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99)
낭선기환담-598화(599/600)
2부 308화 – 특별 외전 25
얼토당토아니하는 말이었다.
천범은 단칼에 거절했다.
“모름지기 힘이 있는 자는 그에 따른 책임을 지기 마련이네.”
“제가 어째서 그래야 합니까.”
“그대가 지닌 힘. 그 힘이 오직 그대 혼자만으로 이룬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지 않나.”
맞다.
자신의 힘은 혼자만으로 이룬 것이 아니다. 빼앗고, 훔치고, 희생된 자들에 의해 쌓아 올려진 것이다.
“자네가 의도된 운명을 가로챘다고는 하나, 그 굴레 또한 우리가 가져다 놓은 안배였지.”
하니, 그가 이룬 힘 또한 자신들의 안배로 이루어진 것.
그러니 자신들을 위해 써야한다.
그러한 논리였다.
“전 그러한 안배를 바란 적이 없습니다. 제가 원한 것은 그저….”
“일신의 영달은 아니었지. 자네는 그저 자신의 삶과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었을 뿐 아니었나.”
그렇다.
백산에서부터 범은 어린 것과 귀한 것을 지키고 싶었다.
그것은 결국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것과 같았다.
하여 힘을 원했다.
그리고 지금은 힘을 가졌다.
대라에서도 감히.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힘을.
“그 힘을 값지게 써야 하지 않겠나.”
값지게 쓴다.
물론 그럴 것이다.
어찌 보면 명예로운 일이기도 하다.
대라를 지킨다.
언뜻 보면 자랑스러운 일이다.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은 경외받기 마련이다.
허나.
“하천과 상천에서 그런 것은 충분히 겪어 보았습니다. 저보다는 태상노군이 더 잘 알지 않으십니까.”
도를 행함에 있어.
누군가의 경외 같은 것은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
도라는 것은 결국 자신을 위하는 것이다. 자신이 바로 세워지면 주변은 자연스레 따라 세워지는 것.
만인의 스승이자 천존이라 불리며 경외 받는 태상노군이 그러한 것을 모를 리가 없다.
오랜 세월을 저리 지냈다면 명예 같은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
“중요한 것은 자신의 평안이죠.”
“외신들과 같은 말을 하는군.”
“……흑천의 외신이 말입니까.”
“그래. 그들이 하는 말에서 변(變)이라는 것이 있네.”
시간이 가면 모든 것은 변한다.
내 것 또한 변해가며, 변해가는 내 것에 괴로워한다.
내 것이란 나의 몸이기도 하고, 나의 생각이기도 한 것.
변해가는 내 것을 보는 건 참으로 힘이 드는 일이다.
“그들은 변하는 것을 보낼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는 하지.”
태상노군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변해가는 것을 받아들이고.
스러져가는 것 또한 정해진 것이니.
그들의 말은 물과 같은 그 흐름을 억지로 막지 말라는 것이다.
“외신은 도가의 영생을 잘못되었다 말하는 놈들이지.”
“….”
“동굴에서 떠나라. 그리해야만 온전해질 수 있다고 떠들어대는 놈들이다.”
동굴은 마음의 편안함, 익숙함을 뜻하는 것일 터.
그것을 멀리 해야.
천범은 외신의 존재들이 지닌 사상을 얼추 이해할 수 있었다.
하여 그들이 무엇을 숭배하는 자들인지도 알 것 같았다.
“그러나 저는….”
“자네! 자신들을 부처라 이르는 족속들에게 대라를 빼앗기고 싶은가?”
흑천의 외신.
그들은 불가의 교리를 숭배하며 따르고, 깨달음이 극에 달아 해탈을 이루어 윤회에서 벗어난 존재.
부처를 뜻하는 말이었다.
“대라를 지키는 것은, 자네의 가족들, 그리고 주변인들을 지키는 것. 종국에는 도를 지키는 것이야. 그러니 다시 한번 생각해주게.”
“그래도 제 생각은 같습니다.”
애초에 외신이든 부처이든, 그들이 대라를 노리든 말든 관심도 없다.
“외신들에게 대라를 빼앗겨도 좋다는 것인가!”
“애초에 대라가 제 것이 아닌데 빼앗긴다 만다 할 것이 있겠습니까.”
“자네가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모양이군. 그리 간단하게 치부할 사항이 아니야.”
“어찌 알겠습니까. 부처에 대한 것도 방금 들었는데.”
“…그럼 보여주도록 하지.”
태상노군은 드리운 낚싯대로 호숫가의 표면을 건드렸다.
그러자 푸르른 호수는 검게 물들고 그 속에서 자약한 여인이 연꽃을 밟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흑천에 자리한 많은 존재들이 기묘한 의복과 인상을 가졌다.
인간의 모습이 아닌 존재도 많았다.
“대라는 도가에서 가장 높고 넓은 하늘이지.”
하천과 상천.
그리고 대라.
하천과 상천은 같은 위치에 다른 하늘들이 많다.
그러나 대라는 아니다.
대라는 오직 하나.
가장 고결하고 고귀한 하늘이다.
