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98)
낭선기환담-597화(598/600)
2부 307화 – 특별 외전 24
“제길…!!”
콰앙!!
어두운 공간 속. 대리석으로 조각된 기둥과 기묘한 조각품과 제단처럼 이루어진 공간 속에서 한 여인이 지독한 살기를 내뿜었다.
“우읍! 쿠헉!”
허나 이내 검붉은 핏물을 토한다.
가녀린 몸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양의 피가 새하얀 바닥을 웅덩이로 만들었다.
피를 토해낸 후에야 살만하다는 듯 숨을 골랐다.
서황모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이내 이를 짓씹었다.
“대체 어떻게 알고….”
생각을 정리해봐도 도통 알 수가 없다. 자신의 머릿속이라도 들여다 보았단 말인가.
참 치밀한 놈이 아닐 수 없다.
“허나 상관없다. 제 딸년의 몸을 빼앗아 고통을 주려 했으나, 그게 아니된다도 해도 방법은 많으니.”
제격인 것은 오룡의 몸이었으나, 아니어도 방법은 많다.
그가 아끼는 여인이라던지, 그의 약점은 얼마든지 알고 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하여 그냥 두었으나.
이제는 방도가 없다.
“하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더는 시간도 없다.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툭.
서황모의 몸이 흠칫 떨었다.
“…!!”
이내 다가오는 그림자를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조아린다.
“여, 여기는 어찌….”
서황모는 그의 존재에 너무도 놀라 아픈 것도 잠시 있었다.
넙죽 엎드린 서황모.
허나 다가온 자는 오히려 혀를 끌끌 차면서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내가 널 그냥 내버려 둔 것은 그에게 좋은 양분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허나.
“이제보니 내 생각이 짧았던 것 같군. 이다지도 타락했을 줄이야. 고작 한다는 것이 그런 치졸한 짓일 줄은 몰랐어.”
“하, 하지만!”
“됐네. 자네는 쓸모를 다 했어. 이제 편히 쉬어도 되네.”
툭.
어둠 속에서 오래되고 녹이 슬어 있는 석장이 서황모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그러자 그녀의 몸 전신이 순식간에 녹이 슨 철제처럼 변하더니 손바닥만 한 철괴로 변해버렸다.
“존재하면 안되는 것이 개입하여 그의 굴레가 더욱 빠르게 흘렀어.”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혼잣말이었다.
“엿듣는 취미가 있는 줄은 몰랐군.”
이번에는 혼잣말이 아니었다.
녹슨 석장으로 지면을 툭.
두들기자 기의 파문이 퍼져나가며 어둠 속에 자리한 사내의 모습이 나타났다.
검은 도포를 휘날리며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나는 눈을 지닌 신선.
천범이었다.
“저를 아시는군요.”
“알지.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오래전부터 지켜봐왔으니.”
평범한 인상착의의 노인.
정갈한 장삼과 새하얗게 흰 머리와 수염은 어느 정도의 세월을 겪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고고한 분위기를 풍겼다.
범은 그를 보자마자.
가늠할 수 없는 깊이의 천기를 느끼고 몸이 절로 긴장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애초에 자신의 팔목에 감겨 있는 탐화가 긴장하고, 화담이 벌벌 떨고 있으니 왜 아니 그럴까.
“날 알겠는가.”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
“못볼 꼴을 보였으니, 대강 그렇겠지. 눈치 하나는 빠른 편이니.”
자신을 알고 있다.
서황모를 한순간에 이 세상에서 지워버렸다.
괴이한 철괴로 만들어버리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게다가 그녀의 존재를 용인했다는 부분에서 그의 위치를 언뜻 알 수밖에 없었다.
‘천존(天尊)’
삼청이라 불리는 세 명의 천존들 중 하나일 터.
“태상노군이 아니신지요.”
“흐흐흐. 어찌 알았나.”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삼청의 천존께서는 본래 하나이며 셋으로 나뉜 하늘이시니.”
그 셋은 소인(小人)과 대인(大人), 그리고 노인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나머지 둘은 어린아이와 사내의 모습을 하고 있다하니, 노인의 외형을 지닌 이 자의 정체를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태상노군.
또는 도덕천존이라 불리는 자이다.
그리고.
“이전에는 황천이라는 이름으로 만인의 스승이 되신 분이시지요.”
상천을 틀어막은 장본인.
도를 내리고 하늘을 닫아버린 존재가 바로 이 자이다.
