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72)
낭선기환담-571화(572/600)
낭선기환담 – 외전 11화
황금빛 물결을 자아내며 나타난 이는 머리칼도 눈도 후광도 모조리 금빛으로 찬란한 자.
태양을 품은 듯 주변을 밝히는 여러 상계의 하늘을 손에 쥔 천주.
“금천…!!”
금천대사.
천범이었다.
“그, 금천…!”
“진짜다. 이번에는 진짜야!”
“저놈이 어떻게 여길!”
“말도 안 돼! 이곳은 구영님의 안배로 만들어진 혼돈의 나락일 텐데! 어찌 저놈이…!!”
웅성웅성.
한순간에 엄숙한 공간이 한 존재로 인하여 시끄러워진다.
놀라움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허나 이내 그들 대부분은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를 했다. 은연중 피부가 따가울 정도의 살기를 내뿜는다.
하늘의 주인 정도나 되는 존재들의 살기는 원선이 드러내는 것과는 차원을 달리했다.
그들의 살기가 하나의 형상을 이루어 의지를 갖춘다.
마치 하나의 생명을 이룬 듯 강력하게, 흉포한 짐승이 이를 드러내듯.
“아버님!”
“아버지!”
“백부님!”
화들짝 놀라 천선과 사천, 그리고 청연이 소리쳤으나 그는 표정 하나, 눈동자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쿠우우우우-
솨아아.
잔혹한 죽음의 형상을 갖추지만 이내 눈길조차 주지 않는 천범의 금빛 후광에 연기처럼 사라졌다.
“헛!”
“…….”
그 모습에 놀란 것은 이곳에 자리한 나이 어린 소선들만이 아닐 것이다.
“놈의 빛이….”
더욱 강력해졌다.
당금의 금광으로 보건대, 놈의 힘은 이전보다 더욱 강력해져 있었다.
그것을 알려주듯 천범의 시선은 천주들이 아닌, 오직 구영 하나만을 바라보고 있었으니….
아이들의 뜨거운 눈길조차 외면한 채, 천범은 구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좀처럼 답을 주지 않으신다 생각하기는 했습니다. 모습을 감추셨길래 골몰하고 계신다 생각했습니다만….”
슬쩍 눈길을 주위에 돌리고는 다시금 구영을 바라보고 싱긋 웃는다.
“역시나 다른 천주분들과 작당하여 모의를 하고 계셨습니까. 구영.”
이름에 경어가 빠져 있음을 눈치채지 못한 자는 없을 것이다.
구영은 영락했다고는 하나, 본래 혼돈에서 태어나 대라천을 영위했던 고귀한 존재. 그런 그의 이름을 불렀다는 뜻은, 이미 마음을 달리했다는 뜻이나 다름없을 터.
[……모의라니. 상계의 천주는 말을 가려 하라.]구영의 성격상, 당장 노발대발하며 성을 내는 것이 당연했다.
허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천범을 그저, 하나의 천주로만 대한다는 듯 말했으나, 그 어투는 더 없이 신중하고 진중했다.
마치 자신과 동급의 신을 바라보는 태도. 그런 구영의 모습에 묘청의 동공이 정처 없이 흔들렸다.
“묘청. 나 대신 나의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었나.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군. 덕분에 오래 보지 못한 얼굴들을 전부 찾게 되었으니.”
“…….”
천선을 붙들고 있는 묘청의 안색이 잔뜩 찌푸려졌다.
“무엇을?”
[네놈은 이곳을 찾을 수 없었다. 찾아서는 아니 되었다! 한데도 결국 찾아냈다는 뜻은 미리 알고 안배를 해놓았다는 뜻일 터!]그 연유를 묻는 것이리라.
구영의 질문에, 천범은 천천히 눈알을 굴리다 묘청을 바라보았다.
“나의 하늘에 침입한 첩자 하나 가려내지 못할 정도로, 내 눈이 옹이 구멍인 것은 아닌지라.”
“그럴 리가! 구영님조차 눈치채지 못할 대력묘청술(大力妙淸術)이었다!”
거창한 이름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신통이다.
자신의 존재 자체를 지우고 다른 것을 빌리어 모습과 기운을 속이는 묘청의 독문공법이었다.
구영 또한 그녀의 대력묘청술의 대단함을 알았기에 상천으로 보내어 거사를 진행했었으나….
“그깟 조잡한 신통으로 내 눈을 속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가.”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네놈…!!”
“묘청, 자신감이 넘치면 그것은 자만이 되고 후엔 오만이 된다. 네년은 너 자신을 너무 믿더군.”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는 법.
그걸 간과하여 자만에 빠진 것이다.
“그럼 처음부터….”
“지켜보았다. 그러다 깨달았지. 네년 혼자 벌이는 일이 아니란 것을.”
호기심은 곧 기회가 되었다.
“상계 대부분의 천주들이 모습을 감추고 구영까지 유무간 어딘가에 두문불출했다. 그 연유야 뻔했으나 어디 숨어 있는지 찾지를 못하니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지.”
