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80)
낭선기환담-579화(580/600)
2부 289화 – 특별 외전 6
손목에 착 휘감긴 탐화를 보며.
그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어떠하느냐.”
그리 물으니.
탐화는 의념으로 그에게 답했다.
“다행이구나.”
탐화의 말에 따르면 언제든지 그녀를 소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조금 더부룩할 거 같다고는 하나, 만일에 상황이 터졌을 때를 대비한다면 이만한 방법이 또 없다.
게다가 혹시라도 그녀가 자신이 모르는 비술을 사용하여 빠져나온다 하더라도, 탐화가 한 번 입에 문 것을 온전히 보낼 리도 없을 테니.
“이 정도면 되겠지.”
탐화 안에 금천도지도 함께이니.
서황모는 이제 내버려두어도 될 것이다. 그녀에게 물을 것은 많으나 당장 급한 것은 아니니. 언제든 찾을 수 있고 언제든 물을 수 있으니 급할 것은 없다. 또한 그녀가 고개를 조아리는 것을 지두인 허공이 보았으니 서황령에 자리한 대부분을 쓸 수 있을 터.
“그녀 또한 불을 사용하니. 내가 쓸만한 법칙수서가 있을지도 모르지.”
그게 아니더라도 우선은 생각을 정리해야 할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그녀가 보여준 먼 미래.
그곳에서 자신은 왠지 모르게 단단히도 화가 나 있었으니.
이유는 자세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미래의 금천진군은 가슴 속에 천불을 담고 있었고 모든 분노를 절대자들에게 쏟았다.
물론 서황령의 서황모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화란. 이 상황을 어찌 보느냐.”
철컥.
검집에서 화란을 뽑은 그는 그녀에게 물었으나 왠지 답하지 않았다.
저번에 말이 많길래 봉인해뒀더니 삐져도 단단히 삐진 모양이다.
입맛을 쩝 다시다 슬슬 서황령의 대전을 벗어났다.
“서황령의 천도선. 상희가 타천의 대인을 뵈옵니다.”
기다렸다는 듯 대전을 나오자 상희가 오체투지했다. 안 그래도 머리가 아프거늘, 그는 고개 숙이며 관자놀이를 짚었다.
허나 그렇다고 사실 여부를 모조리 말하는 것도 애매하다.
“갑시다.”
“어, 어디를….”
“서황령의 잡다한 기록이나 수서가 있는 서고로 가야겠습니다.”
“대인, 저 같은 아랫것에게 경어를 쓰지 말아주세요.”
“절 대인이라 부를 겁니까. 희.”
“하지만….”
“괜찮습니다. 이전처럼 편히 하세요. 자세한 사정을 말해주지는 못하겠으나 저는 아직까지도 희에게 거짓을 말한 기억은 없습니다.”
“…정말요?”
“예.”
허나, 한 가지.
“다른 이들에게는 제 진명을 말하지 않도록 하지요.”
“그럼 뭐라고….”
“금천이라 하십시오. 어차피 머지않아 곧 그리 불리게 될 것이니.”
대라천에서 낭선이라 불리는 것도 조금 그러하니.
“네! 알겠어요!”
그나마 상희가 순수해서 다행이다.
다른 이였으면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번거롭게 굴어, 결국 여러 이야기를 펼쳐 놓았을 테니.
“근데 서고는 왜요?”
“대라천의 법칙수서를 한번 탐독하고 싶기도 하고. 서황모의 말에 따르면 그곳에 쓸만한 법기가 있다고 하더군요.”
“법기요?”
“예. 하늘의 경계에 관계없이.”
비추어 볼 수 있는 수경.
그것이 살아있는 것이든, 아니든.
무엇이든 비추는 대천은하수경(大天銀河水鏡).
그것이 서황령의 서고 옆의 법기고에 자리한다.
금천은 그것으로 보려 한다.
그리운 얼굴부터,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를 동료까지.
그리고 된다면.
‘상천을 틀어막은 산의 스승.’
황천이라 불렸던 자까지.
* * *
“제기랄.”
한 마디에 아홉 목소리가 섞인 기이한 사내.
본래 대라천의 존재였으나 유무간으로 쫓겨났던 비운의 흉수.
아홉 머리를 가진 용.
구영은 대라천을 떠돌고 있었다.
그에게 협력하여 단단하게 막힌 대라천의 하늘을 뚫었으나.
“그놈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지.”
이미 자신의 터전은 옛날 옛적에 사라진 지 오래. 이제는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고, 자신과 연고가 있는 자들을 찾아볼 수도 없었다.
거기다가 웬 구정물 나는 곳으로 떨어져 냄새는 고약하고, 지면은 온통 늪 천지가 되어 있어 걷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그렇다면 날아가면 되지 않는가.
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구영은 본래 진선들에게 쫓겨난 존재.
