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69)
낭선기환담-568화(569/600)
낭선기환담 – 외전 8화
“그러니까 싸운 거 맞잖아?”
“아닙니다.”
딱 봐도 싸웠는데 결단코 아니라 말한다.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보는 호리의 시선을 외면한 연아는 이내 허공의 일렁임을 주시했다.
그러자 세 명의 인영이 나타났다.
“오! 왔느냐?”
호리는 아이들 하나하나를 살펴보고는 이내 청나반을 쥐고 있는 천선을 보며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그거구나.”
“네.”
청나반을 호리에게 건네자 일순 오묘한 파동이 그들을 스쳤다.
“호오. 공간법칙의 정수가 담겨 있는 법보가 맞다. 이거라면 안전하게 유무간의 천공을 뚫을 수 있겠어.”
“!”
하지만 그녀의 중얼거림에 연아가 흠칫 놀랐다.
“유무간이라고 하셨습니까? 그 위험한 곳에 가신다고요?”
그것도 아이들을 데리고?
“향선 나부랭이가 알 필요는 없는 일이지. 까불고 싶으면 종잇장 같은 벽이나 뚫고 까불어라.”
“…이러시깁니까?”
“내가 뭘?”
“제가 고작 향선의 위치에 있기는 하나, 한 가지는 알고 있습니다.”
씨익.
호리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훗, 뭘 말이냐. 본녀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깨닫기라도 한 것이냐?”
“지금 이곳으로 원선태사의 기가 느껴진다는 것이지요.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오고 있지 않습니까.”
“…….”
그러고보니 그렇다.
그것도 꽤나.
“꽤 익숙한 기운이지요? 다른 분이었다면 몰라도 제가 백산을 지키던 때부터 알던 분이니 모를 수가 없죠.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실 겁니다.”
“글쎄… 모르겠는데…?”
눈가를 데구르르 굴리며 시선을 피해보지만, 곧 다가올 원선의 기는 더더욱 두터워질 뿐.
“사모님이 다급하게 오신다는 뜻은 필시 그러한 용무가 있는 것이고.”
그 용무는 아마도 아이들을 데리고 유무간으로 향하는 광멸호사를 막기 위함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빛광이 아니라 미칠광이라도 되신 겁니까?”
“어허! 감히 어딜 막말을!”
연아는 이번엔 아이들을 보며 물었다.
“천정대사께서도 모두 알고 계시고 너희들에게 청나반을 준 것이니?”
“네, 어머님. 아버님께서는 저도 함께 따라가라고…….”
급격히 연아의 기운이 살벌해졌다.
은연 중 살기가 피어 올랐다.
일순이었으나 그 살기를 느낀 아이들은 모두 흠칫 몸을 떨었다.
“이 양반이….”
그때였다.
푸화아아아아!
때를 놓치지 않은 순간.
검은 연기가 사방으로 폭사됐다.
“윽!”
“꺄하하하하! 네년의 아들은 내가 데리고 가마!”
그녀의 기운이 아이들을 옭아메고 하늘로 솟구친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청연아!!”
“어, 어머님!!”
때아닌 난리에 사천과 천선은 애매한 낯으로 인상을 썼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는 듯 한심하단 표정이었다.
“광멸호사! 지금 행동! 책임질 수 있으시겠습니까!!”
“난 항상 내 행동에 책임져 왔다!”
“스승님께 일만 년의 폐관을 간청 드릴 것입니다!! 돌아오세요!!”
“고작 그런 것을 두려워했다면 이 자리까지 오르지도 않았다!”
사실 무서웠지만 연아는 아마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을 것이다.
천범도 그리 모질지는 못하니.
“그리고 청명이 놈이 청라반을 줬다는 것은 내 뜻에 따르겠다는 뜻! 네년 또한 남편의 뜻에 따라라!!”
꺄하하하하하!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
더 엎어도 티 나지는 않는다.
“어머니임!!”
“청연아!!”
스윽.
허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진 아이들의 모습에 연아는 허망하게 하늘을 바라봤다.
허망하게 아들을 빼앗긴 어머니의 처량한 모습을 하던 연아였으나 금세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내 백색의 빛 한줄기가 그녀의 앞으로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사라락.
새하얀 머리칼.
복사꽃 그윽한 향기.
허나 뼛속을 울리는 시린 한기.
초아였다.
