 청연은 우리와 사촌지간이야. 모르지 않을 텐데.”
“그래서? 난 너도 죽일 수 있어.”
살기 짙은 사천의 눈빛에 천선은 고개를 절레 저었다.
“쓸데없이 살벌하긴.”
말은 그리했지만 사천 또한 격한 전투로 흥분하여 그런 거지 진심은 아니었다.
한참동안 천선과 청연을 노려보던 사천은 이내 창을 거뒀다.
“숙부님. 왜 멈추지 않으셨나요.”
선은 어느 한곳을 보며 물었다.
이내 청전대사.
청명이 모습을 드러내 답했다.
“네가 멈출 거라 생각했다.”
“제가 멈추지 않았다면요?”
“다르지 않았을 거다.”
“…어째서요?”
이해할 수 없었다.
“사천은 도중에 멈췄을 테니까.”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안 멈췄어.”
허나 청명은 의미모를 미소를 지은 채 화제를 전환했다.
“글쎄.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떠드는 것도 좋지만, 우선은 눈앞에 있는 일을 말하는 게 더 좋겠지.”
청명은 품에서 기묘하게 생긴 나침반을 꺼내 그들에게 보였다.
여러 톱니바퀴가 얽히고설켜 허공에서 쉼 없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천선은 한눈에 보아도 그것이 보통 물건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저게….’
아마도 호리가 말했던 유무간으로 가기 위한 안전한 통로로 도달할 수 있게 해주는 물건이리라.
“너희들이 찾아온 이유를 안다. 허나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뭔데요?”
“연이를 데려가 주겠느냐.”
“뭐?”
“네?”
화들짝 놀란 것은 천선과 사천 말고도 또 한 사람 있었다.
“아버지? 저는 왜….”
“네 부족함을 느꼈겠지. 좋은 기회 아니더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실 제 또래 소선들 중에서는 적수가 없었던 청연이다.
허나 이번에는….
‘내 패배다.’
그리고 상천해월의 원선태사이자 천궁의 주인이나 다름 없는 청전대사 청명의 말이다.
거역할 수 있을 명분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이것을 가져가라.”
푸른 빛을 자아내는 나침반.
“청나반(靑羅)이 너희들을 인도할 것이다.”
“저기… 숙부님.”
“질문은 형수님께 하려므나.”
딱.
손가락을 튕기자 아이들의 모습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홀로 남은 청명은 곁에 자리한 금빛을 보며 중얼거리다 히죽 웃었다.
그러자 어른거리는 금빛 또한 웃는 것처럼 반짝이다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