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74)
낭선기환담-573화 (외전 완)(574/600)
낭선기환담 – 외전 13화
휘잉.
살뜰한 바람이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푸른 초원 저편으로 사라졌다.
눈을 뜬 소년은 이곳이 백부와 함께 있던 천선산이 아님을 깨달았다.
“아, 집으로…… 돌려보내 주신 거구나.”
이곳은 본래 그의 아비인 청명과 함께 수행하던 장소였다.
본래라면 공간법칙의 대가라 불리우는 그가 만들어낸 장소이기에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곳.
‘어머니도 청역(靑域)에는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시는데….’
허나 금천은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제 아비의 공간을 뚫어내 자신을 이리 귀환시켰다.
그 신통의 놀라움에 한 번.
그리고 어느새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한 권의 책을 보며 또, 한 번.
그는 놀랐다.
“사천은 그대로 상서로 가버렸지.”
천선은 자신의 선산인 천선산에서 벗어날 이유가 없었다.
청연은 수계가 아닌 선계의 소선.
당연히 그녀들과는 헤어져 이곳으로 오는 것이 맞았다.
항시 존경하는 자신의 백부이자 하늘의 주인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아쉬움을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었는데….”
하지만 함께 있을 이유가 없었다.
“천선이나 사천이나, 뭔가를 깨달은 모양이었고 함께하고 있을 이유 또한 사라져버렸으니….”
그리고 그가 보여준 무위와 몇 마디 말은 하나의 벽을 앞두고 있는 소선들에게는 천금과도 같은 것.
여유롭게 담소나 나누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대라천은 줄곧…….’
그의 마지막 말이 청연의 귓가에 어른거렸다.
부르고 있다.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으나 신기하게도 금천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청연의 가슴을 울렸다.
그의 표정, 음성, 그리고 눈빛이 말하는 바는 표리했다.
“백부님 또한 정진을 생각하신다.”
하늘의 주인인 존재도 정진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것은 이제 도라는 것을 깨우치고 있는 소선들에게 더 없는 깨달음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었다.
청연은 다시금 자신의 손에 들린 책을 보았다.
[청연, 이것을 가져가거라.] [네, 넵! 근데 이것이 무엇입니까?] [네 아비에게 보이거라. 그럼 네 마음속에 자리한 근심도 사라질 거다.]오래된 고서이다.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흐른 것인지 제목을 잘 알아볼 수 없었다.
“산…해… 뭐지?”
뒷글자는 읽어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헤져 있었다.
이것을 보이면 근심이 없어질 거라니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나한테 근심이 있었던가.”
잠시 고민해봤으나 모르겠다는 이유가 지배적이다.
청연은 더 깊게 생각지 않기로 했다. 아버지에게 보이라 하셨으나 응당 그리하면 될 것이다.
푸른 초원이 드넓은 이곳은 청역.
청전대사 청명의 영역이다.
그러니 당연히.
“아버지!!”
스윽.
“다녀왔느냐.”
부르면 나타난다.
“아버지. 소자, 백부님을 만나 뵙고 왔습니다.”
“그것이구나.”
청명은 이미 알고 있는 듯, 청연이 들고 있는 서책을 보았다.
청연은 고서를 건네며 답했다.
“백부님께서 이것을 아버님께 보이라고…….”
“그래. 형님께서 이번 일이 마무리 되면 내게 보내신다 하셨다. 이것을 보면 나 또한 얻어갈 것이 있으리라며 말씀하셨지.”
“그, 그런 대단한 물건입니까!?”
청전대사 청명이 깨달음을 얻게 될 서책이라니!
청연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선계의 절대자라 불리우는 청명이니 세상 모든 것을 깨달았다 해도 청연은 수긍이 가능했다.
한데 그런 그가 깨달음을 얻고 자신의 근심을 덜어줄 물건이라니.
‘이 고서는 무슨 소원이라도 들어 주는 신기인 건가?’