범은 자그마한 적개심과 이상하게 울컥하는 그리움이 가슴에 사무쳤다.
“한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허나 태상노군은 고개를 저었다.
“어찌하여 하늘을 닫았는가. 제자를 양성하였는가에 대해서겠지.”
범은 긍정하듯 경청했다.
“하늘을 닫았는가… 그게 궁금한가? 지금에서는 굳이 의미가 없는 것을.”
“당신께서 닫은 하늘을 다시 여느라 많은 희생을 치렀습니다.”
“희생이 아니라 살생이 아니던가.”
“….”
“상천을 닫은 것은….”
툭. 툭.
잠시 고민하던 그는 석장으로 바닥을 두드리다 답했다.
“기대…했기 때문이지.”
“기대?”
“그래, 우리는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또한 기대했거든.”
자신들이 막아 놓은 상천을 뚫고 올라올 존재를. 그리 대단한 힘과 깨달음을 지닌 성인을 그들은 기다렸다.
“허나 결국에는 나타나지 않더군. 우리는 실망했고, 이후 만들기로 했다네.”
“그게 유정이군요.”
모든 기연을 가진 존재.
기연의 사랑을 받는 자.
범의 입안에 씁쓸함이 감돌았다.
“그래. 그렇지. 허나 그마저도 뜻대로는 되지 않았어.”
“서황모의 개입으로 제가 나타났기 때문이겠죠.”
의도적인 운명을 만들었다.
계획도 세워놓았다.
허나 천범의 존재로 그 모든 것이 단숨에 허물어졌다.
“그러나 나쁘지 않았네. 아니, 오히려 찰나와도 같은 시간동안 자네는 많은 고난과 고초를 겪으며 성장했고 우리를 놀라게 했지.”
“허나 저를 길잃은 도라 칭하시지 않았습니까.”
“도라는 것은 본래 우습게도 길이란 게 정해져 있지 않지. 어디로든 가는 게 도인데 길이 어디있을까. 발 닿는 곳이 길이거늘.”
그런 점에서.
“난 자네의 진명이 퍽 마음에 들더군. 낭선. 낭선이라…. 참으로 신비롭고도 그리운 이름이지 않은가.”
“그렇습니까.”
“누구나 떠돌다 보면 낭선이라는 호칭을 쓰고는 하지. 나도 그렇고, 도를 닦는 어느 누구도 한 번쯤은 낭선이 되지를 않나.”
그런 점에서 그의 진명은 참으로 그리운 이름이었다. 누구에게나 자리한 추억을 되새겨주는 이름이랄까.
“태상노군.”
“그래.”
“저의 존재를 어째서 기꺼워 하신 겁니까. 애초에 유정이란 자의 운명을 만든 이유가 무엇인지요.”
“흠… 낚시 좋아하나?”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그럼 낚시나 하러 가세나. 여기서 많은 대화를 나누기에는 영 장소가 마뜩잖으니.”
* * *
“운명이란 낚시와 같지.”
태상노군은 느긋하게 낚싯대를 드리우며 입을 열었다.
“무엇이 말입니까.”
“기다림이야. 운명이란 하나의 기다림이네. 인생도 마찬가지지.”
기다리지 않으면 나타나는 것도 없다. 기다림 끝에 낙이 온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낚시는 하나의 도나 다름없지.”
“저의 존재도 말입니까.”
휙.
떡밥을 던져놓은 태상노군은 말없이 긍정을 뜻했다.
“떡밥을 왜 던지는 줄 아나.”
“물고기를 꼬이기 위해서죠.”
“그럼 왜 그런 짓을 할까.”
“물고기를 낚기 위해서 아닙니까.”
“답변이 되었나?”
“…….”
“거 눈빛으로 사람 죽이겠구만. 흐흐, 허나 내 답은 변함이 없네.”
운명은 낚시와 같다.
기다리고 낚는다.
그것을 위해 떡밥을 던진다.
꼬이는 것을 낚기 위해.
“제가 물고기란 말입니까.”
“그렇지. 그런 편이지. 너무 커다란 물고기라 부담스러워졌지만 말야.”
물고기도 여러 종류가 있으니.
“상어나 고래 종류 아닐까 싶네. 고래와 상어가 섞인 뭐 그런 거지.”
태상노군은 낚싯대를 매만지며 흥얼거리듯이 말하였다. 빙빙 도는 이야기에 천범의 인상이 저절로 구겨졌으니.
