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95)
낭선기환담-594화(595/600)
2부 304화 – 특별 외전 21
정포결의 만월당.
집무실에서 당의 집무를 보고있던 초아에게 급보가 날아들었다.
“무슨 일입니까.”
“하늘을 올려다 보시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이내 올려다보니 하늘에는 왠지 모르게 커다란 태양이 떠올라 있었다.
꽤 익숙하고 따스한 기운.
초아의 입가에 자연스레 호선이 그려졌다.
“웃으실 일이 아닙니다.”
그녀의 곁에는 금천진군을 명도천으로 안내했던 여인.
취난도 함께하고 있었다.
“또 무슨 일을 벌이시는구나.”
“큰일이라니까요….”
바깥은 이미 난리가 아니다.
하나뿐이어야만 하는 태양이 갑자기 둘로 늘어난 것이다.
거기에 거리까지 이렇게 가깝게.
사해의 바다가 얼어붙은 것은 분명 커다란 일이겠지만, 코앞에 거대한 태양이 생긴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어찌 이리 태평하실까!
“본래 내 서방님은 워낙 큰사람이라 우리가 감당키 어려운 커다란 일들을 벌이시고는 하지.”
허나 그 모두.
“서방님께서 알아서 하실 테니, 그렇게 소란 떨 필요 없단다. 너도… 부군을 보았잖니?”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위치가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초아는 개의치 않는 듯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부군과 함께 시간을 보냈으니 너도 꽤 알거야. 괜한 일을 벌이실 분이 아니시다. 게다가 본래 사내는 일을 벌이고, 여인은 그것을 돕는 법이지.”
그걸 보고 내조라 하지 않던가.
“하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려면 무슨 일인지는 알아야겠구나.”
그제야 이야기가 흘러가자 취난은 다급하게 말했다.
“옥궁의 상전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목이 여러 개인 용이 나타나 난동을 피우고, 잠시 잠잠하더니 이윽고 저리 커다란 게….”
목이 여럿인 용이야 당연히 그와 함께 있을 구영일 것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대라 상전에 저리 커다란 태양이 떠올랐으니 세상 모두가 그의 소행임을 짐작하리라.
“상제와 끝을 보실 생각이겠구나.”
자연스러운 귀결은 그것 밖에 없다.
때문에 진선들은 극명하게 나뉘어 누가 승자가 될지를 기원했다.
대부분은 상제의 편이었다.
대라에 자리한 자들은 변혁을 원치 않는 자들이었으니.
게다가 상제가 쓰러진다면 금천의 독주를 막을 자가 누가 있을까.
모두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거였다.
“익숙함은 변화를 두렵게 만들지.”
익숙한 것이 편하다.
새로운 것은 불편하다.
지극히 당연한 논리.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있으나, 변해서 이로운 것도 분명히 있다.
본래 모든 것은 장단점을 갖기 마련이니 무엇이 옳다 그르다 정의할 수는 없을 터.
“허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누가 승자가 될지는 오직 하늘만이 알 길인데.
“그보다는 손님을 맞이하는 게 우선인 듯싶구나.”
“예? 손님이요?”
“괜찮으니 나오십시오.”
이내 초아가 집무실 한 켠을 바라보며 나긋나긋하게 말하자.
허공이 일렁이며 어느 여인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취난은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그녀의 미모에 얼굴을 붉혔다.
같은 여인이 봐도 그녀는 가련하고 아련하며 탐스러운 복숭아처럼 어여쁜 모습을 지닌 신선이었다.
“절 찾아오셨나요.”
아니면.
“부군께서 보내셨나요.”
복숭아를 닮은 여인.
상희가 초아를 찾아온 것이었다.
“저, 절 도와주세요! 아, 아니! 선을 도와주셔야 해요!”
선을 도와줘야 한다라.
초아는 다급하게 말하는 그녀의 몸에서 제 서방의 기운을 느꼈다.
그녀가 말하는 선이라는 자는 아마도 천범일 터.
“우선 침착하고, 여기 앉아 보시겠습니까. 취난, 차를 내오거라.”
초아는 벌벌 떠는 상희의 두 손을 꼭 잡아주고는 자리에 앉혔다.
그녀는 꽤 무서운 것을 보기라도 한 듯 동공이 확장과 수축을 반복하고,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내 취난이 따스한 차 한 잔을 가져오자, 상희는 그것을 두 손으로 감싸 한 입 머금었다.
“하아….”
“심신을 진정시키기에 좋은 차에요. 어떠신가요.”
“아, 네… 감사합니다.”
상희는 뒤집어쓴 겉옷을 내려놓고 다시 한번 차를 홀짝였다.
“취난, 넌 나가보렴.”
“아, 예. 그럼….”
연신 상희의 미모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취난을 내보내고.
초아는 그녀를 잠자코 바라봤다.
‘어여쁜 여인이다.’