청연은 감히 고서에 담겨 있는 글귀가 무엇일지 짐작도 하지 못했다.
“음….”
본래라면 아무리 좋은 물건이 있다 해도 자신보다 아들부터 챙겼을 좋은 아비가 바로 청명이다.
한데 지금은 고서에 눈을 떼지 못하고 신식으로 내용을 읽고 있었다.
그 얼굴의 표정이 참 다양했다.
감탄과 찬사가 흘렀다가, 이내 미간을 찌푸리고 붉으락푸르락하더니 다시금 작은 탄성을 자아냈다.
일순 천변만화와 같은 아비의 표정에 청연은 눈도 깜빡하지 못했다.
그리고 잠시 뒤.
눈을 뜬 청연의 눈빛이 개안한 듯 맑고 빛이 났다.
“아버님…?”
뭔가 달라진 듯, 달라지지 않은 듯한 얼굴과 분위기를 풍긴다.
청연은 제 아비가 깨달음을 얻어 수행의 증진이 생긴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하하하하하하하하!”
돌연 그는 답지 않게 커다란 웃음을 터트리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하여 물으니 청명이 답하기를.
“산해발산고.”
“산해…발산고?”
“네게는 이른 하늘의 진실이다. 그래… 형님 또한…… 이러한 불경이 또 있을까.”
청명은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다가 돌연 들고 있던 접선을 펼쳤다.
촤르륵.
그러고 접선을 살살 부치니 어느새 푸른 초원이 드넓게 펼쳐진 청역은 사라지고 공간 자체가 흐물흐물한 미역처럼 힘이 없어졌다.
탁!
접선을 접자 흐물흐물해지던 공간이 연기처럼 사라지며 천궁의 풍경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두 손 모아 다소곳이 기다리고 있던 천녀.
연아가 화들짝 놀라 토끼 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
“왜….”
청역이 사라졌냐 물으려는 찰나.
“이제 필요 없어졌소. 부인.”
청명이 그녀의 두 손을 붙잡고 말했다. 갑자기 손을 잡자 얼굴이 붉어진 연아는 동그란 눈을 연신 깜빡였다.
“수행의 진전이 있으셨습니까?”
“그렇소. 이제 떨어질 필요 없으니 이리 한걸음에 달려왔소.”
“그런…….”
자세한 사정 따위야 모르겠으나, 자신이 들고 온 고서 하나로 저리 된 것은 알겠다.
‘근심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금세 다정해진 부모의 모습을 보아하니 정연의 입가에 호선이 짙었다.
* * *
평화로운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아주 오랜 세월이 흘렀다.
평화라는 것이 응당 그러하다.
세월과 함께하여 자신의 존재를 흐릿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평화다.
하여 그것이 희미해졌을 때, 세상은 다시 난세가 펼쳐진다.
허나 난세라는 것이 꼭 누구에게나 통용되지는 않았다.
거대한 복사나무가 하늘을 기둥처럼 떠받들고 있는 공간.
산들바람에 휘날리는 복사나무의 꽃잎이 만연한 그곳.
커다란 나무뿌리 밑에 책상을 앞에 두고 유려한 글씨로 붓을 움직이는 사내가 하나 있었다.
곁에는 여러 여인들이 자리했으나, 입 열지 않고 조용히 사내의 곁을 지키기만 했다.
잠시 뒤.
복사나무에 자리한 사내의 금안이 조용히 떠올랐다.
그가 바로 모든 상천의 주인.
상계의 지배자.
금천대사. 천범이었다.
“흠…… 때가 되었나.”
상천. 이제는 그 자체라 보아도 무방한 하늘을 제 것으로 했을 때부터.
그는 줄곧 그것의 부름을 받았다.
목소리도, 손짓도 아니었으나 막연한 감각은 아니었다.
언제든지. 한 발 내디디면 문이 열릴 듯한 그러한 감각.
거대한 해일에 휩쓸릴 것 같으면서도 부서지는 파도 속에 길이 있어, 그 길 따라 몸을 내던지고 싶었다.
