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76)
낭선기환담-575화(576/600)
2부 285화 – 특별 외전 2
서황모와 천선시서.
그 소리를 들은 낭선은 묘한 그리움을 담아 물었다.
“서황모란, 서쪽의….”
“예, 대라천의 대라상제(大羅上帝)를 지키는 동서남북의 대봉(大鳳)들을 뜻하는 말이랍니다. 그건 아시지요?”
대라의 주인이라는 대라상제.
그리고 그를 지키는 동서남북의 봉황들을 뜻하는 말이었다.
“예. 대충은 들어보았습니다. 하지만 실재하는 줄은 몰랐군요. 전 봉황이라는 존재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어머나. 귀선께서 몸담고 있던 하늘은 대라와 연이 없었나 보군요.”
“아쉽게도 그러했지요.”
낭선이 있던 상계는 그러했다.
다른 상계와 교류하며 그들의 힘을 흡수하기도 했으나 바탕에 깔린 지식까지 전부 취하지는 못했었다.
이 나이를 먹어서도 새로운 지식은 그를 즐겁게 했다.
“희, 괜찮다면 조금 더 결례를 범해도 되겠습니까.”
“결례라니요. 산해발산고를 지니셨다는 뜻은 서황모의 귀빈이라는 말과 다를 바 없습니다. 다행히도 낭선께서는 궁금한 것이 많은 듯하니,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눌까요?”
“그리해 주신다면 저야 감사할 따름입니다.”
생긋 웃는 천도를 닮은 그녀 상희.
상희는 궁장과 날개옷을 잠시 펄럭였고, 그러자 이내 땅 밑에서 새하얀 나무로 만든 탁자와 의자가 나왔다.
아마도 금천도가 열리는 복사나무로 만든 것인지, 금빛이 어려 있었다.
“자, 앉아보아요.”
뭐가 그리 재밌는지 상희는 낭선의 손을 이끌어 앉아보라 권했다.
부드러운 여인의 손이 거친 사내의 것에 닿자 화들짝 놀라며 귀가 붉어진다.
“오랜만의 손님이라 제가 조금 신이 난 모양이에요. 이해해주세요.”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이리 아리따운 분께서 호의를 보내시는데 싫어할 사내가 어디 있겠습니까.”
“어머나.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소녀의 마음이 한결 편하네요.”
낭선은 여러 이야기를 물었다.
대라천에서 나타나는 힘의 척도.
그리고 법칙합일.
그것을 이루어 대라천을 주름 잡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서황령의 서황모라 불리는 대봉과 동서남북의 다른 대봉들.
그리고 대라천의 주인이라 불리기도 하는 대라상제.
그보다 높은 신위를 지닌 원시천존(元始天尊), 그리고 삼청(三淸)이라 불리는 옥청, 태청, 상청의 존재들.
“도움이 되셨나요?”
“물론입니다. 희. 그대가 아니었다면 이 궁금증을 쉽사리 해소하지 못했겠지요. 감사드립니다.”
허나 한가지.
해소하지 못한 궁금증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희께서는 저를 서황모의 귀빈이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산해발산고라는 천선시서를 만드신 그분을 제가 만나 뵐 수 있다는 말이신지요.”
낭선의 물음에 상희는 잠시 고민하는 듯 아미를 좁혔다.
“제가 귀선께 서황모의 귀빈이라 말씀을 드렸으나, 그것이 그분을 만나뵐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리 말하며 상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뿐사뿐 천도 나무 주변을 거닐었다.
“귀선께서 천선시서를 지니고 있다는 뜻은 그분의 안배가 나타났다는 것과 다름이 없겠지요.”
서황모의 안배.
천선시서 산해발산고에 빠져 들어온 낭선 자체가 그녀의 안배라면.
당장에라도 찾아가 묻고 싶은 것이 바로 그였다.
“제가 그분의 안배라면. 어째서 만나뵐 수 없는 것입니까.”
“너무 노여워 마세요. 당신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쉽게 말하자면 서황모님은 이곳에 있으나, 이곳에 없으신 분입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서황모님은 잠들어 계십니다.”
잠들어 있다?
“귀선께서는 아마 금천도가 어떠한 신비를 가진 물건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실 겁니다. 그치요?”
“예, 그저 금빛이 은은한 천도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지닌 기운이 남다르고 범접할 수 없는 생명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정도 말고는.”
“눈으로만 보았는데도 그 정도나 꿰뚫어 보시다니 대단하십니다. 꽤 특별한 눈을 지니고 계시는군요.”
