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71)
낭선기환담-570화(571/600)
낭선기환담 – 외전 10화
“왜 몰랐을까. 묘청반석이라 했을 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묘청반석(妙清盤石).
작은 단함으로 보였던 그것은 사실 빨려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봉인구였던 것이다.
“아버님께서 일전에 흘리듯 말씀하셨던 게 있어. 묘청이란 이름을 들으면 필히 조심해야 한다고.”
“묘청이 뭐길래?”
“자세히는 듣지 못했지만, 고계의 기운 중 하나라 하셨어.”
화르륵.
황금색의 불꽃을 피워낸 천선은 금천지화를 내보이며 말했다.
“금천지화의 금천처럼, 그 또한 하나의 지존이 만들어내어 하늘에 기명된 힘 같은 거라고….”
천선의 목소리에 떨림이 가득하다.
덕분에 청연의 동공이 격하게 흔들렸으며 사천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묘청.
그것이 힘의 가닥 중 하나를 상징하는 것이고, 다른 이도 아닌 금천대사이자 자신들의 어버이인 천범이 언급했던 힘이라면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결론이 뭔데.”
“우린 여기서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할 거란 소리야.”
“개소리.”
좋지 않은 수준이 아니다.
어쩌면 최악의 상황마저 상정해야 할지도 몰랐다.
사천은 쌍멸을 꼬나쥐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주변을 살폈으나 뿌연 안개만이 자신들을 감싸고, 끝없이 펼쳐진 돌만이 발밑에 자리해 있었다.
어느 곳을 바라봐도 길이 없어 아득하기만 하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시도조차 안 해보고 벌써부터 포기할 수는 없잖아!”
청연이었다.
그는 자신의 활을 치켜들고 사방으로 활시위를 잡아 당겼다.
푸른 벼락과도 같은 화살들이 단숨에 쏘아졌으나, 들려오는 것은 화살이 사라지는 소리뿐. 어딘가에 부딪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아니했다.
“헛수고야. 묘청반석을 다루는 존재라면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놈이 아니라는거야.”
“놈? 작은 어머니가 아니고?”
“뻔하잖아. 우리가 아는 작은 어머님이 아니라는 소리야. 그분께서 굳이 이런 일을 벌일 필요도 없을 뿐더러 이렇게 틈 없는 계획을 세우실 수 있는 분도 아니니까.”
일말의 확신이 깃든 목소리였다.
호리를 잘 모르는 청연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지만 사천은 어느정도 동의하는 듯 보였다.
“그건 그래.”
“어? 왜?”
“그런 게 있어. 내가 본 모습이 모두 가짜라 해도 어머님들께 들었던 이야기가 있으니까….”
호리의 성정이 호방하고 철이 없으며 계획적인 자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여러 이야기를 통해 알고 있다.
그러니 여기까지 자신들을 데리고 온 존재는 호리가 아니라는 결론이 날 수밖에 없다.
“우릴 유무간까지 데려온 상태에서 가둔 걸 보면, 그 누구에게도 감지되지 않고 들키지 않게 우릴 데려갈 필요가 있었다는 이야기야.”
그게 누구인지 특정할 수는 없으나, 이렇게까지 공들여 자신들을 납치했다는 것은 필시.
“아버님과 관계된 존재겠지.”
게다가 자신들을 가둔 묘청반석.
묘청의 이름이 깃든 보물을 사용했다는 것을 보면….
꽤 적대적인 관계일 가능성도 염두해야 할지 모른다.
“게다가 어머님들조차도 눈치채지 못하신 걸 보면….”
“……아버님과 동등한 존재일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거지.”
“백부님과 동등한….”
허나 이 모든건 하나의 가정일 뿐.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럼 우린 이제 어떡해?”
청연의 물음에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천선은 제자리에 좌선하여 눈을 감았고 사천은 발밑의 륜처럼 생긴 둔보에 화염을 불어넣고 있었다.
