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81)
낭선기환담-580화(581/600)
2부 290화 – 특별 외전 7
서황령의 서고에서 살다시피 하는 진명은 낭선이자 호는 금천이고, 이름은 천범인 사내는 돌연 자신의 품에서 비녀 하나를 꺼냈다.
이내 대천은하수경과 새하얗고 푸른 보석이 박힌 비녀를 번갈아 바라보며 고심하는 듯 중얼거렸다.
“볼 수는 있겠지.”
하지만 얼굴이라도 보고 난 후에는 어쩐단 말인가.
안 그래도 사무치는 그리움에 가슴 한 구석이 허한데, 얼굴이라도 보고 난 후에는 이 들끓어 오르는 감정을 어찌 잠재운단 말인가.
대라천에 올라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건만.
“두렵구나.”
그는 두려웠다.
사무치는 그리움이.
잠재울 길 없는 따스한 온기를.
허나 그럼에도.
“이 또한 이겨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게 무엇이든 이겨내지 아니하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니.
대천은하수경의 거울처럼 모여 있는 물길에 비녀는 내려 놓았다.
그러자 여러 층으로 이루어지어 글자가 새겨진 금판이 드르륵 돌아가며 오목하게 고여있는 은하수에 은은한 빛이 새어나온다.
이내 무언가를 투영하듯 어느 풍경을 비춘다.
고즈녁한 밤하늘에도 선명하게 흩날리는 백발의 머리칼.
청초한 얼굴과 푸른 눈.
초아였다.
* * *
탁.
밤하늘의 달을 벗삼아, 한 잔.
또 한 잔을 입술에 머금다보니 어느새 술병의 숫자가 꽤 되었다.
“어머니.”
“선이 왔니.”
“약주가 오늘은 과하신 듯 합니다.”
이제는 장성하여 얼핏보면 자매라고도 느껴질 만큼 천선과 초아는 비슷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허나 은연중 느껴지는 눈빛의 현묘함만큼은 어찌할 수 없었다.
“과할 수도 있지. 네 아버지도 가끔은 감정에 취하셨단다. 자신을 그리도 이타적이다, 냉혈한이다 말씀하시고는 했지만.”
풋.
“그리 냉정하지 못하신 분이지.”
옛 생각이 나는 듯, 초아는 그리운 얼굴로 입가를 둥글게 했다.
“그러셨나요.”
“그래, 그랬단다. 하지만 그때도 참 멋지셨지. 나는 오히려 그런 부분 때문에 더 마음을 빼앗겼단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아른거린다.
그 시절의 추억이.
아름다운 과거가.
“하천에서도 이러했지. 네 아버지는 항상 위를 바라셨고 처자식들을 두고는 홀연히 사라지셨단다.”
“어머니는….”
“나는 항상 그분의 등을 쫓기에 바빴단다. 보폭이 빠른 분인지라. 그것에 맞추려면 나는 몇 배는 더 열심히 쫓아가야만 했지.”
“후회하시나요.”
“아니. 단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어.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란다.”
철없던 백산의 시절에서부터.
상천에 올라 월모자녀의 곁에서 그를 다시 만났을 때도.
그를 다시 떠나보낼 때도.
하염없이 그리워하는 지금도.
“후회는 없어. 보고 있어도 그리운 분이니 항시 보고픈 것 말고는.”
“그래서 이러시는 겁니까.”
주변에 늘어진 술병.
허나 그것으로도 취하지를 아니하니 고달픈 밤을 무엇으로 채울까.
“곧, 떠나시게 된다면 만나 뵐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이전과 달리 아버지가 하늘을 죄다 열어 놓고 올라가신 터라, 천지원기가 풍족해진 것은 두말할 것 없고 등선에 오르는 하늘 길 또한 낙관적일 거라고….”
“허나 그 또한 올라서지 못한 자들의 탁상공론이지 않니?”
“…네.”
오르지 못한 자들의 떠드는 소리 따위가 무슨 소용일까.
애초에 하늘로 오른 천범 또한.
진정으로 대라로 올랐는지 어땠는지 알 길이 없는데.
지금에 와서는 진정으로 하늘 위의 하늘이 있는 것인지 아닌지도 애매할 지경이다.
그 이전에 올라설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조차 없는데 어찌 밤잠을 설치지 않을 수 있을까.
“서방님은 대체 무슨 확신을 가지고 그리 올라가셨을까.”
“많은 서적들과 다른 상천에서 얻은 확신을 가지고 계셨다고….”
“그 모든 게 그저 허상에 불과했을지 모르는 일이지.”
“…어머니.”
“미안하구나. 괜한 소릴 했어.”
“아닙니다. 이제 곧….”
백 년이나 남았을까.
그녀가 상천에 남아 있을 시간이.
“네 아버지께서 막아주셨던 천겁이 모이고 모여 이제 나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니… 꽤 복잡하구나.”
등선과 천겁.
그리고 목숨과 애타는 그리움.