“그럼 이제는 말씀해주시지요.”
“유정의 운명을 의도한 이유?”
“예.”
“흠…… 자네는 하늘의 끝이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끝….
범은 잠시 생각했다.
하늘의 끝.
상제는 흑천이라 말했다.
흑천에서도 끝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곳에 다가가지 않는 이상 하늘의 끝은 없다고 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마음이지요.”
“마음? 어째서 그러한가.”
“길의 끝이란 본래 없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자신이 끝이라 정하면 끝이고, 아니라면 아닌 것이 바로 길이란 놈이지요.”
하늘도 같다.
내가 바라보는 하늘이 끝이라 생각하면 끝인 것이고.
그게 아니면 더 높은 하늘이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
천범의 대답은 이러했다.
“끝은 마음먹기에 다르다라.”
태상노군은 퍽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는지 고개를 주억였다.
그러다가 낚시찌가 흔들리며 강가 속으로 파고들었다.
잔잔한 파문이 자리했다.
그러나 태상노군은 낚싯대를 들어 올리지 않았다.
“잡지 않으십니까.”
“제 운명이지 않겠나. 낚싯대를 들어 올려도 바늘을 털어낼 놈은 털어내기 마련이고.”
가만히 내버려둬도 바늘을 털어내지 못할 놈은 제풀에 지쳐 자신을 옭아매는 덫을 털어내지 못할 테니.
“기다리면 될 일이네.”
잠시 기다리자.
그의 말처럼 제풀에 지친 물고기는 한참을 퍼덕거리다 축 늘어졌다.
바늘이 아가리에 단단히 끼인 모양이었다. 태상노군은 잠잠해진 찌를 바라보다 힘들이지 않고 낚싯대를 들어올렸다.
살이 통통하게 차오른 잉어였다.
오묘한 생김새와 빛깔이 고와 태상노군은 아가리에 꿰인 바늘을 빼내어주었다. 그리고 피 흘리는 아가리의 상처를 툭 건드리니 시간이 되돌아가듯 잉어의 상처가 사라지고 다시금 생기를 되찾았다.
이내 강가에 휙 던지자 잉어는 고맙다는 듯 빠르게 주변을 헤엄치며 튀어 오르다 사라졌다.
태상노군은 다시금 미끼를 꿰어 찌를 던지고는 떡밥을 휙휙 던졌다.
“유정이란 운명을 의도했을 때. 나는 낚시를 하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그것을 행했네.”
허나 만반의 준비를 한다 해서 어디 마음처럼 물고기가 잡히던가.
수온과 날씨.
그리고 때를 적절히 맞춰도 하늘이 돕지 않으면 낚지 못하는 것이 바로 낚시이다.
“떡밥을 이리저리 던졌어도, 방해꾼이 있으면 물고기가 모이지 않는 법 아니겠나. 딱 그런 편이었지.”
“물고기를 낚아 무엇을 하려 하신 겁니까.”
“나의 운명을 털어볼까 했었네.”
“태상노군의 운명이요.”
“그래.”
“당신 정도의 존재라면 운명의 영향권 밖에 계시지 않습니까.”
“천외천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지.”
태상노군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으나, 모두가 이룰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흑천(黑天)의 외신(外神)의 존재를 아시는가.”
“모릅니다.”
“그들은 대라를 노리고 있네.”
아주 아주 오래전부터.
“노린다기보다는 가지고 놀려고 하지. 자신들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하여 우리는 그들에게 대항하기 위한 존재가 필요했어.”
그게 바로.
“의도된 운명. 길 잃은 도.”
천범이니.
“그대는 흑천의 외신들과 대적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이네.”
흑천. 외신. 만들어진 운명.
그런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들으니 와닿지도 않고, 체감조차 되지 않았다. 오히려 머나먼 곳의 이야기와 같았으니.
“외신들이 그리 대단한 존재입니까. 당신이 그리 두려워할 정도로.”
“두렵지. 본래 미지란 것이 두려운 이유가 무엇이던가.”
알지 못해서이다.
무엇 하나 알 수가 없기에 어떤 생리를 가졌는지.
목적이 무엇인지.
어떠한 힘을 부리는지 모르기에 두려울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어떤 죽음을 내리는지도 모르기에.
“대라를 지켜주시게.”
그에 대해 범의 답변은 쾌속했다.
“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