“사, 사모님….”
“……한 발 늦었구나.”
“면목 없습니다.”
사박.
어느새 살얼음 깔린 지면을 밟자 고요한 바람이 파문처럼 퍼졌다.
아마도 그녀의 신식이 퍼진 것이리라 연아는 짐작했다.
“네 아들도 빼앗겼구나. 네가 허락했을 리는 없으니 천정대사가 그러라 하셨겠어.”
“송구하게도 그렇습니다….”
초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천정대사가 허락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마음에 들지는 않는구나. 너 또한 그렇겠지.”
“예.”
“천정대사! 이리 한 번 나와보시지요. 제가 왔는데도 모습 한 번 비추지 않으시는 겁니까.”
그때였다.
휘이잉.
묘한 바람이 불어오며 신기루처럼 사내의 모습 하나가 일렁거렸다.
천궁의 절대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형수님.”
천정대사 청명이었다.
제아무리 그라도 천주의 안사람인 초아의 방문을 모른 척할 수는 없었던 것이리라.
“천정대사.”
“말씀하시지요.”
“어찌 보내셨습니까. 그녀가 가려는 곳이 극히 위험한 곳인지는 다른 누구보다 당신이 제일 잘 알고 있을 텐데요.”
“그렇지요.”
“한데 어찌 보내셨습니까.”
초아는 지극히 차분했다.
하지만 감정의 격조가 없어 오히려 더 살벌하기도 했다.
연아는 침을 꿀꺽 삼키고 자신의 남편과 초아를 번갈아 바라봤다.
“아무 일 없을 것입니다.”
“……확신을 가지시고 있군요.”
확신의 이유가 자신은 아닐 터.
초아는 그제야 날선 기운을 가라앉혔다.
“그분께서 바라신 일입니다.”
그의 대답에 초아는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깊은 골짜기 어딘가.
“어머님…. 훌쩍.”
아이의 훌쩍이는 소리가 잔잔하게 울려퍼졌다.
“아 시끄러워! 그만 질질 짜! 죽여 버리기 전에.”
“넌 너무 사나워! 여자애면 좀 더 다정다감해야 하는 거 아냐? 저기 저 천선처럼….”
쭈뼛대며 가만히 좌선하고 있는 천선을 힐끔거렸다.
알 만하다는 듯한 실소를 지은 사천은 그에게 쌍멸을 겨눴다.
“난 태어날 때부터 가문에 이바지 하기 위해 태어났어. 성별 따위 내게는 아무 의미도 없지. 다시 한번만 내게 여인을 들먹이면 죽이겠어.”
“살벌해서 무슨 말도 못하겠네….”
그러나 울음은 멎었다.
청연은 투덜투덜거리며 은근슬쩍 천선의 곁에 다가갔다.
“청연, 이해해. 사천은 원래 저런 아이니까.”
더 가까이 오지는 말라는 듯 눈을 뜨고 흘기는 천선의 모습에 청연은 헛기침을 했다.
“그나저나 우린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야?”
“그거야 나도 모르지 뭐.”
세 명의 시선이 한곳으로 꽂혔다.
“끄응….”
끙끙거리고 있는 것은 광멸호사.
호리였다.
청나반을 가지고 한참을 저리 머리를 싸매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법보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작은 어머니, 언제 가는 거예요?”
“기, 기다려 봐라! 청명, 이 꼬질꼬질한 놈이 뭐 이런 쓰기 어려운 법보를 내줘가지고는….”
청나반은 방향을 가리키는 지침서인 동시에 문이다.
허나 공간을 비집고 올바른 천공으로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술자의 의식이 매우 강력해야 한다.
“의식의 힘이 약하면….”
“그냥 작은 어머니가 못하는 거 아냐?”
휙.
호리는 사천에게 청나반을 던졌다.
“해보든지.”
철컥! 철컥!
의식을 불어넣자 청나반이 기계음을 자아내며 허공에서 톱니바퀴가 불어나며 하나의 문을 만들었다.
“뭐야 쉬운데?”
벌컥.
허나 열려진 문에서 보이는 것은 이리저리 뒤틀려 있는 만화경.
발 하나 내밀면 그대로 모든 것이 뒤틀려 사방팔방으로 찢겨질 것 같은 공간과 공간의 뒤틀림이었다.