대라천에 돌아와 혼자 동떨어지게 되었으니 사소한 것 하나까지 조심, 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직 자신의 안에는 그들이 걸어놓은 금제가 살아 있는 덕에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긴 대체 어디야, 제길!”
넓기로는 수천, 수만의 하늘 중 제일 으뜸이라는 대라천이다.
가장 큰 36개의 하늘 중 으뜸인 대라천이라 이곳에 자리했던 구영이라도 모르는 장소는 존재했다.
이 일대는 마치 쓰레기장이라도 되는 듯 온갖 구역질 나는 냄새가 진동했고, 잡다한 사체들과 쓰레기들이 즐비했다.
구영이 하필 떨어져도 이런 곳에 떨어져 제 처지가 처량하다며 욕지거릴 내뱉던 그때.
-대라천에 와서까지 그놈의 성정은 고쳐지질 않는 모양이오.
흠칫.
돌연 귓가에 들려오는 전음이 구영의 발걸음을 멎게 했다.
“누구냐.”
신식을 퍼트려 주변을 살폈으나, 일대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없다.
-그대와 다를 것 없는 존재지.
“말장난을 하려거든 얼굴이라도 보이고 해라. 당장에 그 재수 없는 목청을 찢어발겨줄 테… 잠깐만.”
재수 없는 목소리?
그리 생각하니 한 놈이 떠오르기는 한다.
“네놈, 금천인가?”
구영의 여러 목소리에서 묘한 반가움이 느껴졌다.
한때는 서로를 죽이려 했던 사이었지만, 지금만큼은 저 재수 없는 목소리가 반갑지 않을 리 없었다.
-대라의 하늘에서 그대를 찾는 진선이 있으리라 보지는 않는데.
“말하는 싸가지를 보니, 금천이 맞군. 어디냐. 지금은 네놈의 상판이라도 반갑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군.”
-서황령에 있지. 오실 수 있겠소?
“서황령? 네놈이 거긴 어떻게….”
꺼림칙하다는 듯 구영은 인상을 와락 구겼다.
-아니, 그럴 필요 없겠군. 대천은하수경이란 법구를 아시오.
“대천은하수경!? 알다마다! 옳거니! 네놈은 그것을 이용해 내게 전음을 보내는 거로군! 그렇다면 이해가 빠르지.”
-그렇다면 두말할 것 없겠어. 곧 거울이 갈 테니 이쪽으로 건너오시오.
“그러지!”
대천은하수경은 거울을 이용한 공간법기 중 하나이다.
대라천에서도 꽤 유명한 법구인데, 그것을 이용하면 공간을 뛰어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이내, 구영의 앞에 허공이 일렁거리더니 거울과도 같은 형상이 나타났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구영은 그곳으로 뛰어들었다.
쉭.
동시에 몸이 고무처럼 늘어져 앞뒤 좌우로 할 것 없이 줄어들고 늘어나기를 반복하다 발이 땅에 닿았다.
탓.
구영의 코가 씰룩거렸다.
지독한 냄새에 구역질이 올라오는 곳에서 깔끔하고 포근한 향이 코를 찔렀다.
“금천.”
구영의 입가가 씨익 올라갔다.
허나 반대로 금천의 안색은 와락 찌푸려졌다.
“냄새난다. 구영.”
“반갑다. 금천!”
허나 구영은 아랑곳 않고, 반가움을 드러냈다. 마치 껴안으려는 듯 금천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한 발자국만 더 다가오면 대천은하수경으로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려 줄 수도 있다.”
“쯧, 냉담하기는. 그러니 자식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거다.”
“미안하지만 난 누구보다 자식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비다.”
“그거야 네 생각이겠지.”
콧방귀 뀌며 답하는 구영의 본새가 영 아니꼬웠다.
“죽고 싶다면야 무슨 말인들 하지 못할까. 지금이라도 원한다면 말하시오. 당장에라도 무로 되돌려줄 테니.”
서슬 퍼렇게 말하는 금천의 대답에 구영은 시선을 피했다.
“이곳이 서황령이랬나. 꽤 운치 있군.”
“닥치고 우선 씻지 그러나.”
“그래, 내 몰골이 말이 아닌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그러도록 하지. 꽤 오랫동안 구정물투성인 곳을 걸어서 말이야. 한 달 정도는 뜨끈한 탕에 들어가 있어야겠다.”
“희, 이 자를 씻길 수 있는 욕탕으로 데려가주게.”
“예, 알겠어요!”
희는 코를 막으며 구영을 욕탕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한 달여간을 줄곧 탕에서 나오지 않았다.
한 달 뒤.
서황령의 어느 정자 안.
구영은 꾀죄죄했던 지난 몰골과는 달리 환골탈태라도 한 듯 멋들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서황령에서 건네준 의복과 장신구들로 치장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한번 반갑다. 다른 놈들은 뭐 다 뒤졌겠지만, 네놈은 살아있으리라 생각하기는 했어. 생각보다 더 일찍 재회하기는 했다만.”