허나 묘청.
“네가 내게는 묘수가 되었다.”
“하여 네 자식들을 미끼로 쓴 게냐!”
그제야 천범은 아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청연은 울고 있었고, 사천은 눈물을 꾹 참고 있었다.
그리고 천선은 웃고 있었다.
“그래.”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아비 실격이로군.”
“그럴지도 모르지.”
“네 핏줄이 죽어도 상관 없었나!”
천선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날카롭게 일갈했으나 범은 담담한 낯으로 답했다.
“죽을 이유가 없다.”
자신의 자식을 미끼로 써놓고 죽을 이유가 없다니!
“어찌 그리 확신하나! 상계 천주들의 천기를 취하였다 하여 마치 네가 진짜 대라천의 진선이라도 된 줄 착각이라도 했던 것이냐?”
묘청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그를 비웃었다.
허나 천선의 목에 가져간 비도는 더욱 가까웠고 살갗에 닿는 차가운 법기의 기운은 예리했다.
“착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현실을 온전히 직시하고 있는 것이지.”
“개소리.”
“그렇다면 시험해 보겠는가.”
묘청의 아미가 움찔거렸다.
말인즉슨.
“찔러보라… 이것이냐?”
“그래.”
그 대담한 답변에 묘청은 물론, 사천과 청연마저 화들짝 놀랐다.
“수선하는 자들이 대개 그렇다지만 너 또한 비정하기 짝이 없군. 허나 금천! 넌 날 잘못 봤다. 네깟 게 하라면 못할 줄 알았겠지? 넌 오늘 일을 평생에 걸쳐 후회할 것이다!!”
푸욱!
“천선!!”
“아….”
묘청의 비도가 천선의 목을 꿰뚫었다.
“원망하거든, 비정한 네 아비를 원망해라… 어?”
천선을 향해 마지막 말을 하려던 묘청의 표정이 묘해졌다.
분명 천선의 목을 찔렀다.
한데 이상하게 그녀의 목에서는 황금빛이 일어나고, 자신의 비도는 날이 사라지고 손잡이만 남아 있었다.
“무슨… 꺄악!”
그리고 그 금빛은 점점 더 커져 이내 묘청을 잡아 먹었다.
“금천, 이 빌어먹을 자식이!! 끄아아아아악! 뜨거워! 뜨거워어어!!”
묘청은 천범의 불길에 휩싸여 전신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어찌해도 꺼지지 않는 불길을 휘어잡으려 부단히도 애를 썼으나, 그 말로가 어찌 될지는 뻔할 뻔자였다.
“내 말하지 않았나.”
죽을 이유가 없다고.
[당했군.]그의 불길에 휘감겨 생명을 불태우고 있는 묘청을 보며, 구영은 차분하게 생각했다.
‘애초에 잘못된 계책이었다.’
놈의 힘을 이곳에 있는 다른 상계의 천주들보다 조금 윗 정도로 쳐준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아니, 제대로 알려 하지 않았다.
애써 부정하려 했다.
허나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놈의 힘은….’
간과할 수 없을 만큼 커져 있었다.
“네놈!! 아무리 그렇다 해도, 네놈은 적진에 들어온 머저리일 뿐이다! 네놈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우리 모두를 상대할 수 있을성싶으냐!”
“네놈이야말로 우릴 너무 만만하게 보았어! 이럴 때를 대비하여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나!”
팔괘를 기본으로 한 여러 진법이 발밑에 별빛으로 수를 놓았다.
이내 반짝이는 별빛들에서 웅장한 모습의 괴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수가 수천에 달했다.
하나하나가 원선태사에 가까운 힘을 지닌 괴뢰들. 강력한 성운지력을 뿜어내는 괴뢰군대.
게다가 제각각 발하는 천주들의 화려한 신통들과 강력한 기운.
그것들에 의해 혼돈의 공간이 왜곡되고 격한 파장이 휘몰아친다.
“아버님!!”
그 어마어마한 힘의 압력에, 천선과 아이들은 걱정어린 눈길로 천범을 바라보았다.
허나 그는 여지껏 그래왔던 대로 담담한 낯으로 답했다.
“너희는 내 자식이다.”
그러니 걱정 말라.
너희들이 죽을 이유는 없으니.
촤아악.
천범이 한쪽 어깨에 걸고 있던 피풍의를 벗어 아이들에게 덮어주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피풍의가 절로 펄럭거리며 그들을 보호하듯 기묘한 법칙 술식을 그리며 포근한 따스함을 안겨주었다.
“보거라.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공부가 될 터이니.”
스릉.
천범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두 개의 검 중 유독 새하얀 검 한 자루가 청아한 검명을 드러내며 뽑혔다.
수천의 괴뢰.
수십의 천주.
공간이 붕괴될 듯 강력한 기운들이 그를 잡아 먹으려 하는 때.
“화란.”
담담히 뽑아든 검 한 자루를 이내 내리 그으니.