화들짝 놀란 사천이 뒷걸음질 치자 청나반의 문은 그대로 쿵! 닫혔다.
꿀꺽.
“그런 거지.”
툭툭.
머리를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호리는 청나반을 다시 쥐었다.
“의식의 정교함이 형편없으면 이런 길이 나오는 거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걸 제대로 쓸 수 있는 건 공간 법칙에 정통한 청명 놈 말고는 한 녀석뿐일 거야.”
“…아버님을 말씀하시는 거죠?”
“대호 놈이야 이런 법보가 없어도 그냥 유무간을 열 텐데 굳이 이게 필요하진 않지.”
“그럼 혹시 절명….”
그때였다.
“어어!”
“어?”
철컥철컥!
사천이 만졌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청나반이 문의 형태를 굳혔다.
마치 거인을 위한 문처럼 거대해진 청나반의 앞에는 청연이 서 있었다.
“어….”
“비켜봐!”
헐레벌떡 달려가 청나반이 뚫은 천공을 살펴본 호리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치켜 떠졌다.
“뭐야! 너 어떻게 했어!”
“저,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흠…. 그렇군. 그래서 청명 놈이 널 데려가라 한 거였구나. 네놈에게 열쇠를 쥐어준 거겠지.”
아무튼 잘 됐다.
끼이이이익.
대문이 열린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기묘한 안개와 소름끼칠 듯 방대한 원기.
세상 천지에 다시 볼 수 없을 듯 신기하게 생긴 충수들이었다.
그때였다.
지잉.
“억!”
“흡!”
“엇”
묘한 공간의 비틀림과 함께 그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나타났다.
호리는 즉시 자신의 기운으로 아이들을 보호했다.
휘릭!
* * *
칠흑처럼 어두운 공간.
오직 목소리만 들리는 이곳에 자리한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쿠웅.
육중한 무게감이 어둠을 걷어낸다.
언뜻 비치는 여러 개의 눈과 머리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듯 내려다본다.
포식자의 눈빛을 한 괴물에게 어떠한 존재가 고개를 조아린다.
“구영님을 뵈옵니다.”
쿠웅!
[이런 비좁은 곳에 날 부르다니, 네놈들은 정녕 죽고 싶은 것인가.]언짢은 심기를 드러내듯 날개를 펄럭이는 구영의 모습은 대흉수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려줬다.
상계에서도 내로라하는 강자들도 그의 앞에서는 몇 합을 견디지 못하고 바람 앞 등불처럼 스러지리라.
“노여치 마소서. 놈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혼돈 속에 숨어드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었습니다.”
[흥, 상계의 천주라는 것들이 쥐새끼처럼 숨어 있는 신세라니 웃기군.]구영의 비웃음에 혼돈에 자리해 있던 천주들의 심기가 비틀렸다.
이곳에 자리한 이들은 열 명 남짓.
모두 하나의 하늘이나 복수의 하늘을 지배한 천주들이었다.
“허나 그것은 구영님 또한 마찬가 지가 아니신지요.”
[뭐라?]“놈의 제안을 거절하셨다 들었습니다. 그 뒤, 구영님께서도 놈을 피해 다닌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그딴… 헛소문을 믿는가 보군.]“그럴 만하지요, 놈은 이미 수십 개의 하늘을 점령한 폭군. 그 힘의 크기가 유무간에 존재한 대흉수 중에서도 구영님과 맞먹는다는….”
콰아아앙!!
[헛소리를!!]“아니라면 저희의 제안을 받아들이셔야 할 것입니다.”
“놈은 역천자. 스스로 대라천에 오를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고 상계를 집어삼키려는 대흉입니다!”
“놈의 목적은 아마도….”
대라천.
[대라천의 주인이 되려는 것일 터.]오만방자한 뜻임이 아닐 수 없다.
허나.
있을 수 없는 일을 실현시키기 위해 행하는 짓이 지금에 이르니.
“놈의 끝이 어떠한들, 지금 피해를 보는 것은 우리이니….”
“방도를 세워야 합니다.”
천주들의 시선이 구영에게 꽂힌다.
“이번 일을 성사시킨다면….”
“대라천에 상소를 올려 구영님의 죗값을 덜어드리겠습니다!”
유무간에 갇힌 구영의 죄.
그것을 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 달콤한 제안에 구영의 아홉 머리가 동시에 움직였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