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83)
낭선기환담-582화(583/600)
2부 292화 – 특별 외전 9
대라의 천존이 자리한 이후.
천겁이 하늘 아래에 자행된 이래 헤아릴 수 없는 시간동안 존재해온 각자의 겁을 관장하는 겁탑.
유구한 역사 그 자체가.
터져나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무슨 일인지 몰라도, 아주 대차게 터트리는구만.”
구영은 그의 화신통의 화려함에 한 번 놀라고, 포근하면서도 너무도 눈부신 화기에 한 번 더 놀랐다.
금천의 불꽃은 금색의 화.
금천지화다.
허나 그것에 법칙이 가미되는 순간, 오묘한 색이 곁들여지며 금천지화는 삼천초화로 거듭난다.
지금의 불이 꼭 그러했다.
그의 불은 마치 정성들여 가꾸어 피어난 꽃과 같았다.
그래, 불꽃이다.
삭막한 천공서에 불꽃이 피었다.
그 불꽃은 금천을 닮아.
천공서에 드리우고 잠식했다.
“거참, 사내다워서 좋기는 하다만.”
이제 어떻게 하려는 건지 원.
화탑이 터져나가자 천공서의 태천겁선들이 모조리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한 명 한 명이 일평생 가꾸어온 법칙의 대가이자, 하늘의 겁을 다루는 자들이니 평범한 자들이 아니다.
대라의 진선들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 해도 무방한 자들.
그런 자들이 자신들의 터전이 박살 나는 것을 보았으니, 어떤 연유가 있더라도 금천을 가만두지는 않을 터.
‘자, 어쩔 거냐.’
너는 무엇을 내다보았느냐.
구영은 팔짱을 끼우며 조용히 관망하기로 했다.
* * *
일각 전.
“흠. 그런가.”
머리 위로 떨어진 구궁의 화겁은 그저 뜨겁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 속에.
화마 속에 감추어진 진의이자 깨달음. 평생을 그가 체득한 깨달음이 감추어져 있었다.
불은 뜨겁다.
점점 이어 붙는다.
하여 사람의 전신을 불태운다.
살은 녹이고, 뼈를 가루로 만든다.
뼛가루는 재가 되어 휘날리고 그것은 이내 새로운 양분이 되어 새 생명을 잉태한다.
구궁의 화겁은 그러한 이치를 담고 있는 화의 정수 자체였다.
역시나 태천겁선.
화탑의 항렬 중에서도 가장 아래에 위치한 자이지만, 그가 지닌 화법의 진리는 정석 중의 정석이라 할 만했다.
“불은 모든 것을 불태운다.”
무자비하다.
무엇하나 가리지 않고 태운다.
허나 반대로, 태울 것이 없으면 사그라든다.
불이란 그런 것.
구궁의 화겁은 그러한 이치를 감춘 채로 깨달음을 전하고 있었다.
“정석적이군.”
하지만 너무 뻔하다.
불이란 틀에 얽매여 있는 자의 정석적인 불이었다.
“뭐야?”
천범이 아니었다면 그가 지닌 불 한 줌에 녹아 사라졌으리라.
허나 둘은 같은 화신통을 지닌 자였고 천범은 그보다 더 격이 높고 더 많은 것을 아우르는 법칙을 수선하는 자였다.
하여.
“자네는 너무 형식에 얽매여 있네. 불이란 형체가 없는 것. 꼭 무언가를 태워야만 하는 것이 아니야.”
어째서 불을 다루는 자들은 불이 무언가를 태워야만 한다 생각하나.
불은 그 자체로 불인 것을.
“감히, 이제 막 천공서에 올라온 놈이… 그래! 그렇다면 네놈이 자랑하는 화겁을 한번 내려보아라!”
자신만만하게 고궁이 소리치자 천범은 그러리라 답했다.
그리고는 손아귀를 펼쳤다.
우웅-
전신의 전율이 일어날 것 같은 소리와 함께 금색의 오묘한 빛이 그의 손에서 피어났다.
그래, 피어났다.
그것은 불의 근간을 둔 꽃.
금색의 불꽃이었다.
“가져가시게.”
