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77)
낭선기환담-576화(577/600)
2부 286화 – 특별 외전 3
상계를 정복한 그와 합일되어 모든 힘과 정수가 담긴 검.
화란.
금색의 꽃잎이 잿가루처럼 휘날리고 베어낸 상대를 내부에서부터 잔잔한 열기로 가루로 만든다.
대라선 자체가 혼과 육과 의가 합일된 완전한 존재.
목을 자른다고 하여 단순히 죽을 정도로 가벼운 존재가 아니다.
허나 화란은 그것을 단순명쾌하게 만들어버리니. 그의 힘이 이곳에서도 확실하게 통용된다 볼 수 있다.
“하기사. 그자들이 막아놓은 하늘을 뚫기 위해 그 난리를 치며 강해져 왔으니 이 정도도 못 했다면 퍽 서운할 뻔하였어.”
-저니까 이 정도로 한 겁니다.
자신의 대단함을 잊지 말라는 듯 한마디 거드는 화란의 말에, 피식 거리고 말았다.
“그래,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 그 복숭아 같은 것이랑 시시덕거리고 있었습니까. 팔천 년이 넘는 세월을?
“또 시작이군.”
시끄러워질 화란의 입을 닫기 위해, 곧장 검집에 그녀를 담았다.
-또 시작은 뭘 또 시작입니까! 경건하게 대라천에 온다 싶었더니, 고새를 못 참고 또 계집질을…!
철컥.
검집에 넣어 꾹꾹 닫으니 그녀의 말소리가 끊겼다.
스릉!
-왜 마음대로 넣으십니까! 제가 당신 마음대로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존재밖에 되지 않았습니까? 하여튼 사내들이란….
철컥.
그는 다시 검집에 그녀를 가두고 입을 달싹여 봉했다.
작은 빛무리가 새어 나오며 홀로 분분하던 검은 이내 잠잠해졌다.
“하여튼, 질투 많은 여인이라니까.”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고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은하수를 올려다 본다.
뭉게구름을 타고 유려한 장식으로 만들어진 그릇에 담겨진 은하수를 손에 묻혀 흩뿌리는 천도선 상희.
그녀의 모습은 마치 비를 내리는 여신과도 같은 기품과 사랑스러움이 다분히 있었다.
“산을 오르는 이유는 그곳에 산이 있기 때문이요, 도를 닦는 이유는 올려본 시선에 하늘이 있기 때문이랴.”
밤하늘의 달을 보는 이유도 같으며 여명이 떠오르는 대해를 바라보는 이유도 같지 않으랴.
그러니 아리따운 여인을 바라보는 이유 또한 매한가지다.
상희를 바라보며 시 한 소절을 읊듯 중얼거린 그는 이내 날개옷을 살랑이며 내려서는 그녀를 보며 말 없는 미소를 내보였다.
“선….”
“예, 희.”
“제가 두 눈으로 본 것이 정녕 사실인가요?”
상희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근처에 있는 금색으로 휘날리는 잿가루도.
“예, 맞습니다.”
“왜 그랬나요?”
“절 모욕했습니다. 먼저 살기를 내보이며 제게 위해를 가하더군요.”
“그래서 죽였나요?”
“예. 희는 제게 친절을 베풀었죠. 그렇기에 저도 배려와 친절을 그대에게 베풀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사라진 서황령의 이름 모를 대라선은 아니었지요.”
그는 자신을 낮잡아 보았으며,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었고 더불어 살심을 품어 자신을 해하려 했다.
이곳이 어디였든, 그가 누구였든.
그는 죽어 마땅했다.
“경솔…하셨어요.”
“경솔한 것은 그자였습니다. 제가 어떠한 출신을 지녔는지, 무슨 힘을 지녔는지도 알지 못한 채. 자신의 힘과 권위만을 믿고 행동했으니까요.”
그러니 그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던가.
“그분은 서황령의 남문을 지키고 관리하는 경무대장을 맡고 계시던 분이었어요. 크게는 서황령을, 작게는 저와 금천도지를 지키는 분이었죠.”
그러나 그는 이제 없다.
“경무대장이 사라졌으니, 곧 다른 경무대장분들이 오실 거에요.”