“나는 시간이 없지만 그래도 너는 괜찮을 게야. 네 아버지가 대라로 향한 이유 중 하나는 모든 것을 무로 만들어 하늘을 재창조하시겠다는 대의를 위해서이니.”
그리하면 천겁도.
나뉘어진 하늘도.
모두가 하나로 재창조되어 살기 좋은 하늘 아래에 모두가 자리할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다.
하늘의 범은, 여지껏 그것을 위해 위로 오르고 올랐었으니.
“저희들 걱정은 마시어요. 사천도, 저도… 그리고 천각도 제 앞가림은 하고 있으니까요.”
화양과 천범 사이의 아들.
천각 또한 사계에서는 벌써부터 이름을 날리고 있다 한다.
그러니.
“자식들 걱정은 마시고 어머니는 등선에만 집중해주시면 됩니다.”
“그래. 내가 필요 없다 이거구나?”
“그런 말씀이 아니잖습니까.”
“후후. 어릴 때는 귀여운 맛이라도 있었거늘, 이젠 다 커버려서 농담도 통하질 않네.”
“어머니….”
“그래. 곧 침소에 들 터이니 너도 네 할 일을 하렴. 향선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수행할 시간도 부족하다고 했다지.”
“…그럼 그것만 드시고 침소에 드시기로 하십시오.”
“알았으니 그만 가보렴.”
천선은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보다 돌아섰다.
그녀가 나가자 홀로 남은 초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둑한 하늘을 바라보며 술잔을 들었다.
“내 님은 보고 계시려나.”
이토록 애달픈 가슴을.
허나 이러한 약한 마음을 품는 것도 오늘뿐.
“내일이면 준비를 해야지.”
백 년도 채 남지 않는 시간.
천겁을 받기 전에 대라로 향해야 한다. 그처럼 하늘을 열고 열 필요는 없으니 큰 힘은 들지 않을 터.
그저 대라의 도를 받아들일 수 있냐 없냐가 관건일 것이다.
그러니 이제 백 년간 꼬박 법진을 이루어 몸과 마음을 비우고 그릇을 깨뜨려 다시 새로 만들고 채울 준비를 해야 할 터.
그러니 오늘만.
딱 오늘만큼만.
흥청망청 취해보기로 한 것이다.
심란한 마음에 휩쌓인 고민거리를 털어내는 일은 각자 매한가지.
허나 공통된 사항은 많이 고민하고 많이 심란해 해야만 도리어 확신과 목표를 바로 세울 수 있다는 것.
“보고싶네, 오늘따라.”
그러니 보러 가야지.
다시 한번.
그를 따라 올라야지.
나의 하늘이 있는 곳으로.
* * *
서황령의 서고.
다시 한번 제대로 목욕재계를 한 구영은 산뜻한 기분과 함께 서고를 향했다. 한동안 서황령에 신세를 지고 있는 동안, 그놈은 무슨 꿀이라도 발라 놓았는지 서고에서 도통 나오지를 않고 있었다. 놈을 만나려면 번거롭게도 서고로 향해야만 했으니.
오늘도 어김없이 서고에 있으리라.
“어이, 금천. 뭘 보고 있는가.”
아니나 다를까.
빽빽이 늘어선 서책 냄새와 그 사이에 큼직한 대천은하수경을 바라보고 있는 한 사내.
소나무처럼 기품있는 녀석이 그곳에 꼿꼿이도 서 있었다.
“구영.”
“왜 그러나.”
의아해하며 다가가자 대천은하수경에는 무언가가 비추었다 사라졌다.
‘여인이었던 것 같은데.’
착각이었나.
“대라천에서 천겁을 관리한다고 들었네만, 맞나.”
“음? 그렇지. 대라상제의 관리하에 여러 법칙을 지닌 진선들이 각각의 관할을 만들어 천겁을 내리지. 누구나 영생을 지속하게 할 수는 없으니 말이야.”
도는 순환된다.
순환되어야만 한다.
천겁을 버텨내면 더 강해지고.
강해지지 못하면 죽는다.
죽음은 순환이다.
결국에는 다른 가능성으로 옮겨가고 또 다시 시험에 드니.
그것은 결국. 하늘에 오를 자들만이 남는다.
“하늘은 어째서 그런 체계를 만들었음에도 상천을 막아 놓은 건가.”
“글쎄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하늘의 뜻을 어찌 다 알까. 내가 하늘인 것도 아닌데. 그래서 삼청을 죽이겠다고 소문 내달랬던 거 아니었나.”
맞다.
틀리지 않다.
허나 그보다 먼저.
천범은 해야 할 일이 생겨버렸다.
“천겁을 관리하는 진선들은 천겁의 갈래대로 나뉘어져 있다지?”
“…그렇지. 뇌겁, 화겁, 지겁, 목겁, 등등 별의별 겁이 다 있지. 살겁도 있지 않나? 어지간히도 미친 것들을 만들어 놓았지. 그따위 것을 버티는 것도 여간내기가 아닐 것이야. 물론 진선이라 하여 천겁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나.”