말로 다 하기 힘든 이상 기묘한 감각이 잠시 정신을 놓으면 전신을 잠식시키듯 퍼져나가니.
자꾸만 그것으로 족하고 싶어진다.
이 또한 대라천의 뜻인가.
아니면 나의 미망일 뿐인가.
“금천. 하계의 하천 대부분의 원기를 수복했습니다. 아직 조정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균형이 유지 되기는 할 것 같군요.”
스윽.
벼루에 붓을 내려놓고 시선을 들자, 말을 건넨 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상천해월의 원선태사.
절마대군이었다.
“음.”
이곳의 하늘을 제 것으로 했을 때부터 줄곧, 그를 도와 다른 하천들의 관리를 도맡아 했다.
이전에는 하기 싫은 기색이 역력했으나 이제는 제 일인양 시키지 않은 일들도 알아서 처리하게 되었다.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는 일이다만.’
금천의 대소사 중에서도 소를 맡아 처리해주니 그에게는 나름 믿음직한 일꾼이었다.
함께한 세월도 꽤 오래되었으니.
“근데 그건 뭔가.”
품에는 돌돌 말린 비단이 한 가득이었다.
“금천께 건네달라 부탁하더군요.”
얼추 보아하니.
“상소문이군.”
그의 휘하에 있는 상천의 천주들이 보낸 상소문이었다.
“읽어보게.”
상소문 몇 개를 펼쳐 읽어보니.
“위대하신 상계의 모든 하늘의 주인이시자, 큰 하늘을 대적하실….”
“본론만.”
“음… 일이 많아서 힘들다는군요.”
대개 그런 식이었다.
상계의 상천.
그것들은 대개 이백 몇십 개 정도가 있는데, 절반에 달하는 천주를 금천이 소멸시켰다.
그렇다 보니, 다른 상천에 걸맞은 천주. 즉 적임자를 찾아 관리하게 해야 하는데 그전까지는 지금 있는 천주들에게 맡겨 놓았다.
그리고 잊고 있었는데….
“산군과는 달리, 다른 천주분들은 감당키 어려운 일이지요.”
곁에는 어느새 화란이 자리하여 있었다. 산들바람에 흔들거리는 복사꽃 나뭇가지를 툭 끊어낸다.
그리고는 툭툭 그를 찌른다.
금천은 이내 신경을 끄고 상소문을 직접 살폈다.
지닌 그릇에 비해 넘치는 부담을 안고 있어 힘들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것도 비슷한가.”
“예. 비슷한 내용입니다. 본래 하나의 하늘도 벅차했던 자들이니 이리 상소문을 올리는 게 당연합니다.”
두 개 세 개.
많게는 갑자기 넷에 달하는 하늘을 관리하다 보니 골병이 드는 것이다.
천주라 한들, 제 그릇을 키우는 일은 어려운 법이니 힘에 부칠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천주를 만들어 인계하면 될 텐데.”
“하지만 괜한 놈을 천주로 만들면 제 힘에 취해 감당치도 못할 과욕을 부려 상천을 망치잖습니까. 저번에도 한 번 그런 전례가 있지요.”
천주라 한들.
결국 원선의 끝자락에 있는 자다.
대라천과 닿지는 못했으나 상천과 맞닿아 하나된 존재이다.
본래, 조화를 이루어야 하나 상천의 힘에 취하여 제멋대로 군다면 그만큼 재앙인 것도 없다.
“그러고 보니 그러했지….”
어쭙잖은 놈을 천주로 임명했더니 제 힘에 취해 까불던 놈이 있었다.
다른 천주와 힘을 겨루다 둘 다 상해를 입고 천기도 뒤엉켜 그것을 복구하는 일에 적잖은 여력이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런 놈들 중 한 놈도 금천께 적잖은 무례를 저질렀었잖습니까.”