“자랑할 것 없는 눈입니다.”
“하하, 정말 재밌으신 분이네요. 우선은 금천도의 효능에 대해 알려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듣겠습니다.”
금천도(金天桃).
그것은 예부터 여러 신비한 능력을 지닌 금빛 복숭아.
하나를 먹으면 불로장생.
두 개를 먹으면 진선이 된다하는 신비의 과일.
이러한 금천도는 물론 진선에게도 효과가 좋은 귀한 과일이다.
“서황모께서는 오래전, 상처를 입어 일만 년마다 금천도 하나를 드시고 계십니다. 그분이 깨어나는 시일은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만 년에 한 번. 딱 한 시진뿐이지요.”
서황모의 상처는 너무도 극심한 것이라, 죽은 사람을 살리고, 산사람을 신선으로 만드는 금천도로도 병세를 늦추는 데 그친다 한다.
“그럼….”
“예, 귀선께서 오시기 삼백년 전. 서황모께서 금천도를 취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거의 일만 년을 기다려야 서황모를 만날 수 있다는 뜻이렷다.
“일만 년인가요.”
“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라고 할 수 있지요.”
낭선의 눈가가 좁혀진다.
자신이 잠들어 있었던 기간도 일만 년이었다.
그 사이에 괴이한 꿈으로 과거를 뒤집어 놨던 것은 봉황의 깃털.
아마도 이곳에 잠든 서황모라 불리는 대봉일 터.
“기다리지 못할 시간은 아니군요.”
꽤 긴 시간이기는 하나, 어쩌지 못할 시간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이곳에 있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서황령에는 많은 신선들이 자리하고 있지만, 금천도지에는 오직 저밖에 없거든요. 귀선께서는 서황모님의 귀빈이시니 있으셔도 크게 문제될 여지는 없을 겁니다. 간혹 금천도지에 찾아오는 이들이 있지만 상관은 없겠죠.”
마치 강아지가 꼬리를 살랑이는 것처럼 반기는 모습에 낭선은 애써 미소를 참았다.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순수함을 지닌 여인이다.’
그렇게 대라천에 오른 낭선의 첫 번째 거처는 서황령의 금천도지로 정해지게 되었다.
만 년.
오랜 세월을 살아온 낭선에게는 그다지도 긴 세월은 아니었고, 여러 가지 생각도 정리할 겸.
이곳에서 지내며 대라천의 떠도는 가담항설들을 듣다보면 앞으로의 일을 정하는 것에 도움이 많이 될 듯 보였다.
게다가 금천도지의 천도선.
상희는 꽤 순수한 영혼을 지닌 여인이었고 그녀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지 묻지도 않은 여러 이야기들을 꺼내며 그를 즐겁게 해주었으니까.
그렇게 일년, 십년, 백년, 천년이 지나고 일곱의 천 년이 더 지났을 무렵.
“저는 서황모의 양딸로 금천도에서 태어난 천도선이에요. 그분께서 취하고 남은 씨앗이 모여 제가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신기하죠? 원래는 아무한테도 알려주면 안 되는 거예요. 하지만 선에게는 특별히 알려주는 거랍니다. 누구에게도 알리면 안 돼요?”
금천도지의 천도 나무 아래에서.
대라천의 풍문들이 적힌 서책을 읽고 있던 낭선의 등에 기대며 말하는 상희의 머리칼이 폭포수처럼 떨어져내려 그의 시야를 덮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대라천에서 아는 신선이라고는 희 밖에 없으니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후후, 그래서 전 선이 좋아요. 선의 곁에서는 제가 꽤 대단한 신선이 된 것 같거든요. 난 뭐든 알려주고, 선은 무엇이든 들어주고.”
오랜 시간 금천도지에서 함께 지내다보니 상희와 꽤나 친밀한 사이가 된 낭선은 부쩍 거리감 없이 다가오는 희의 모습에 쓰게 웃었다.
지난 세월동안.
그녀가 지닌 순수함을 몸소 겪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태어나 자라기를 줄곧 대라천의 금천도지에서 살았고.
때문에 남녀 간의 생리나 관계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지 못했다.
하여 저리 거리낌 없이 살을 붙어 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희. 오늘은 천 년에 한 번. 금천도에 은하수를 내리는 날이 아니었습니까.”
“아, 내 정신 좀 봐! 오늘은 금천도에 은하수를 내리는 날이었는데!”
