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7)
낭선기환담-56화(57/600)
낭선기환담 – 56화
“네 나이가 몇이더냐.”
“예? 오, 올해로 열넷입니다….”
시비는 산군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수줍음이 많은 나이였다.
‘열넷이라.’
선천자라도 도선에 오르려면 약관의 나이가 되어야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한데 열넷이라 하니 산군은 내심 놀랐다.
시비로 부리기에는 그 재능이 남다르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화란 또한 다르지 않은지 그녀도 의아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상하군요. 열넷에 도선에 올랐다면 그 재능을 귀히 여겼어야 하는 것이 옳을 터인데….
그 말이 맞다.
한데 일월문은 이런 아이를 어찌 고작 시비로 쓰고 있을까.
“열넷에 도선에 올랐다면 재능이 남다르단 뜻인데 어찌 시비를 하고 있는 게냐.”
혹, 혼아혈인가 싶었지만 그런 기색도 없다. 이 아이는 순수한 인간이다.
그러니 궁금한 것이다.
“그것이….”
소녀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쉽게 말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어 보였다.
“도사, 여기네!”
그때 마침 산군을 부른 도사가 그를 보며 반가워했다. 시비는 허리를 꾸벅 숙이고 물러났다.
‘음….’
그를 보자고 한 것은 천자문의 비선이었다.
산군이 아니었다면 암장에 모인 비선들이 전부 죽었을 테고, 그 책임은 모조리 천자문에 향했을 테니 감사의 말을 전하러 온 것이었다.
“도사가 아니었다면 우리 천자문은 큰 고초를 겪었을 것이오.”
“아닙니다. 전 그저 제 목숨을 건사하려 했을 뿐입니다.”
산군은 선선히 웃으며 겸양했다.
그 모습에 노인은 안도했다. 그는 천자문 소속의 비선으로 비룡관을 책임지고 있던 양황 도사였다.
산군은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으나 속으로는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귀음나찰의 기습사건 후, 한 달이 훨씬 지났다.
한데 이런 기간이 지나고 왔다는 것은 천자문에서 단순히 감사의 인사를 전하려고만 온 것은 아니라는 뜻.
-해봉석을 가져왔을까요?
-모르는 일이지. 그리고 가져왔다 한들, 그냥 내주지는 않을 거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한창 선도계에 이름을 높인 자신을 끌어들이는 것일 터.
안 그래도 다른 문파들의 눈총을 받고 있으니, 귀음나찰을 쫓아낸 산군을 제 편으로 끌어들이려 수작을 부릴 것이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저희 천자문이 각고의 노력 끝에 은인께서 찾으시는 물건을 입수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해봉석을 말입니까?”
“예! 저희 천자문이 암장을 운영하는 것은 알고 계시겠지요. 해봉석이 귀물이기는 하지만 저희가 힘쓴다면 못 구할 것도 아니지요!”
그리 말한 천자문의 양황 도사는 품에서 목갑 하나를 꺼내 열었다.
툭, 목갑을 열자 투박하지만 기묘한 기운을 내뿜는 회색의 돌 하나가 들어있었다.
“도사가 원하는 해봉석입니다.”
그것을 본 산군의 안색이 희색에 물들었다. 하지만 이내 미미하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이 귀한 것을 그냥 주실리는 없겠지요. 원하는 것이 있으십니까?”
“하하, 도사께는 못 당하겠습니다! 그리 말씀하시니 기탄없이 말해보지요!”
차분히 노인의 말을 들은 산군의 낯이 묘해졌다.
“객경장로 말씀입니까?”
“예. 저희는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객경장로란 이름만 문파에 담고 자유로이 행동할 수 있는 직위였다.
단순히 그것만을 원하니 나쁠 것은 없었지만, 고작 비선의 경지인 산군을 장로직에 담아준다는 것이 의아했다.
그냥 제 문파에 귀의하라는 것이면 몰라도 객경장로라니.
“이상하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저희 천자문이 이번 사건으로 상황이 좋지 않아지신 것은 아실 겁니다. 도사께서 객경장로로 역임해주시고 천자문이 마도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해주신다면…….”
-그렇군요. 그들의 입장으로는 이만한 조건이 없을 겁니다. 산군이 천자문에 귀의한다면 다른 문파들의 눈총을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잠시 고민한 산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목갑에 손을 올렸다.