이내 물 위를 유영하듯 흘러들어온 천범의 불꽃이 고궁의 손끝에 닿은 순간. 사르륵.
불의 형상을 한 꽃은 활짝 피어나다 못해 꽃잎이 사방으로 퍼졌다.
퍼져나간 꽃잎은 공동 주변으로 널브러져 땅으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뭐…?”
고궁은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불꽃이 꺼져버렸다? 그런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필시 불꽃이 사라졌거늘 어찌 이리 충만한 화기가 느껴진단 말인가.
“뭐, 뭐냐 이게. 뭐냔 말이다!!”
고궁은 돌연 화를 냈다.
“네놈이 날 능멸하는 것이냐!!”
자신을 무시했다 여기는 듯, 고궁은 바락바락 소리쳤다.
하지만 그곳에 모여 있는 다른 태천겁선들은 아니었다.
화탑주조차 크게 놀랐다는 듯 녹색의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태우지 않는 불… 그저 따스하게 스며드는 불이라.”
화탑주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그러나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광소하기 시작했다.
“옳거니! 그래! 내가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불이라 하여 태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거늘! 저 하늘 위의 불은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저리도 모든 것을 밝게 비추기만 하지 않던가! 아아, 그래! 그런 거였어!”
신나게 떠들기 시작하는 화탑주.
그에 동조하는 화탑의 겁선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기운을 갈무리하지 않는 천범.
당금의 상황 모든 것들이 얼떨떨한 고궁은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자네. 꽤 위험한 발상을 가지고 계시는군. 그것이 정녕 자네의 뜻인가?”
영문 모를 말을 이어가는 화탑주의 발언에 금천은 고개를 주억였다.
“저는 천공서를, 천겁을 원치 않습니다.”
“그럼 자네가 원하는 게 무언가.”
“일통(一統).”
하나로 합쳐진 하늘.
대천이 아닌 일천(一天)을 원한다.
“미쳤군. 그런 걸 원한다고?”
원한다.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며 올라왔으니.
“허나 대라의 모든 존재는 그러한 것을 원하지 않을게야.”
“그 누구도. 하늘이 이리 되는 것을 원하는 자는 없었을 겁니다. 그저 이렇게 되었기에, 적응과 만족이라는 굴레 안에서 자위하며 사는 게지요.”
그제야 화탑주뿐만이 아니라 자리한 모든 겁선들이 그의 진의를 깨닫고 목청을 높였다.
“천공서의 모든 이들을 적으로 삼겠다는 것인가!!”
“애초에 그것을 감안하고 왔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겁이란 것은 저와 영 좋은 인연이 아니었거든요.”
그렇기에.
딱.
천범은 손가락을 튕겼다.
“부술까 합니다.”
직후.
화탑 곳곳으로 스며든 천범의 불꽃이 감응하여 터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일순간에 터져나간 꽃잎의 폭발력.
기습적으로 일어난, 세상을 집어삼킬듯한 화마에 태천겁선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이…!”
거기다 천범의 불은 그저 불태우기만 하는 불이 아니다.
창조의 법칙이 가미된 삼천초화.
태천겁선들은 폭발의 후폭풍에 대비하였으나, 그들을 덮친 것은 맹렬한 화기 따위가 아니었다.
그들은 삽시에 다가온 화마 속에서 각자의 세계를 보았다.
그렇다 그것은 세계, 하늘이었다.
누군가는 울부짖었고, 누군가는 몽롱한 낯으로 미소 지었으며, 다른 누군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무슨….”
허나 그러한 미혹에도 화탑주는 자신의 팔을 입으로 씹어 뜯어 정신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그 대가로 정신을 놓은 채로 널브러져 있는 태천겁선들의 광경을 보게 될 뿐이었다.
“무슨 짓을 한 게냐!!”
하늘로 천천히 부상하며 그를 내려다본 천범은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 답했다.
“그들이 보고파 하는 것을 보여줬을 뿐입니다. 본래 불이란 가까우면 타버리고, 멀면 따스한 셈이지요. 뭐 그렇다고 해가 따스하다하여 가까이 다가가 온몸을 불태울 자는 없지만 말입니다.”