윙윙거리는 소리가 사방을 울리고 단숨에 붉은 화염과 함께 사천의 불꽃처럼 쏘아졌다.
“사천!”
한순간에 사라진 사천의 모습이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반대편에서 안개 속에 불꽃이 번졌다.
그녀의 모습에 천선은 눈 감은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
“괜히 힘 빼지 말고 가만히 있어. 어차피 소선인 우리들 힘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는 봉인이야.”
“그건 네 생각이지.”
“상선이 되고, 향선이 되어도 지금 우리와 큰 차이가 없을걸.”
원선 정도는 되어야 뭔가 해볼법한 가능성이 생길 것이다.
“나한테 명령하지 마.”
“명령하는 게 아냐. 조언하는 거지. 바보 같은 너라도, 나와 같은 피를 이은 아버님의 자식이니까.”
“바보 같은 건 너겠지. 아버님의 피를 그렇게 진하게 물려 받아놓고도 아직 승선하지 못한 너.”
“어리석구나 사천. 난 승선하지 못한 게 아니야. 아직 때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지.”
“그런 개소리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넌 그냥 겁쟁이일 뿐이야. 다른 그 누구보다 가진 것이 많으면서도! 축복 받은 몸으로 태어났으면서도! 손에 쥔 것이 흘러내릴까 무서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멍청이일 뿐이야!”
콰아앙!
화를 참지 못한 사천이 쌍멸을 내질렀다. 동시에 붉은 적화가 터져나와 천선을 그대로 뒤덮었다.
“큭! 사천! 천선!”
곁에 자리한 청연마저도 익어버릴 정도로 뜨거운 화신통이었다.
“화신통을 다루는 이들은 대개 자기 안에 있는 화도 다스리지 못하면서 불꽃을 다루려 한다니까.”
쉬이이이익!
중얼거린 말소리와 함께,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사천의 적화가 천선의 손에 빨려 들어갔다.
그녀의 손안에서 작은 알갱이로 변해 얼려졌다.
구슬처럼 변해 봉인된 자신의 적화를 바라보는 사천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사천. 네가 승선에 실패한 이유를 내가 알려줄까?”
빙그르르, 적화가 봉인된 얼음 구슬을 허공에 회전시킨 천선이 흘기듯 사천을 바라봤다.
“그 입, 닥쳐….”
“네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고 싶거든 그에 걸맞는 실력을 키워. 자기 자신의 화도 제어하지 못하면서 네가 무슨 승선을 논하는 거니?”
“닥쳐!!”
콰지직!!
땅을 긁어내듯 위로 쳐올린다.
쌍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천의 적화와 튀어 오른 돌덩이들이 천선을 향해 쏘아졌다.
허나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는 듯, 천선은 손안에 들고 있던 적화를 봉인한 구슬을 내던졌다.
화아아악, 콰앙!
“지금 같은 상황에 서로 돕지는 못할망정 또 싸우려 들다니… 나도 이젠 모르겠다.”
콰앙! 콰아아앙!!
여기저기 폭발하고 난리가 나는 와중에도 청연은 신경 쓰지 않았다.
실력의 차이는 명확했다.
‘천선은 아직 제실력을 발휘하는 것 같지도 않고….’
사천만 흥분한 맹수처럼 달려들고 있는 상황이다.
새하얀 한기와 붉은 화기가 만나 몇 번의 폭발을 이루고 있으나, 그럴 때마다 상처가 쌓이는 것은 사천뿐.
싸움의 끝이 어찌될지는 따로 보지 않아도 알 정도였다.
‘사천과 달리 천선은 백부님의 화염을 쓸 수 있으니까.’
앞서 보였던 금천지화의 힘을 끌어 낸다면 사천을 쉽게 제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 이유는….
“금천지화를 피워라 천선!!”
“싫어.”
줄곧 이어진 사천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네가 승선에 실패한 걸 핏줄의 탓으로 돌리지마. 모자란 동생아. 네가 지닌 것도 다른 이는 가질 수 없는 훌륭한 거란 걸 왜 몰라!”