“희는 제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저는…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봐온 선은 그런 신선이 아니었어요. 친절하고 배려심도 깊고, 말투도 나긋나긋해서 귀가 즐거운….”
“희.”
“예?”
“자신이 본 것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자신이 믿는 것을 믿으세요. 그리하면 흔들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자 희는 자신의 아랫입술을 굳게 깨물고 그의 손목을 잡았다.
“도망쳐요!”
낭선은 그녀의 당돌함에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왜, 왜 웃어요! 난 심각해요!”
“이제껏 서황령의 금천도지에서 나고 자랐으면서 어디로 도망치자는 말입니까.”
“모, 몰라요! 그래도 지금 선을 죽게 둘 수는 없어요. 저는… 네, 그 무엇보다 그걸 보고 싶지 않아요.”
“금천도는 어쩌시려고 그럽니까.”
“금천도는…….”
자신이 평생을 나고 자란 금천도지를 남겨두고 어디를 간단 말인가.
상희는 지금 혼란을 겪고 있었다.
하여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희. 이제는 헤어질 시간입니다.”
“…어째서요.”
“헤어지면 만나고,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세상의 섭리이죠. 이별이 있기에 재회가 반가운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별은 아프잖아요.”
“그만큼 재회가 뜨겁겠지요.”
“저는 싫어요. 뜨거운 재회도, 가슴 아픈 이별도 겪고 싶지 않은걸요. 그냥 지금처럼 포근한 감정으로 함께하고 싶다고…… 안되나요?”
그녀의 순수한 물음에, 달래던 그는 순간 입을 열지 못했다.
오랜 세월 달관한 언사도 그녀의 순수함에는 빛을 잃었다.
‘달관하였다 생각했거늘.’
이리 여린 여인의 물음 하나에 말문이 막혀서야 어찌 대라천의 진실과 진리를 터득할 수 있을까.
“그리하고 싶으십니까.”
“네. 저는 그게 좋아요.”
“그럼 그렇게 합시다.”
그리하게 만들어 줄 터이니.
“제가, 제가 할게요. 제가 말하면 들어줄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편하겠습니다만.”
그렇게 될 리가 없다.
낭선은 상희의 어깨를 잡았다.
가냘픈 어깨는 미세한 떨림을 간직하고 있었다.
“제가 하지요.”
“하지만… 선은 대라천에 이제 막 오른 신선이잖아요! 위험해요! 저도 알고 있어요. 대라천에 나고 자란 존재가 아닌 등선에 오르는 자들은 본래 하늘의 천기도 제대로 호흡하지 못해서 오랜 세월 동안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요.”
“그렇지요.”
“그… 그런데 어떻게 경무대장을 죽인 거예요?”
말하다 보니 의아해진 상희의 고개가 갸웃거린다.
허나 그는 쓰게 웃을 뿐.
이렇다 할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때였다.
스르륵.
돌연 허공이 일렁이며 사람의 인영이 보인다싶더니 한순간에 나타나 낭선과 상희를 포위했다.
“천도…….”
“헛.”
“흡!!”
허나 그들은 나타남과 동시에 채 말을 잇지도 못했다.
돌연 낭선이 흩뿌리는 기묘한 기운들로 인해 삽시에 동공이 탁해지고, 입이 벌어졌으며 움직임이 멈추었기 때문이었다.
“어… 경무대장분들이 마치 금천도의 향기에 매료된 것처럼 변했어요. 어쩐 일이죠? 서황령의 진선들은 금천도의 향에 매료되지 않는 정화(情火)를 품고 있는데….”
허나 어찌 된 일인지 그들은 모두 금천도의 향기에 흠뻑 빠진 것처럼 벌어진 입으로 침을 흘리거나 몸을 움찔움찔 거리며 황홀경에 빠진 것과 같은 양상을 보였다.
“금천도의 향에 대해 제 나름 대로의 분석을 했었습니다. 꽤 신비한 식을 지닌 향이었고, 제가 지닌 몇 가지 법칙과 도구를 이용해 새로 만들었죠. 이상하게도 저와 잘 맞더군요.”
금천도라는 녀석은.
“설마 지금 이걸 선이 해냈다고 말하시는 거예요?”
“맞습니다. 잠깐이나마 체험해보시겠습니까.”
“네?”
후웅.