천자문의 객경장로를 역임해서 나쁠 것이 없었다.
그러자 노인은 크게 기뻐하며 품에서 객경장로를 뜻하는 영패를 쥐여주고 떠났다.
너무 일이 술술 풀리니 오히려 떨떠름했다. 하지만 수작을 부린다 해도 상관 없었다.
‘이제 떠날 것이니.’
해봉석도 얻었으니 이제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다.
“이것으로 됐다.”
산군은 한참이나 그 자리에서 목갑을 어루만지다 귀빈각으로 돌아갔다.
* * *
같은 시각.
일월문의 상문.
집법장로실에는 풍운령이 진중한 낮으로 매웅에게 천자문의 비선이 다녀간 일을 고했다.
“그래……. 그놈이 천자문의 객경장로가 됐다고.”
“예.”
“놈들도 수를 쓰는군. 객경장로라니. 그것도 비선에게……. 흠.”
장로직은 최소가 환선부터 역임할 수 있다.
약소 문파야 비선이 장로직을 가질 수도 있다지만 천자문은 방곡에서도 거대 문파로 이름난 곳.
그런 곳에서 비선을 객경장로로 임했다는 것은 누가 봐도 뭔가 이상했다.
“자신들 잘못을 대호 도사로 가리려 하는 것이겠지. 일이 틀어진다 해도 그들에게 나쁠 것은 없을 테고 말이야.”
“그리하면 저희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객경장로가 됐으니 본문에 귀의하라는 것은…….”
“그렇지 않다. 객경 장로라는 것이 원래 타 문파에 몸담은 도사의 이름을 빌리는 것일 뿐이니. 하지만 네 말대로 일이 조금 꼬이긴 했구나. 안 그래도 뒤숭숭하던 차에 귀음나찰이 한바탕 휘젓고 갔으니 마도문과의 전쟁이 머지않았지 않더냐.”
많은 수의 방곡 비선들이 마도문에게 죽어버렸으니 이 일을 좌시할 수는 없었다. 아마도 근 시일 내에 또 다시 한바탕 전쟁이 치러지리라.
“하면 곧장 전쟁이 일어나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을 거다. 본래 계획대로 마도 지역에 정찰대를 보내 놈들의 동태를 살피는 것부터겠지.”
애초에 그것 때문에 산군을 사로잡으려 했던 것이기도 했다.
방곡에서 북동쪽에 위치한 마도문들이 자리 잡은 지역은 선도를 닦는 도사들에게는 기피 지역 1순위다.
온갖 사악한 금술들이 난무하는 곳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냥 죽는 것이면 몰라도 죽어 강시로 부려지기도 하고, 영각을 사로잡혀 윤회하지도 못하고 산송장으로 이용당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럼 대호 도사는…….”
“생각보다 시일이 앞당겨졌으니 어쩔 수 없지. 놈을 데려와라.”
양패윤의 목울대가 고저를 그렸다.
그 말인즉슨, 지금 도사에게 독을 먹이겠다는 소리나 진배없었다.
‘그래도 내 목숨을 살려준 자에게 이런 짓은…….’
어쨌거나 그가 천자문의 암장에서 환진을 깨트리고 귀음나찰을 막아선 것은 사실.
덕분에 목숨을 부지한 양패윤은 장로실을 벗어나 한숨을 푹푹 내쉬다 그에게 향했다.
그의 경지가 비선이라지만 그런다 한들 무엇 할까.
자신은 힘없는 비선일 뿐인데.
* * *
천자문의 대청에는 많은 수의 노인들이 저마다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중에는 산군에게 객경 장로의 영패를 쥐여 준 비선 또한 있었는데, 그는 다른 도사들의 영압에 한창 위축되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 자가 본문의 객경 장로가 됐으니 한시름 놓았어.”
“그렇습니다. 영패에는 추적술 또한 걸려 있으니 저희의 계획이 틀어진다 하더라도 상관없겠지요!”
양황은 그들이 말 한마디를 할 때마다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장로들이 뿜어내는 농염한 살기가 살갗을 베어내듯 덮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룡관을 책임지는 양황은 천자문의 집법 장로들에게 호되게 혼나고 있는 중이었다.