배다른 자매 싸움이다.
“에휴, 자매 싸움에 끼어들어서 좋을 게 없지.”
청연은 더 지켜보지 않고 멀찍히 떨어져 청나반을 꺼냈다.
쾅쾅!
한기와 화기의 뒤섞임 속에서, 청연의 손이 청나반을 잡았다.
* * *
저벅, 저벅.
휘적휘적 가벼운 발걸음이 유무간의 공간을 이지러트렸다.
한걸음, 한걸음이 당찼다.
자신감이 넘쳤다.
그 자신감의 연유는 손에 들고 있는 작은 단함.
묘청반석이었다.
휙.
순간 여인의 모습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허나 이내, 유무간의 가장 깊숙하며 은밀한 장소에 도달하니.
[왔나.]그곳에는 다른 거대한 존재들과 함께한 구영이 자리하고 있었다.
“혼돈의 주인을 뵈옵니다.”
[겉치레는 집어치워라. 묘청. 나는 주인도 아닐 뿐더러 너의 겉모양뿐인 인사 따위를 받고픈 게 아니다.]묘청이라 불린 얼굴이 모호한 여인은 숙였던 허리를 다시 꼿꼿이 폈다.
[빈손이라면 죽이겠다.]“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목숨을 위협하는 놈의 핏줄을 오랜 시간 공들여 가져왔나이다.”
휘리릭.
빙그르르 돌며 크기를 부풀리는 묘청반석이 허공에 떠올랐다.
이곳에 자리한 다른 천주들은 짧게 탄식과 감탄을 동시에 내뱉었다.
“오… 저것이….”
“아…. 결국….”
상반된 차이였으나 그의 핏줄을 잡아온 것이 확실해진 지금.
이곳에 자리한 천주들의 마음이 하나로 다잡혔다.
[너무 오래걸렸다.]천 년이 넘게 걸린 일이다.
굳이 그렇게까지 오래 공들일 일이었냐는 소리였다.
“어줍잖게 잡아왔다가는 오히려 놈을 이곳으로 불러들이는 꼴이 되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워낙 용의주도 하고 온갖 경우의 수를 대비하는 자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죠.”
그렇긴하다.
놈은 그런 놈이다.
오래 전.
놈이 다른 상계의 하늘을 자신의 것으로 하기 시작할 때.
그때 다른 천주들은 모두 그를 우습게 보았다.
바보 같은 짓을 한다 생각했다.
곧, 제풀에 지쳐 나가 떨어질거라 의심하지 않았다.
하나의 하늘을 품은 것만으로도 전신이 가득 차 다루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다른 하늘을 넘보다니!
그거야 말로 과욕이요, 오만이었다.
하여 내버려 두었다.
허나 놈.
금천은 달랐다.
하나, 둘 흡수한 하늘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하여 힘을 더욱 키웠다.
실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일은 이미 벌어졌고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금천의 힘은 커졌다.
본래 대라천의 존재이나, 영락하여 유무간에 갇힌 구영조차 이 어두운 혼돈 속에 몸을 숨길 정도로!
“유무간에 끌어들여서야 그의 시선이 분산되었습니다. 구영님도 잘 아시지 않으십니까. 그가 다른 천주들과 함께 당신까지 찾아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요.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놈은 자신의 핏줄을 매개체로 우리의 위치를 특정해 찾아들었을 겁니다.”
묘청의 말에 다른 천주들도 웅성거리며 수긍했다.
일전에 놈에게 섣불리 다가간 천주들의 결과가 어찌 되었는가.
미소 속에 감춘 칼날을 처맞고 죄다 놈에게 먹혀 버리지 않았던가!
“이것이 저의 최선이었습니다.”
[…수고했다. 정말 놈의 핏줄이 확실하다면 이리 숨어 있지 않아도 될 일이지. 물론, 네놈들을 말함이다.]“물론입니다.”