누군가에는 따사로움을. 다른 누군가에게는 격렬한 뜨거움을 각자의 바람 아래서 보여줬을 뿐.
“자네가 한 짓은 그저 무자비한 폭력일 뿐이네!”
“본래 세상은 폭력이 전부입니다. 그것은 주먹일 수도, 말일 수도, 행동일 수도 있지요. 허나 그것 모두가 살아 있는 자의 특권 아니겠습니까.”
하늘이 이렇게 나뉘게 된 것 또한 어찌 보면 하나의 폭력 아니던가.
그 누구도 하늘이 이리 되기를.
하늘에서 천겁이 떨어지기를 바랐던 자는 없었으니.
그러니 천범은 없애려는 거다.
하늘의 일통.
일천의 하늘을 만들기 위해.
“오늘을 기억하십시오. 오늘이 바로. 그 무엇보다 높은 천공서가.”
땅 아래로 처박히는 날일지니.
천범은 지극히 당연한 분노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천공서의 첨탑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쳤다.
저러한 크기와 높이를 가지기 위해 대체 얼마나 많은 수선들을 죽여왔다는 건가.
그것의 정당함이 있다 한들 핍박임을 부정할 수 없고, 심지어 이들은 그걸 자랑스레 여겨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데 사용했다.
역겨운 행태가 아닐 수 없지 않다.
후웅- 천범의 소매가 펄럭인다.
어느새 그의 주위로 다양한 겁선들이 달려와 살벌한 기운을 풍긴다.
“화담.”
휙. 소매 속에서 새하얀 빛이 흘러나와 지팡이로 변했다.
새하얀 석장.
딸랑거리는 쇳소리가 청아하게도 들려왔다. 천범은 그것에 창조의 기운을 담았고 이내 지면을 찍었다.
쿵.
오묘한 창조의 기운이 천범의 주위로 파문처럼 퍼졌다.
그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천공서 전역으로 퍼져나가 수천 개의 석탑들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감응하기 시작한다.
“막아라!”
“침입자다!”
“천공서의 불순분자다!”
허나 태천겁선들은 개의치 않고 천범을 향해 술법을 시전했다.
쿠르르릉!
천범의 머리 위로 먹구름이 몰아치고 살벌한 뇌겁과 다양한 법칙의 신통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사라져라!”
콰앙!
천범의 머리로 뇌겁이 떨어졌다.
스윽.
허나 그가 지팡이를 들어 스윽 돌리자 날아들던 벼락은 일순 연기로 변하고, 변한 연기는 불길에 휩싸인 말로 변하여 그의 주변을 뛰어다니다 다시금 연기로 화했다.
“이럴수가!!”
“뇌탑의 뇌겁이….”
하늘의 겁 중에서도 당대 최고의 위력과 깨달음을 내포하고 있는 뇌겁이 저리도 무색하게 허물어지다니!
자리에 모인 태천겁선들은 두 눈을 뜨고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거렸다.
물론, 다른 겁선의 신통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지닌 최대한의 겁을 내린다 할지라도, 천범의 근처만 가면 모두 연기로 변해 다른 형상으로 바뀌다 스르륵 사라져버렸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겁을 재창조하여 사라지게 만드는 것 같았다.
마치 진정한 신과 같은.
“뭣들 구경만 하고 있는 거요! 저놈이 이상한 술수를 부린 게 분명하오! 어서 모여서 해치워버립시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천공서에 저러한…!”
그때였다.
“어, 어어어억!”
겁선 하나가 소리치며 하늘로 빨려 들어가고 빛으로 화해 사라졌다.
근처에 있던 겁선은 돌연 무언가를 보고 픽 쓰러져 떨어져 내렸다.
그러자 이내 시끄럽게 떠들던 겁선의 입이 크게 떠져 다물어지지 못했다.
어느새 그들의 머리 위로는 금색의 거대한 태양이 떠 있었기 때문이다.
“자격 없는 자들의 시험만큼 불필요한 것은 또 없지. 항상 자격과 시련을 입버릇처럼 말하였으니, 이번에는 그대들도 나의 시련을 맛보겠나.”