이런 여인에게 제 남편의 기운이 묻어 났으니.
초아로서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여인된 마음은 잠시 접어둘 수밖에 없었는데.
“해서, 무슨 용무로 바쁜 걸음을 해주셨습니까.”
묻자 찻잔을 황급히 내려 놓는다.
“선을 도와야 합니다!”
“선이라는 자는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혹, 제가 알고 있는 분인지요.”
“예! 그, 금천진군을 말하는… 모르셨나요?”
그분의 진명을?
순간적으로 초아의 아미가 좁혀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진명이 낭선이라니.
그녀는 처음듣는 이야기였다.
“그렇군요.”
내심 아무렇지 않은 척 평정을 유지했으나 껄끄러운 마음이 가시지를 않으니 부드러움은 길을 잃고.
뾰족함만이 입안에 감돌았다.
“제가 무슨 실수라도….”
“아닙니다. 저는 몰랐던지라.”
“아….”
두 여인 사이에 어색한 정적이 흘렀으나 그 또한 잠시뿐.
본론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해서, 무엇을 도와달라다 청하시는 겁니까. 제가 누구인지, 어떤 자인지 알고 계십니까.”
“네, 네! 선이 명도로 가기 위해 길잡이를 만나게 되었을 때. 저도 배웅차 가게 되었어요.”
그때, 천범은 혹시 모를 사태를 위해 상희에게 일러두었다.
자신이 잘못되거나 한다면 길잡이가 모시는 여인을 찾으라고.
“그랬군요.”
“당신께서… 선과 어떤 사이인지 저는 잘 몰라요. 하지만 그가 말한 분이니 믿을 만한 분이고, 저와는 달리 강인한 분일 거라 생각해요.”
그러니 도와주었으면 한다.
“…보다 자세한 상황을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혹, 탐화라는 오룡을 아시나요?”
“네. 알고 있습니다.”
그가 친자식보다 더 아끼는 딸아이가 아닌가.
“탐화가 의지를 잃었어요. 아니, 빼앗겼어요! 그녀는 이제 선이 알던 아이가 아닌, 서황모님이에요!”
서황모가 탐화의 몸을 뺏었다.
그녀는 본래 오래전의 전투로 상처를 입고 요양 중이었으나, 이제는 튼튼한 몸을 얻어버렸다.
그리고.
“저는 알아요.”
왜인지 그녀는 서황모가 앞으로 행할 일들을 알 것 같았다.
정확하게 아는 것은 아니다.
그저 지레짐작.
하지만 묘한 확신이 깃들어 있다.
“서황모님은… 아니. 서황모는 대라 상제와 선을 노리고 있어요.”
* * *
“옛날, 어느 노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옥을 만드는 것은 쉽다.
가까이에 있는 이를 미워하게 되면, 그곳이 지옥이 될 것이다.
“꽤 감명 깊은 이야기였습니다. 그보다 오랜 세월을 더 살아왔으나 깨달음의 다양성은 참으로 깊고 넓죠.”
천범은 금빛으로 된 끝없이 펼쳐진 물가 위의 정자에 앉아 있었다.
주변은 안개로 가득했다.
바로 눈앞에 앉아 있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자욱하여 숨소리, 말소리만 들려올 따름이었다.
“금천. 저와 한가지 내기를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내기요.”
“예. 저는 종종 하계의 하늘을 내려다보고는 합니다. 이곳과 달리, 그곳은 범인들이 많아 다양한 자들의 생각과 행동을 볼 수 있지요. 간혹 생각지 못한 깨달음을 얻고는 합니다.”
상제가 손바닥을 뒤집자, 커다란 대접이 나타났다.
푸르름을 머금은 녹빛의 대접에는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그것을 탁자에 올려놓고 손을 가져가자.
아무것도 없는 대접에 물이 샘솟더니 무언가를 비추기 시작했다.
“범인의 생은 참으로 짧습니다. 잠시 눈을 떼면 수명이 다해버리죠.”
상제의 대접은 범인을 비췄다.
작은 어린아이였다.
입은 의복이나 차림새가 말끔하지는 않은 사내아이.
산과 들을 뛰놀며 학문보다는 무예에 관심이 깊은 녀석으로 보였다.
“이 아이는 참으로 기구한 사연을 가진 녀석입니다. 처음에는 참으로 혹독한 팔자를 지녔구나 싶어 지켜보았으나, 보다 보니 저도 모르게 정이 들어 응원하게 되더군요.”
상제가 다시 한번 대접 위로 손을 휘적이자 장면이 바뀌었다.
산과 들을 뛰놀며 사냥 연습을 하던 어린아이에게는 자못 비참한 모습과 장면이 나타났다.
“요수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가까이하던 마을 사람들과 제 부모를 모두 잃어버렸지요.”
아이는 우연히 홀로 사냥을 나갔다가 변을 피했다.
그러나 남은 것은 피로 얼룩진 마을과 비참하게 오열하는 어린아이의 모습뿐이었다.