“허나 흑천은 그것을 아우른다.”
그런 흑천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부처들의 깨달음은 그들을 열반에 들게 하여 강한 힘을 부리게 한다.
간단하게 태상노군은 강대한 적이 있으니 힘을 보태라는 것.
하지만 천범은 영 감흥이 없었다.
“제가 저들을 한 번 만나 봐도 되겠습니까.”
“만나서 무얼 하려고…. 흠, 그래. 오히려 좋지. 원한다면 그리 하시게.”
물음을 뱉으려던 태상노군은 천범을 흘겨보고는 이내 승낙했다.
그는 꽤 오래전부터 천범을 눈여겨보았다. 반골 기질이 강한 터라 직접 보지 않고서는 그들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기가 어려울 터.
괜히 부추길 필요 없이.
그들을 한 번 만나보는 것으로 상황이 정리될지도 모른다.
“흑천의 길을 열어주지.”
“지금 만나볼 수 있습니까.”
“만나볼 수는 있지.”
그들이 대화를 나누려 할지는 모르겠지만.
* * *
“여긴….”
“별다른 이름 없는 하천이지.”
“이곳에 그들이 있습니까.”
“흑천은 어디에나 있는 법. 흑천을 쏘다니는 그들이니 당연하지. 물론 그럼에도 함부로 대라를 찾을 수가 없지만 말일세.”
그러나 상천과 하천 전부를 막을 수는 없다. 이름 없는 이곳의 하천은 그들이 영향력을 끼친 곳 중 하나.
“애초에 하천과 상천의 존재 또한 그들의 눈을 가리기 위함이니.”
“…미끼라는 말입니까.”
“그렇네.”
이곳의 하천은 범이 있던 곳보다 영기가 희박한 곳이었다.
거의 없다 해도 무방하니 이곳은 수선하는 자가 몇 없을 것 같았다.
마침 내려다보니 장병기를 든 무인들이 각자의 무공을 사용해 싸우고 있었다. 그들 중에서는 회색 장삼을 입고 머리를 깔끔하게 밀어버린 스님들도 자리해 있었다.
“이곳은 이미 외신들에게 침범을 당한 곳이네. 도가의 개념이 희박해지고 불가의 교리가 뿌리박혔지.”
태상노군은 녹슨 석장을 하늘에서 툭 떨어뜨렸다.
짤랑거리며 떨어지던 석장은 이내 어느 한 사내를 향해 쏘아졌다.
회색 장삼을 입고 있는 중에게 날아간 석장은 그의 머리를 꿰뚫어버릴 것처럼 쏘아졌으나, 이내 한 끗 차이로 그것을 피해낸다.
그리고는 순간 세상이 회색빛으로 변하며 시간이 멎었고, 석장을 피해낸 중의 의복과 인상이 변하고 그의 주변에 만다라가 만연했다.
이마에 붉은색으로 그려진 원이 하나 있는 것이 조금 신비한 사내.
그는 녹슨 석장을 보고는 하늘 위의 자신들을 향해 천천히 부상했다.
“당신들은 누구십니까.”
물음에 답하려 했으나 그 전에 그가 먼저 답했다.
“도계의 신선들이시군요.”
“불계의 부처가 맞으십니까.”
“예, 저는 염마천이라 합니다. 어떤 용무로 이곳에 오셨는지요.”
두 손을 다소곳이 모아 예의를 갖추고 있으나, 천범은 알았다.
그가 은연중 풍기는 강자의 냄새를.
‘내신파(內身派)인가.’
의복 사이사이로 보이는 다부진 근육은 짜임새가 있었고, 근섬유 하나하나에서 풍기는 기운의 아지랑이가 섣불리 할 수 없는 기세를 만든다.
‘일정한 경지에 다다르면 깨달음은 하나의 개념으로 적용되고 법칙으로 귀결된다.’
그것을 내부로 담느냐 외부로 흘리느냐에 따라 전투 방법이 달라지는데 아마도 부처, 염마천은 법칙을 몸 내부로 담아두는 내신파로 보였다.
탐화와 화담.
그리고 구영과 비슷한 부류였다.
“묻고픈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잠시 시간을 내어주시겠습니까.”
“어려울 게 없습니다. 저희 같은 존재들에게 할애할 시간이 없겠습니까. 스스럼없이 들어보겠습니다.”
한차례 숨을 내뱉은 천범은 조심스럽게, 한 자 한 자를 꾹꾹 눌러 담았다.
“그대에게 도는 무엇입니까.”
불가의 부처에게 도가 무엇이냐 묻는다. 태상노군은 어처구니없어 했고 질문을 받은 염마천도 당황해했다.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예.”
들어보고 싶다.
그의 시선에서 바라본 도를.
“꽤 어려운 질문이군요.”
염마천은 고민했다.
고심하고 고심하여 답했다.
“중생들에게 원초적인 도의 깨달음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를 들어볼 수 있습니까.”