“으음… 그랬던가.”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하긴, 그러고 보니 세월이 꽤 지났지요… 아!”
절마대군은 잠시 잊고 있었다는 듯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왜 그러는가.”
“그러고 보니 그때 무례를 저질렀던 천주를 멸하지 않으셨지요. 어째서 그러셨습니까.”
손속에 정이 없는 사내다.
여타 천주들에 관해서는 더더욱 그러했고, 자신에게 이를 드러낸 자에 관해서는 탈이 없도록 깔끔하게 소멸시키는 것이 금천이다.
한데 이상하게 힘에 취한 천주를 멸하지 않고 봉인했었다.
그때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으나, 지금 그의 태도를 보니 묘하게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그랬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군.”
기억하지 못할 리 없다.
수선의 기억에는 망각이 없다.
상계 자체의 주인이나 다름없는 금천이 마치 범인처럼 기억을 망각하 기나 하겠는가.
그제야 절마대군은 그가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꽤 신비한 자색의 눈을 지닌 천주였지요. 지닌 신통의 특별함 또한 나무랄 데가 없었으나… 뭔가 이상한 말을 하는 자였지요.”
절마대군은 잠시 턱을 짚고 곰곰이 생각하다 금천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 자들이 몇몇 있는데, 그때마다 금천은 그들을 멸하지 않았다.
봉인했다.
왠지 모를 씁쓸한 눈을 하고서.
삭막한 성정에 제 힘에 취해 날뛰는 놈들을 동정했을 리는 없으니.
뭔가 이유가 있을 터.
“그들 중, 몇몇이 했던 말은 저 또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상하게 그들 대부분은 금천을 바라보며 반가워하다가도, 이내 더 없이 분노하였다.
“산해발산고를 아느냐였죠?”
그러자 금천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금천의 등 뒤에 피어난 복사나무의 복사꽃을 건드리며 말하는 란은 장난기 가득한 낯으로 미소 지었다.
“그러고 보니 오래 전, 다른 상계에 속해있는 하천의 천기를 다스릴 때 발견하신 진선의 흔적이라 말씀하셨던 서책들의 이름이…….”
금천은 슬쩍 란을 쳐다보고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이내 금천은 품에서 서책 한 권을 꺼내 내던졌다.
툭.
얼핏 보자면 평범한 서책처럼 보이는 것이나, 그 안에는 쉽사리 헤아리기 힘든 힘이 느껴졌다.
그것의 이름 또한.
산해발산고.
“그들이 말했던 게 이거군요.”
“……그래.”
산해발산고를 잠시 펼쳐 보이던 금천은 이내, 품에서 서책 몇 권을 더 꺼내어 내던졌다.
“그건….”
“같은 책이다.”
산해발산고.
모두 같은 이름, 같은 재질.
같은 기운이 담긴 서책이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금천의 눈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담으며 촛불처럼 일렁였다.
“각각의 내용이 다르더군. 허나 대개 비슷한 줄거리였다.”
“…무슨 말씀이신지.”
“놈 또한… 이것을 보았다더군.”
절마대군의 눈썹이 팔자를 그렸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리기 어려웠다.
대체 이 서책이 무엇이길래.
“제가 한 번 보아도 되겠습니까.”
하며 손을 뻗으려는 찰나.
턱.
그는 아니 된다는 듯, 서책에 손을 덮으며 고개를 저었다.
“필히 후회할 것이네.”
“……어째섭니까.”
“진선의 서책은, 범인과 수선을 가리지 않아.”
“그게 무슨….”
“나 또한, 서책의 힘에 이끌릴 뻔하였으니 자네가 보게 된다면 어찌 될지는 뻔하겠지.”
그럼에도.
“탐독하고 싶으신가.”
미지의 것에 대한 탐구.
수선이라면 바라마지 않는 것.
허나.
그가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의 무게가 심상치 않았다.
절마는 산해발산고에 뻗어진 손을 도로 거두었다.
“잘 생각하셨네.”