[그럼 열어라. 확인해봐야겠으니.]구영의 말에 묘청은 묘청반석을 열었다.
그때였다.
어두운 혼돈의 공간 속.
금빛이 찬란히 빛났다.
금천지화가 뿜어져 나왔다.
“뭣!”
“노, 놈이다! 금천이다!!”
“금천이 나타났소!! 이런…!!”
금천지화가 뿜어지자마자 천주들은 혼비백산하며 달아날 준비를 했다.
그간 얼마나 당했는지 금색 화염을 본 것만으로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지고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시끄럽다! 천주라는 놈들이 그리 벌벌 떨어서야 되겠느냐!]쿠웅!!
호들갑 떨어대는 천주들의 모습에 구영이 발을 굴러 일깨웠다.
[쪼그마한 놈이 제법이구나. 허나 상대가 나빴다. 그깟 자그마한 불로는 나 구영을 어찌할 수 없도다.]휘릭! 촤악.
구영의 머리중 하나가 입을 벌려 혓바닥을 채찍처럼 휘둘러 무언가를 잡았다.
이내 화염이 걷히고 보이는 것은 금색 머리칼을 지닌 소녀.
천선이었다.
[놈의 핏줄이 확실하군.]금천지화를 뿜어내고 있어 그런지 머리칼도 눈도 모두 금빛이다.
금천의 핏줄이 확실했다.
금색의 빛을 내고 있는 소녀는 분하다는 듯이 구영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고.
“이, 이거 놔!”
그 뒤로는 사천과 청연이 묘청의 손에 잡혀 있었다.
[신기하군.]“뭐가 말이십니까.”
구영의 눈이 향한 것은 금천지화를 뿜어내는 천선이 아니라, 그 뒤에 잡혀 있는 그녀의 배다른 동생.
사천이었다.
[놈의 피가 가장 진한 것은 이년이거늘, 어찌 한줌 피를 지니고 있는 저것이 놈의 쌍멸을 지니고 있지?]쌍멸을 왜 네년이 가지고 있냐며 사천에게서 빼앗는다.
“내놔!”
“닥쳐라.”
짜악!
뺨을 얻어맞은 사천의 입술이 터져 피가 후두둑 떨어졌다.
[네 아비가 이 안에 담아 놓은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네년은 아마 모를 것이다. 놈이 미처 흡수하지 못한 다른 하늘의 정수가 바로 이곳에 모두 자리하고 있으니.]어찌하여 그런 천기를 제 딸에게 건넸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것을 조금만 이해했어도 금세 승선했을 텐데 금천 놈이 자식복은 영 없는 모양이군. 차라리 네가 지녔다면 더 나았을 것을 크큭.]“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아버님께서 그리하신 것은 모두 뜻이 있음입니다. 저나 당신 따위는 감히 헤아리지도 못할 큰 뜻이!!”
절규에 가까운 천선의 외침에 사천은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과 함께 뜨거운 눈물도 함께 떨어져 내렸다.
“이것이 확실하십니까.”
[확실하다. 놈의 핏줄과 이만한 천기원(天氣原)이라면 충분해. 내가 이것을 다스리기만 하면 시건방진 놈을 찌부러뜨릴 수 있다!]그때였다.
사천의 눈 한쪽이 황금빛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사천!”
동시에 머릿속에 하나의 음성이 흘러들어온다.
-청나반을 쥐어라.
어느 순간, 청나반은 허공에서 선회하며 사천의 눈앞에 있었다.
이전과는 청나반의 모습이 달랐다.
달리 보였다.
이내 그것을 쥐자.
철컥.
청나반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순식간에 허공에 더 없을 정도의 거대한 문을 만들고 열리더니.
철컥.
열리는 문틈 사이로, 찬란한 금빛 물결이 혼돈을 밝힌다.
“이곳에 다들 숨어 계셨나.”
금천대사.
천범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