“나 또한 그대라면 어딘가에 살아 있으리라 생각했지.”
그 유무간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갔던 자가 아니던가.
자신이 이렇게 있는 것을 보노라면, 구영 또한 살아있으리라 짐작했다.
그렇기에 대천은하수경으로 그를 찾을 수 있었다.
애초에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특정 인물에 대한 기운을 품은 물건들이 있어야 했다.
구영은 이전에 금천에게 피를 건넨 적이 있었기에 그것으로 보다 손쉽게 그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어쩔 테냐.”
“뭘 말인가.”
“나와 네놈을 욕보인 그놈들을 찢어 죽여야 하지 않겠나!”
그래. 구영과 금천이 대라천으로의 하늘을 끊임없이 열어젖히려던 이유가 대체 무엇이었던가.
대라천.
그리고 그곳에 자리한 존재들.
모두 뒤집어 엎어버리고 새로운 뜻을 펼치려 한 대의 때문이었다.
“우선은 상천의 하늘을 막아 놓은 그 황천이라는 놈? 아마 이곳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을 터. 그놈을 찾는 게 먼저겠군. 그놈들 덕분에 안 그래도 내쫓긴 나도 대라를 열기에 역부족이었으니.”
산의 스승, 황천.
상천에서 하늘로 오른 진선.
셋이자 하나인 상천의 대사부.
“의심되는 자는 있지.”
“벌써 거기까지 다가갔나.”
누구냐는 물음에 금천은 잠시 말을 아꼈다.
“함부로 입에 올리기 어려운가 보군. 그럴 수 있지.”
하여 구영은 찻잔에 손을 넣어 차를 움직여 탁자에 글씨를 만들었다.
글씨로 쓰라는 말이었다.
그러자 금천 또한 그와 같이 차를 움직여 허공에 글자를 썼다.
콰앙!
즉시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허공에 쓰여진 글자는 하나.
삼.
이는 곧 대라의 삼청을 뜻한다.
옥청은 원시천존(元始天尊).
상청은 영보천존(靈寶天尊).
태청은 도덕천존(道德天尊) 이라 불리는 존재들이다.
하늘의 끝에 닿은 법칙과 융화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절대자들을 뜻하는 칭호.
천존.
금천의 적은 곧 하늘.
예나 지금이나 바뀌고 다시 바뀌었으나 언제나 그의 적은 하늘이었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그렇듯.
하늘을 부수게 될 것이다.
“…확실한가?”
구영이 심상치 않은 눈으로 묻자 금천은 허허 웃었다.
“말하지 않았나. 의심이라고.”
“으음… 그렇군. 허나 금천. 네놈의 의심은 의심으로만 끝나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다가는 하늘만 올려다보다 아득함에 정신이 나갈 테니.”
허나 구영의 충고에도 금천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먼 옛날에도.
그리고 지금도. 그는 항상 하늘에 닿은 이들을 적으로 삼았고 그리하여 올라서 모조리 부러뜨려버렸으니.
“구영, 우리가 대라천을 열었던 그때의 다짐을 잊지는 않았겠지.”
“…그랬지.”
“그때 내가 무어라 하던가.”
“대라천을 집어 삼키겠다 했던가.”
“내 뜻은 그때와 크게 변함이 없네. 나는 상천에서 했던 것처럼. 여기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게야.”
올라갈 곳이 있는데 오르지 않는다면 무엇 하나 달라지는 것 없다.
변화가 없음은 곧 죽음을 뜻한다.
여기까지 올라서서 산송장처럼 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제껏 줄곧 쥐처럼 숨어 살았다.
그러다 힘이 생기면 어깨를 폈다.
허나 대라에서까지 그렇게 지내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 자네가 해줄 일이 있어.”
“내가? 뭔가.”
“소문을 좀 내게.”
“소문?”
“그래, 소문.”
이제 막 상천에서 오른 대라초출의 진선 하나가 삼청을 논한다고.
대라를 논한다고 말일세.
“그리하면 꼬리들이 나타나겠지.”
“그들을 잡다 보면?”
“머리도 나오지 않겠는가.”
탁! 무릎을 친 구영은 음흉하게 웃으며 고개를 주억였다.
“죽기 딱 좋은 일이로군!”
허나 그래서 구미가 당긴다.
미친놈들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짓이지만 그래서 마음에 쏙 든다.
구영은 사내 중의 사내.
본래 대라에서 쫓겨났던 이유도 그들이 아끼던 하늘 하나를 장난질로 더럽혔기 때문이다.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쥐처럼 살 수야 없는 노릇이지! 아암! 내 당장에 그리하도록 하지!”
구영은 벌써부터 펼쳐질 대라천의 앞날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자신이 미끼가 된 줄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