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85)
낭선기환담-584화(585/600)
2부 294화 – 특별 외전 11
푸확!
살이 찢기고 피분수가 튀었다.
떨어져 내린 머리에는 절망이 깃들어 있고, 머리 잃은 목은 길 잃은 나룻배처럼 정처 없이 휘청거린다.
아홉 개의 머리 중 셋이 잘리거나 찢기고 불태워졌다.
그러나 그럼에도 구영은 쓰러지지 아니하니, 이전보다 더 용맹한 포효를 내뱉으며 강맹함을 내보인다.
“허나 그래봤자 겁을 집어먹은 들짐승처럼 제몸을 부풀리는 것일 뿐!”
이름모를 진선이 수결을 맺으며 입을 달싹거리자 구영의 울부짖음이 더욱 커져만 간다.
일대에 먹구름이 몰려와 보슬비가 내리지만, 그것은 전신을 녹이는 마귀의 물이니.
고통스러움이 배가 된다.
[빌어먹을 날벌레 같은 놈들!]허나 그럼에도 구영은 죽지 아니한다.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나을 고통이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참고 인내하는 것뿐이었다.
‘아직인가!’
밑에서는 용암이 들끓고, 위에서는 산성비가 두꺼운 비늘을 뚫고 뼈로 스며들어 고통을 선사한다.
그뿐이랴.
붉은 창을 수백 자루나 가지고 있는 진선은 구영이 틈을 보일 때마다 그의 몸에 창을 꽂아 넣고 있다.
구영의 크기가 워낙 크다 보니 별 신경을 쓰지 않았으나, 창이 진선의 손을 떠나면 웬일인지 거창으로 변해 살과 살을 꿰뚫어 빠지지를 않는다.
마치 살을 꿰뚫고 달라붙어 하나가 되듯 말이다. 그렇다 보니 구영의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미칠 지경이었다.
이놈을 치려 하면 저놈이 저지하고, 저놈을 공격하면 이놈이 막으니.
‘좋지 않군.’
처음 기습으로 진선 셋을 빈사 상태로 만들었으나 그게 전부였다.
“구영! 네가 무슨 짓을 해도 죽지 않는 불사의 몸을 지녔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예전에도 네 몸뚱이만 믿고 분란을 일으키다 영락한 것을 잊어버린 모양이구나! 그때나 지금이나 무엇 하나 다를 것이 없으니 그대가 신수가 되지 못하고 대흉이 된 것이다!”
[닥쳐라!! 누가 신수 따위가 되고 싶다고 한 적이라도 있더냐!]“아픈 곳을 찔렸나 보군.”
이내 구영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놈의 얼굴이 퍽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어디서 봤다 했더니, 낯선 사내의 얼굴에서 앳된 아이의 얼굴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같잖은 것이 괜한 헛소리를 한다 생각했거늘. 네놈. 날 아는군.]“대라상전에서 네놈의 난리 때문에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는지 아는가. 그중에는 내 부모님도 있었다.”
[하하하! 기억도 나지 않는 원한으로 내게 복수하러 왔다는 게냐? 웃기는군. 그래, 지금 다시금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얼굴이 있군. 내 꼬리에 깔려 뒤진 놈들 얼굴이야 모두 하나같이 해괴한 비명을 내질렀으니, 그들 중 하나가 네놈 부모였겠구나!]“빌어먹을 자식! 그리 추방당하여 영락했음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구나! 네놈은 신수로서 떠받들어질 자격도 없다! 지금 여기서 네놈의 명줄을 끊어줄 터이니!”
[허나 그때의 일은 네 녀석도 관련이 있지 않던가? 대라상전의 길 안내를 받았기에 그 시절의 일이 벌어졌지. 아마 길 안내를 받지 아니하였다면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길 안내. 네놈이 하지 않았던가.]“그 시절의 일은 지금도 가슴 속에 영원한 후회로 점철되었다. 오늘에서야 그날의 과오를 새로 쓸 것이니, 나의 창을 받아야 할 것이다.”