“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일신의 영달과 영생이지요. 일신이라는 것에 큰 무게추를 달고 있으니 남을 돌보지 않고, 남을 돌보지 않고 정진하는 학문이니 결국에는 일신을 위합니다. 덕택에 도는 남을 해하게 되지요.”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러니 도가 널리 퍼진다면 종국에는 파국만이 남지 않겠습니까.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요. 도라는 것은 각각의 이상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기도 하는 것이니.”
허나, 보편적으로는 그리 흘러갈 테니 불가에서는 도라는 것을 좋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다고 한다.
“남을 해하는 것이 문제인가? 그게 어쨌다는 것인가. 본래 자연의 섭리가, 하늘의 섭리가 그렇지 않은가.”
약육강식.
자연은 본래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이 형성되어 있다.
호랑이가 사슴을 잡아 먹는다 하여 그것이 잘못된 행위이던가?
그렇지 않다.
본래 그리 살아온 짐승이고, 그것이 자연의 섭리인데 무엇이 문제인가.
짐승은 짐승을 먹는다.
곤충도 다르지 않다.
살아있는 것이라면 뭐든 먹어 치우기 마련이고, 그것은 대부분 살아있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
“자연스러운 귀결일 뿐이야. 자기 자신을 위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삶의 태도이네!”
강경히 말하는 태상노군의 호통에도 염마천의 표정은 평온했다.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도라는 학문은 역천에 뜻을 두지 않습니까?”
역천.
하늘을 거스른다.
도가의 원초 개념은 그러하다.
영생이 무엇이던가. 처음부터 정해진 수명을 거스르고.
하늘이 정한 법도를 거스르는 것.
그것이 영생이다.
“그렇다면 하늘의 섭리에 배반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는지.”
삶도 죽음도 하늘의 섭리.
죽음을 거부하는 것은 역천이다.
그러니 삶을 거부하는 것도 역천이고 그들이 원하는 게 아니냐는 소리였다.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는군.”
자살하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태상노군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염마천은 쓰게 웃었다.
“부처의 이야기를 들어보시겠습니까.”
“필요 없네!”
“들어보지요.”
염마천은 태상노군에게는 시선을 떼고 천범을 향했다.
“도는 일신의 영생을 목적으로 합니다만, 불은 그렇지 않습니다. 명상을 통한 깨달음과 자기 내면의 평안만을 위하는 학문이지요. 그렇게 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들면 윤회에 굴레를 자연스레 벗어나게 됩니다. 굳이 영생을 목적에 두지 않아도 도가에서 말하는 것과 같게 되지요.”
“그렇군요.”
“하나 질문드려도 되겠습니까.”
“예.”
“도를 정진하시어 영생을 얻으셨을 때. 무엇을 하셨습니까.”
“…무엇을 했냐라.”
“목적을 이루셨지 않습니까.”
그렇다.
도의 목적은 영생.
역천의 완성.
허나 역설적이게도 역천의 완성은 하늘과 하나 됨이니.
목적을 이룬 그들은 무엇을 하는가.
범은 자연스레 떠올렸다.
대라의 하늘을.
하늘의 정점에 오른 자들의 삶과 그들이 만들어가는 섭리를.
천겁.
점지한 운명.
심지어 인연까지.
완벽하진 않을지언정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것을 주무르고 있었다.
허나.
범은 그것들에 관심이 없다.
영생을 이룬 그가 관심 있는 것은 자신에게 내리깔린 진리뿐.
‘진리라….’
허나 진리 또한 이제는 안다.
하지만 관심은 없다.
도이든 불이든 이제는 자신과 크게 상관이 없는 뜻이니.
차분히 가라앉은 천범의 기운.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염마천이 그를 향해 물었다.
“그대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무엇을.”
“제가 생각하는 도는 그렇습니다. 허나 저는 외인이지요. 그러니 지금도 도의 끝을 향해 정진하고 계시는 당신께 묻지요.”
도란 무엇입니까.
그의 물음에 범은 잠시 고심했다.
그리고는 답하기를.
“잘 모르겠습니다.”
태상노군은 피식 웃음을 보였고, 염마천은 의아했다.
“당신 정도의 기운을 지닌 신선이 도의 개념이 확실치 않은 겁니까.”
“…예. 그렇네요. 꽤 오랜 세월을 도계에 입문하여 살아왔습니다만.”
그는 아직도 도를 모른다.
언젠가는 알았으나, 이제는 또 전혀 알 수가 없다.
도란 무엇인가.
그것에 대한 답을 범은 모른다.
“그렇군요. 그대는 아직 정진할 길이 남아 있는 분이군요.”
“글쎄요. 저는 그저…….”
범은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그저 이 손바닥에 쥔 것들을 놓고 싶지 않을 뿐이니.”
대라천이든 흑천이든 알게 무어랴.
‘만나보길 잘했군.’
허나 때문에 확실해졌다.
더욱 명료해졌다.
“저는 지닌 것을 놓지 않을 하늘을 이루는 것이 좋겠습니다.”
대천(大天)도 흑천(黑天)도 아닌.
자신의.
자신만의 금천(金天)을.
“도(道)도 불(佛)도 아닌.”
그저 범.
범을 위한 금천을 행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