스르륵.
일순.
천주들의 눈에 아름다운 매화나무 한 그루가 비추었다.
흠칫 놀라 눈을 깜빡이고 다시금 눈을 떴을 때.
“끄아아아악!”
그들의 세상은 어느새 천지가 불길로 휩싸여 지옥이 선명했다.
* * *
‘다 죽겠군.’
얼핏 열세에 몰린 것 같은 천범의 모습이었지만 구영의 눈에는 보였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다른 천주들과는 달리, 천범은 여유가 있다는 걸.
여유.
다른 놈이었다면 머저리라 욕하고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수십에 달하는 천주들과 혈혈단신인 놈의 승부가 어찌 될지는 뻔하디 뻔한 노릇 아니겠는가.
허나 그가 그저 그런 놈이 아닌.
이미 여러 천주들의 기운을 취한 천범이었기에, 다른 놈들은 감히 생각지도 못하며 실행에 옮길 수도 없는 터무니 없는 짓을 벌이는 놈이기에.
좋게 말하면 대범하고.
나쁘게 말하면 무모한.
그런 놈이기에.
구영은 여타 천주들의 죽음을 자연스레 예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불길한 예견은.
“끄아아아악!!”
어째 잘 틀리지가 않는다.
[옛날부터 그러했지. 내가 바라온 일들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고, 설마 설마하며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왔던 일들은 선명하게도 내 앞에 다가와 나를 농락하듯 나타나지.]고고히 검 한 자루를 든 채.
수백의 괴뢰들을 썰어버리고.
그걸로 모자라 자리한 천주들 수십의 목을 베어버린 저 자태를 보라.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할 일을 해내고서 그게 당연한 일인 듯, 태연하게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그들의 천기를 취하는 저놈을 보라!
[처음 봤을 때부터 여간내기가 아니라 생각 하기는 했다만….]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처음 봉황의 분혼 쪼가리와 함께 당도했을 때부터 영 이상한 놈이라 생각하기는 했다.
허나 그래봤자 하계의 미천한 존재.
제깟 놈이 해봤자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는 것 이상 하겠는가 싶었다.
[그런데 그 지렁이가 용이 되어….]이제는 자신에게 이빨을 드러내니.
[허허….]격세지감이 느껴지지 않을쏘냐.
“구, 구영! 구영님!! 제발…!! 읍읍!”
천범은 천주 하나의 입을 틀어막아 금천지화를 뿜어 산화시켜버리고 구영을 살심 가득한 눈길을 보냈다.
“어찌 하시겠습니까.”
구영은 답하지 않았다.
무엇을 묻는지 알면서도, 구태여 답하지 않았다.
아홉 개의 머리가 일치하여 답하지 않는 점은 꽤 오랜만에 일어난 일이라 상황의 심각성에도 왠지 모르게 웃음이 피어 나왔다.
“일전의 답변.”
지금 들어볼 수 있노냐고.
[지금 그 태도는 답변을 기다리는 사람의 자세가 아닌 것 같군.]“구영. 저는 대라천에 맞설 겁니다.”
[터무니 없는 짓이다.]“허나 당신 또한 바라마지 않는 일이겠지요. 저보다 하늘에 대한 원망이 가득한 것이 바로 구영, 당신이시지 않습니까.”
[…그렇다 한들. 대라천에 맞선다는 광증 돋은 말을 내뱉지는 않지.]“그럼 제게 대흉의 목을 거둘 영광을 주시겠습니까.”
[그리할 수는 있는가.]“대라천을 뒤엎으려는 자가, 고작 대흉의 목 하나에 벌벌 떨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힘을 쏟아 부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스르릉. 청아한 검명이 구영의 귓가를 간지럽히 들려왔다.
“제가 거느리는 상계의 하늘이 일백을 넘고, 이백이 넘었죠. 그 천기를 전부 제 것으로 했습니다.”
[하나의 하늘만 해도 감당키가 어려운 것이거늘, 그것들 전부를 너의 것으로 했다는 말인가?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는군. 그게 가능했다? 진선의 격을 이루지도 않고?]일반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
허나 눈앞에 자리한 사내의 힘을 보고 느낀 지 오래다.
내뱉은 말에 거짓은 없다.
보여준 힘 자체가 증거이니.
“적의 적은 동지라고 하지요.”
[대라천을 두고 그런 미친 소리를 하는 놈은 네가 처음이다.]참으로 이상한 놈이다.
궁극이라 할 수 있는 수선의 끝.
진선으로의 길로 향하는 대라천을 저리 적대하는 놈이 있을 수 있는가.
하여 물을 수 밖에 없었다.
[어째서냐.]어째서 이런 무도한 짓을 벌이면서 대라천을 뒤엎으려 하느냐.
그리 물으니.
천범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달싹여 그에게 전음했다.
그리고 잠시 뒤.
[…….]한참을 침묵하며 골몰하던 그는 이내 고개를 크게 주억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