“지금이오! 어차피 놈은 질기게도 죽지 않으니 큰 힘을 뺄 필요가 없소! 목을 전부 베어내면 한동안 움직이지 못할 것이니 그 틈을 타 봉인하면 될 것이오!”
[누가 그리 두게 한다더냐!]콰아앙!
모래 먼지가 뭉게뭉게 피어나고, 그 속에서 여섯의 인영이 튀어 나갔다.
“놈이 분열했소!”
“잡아라!”
남아 있던 머리들이 하나씩 분열하여 용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구영의 머리들은 하나씩 사람의 형상을 갖추고 창과 활과 검, 그리고 방패를 든 사내와 여인으로 변했다.
“같잖은 수를!”
[흥! 같잖은지 아닌지는!] [네가 판단할 것이!] [아니다!]구영은 각종 신통에 능했으나 법칙의 힘에는 그다지도 자질이 없었다.
하지만 법칙을 단련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육신과 태어날 때부터 강인한 완력이 그에게는 있었다.
그는 특출난 재능은 없지만, 그 옛날, 대라상제도 어쩌지 못할 질긴 목숨줄과 완력을 지니고 있었다.
여섯으로 분열한 구영은 각각의 창술과 검술 등을 가지고 그저 육신의 힘만으로 그들과 대등했다.
허나.
“그것으로 될 것 같았느냐!”
촤악!
적의 숫자가 많았다.
본래의 경지를 아직 되찾지도 못했고, 별 볼 일 없는 자들이라 생각했던 진선들의 신통이 생각보다 대단했다.
“우리는 대라상제의 명을 받고 천공서의 겁선들을 지키고 북공천의 하늘을 어지럽히는 네놈을 섬멸키 위해 왔다.”
대라상제의 명?
어쩐지 단순한 진선들치고는 서로 간의 호흡이 잘 맞아떨어지는 놈들이라 생각했거늘.
[어떤 놈들인가 했더니 상제의 개였군. 어쩐지 시끄럽게 짖더라니.]상제의 개.
대라상제의 명만을 듣고 수행하는 제천옥선(祭天玉仙).
그들은 상제의 명이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한다는 친위대나 다름없는 자들이었던 것이다.
태천겁선들이 탐구욕 강한 학자들과 같다면 제천옥선들은 강인한 무력을 행사하는데 도가 튼 진선들 중에서도 특출난 자들이다.
그러니 구영이 저리도 당하는 것이리라.
“구영, 이번에는 상제께서도 단순한 추방으로 끝내지 않을 게다.”
[그깟 놈이 날 추방하거나 봉인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더냐.]“상제께서 진심으로 널 어쩌지 못하여 추방으로 끝냈다고 보는가.”
[…….]“그분의 배려를 헤아리지 못했으니 이번에야말로 네놈의 명이 다할 것이다.”
[얌전히 잡힐 것이라 보지 말라.]그리고.
[나는….]말을 마치기도 전.
“지금이오!”
우웅!
[큭!]“봉인하지요! 지금이 아니라면 또 무슨 수를 벌일지 모릅니다.”
“우리의 목적은 겁선의 구출이기도 하니, 어서 저 금양을….”
“그러는 게 좋겠수다.”
이내 진선들이 수결을 맺고 입을 달싹이며 봉인술을 읊자 구영이 하늘을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다.
벼락이 내려치고 번쩍이는 빛무리가 전신을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서서히 하나로 뭉쳐져 본신이 나타났는데, 장대한 전투로 인해 머리는 여섯이 떨어지고 셋만 남은 머리도 성하지 않은 상태였다.
누가 보았다면 죽기 일보 직전.
딱 그 모습이라 봐도 좋았다.
누가 알았을까.
신수라고도 불리는 구영의 신체가 저리도 너덜너덜 걸레짝이 될 수가 있다는 사실을.
[원통하도다.]하지만 그럼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구영의 눈이 원통함에 젖었다. 습기 가득한 그의 눈은 여전히 빛나는 금양을 바라본다.
허나 금색으로 박동하는 태양은 이전과 변함이 없다.