“객경 장로를 받아들였으니 거사를 진행해야겠습니다. 놈이 딱하게 되었지만 본문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지요!”
“그렇습니다. 비선 치고는 강력한 신통을 지녔다 한들 어차피 비선은 비선. 그도 어찌할 수 없겠지요.”
“안됐지만 어쩌겠습니까. 살아남는다면 더 높이 올라설 것이고, 죽는다면 거기까지인 팔자겠죠. 자! 그런 소린 그만하고 이제 생산적인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마도 놈들 탓에 우리가 이 고생을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놈 들에게 어떻게든 이 수모를 갚아주어야 합니다.”
“엽 사제가 옳은 소리 했소.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어느 누가 비룡관에 침입할 거라 생각했을까요! 어찌 됐든 그들을 좌시할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러니 놈을 이용해 저희 실책을 만회해야겠습니다. 천자문의 신용이 바닥을 치니 더는 그리 둘 수 없어요!”
“왜 안 그렇겠습니까, 사형. 이번 일로 손해가 막심합니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라는 말처럼 놈만 제대로 써먹는다면 천자문의 위상을 드높이지 못할 것도 없지요!”
그때 심드렁한 낯의 소년 하나가 입을 열었다.
“……사제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언가? 뭐 이리 같은 소리만 하고 지랄인 게야. 머릿속에 든 게 있다면 기탄없이 말해보게! 영 답답해 보고 있기 그렇구먼.”
한창 떠들고 있는 장로들을 마뜩찮게 바라본 이는 소년의 외양을 지닌 도사였다.
하지만 겉모습과 달리 심후한 영력을 지닌 그는 천자문의 대장로 천윤소(天胤蕭)였다.
“흠흠, 대장로가 그리 말씀하시니 거두절미하고 말하겠습니다. 객경 장로패를 지니고 있으니 그가 본문에 적을 두고 있음은 만천하가 알 것입니다. 그러니 놈에게 마도 지역의 보배가 숨겨져 있는 곳을 일러줄 것입니다. 환선에 도움이 되는 귀물이 있다면 한창 콧대가 높아져 있을 놈이 가지 않을 리 없지요! 놈이 죽는다 하더라도 마도와 싸우다 죽었으니 저희에게 좋고, 살아 돌아온다 하더라도 이득이니 땅에 떨어진 천자문의 위상이 높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대장로 천윤소는 사제의 말에도 시큰둥한 낯으로 일관했다.
“이곳에서 가까운 마도 지역이라 하면 사갈령(社渴嶺)일 텐데 그곳에 보배가 숨겨져 있다고? 난 처음 듣는데?”
“그야 당연히 거짓이니 그렇지요.”
“흠…. 그래서 거짓으로 놈을 꾀어 내 장렬히 전사하게 만들겠다?”
“그렇지요!”
천윤소는 영 언짢은 기색을 내뿜다 고개를 끄덕였다.
“맘대로 해라. 하지만 일이 틀어진다면 네놈들 전부 혼쭐이 날 테니 그리 알거라.”
“여부가 있겠습니까.”
* * *
같은 시각.
천자문에서 멀리 떨어진 곳.
그 절벽에는 사내 하나가 산풍을 맞으며 그윽하게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재밌구나.”
혼잣말을 좋아하는 듯 했으나 아니었다. 그의 곁에는 피투성이 요수 하나가 비굴하게 엎드려 있었다.
“푸른 불꽃을 사용하는 놈이 유정이라 했다라….”
그는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웬 요수들이 목숨 귀한 줄 모르고 자신을 찾아오기에 무슨 일인가 했다.
한데 사정을 알고 보니 퍽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 비소를 머금게 했다.
[그, 그렇습니다! 저희는 그저….]촥! 요수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놈의 목이 날아갔다.
촤르륵!
소리를 내며 그의 손에 잡힌 표창 형태의 보패.
사내, 아니 유정은 그것을 갈무리하며 뒤를 돌아봤다. 그곳은 수십의 요수들로 피바다가 되어 있었다.
“은원은 확실히 해야겠지. 감히 제까짓 놈이 내 이름을 사칭해?”
유정은 장포에 묻은 피를 보고 미간을 좁히고는 까마귀로 변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