“헛소리를!!”
“모두 공격하시오!!”
일만여 개의 벼락. 원념이 섞인 비 한 방울. 달콤한 연인의 향기.
뇌겁, 수겁, 목겁, 금겁, 애겁, 연겁, 화겁, 안겁 등등.
수많은 겁들이 천범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콰가가가가쾅!
경천동지할 굉음과 동시에 모래 먼지가 퍼덕거리고 천공서의 땅이 요동칠 정도로 격한 진동이 자아난다.
“어찌 저게….”
그러나 머리 위에 떠오른 금색의 태양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그의 기운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기만 하여 겁선들은 서서히 두려움에 잠식된다.
“저 석장이오! 저 석장을 부수시오! 저것이 천공서의 기운을 흡수하고 있소! 저것만 없으면 저놈도 큰 힘을 부리지 못할 것이 자명하오!!”
“오래 살아서 그런지 감은 좋군.”
화담의 흡성대법은 천공서에 깃든 여러 겁들의 법칙을 훔친다.
그것을 가지고 창조의 법칙을 발휘하니 천공서에 새로운 해가 떴다.
천범의 힘이 작용하는 진위를 밝혀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허나 그것을 막기란 그들에겐 요원한 사실이었다.
“집어삼켜라.”
후우웅!
하늘을 뒤덮을 듯 크기를 키운 천범의 태양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시작은 천기를 빨아들인다.
빨아들인 천기는 천공서에 펼쳐진 금제를 부수고 게걸스레 먹어치운다.
먹어치운 금제는 석탑을 허물게 하고 조각조각 빨려 들어가는 석탑들은 이윽고 천공서의 바닥까지 엿보이게 만들었다.
“막아! 막으란 말이다!!”
허나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어떠한 공격을 퍼부어도 태양은 그저 감내할 뿐.
이렇다 할 변화가 없다.
그저 자신의 분노를 이따금씩 폭발시키듯이 보여줄 뿐.
콰아아앙!!
“크윽! 안 됩니다! 공격을 퍼부으면 퍼부을수록 저희의 천기를 흡수하여 더 강렬해집니다!”
“이토록 뜨거운 화기라니…!! 이것을 어찌한단 말인가! 수겁선들은 저것을 식히지 못한단 말이오?”
“그대들도 하지 못하는 것을 어찌 우리가 할 수 있겠습니까! 저것은 겉보기에만 화의 성질을 지녔을 뿐. 실상은 전혀 다른 것이오!”
실상은 전혀 다르다니.
그게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법칙 중에서도 최고라 치는 창조를 대성한 천존께서 부리는 그것이오!!”
천존!!
하늘이 생겨난 이래.
창조를 흉내낸 자들은 있었으나, 그것을 대성한 자는 없었으니.
당금의 천공서를 집어삼키는 태양은 창조를 대성한 자들이 사용할만한 법칙을 다분히도 담고 있다.
그러니 곧.
“그럼 저분은….”
“천존들 중 하나시라는 말이요!?”
“그럴 리 없소! 천공서를 이루신 분이 바로 삼청 중 한 분이신 도덕천존! 바로 태상노군님이 아니시던가!!”
“그럼 대체…….”
저자는 누구란 말인가.
금빛 찬란한 태양 아래.
사내의 머리와 눈은 금색으로 물들어 찬란함을 뽐내고.
물결치는 금색의 기운이 사방을 흩뿌리며 금천을 이룬다.
“아아….”
겁선들이 전의를 잃은 듯이 손을 떨어트리고 만다.
무슨 짓을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법칙을 움직여보아도, 술법을 써 봐도 티끌조차 달라지지 않는다.
애초에 태양을 상대로 어디로 어떻게 도망쳐야 한단 말인가.
무한이란 단어가 어울리도록 커져만 가는 금색의 해는 북공천의 천공서를 모조리 집어삼키고 나서야 그의 손아귀로 돌아간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북공천의 하늘에, 천공서는 그간의 역사와 천겁이 허물어져갔다.
이제 세상에.
“천겁은 없다.”
담담히 중얼거리며 손아귀에 잡힌 하나의 명패를 보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