고요하기만 했다.
‘아직인가.’
시간이라도 오래 끌어주려 했건만.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수많은 격전이 지나갔지만, 저 안에서 싸우고 있을 천범은 더 많은 적을 상대하고 있을 테니.
하지만 아쉬움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입을 짓씹는 것밖에.
[원통하다.]동료의 부탁 하나 완수하지 못했으니 원통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진창의 나락으로 떨어진 구영에게.
다시금 대라의 천기와 빛을 보여준 자가 누구던가.
바로 천범이다.
누구 하나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 누구도 자신을 원치 않았으나 천범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원했다.
그러니 그 기대에 조금이라도 부응하고픈 마음이 있었거늘.
‘허나 이리도 허무하게….’
“목을 자릅시다. 목을 잘라야 한동안 움직이지 못할 터이니.”
“그럽시다. 약간의 틈만 있어도 난동을 피울 놈이니 말이요.”
제천옥선의 검이 구영의 목 위로 겨누어졌다.
형형한 예기가 섬뜩하게 구영의 망막에 비추었다.
이내 그것이 내려치려는 순간.
스윽.
탁.
“!!!”
웬 사내가 나타나 옥선의 검을 맨손으로 잡아챘다.
“오랜만에 보는 명검이군.”
옥선의 검에 사내의 핏방울이 맺혀 검신을 따라 흘렀다.
복잡한 문양이 이어져 있는 검신을 지나 코등이에 핏물이 닿아 뚝뚝 떨어졌다.
검을 잡고 있는 옥선의 손이 화들짝 놀라 검을 놓친다.
어느새 자신의 검이 액체처럼 녹아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천옥선들의 동공이 확장되고, 구영의 입꼬리는 씨익 올라간다.
[기다리다 목이 빠질 뻔했네.]“빠질 뻔한 거 방금 구해줬으니 너무 뭐라 하지 마시게. 덕분에 오랜만에 내 피가 붉은 것도 확인했으니.”
검은 머리에 금안.
금색의 물결을 흩뿌리며 나타난 사내는 다름 아닌 천공서를 북공천에서 없애버린 장본인.
대라에서 알음알음 퍼져가는 소문의 본주인.
금천진군.
천범이었다.
“고작 다섯한테 이 꼴이 된 건가?”
[일천의 대군이었지. 모두 죽이고 저놈들만 남은 걸세.]“허풍도 그 정도면 사기라네.”
[진짠데 안 믿는군.]“입에 침이라도 바르고 거짓말하시게. 저 정도나 되는 강자들이 일천의 숫자였다면 나도….”
잠시 고민한 천범은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해볼 만하려나.”
“역시 구영 혼자서 벌인 일은 아니었군. 네놈인가. 네놈이 항간에 떠도는 소문의 장본인인….”
“금천진군이….”
“죽어라!!”
말하는 도중의 기습.
머리 위로 뛰어든 제천옥선의 창이 천범에게 내질러졌다.
천범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보다 손에 묻은 피를 가볍게 털었다.
“크학!”
단순히 피를 털어 기습하는 제천옥선에게 맞췄을 뿐.
허나 그 가벼운 행동과 달리 제천옥선이 느끼는 고통은 심후했다.
그는 커다란 비명을 토해내고 얼굴을 문지르다가 불타오르는 것도 아니고 그대로 녹아내려버렸다.
“……무슨.”
“한 합에…?”
터럭도 남지 않고 녹아버린 그의 모습에 제천옥선들은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그야말로 한순간의 일.
다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삽시에 일어난 일을 눈으로 보고도 쉽사리 믿을 수가 없기에 그러했다.
“이왕 피를 보았으니. 그대들을 기다리게 한 대가로 꽤 재미난 것을 보여주도록 하지.”
이내 그의 손에 새까만 검이 나타나 잡혔는데, 피를 게걸스럽게 빨아 먹더니 사이한 기운을 북공천의 일대에 퍼뜨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계에서부터 그의 손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검.
이전의 이름은 구환도이자, 지금은 새롭게 태어난 검.
귀음나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