돌연 그의 곁에서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안개가 자욱해지고, 잠깐이나마 들이마신 상희는 돌연 세상사를 모두 잊고 현시점의 상황마저도 잊었다.
그와 금천도지에서 금천도를 한입씩 베어 물며 서로를 기대며 살았다.
서황모의 병세도 어쩐 일인지 치유되어 광활한 대라천에 셋만 있는 것처럼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
“아….”
허나 그것은 찰나의 꿈.
너무도 달콤하고 쉽사리 지워낼 수 없는 충족감을 채워주었으나, 도리어 상실감마저 배가되는 꿈이었다.
또르륵.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그가 닦아주자 상희는 와락 안겨든다.
“너무 행복했어요.”
“당신에게는 금천도향이 잘 통하지 않는군요. 애초에 금천도의 화신이라 그럴 거라 생각은 했습니다.”
본래의 금천도향보다 더 많은 법칙을 꼬아 놓았고, 술식을 단단히 했다.
제아무리 금천도향에 익숙해진 서황령의 진선들이라 해도, 이것을 파훼하거나 유혹을 뿌리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난 팔천 년간 재미 삼아 만들어본 것인데 꽤 요긴하게 쓰였다.
매혹적인 향과 창조의 법칙.
둘의 조화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성이 좋았다.
애초에 금천도 자체가 어째서인지 그와 잘 맞기도 했다.
그러한 연유를 왠지 알 것 같기도 했으나 아직 확신하기는 힘들었다.
“이제 어쩌죠?”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여태처럼.
향에 취한 경무대장들은 어느새 다리가 땅으로 스며들고 있다.
이내 피부가 딱딱해지며 고목나무처럼 메말라가기 시작했다.
금천도향에 취한 자들은 금천도지의 양분이 된다하더니, 저들을 나무로 만들어버리는 모양이다.
세 명의 경무대장은 서로 엮이고 뻗어나고 고풍스러운 소나무처럼 성장했으나 끝에는 작은 열매가 맺혀 짙은 향을 뿌리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그들은 금천도목이 된 것이었다.
“경무대장들이 금천도목이 됐어요.”
“본래 모습보다는 지금이 훨씬 멋들어지는군요.”
“그, 그런가요?”
“예.”
낭선은 그들이 맺힌 금천도 하나를 똑 따서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과즙이 터져 나오며 깊은 맛과 진한 향을 안겨다 준 금천도를 음미했다.
그것이 가져다주는 변화를 몸소 느껴보며 입꼬리를 끌어 올리자 상희가 화들짝 놀란다.
“금천도는 아무나 먹어서는 안 돼요! 자칫 잘못하면 평생을 맛과 향에 취해 나무가 되거나 돌이 된다고….”
“그렇지는 않은가 보군요.”
“어…… 그렇네요.”
상희는 다시금 낭선을 바라봤다.
진선이 금천도를 취하고 그 맛과 향을 미혹을 이겨내면 큰 성취를 얻게 된다고 한다. 이제 막 만들어진 금천도라지만 그 효과가 진하면 진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터.
그러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금천도 하나를 금세 먹어치웠다.
“나오거라. 탐화.”
이내 중얼거리자, 그의 소매에서 검고 긴 지네인지 뱀인지 모를 것이 나와 천천히 크기를 부풀렸다.
점차 커져가는 그것은 금세 하늘을 뒤덮을 듯 커져만 갔다.
“오룡…?”
“희. 당신은 저와 함께하고 싶으시다 하셨지요.”
“네, 네? 아… 네!”
“그럼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크게 놀라지 마십시오. 그게 무엇이든 감내하셔야 할 겁니다.”
“네?”
알 듯 모를듯한 말을 내뱉은 그는 이내 하늘을 까맣게 뒤덮은 오룡.
그것에게 사내는 이리 말했다.
“먹어라.”
그러자 오룡은 입을 쩌억 벌려 하늘을 집어 삼킬 듯 정기를 빨아들이다가 돌연 땅으로 머리를 향했다.
“어, 어… 어어어!! 꺄아악!!”
이내 그들이 있는, 금천도지를 향해 입을 벌리고 집어 삼켜버렸다.
서황령의 금지.
오랜 역사와 신비를 가진 금천도지가 대라천에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