깜빡했다는 듯 소리친 상희는 부리나케 어디론가 날아갔다.
“은하수를 가지러 갈게요! 선은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그러지요.”
천 년에 한 번.
은하수라는 성운의 힘이 집약된 물을 금천도 나무에 뿌려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무 자체가 뿌리부터 썩어가고 독기가 금천도에 스며들어 사이한 과실이 된다. 태어나 단 한 번도 잊어버리지 않았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그 시일을 깜빡한 것이다.
“정말 생각도 못 하셨나 보군.”
은하수(銀河水)의 물은 꽤 귀한 것이라 그녀도 평소에는 봉인하여 그 누구의 손에도 댈 수 없도록 하고 있기에 시간이 꽤 걸릴 듯하다.
“벌써 팔천 년이 흘렀나.”
그녀와 금천도지에서 보낸 시간이 즐거웠던 탓인가.
시간이 금세 흘렀다.
새롭게 알게 된 대라천의 생리에 대해서도 꽤나 알게 되었고, 많은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어떠한 확신마저도 가지게 된 시간이었다.
“구영이 어찌 됐는지도 궁금한데 도통 알 방도가 없군.”
그의 힘과 다른 상계의 신선들의 힘을 빌어 하늘을 열고 열었다.
삼십육천 중 가장 높은 하늘이라는 진대라천(眞大羅天)을 열기 위해.
“대라천에 뿔뿔이 흩어졌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나 홀로 올라오게 되었다면 아쉬울 따름이겠군.”
구영은 다시금 대라천으로 올라서기를 바랐었으니.
낭선은 잠시 구영을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누군가를 생각하다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상계에 남겨둔 제 부인들과 피붙이들을 떠올리게 되기 마련이니.
“그런데….”
턱.
서책을 덮은 낭선은 이내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금천도지에서 가장 커다란 천도목.
대금천도목(大金天桃木) 아래에 자리한 이름 모를 사내를 보았다.
“금천도지의 은하수가 내리지 않아 와보았더니. 천도선은 없고 웬 놈이 자리를 꿰차고 있는 것이냐.”
잘려진 나무 밑동에 앉아 있던 낭선은 정좌한 자세에서 한쪽 다리를 내리며 고개를 삐뚤게 꺾었다.
“상대가 누구인지 묻기 전에, 자신의 신분부터 밝히는 것이 세상사의 도리가 아닌가. 내가 그리 아무에게나 막말을 듣고 넘길 정도로 마음씨가 곱지 않아서 말이야.”
그의 앞에 있는 자는 대라천의 대라선. 아마도 서황령의 한 석을 꿰차고 있는 지체 높은 진선일 터.
하지만 그게 자신이 숙여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옛날의 그였다면 우선은 웃는 얼굴로 상대에게 맞춰주고, 확실한 판단이 선 다음에야 나서야 본심을 드러냈을 것이다.
허나 이곳에서 오래 지내며 알아본 결과, 그는 그럴 필요가 없음을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그는 여러 상천에서 내로라하는 신선들을 모조리 꺾은 상천의 주인.
이제는 대라천까지 넘보고 있는 중인 사내 중의 사내이며 법칙 중 제일이라는 창조를 섭렵한 낭선이다.
“상천의 티를 버리지 못한 애송이 자식이 감히…!!”
얼굴이 검붉어진 사내가 노호성을 뱉어내며 한손에 벼락을 쥐었다.
쥔 벼락을 전신으로 품고 강렬한 뇌전을 흩뿌리며 주먹을 내질렀다.
허나 그때.
쉬익.
살랑이는 바람 한 줌이 그를 휩쓸었고, 이내 사내의 목이 하늘을 날았다.
“커헉!”
때마침.
쏴아아.
하늘에서는 상희가 뿌리는 은하수가 금천도지를 적시며 흩어진 피를 대지로 스며들게 했다.
“대라선도 별거 없군.”
촤악.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낸 그는 꽃을 닮은 검을 다시금 검집에 넣었다.
그에게 있어 대라천은 생소하고 신선한 장소였으나, 근본적으로는 다를 게 없었다.
“너, 넌… 누구냐….”
죽어가는 대라선이 마지막 힘을 쥐어짜 물었다.
그는 대라선의 물음에 이리 답했다.
“낭선. 지나가는 낭선일 뿐이다.”
다른 게 있다면, 죽음을 창조한다는 것뿐일까.
홀로 생각하고는 풋,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