때론 몰라도 좋을 진실이란 것이 있기 마련이니.
“나 또한…….”
금천의 눈이 감겼다.
오래전.
자신의 딸 아이가 했던 말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맴돌았다.
-하여 알고 싶어요. 아버님께서 어떤 장난질을 당하셨는지.
장난질이라.
그럴지도 모르지.
-대체 무엇이 대라천을 그리 증오하게 만들었는지.
다시금 눈을 뜬 금천은 눈앞에 자리한 여러 권의 산해발산고를 보았다.
‘증오라….’
그때나 지금이나.
증오의 감정이 피어나지는 않는다.
다만.
“남은 것은 탐구심뿐.”
이따위 것으로 대체 무엇을 하려고 하였는지.
나와 같은 존재들을 만들어 바라고자 함이 무엇인지.
이 탐구심의 결말이 무엇일지.
‘그저 궁금할 뿐.’
화르륵.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산해발산고의 서책을 모조리 불태웠다.
“헛! 어째서…!”
“진선의 흔적이라 하셨잖습니까!”
“서방님…….”
화마에 휩싸인 서책들은 이내 형체를 잃어버리고 타들어 갔다.
그 속에는 언젠가.
그가 읽었던 산해발산고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 원하는 것은 진실인가. 아니면 진리인가.’
이 또한 명확하지 않은데 어찌 멈춰있을 수 있을까.
적당한 때는 도래했다.
“…천주들에게는 무어라 전할까요.”
“전할 필요 없다.”
상계의 주인이 말하는 말이다.
무엇 하나 허투루 들을 수 있을까.
허나 질문지 않을 수 없으니.
“그럼…”
“곧 알게 될 거다.”
자리에서 일어난 금천이 한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이내 천지가 뒤집히고 눈이 멀 정도의 빛이 열리니.
“으읏…!”
초아가 환한 빛에 고개를 돌렸다.
태양을 오래 직시하여도 멀쩡할 원선태사였으나, 강대한 힘이 담긴 빛무리를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금천은 고개를 들어 그 빛을 직시하였다.
마치 하늘이 열리는 듯했다.
허나 한 번이 아니다.
열리고 열려.
하늘은 쉼 없이 열리기만 했다.
하나가 열리면 또 하나가 열리고, 다른 하나가 연달아 열렸다.
마치 만화경 속을 살피는 듯 모든 세상 만물이 형태를 이루었다 사라지고 다시금 재창조되었다.
쿠웅!!
하늘이 열릴 때마다 온갖 것들의 힘이 떨어져 내리듯 금천을 눌렀다.
찍어 눌렀다.
그를 죽이고 찍어 내리듯이.
허나 그는 버텨냈고, 모든 하늘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잠시 뒤.
[너의 이름은 무엇인가.]정체 모를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닿았다.
여인 같기도, 사내 같기도 한 애매한 음성이었으나 그 음성에 담긴 기운은 그가 겪은 모든 하늘을 담아도 부족함이 없을 힘이었다.
저 작은 음성에 담긴 힘을 대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그는 한 가지밖에 생각할 수 없으리라 자조했다.
대라천.
그리고 대라선.
금천은 실소를 머금으며 답했다.
“나의 이름이라. 그런 것을 물을지는 꿈에도 몰랐는데…….”
그는 잠시 고민했다.
그에게는 이름이 많았다.
본래는 범.
이후에는 대호.
다음은 산군, 천범, 금천 등등.
이것을 제외하고도 그를 지칭하는 명사는 다분했다.
친우들이 그를 부를 때.
부인이 부를 때.
핏줄이 부를 때, 그는 각각 다른 명칭으로 불리우나 모든 것이 그를 부르는 지칭이다.
하여 그는 고민했고 답을 했다.
“난.”
그의 입가에 표표히 오른 미소가 감정을 대변했다.
“낭선.”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도는.
“한낱, 낭선이오.”
낭선기환담(浪仙奇幻談)
외전(外傳)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