아이는 복수를 다짐했다.
허나 그런 마음이 무색하게도.
“녀석마저도 남아 있던 요수들의 눈에 띄어 잡혀가게 되지요. 아이의 불행은 거기서부터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잡아먹히는 현장을 직시하게 되고, 자신마저 잡아먹힐 뻔하였으나 운이 좋았다.
아이는 도에 자질이 있었다.
그것을 알아본 요수는 아이를 키워서 잡아먹기로 하였다.
변덕이었다.
그러나 그 변덕이 아이를 살렸고.
종국에는 복수를 낳았다.
“꽤 익숙한 이야기로군요.”
“그렇지요?”
천범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퍽 익숙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익숙한 얼굴이었다.
“금천께서도 잘 아실 겁니다. 꽤나 귀한 인연으로 묶여 있었으니까요.”
상제는 그런 아이가 기특하였다.
하여 한동안은 지켜보았다.
잠시 눈을 떼면 죽을지 모르는 찰나의 존재이니까.
그렇게 많은 것을 보았다.
아이는 어느새 청년으로 성장했고.
어엿한 도사가 되었다.
어릴 적의 아픈 기억은 냉철한 판단과 실리를 구분하는 성격을 만들어주었고, 그를 바탕으로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해나가게 되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요수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살육이랄까.
청년이 된 아이의 얼굴.
그리고 불리는 이름. 그것이 천범의 가슴을 찌르르 울렸다.
“녀석의 이름은 유정. 금천진군과 인연이 깊은 범인이였죠.”
“…….”
“저는 그의 마지막까지도 함께 했습니다. 그가 사라지고 난 이후, 저는 자연스레 유정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존재에게 관심이 쏠렸지요.”
“제가 미우시겠습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범인의 혼은 돌고 도는 것이니, 이번 생이 아팠다면 다음 생은 덜 아프고, 어쩌면 행복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는 상제의 이야기를, 범은 차분하게 기다렸다.
지금 상황에 어찌하여 이러한 이야기를 꺼냈을까.
그것이 궁금했다.
“하여 당신이 반가웠습니다. 저와 생각이 다른 것은 아쉬우나, 그 또한 하늘의 뜻이겠지요.”
“…….”
“금천진군. 그대는 의심하고 있다고 하셨지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하늘에 의해 키워지고 있는 게 아닌까. 사육 당하는 게 아닌가.
“유정은, 의도된 존재였습니다.”
“……그랬습니까.”
“꽤 기이한 운명을 지닌 자였죠. 하늘이 택했고, 하늘과 가까운 존재들이 그의 주변을 꾸렸지요.”
하여 태어난 자가 그다.
“우리는 그를 키울 생각이었습니다. 차분하게 성장하고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어 열쇠로 만들려 했지요.”
기꺼운 길로 인도하여, 그를 키워 새로운 하늘을 열 열쇠로.
“상천으로 등선하고 자연스레 창조의 길로 인도하려 했습니다.”
허나 실패했다.
어처구니없게도, 하늘이 점지하고 하늘을 대신하는 존재들이 꾸렸음에도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당신이 나타났죠. 그의 운명을 갉아먹고 자라난.”
하늘이 점지한 별이 져버리고 새로운 운명의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은 크고 빠르게 불어 닥쳐 태풍처럼 쉼 없이 몰아쳤다.
하여 어느새.
자신의 눈앞까지 당도했다.
“용과 황이 그대를 눈엣가시처럼 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자신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 것이 바로 당신이니까요.”
“그렇습니까.”
대접에는 유정의 얼굴 대신.
천범의 모습이 나타나 흘렀다.
“금천.”
“예.”
“세상에는 많은 별이 있습니다.”
별은 저마다 빛을 자아낸다.
크고 작은 빛.
“눈부신 빛을 자아낼수록, 그것을 품은 자는 어찌 되는지 아십니까.”
“어찌 됩니까.”
“죽음과 가깝다는 뜻입니다.”
금천.
“당신의 별은 누구보다 눈부시게 빛나고 있습니다.”
“협박입니까.”
“아니요. 우려입니다. 그대는 나의 죽음을 보았다 했지요.”
“예.”
이내 상제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말하기를.
“어쩌면 우리 둘 다.”
죽을지도 모르겠군요.
똑.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상제와 천범의 가운데 있는 대접에 깊은 파문이 일어났다.
파문은 그것으로 멈추지 아니하고, 이내 파도를 치고 바다를 이루어 출렁이니 상제와 범을 덮쳤다.
“허….”
상제는 우습다는 듯이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물을 한 움큼 쥐어 들어 올리고선 허탈한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이 있는 공간이 온통 물로 가득 찼으나 상제와 범은 평온한 듯 좌선한 채였다.
“그대의 적은 제가 아닌가 보군요.”
나지막한 상제의 중얼거림에 범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