“알다마다. 천겁만을 따로 관리하는 천서가 있지. 대라에서도 제일로 높은 하늘이라 불리는 북공천(北工天)의 구름 위에 자리한 천공서(天公署)라고 하는 곳이네… 근데 그건 왜?”
대라에서도 제일 높은 하늘.
달보다 높고, 태양보다 높은 하늘.
북공천의 천공서.
햇빛과 달빛, 그리고 별빛을 온몸으로 받아 세 가지 자연지기를 가득 머금어 구름 위에 세워진 대궁.
천공서.
“먼저 그곳으로 가야겠군.”
“천공서를?”
“볼 일이 있네.”
“거기는 함부로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네. 외천의 천겁을 관리하는 곳이라… 특정한 절차가 있지 않고서는 아니 되지. 서황령의 서황모라 할지라도 예외는 아냐. 하물며….”
이제 막 등선한 진선이 함부로 발 디딜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허나 그럼에도.”
그는 가야할 이유가 생겼다.
“난 가야겠네.”
“어…… 어떻게 갈 건가? 그곳은 각종 금제와 현묘한 법진으로 보통 방법으로는 다가갈 수도 없어. 아주 비밀리에 운영되는 곳이란 말일세.”
“방법이 있지.”
그가 주먹을 쥐었다 펴니 손 안에는 웬 기괴한 조각이 쥐어져 있었다.
둥그런 옥에 웬 사람 형상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구영은 그것이 단순한 옥이 아님을 금세 깨달았다.
“그거, 그때 그놈인가?”
“그대가 풀어놓은 헛소문에 취해 내게 법기를 날려댄 놈이지. 다른 놈들은 모두 처리했지만 이놈은 왠지 쓸모가 있을 듯싶어 이리 두었네.”
삼청과 하늘을 뒤엎어 버리겠다는 신출내기 진선에 대한 소문을 풀어 놓은 지 꽤 시일이 지났다.
간간히 금천진군이란 놈이 어디 있냐고 찾아오는 놈들을 손봐주고 있는 중에, 꽤 거들먹거리는 진선 놈을 하나 봉인한 적이 있다.
“그게 방법인가?”
“방법이 될 것이네.”
퉁. 천범의 옥이 공명하듯 울려 퍼지자 이내 빛이 새어나오고 옥이 터져나가 사람이 하나 툭 떨어졌다.
“이, 이놈!!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우리 아버님이 누구신 줄 아느냐!!”
“네 아비가 누군데 지랄이냐.”
구영이 퉁명스레 받아치자, 얼굴이 벌게진 진선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자랑스럽게도 북공천의 천공서에 부임하신 태천겁선(兌天怯仙)이시다! 네놈들이 내게 해를 끼친다면 금세라도 우리 아버님이 찾아와…… 읍!읍!”
손가락을 튕겨 진선의 입을 막은 천범은 구영을 바라보았다.
“방법이 생긴 것 같지 않나.”
“거참…… 일처리 하나는 편하게도 하는구만. 해서, 거기가서 뭘 하게?”
구영의 물음에 천범은 입가를 씨익 끌어 올렸다.
“일단 부탁을 해볼 셈이네.”
“부탁?”
뭔 부탁.
아니 부탁한다는 놈이 태천겁선의 아들을 저리 험하게 다뤄?
“그러다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 네놈 설마.”
이내 구영의 안색이 파리해진다.
“천공서를 개박살이라도 낼 셈인가? 정녕 그럴 셈이라고!?”
“미쳤다고 생각하나?”
“당연하지! 그리하면 당연히 하늘의 순리가 어긋나고….”
많은 것들이 삐걱거리고 순환되지 않겠지. 하늘의 법도가, 진리가 어긋나는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을 수습하는 것 또한 필시 어마어마한 일이 되겠지.
“그게 우리가 할 일 아니었던가.”
“음…? 그건 그렇군. 그럼 이놈을 죽이면 되는 건가? 아까 말하는 걸 들어보니 자신한테 뭘 하면 태천겁선이 뛰쳐나올 거라 하던데.”
“그래서 지금 그래볼까 하는 참인데… 그대는 어찌 생각하나.”
“읍! 으으읍!으으읍으으읍!!!”
입이 봉해져서 말을 하지는 못하나, 노발대발하는 반응을 보아하니 그리 틀린 생각은 아닌 듯 하다.
“그럼 일단 두들겨볼까. 살찐 돼지 같아서 때리는 맛은 있겠군. 아, 죽여도 되는 건가?”
“상관은 없겠지.”
우득, 우드득.
손을 푸는 구영의 모습에 이름 모를 진선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한다.
“읍! 으읍!!”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되는지 돌연 손발이 묶인 채로 이마를 땅에 쿵쿵 처박기 시작한다.
이내 천범이 입의 금제를 풀자.
“사, 살려주십시오!!”
“내 듣고픈 말은 그게 아닌데.”
“모시겠습니다!! 천공서로 모실 테니 제발 한 번만…!!”
북공천의 천공서로 가는 길이 꽤 순탄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