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600)
낭선기환담-599화 (완결)(600/600)
2부 309화 – 특별 외전 26
대천과 흑천.
그 사이에 항시 금빛이 어른거리며 물결치는 하나의 공간이 생겼다.
아니, 공간이 아니라 그것은 또 하나의 하늘이었다.
새로운 하늘.
그것을 창제한 이는 새로운 하늘을 금천이라 불렀고, 범천이라 칭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중간중간 그것을 방해하려 하는 자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불교의 부처이기도 했고, 도교의 신선이기도 했다. 허나 그들이 아무리 나타난다 한들 마음을 다잡은 금천진군의 뜻을 꺾을 길은 없었다.
오랜 세월.
그것을 저지하려 한 자들은 도리어 잡혀서 범천의 하늘 아래에서 양분이 되기도 하였다.
외세의 침략은 오히려 범천을 더욱 풍요롭게 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 범천으로 가려면 어떻게 하면 된다는 겁니까.”
탁!
탁자를 후려치는 성난 여인의 손속이 꽤나 매서웠다.
청석으로 만들어진 탁자에 금이 쩌적 갈 정도였으니 말이다.
“크흠, 세상에는 다 순리가 있기 마련이니 잠시 기다려보시오. 지금 막 이야기를 하려고 했으니.”
힐긋, 주변의 사내들에게 눈짓을 건넨 신선은 자신의 소매를 걷어붙이고 탁자에 가슴을 붙였다.
“대라의 천존께서는 범천으로 향하는 모든 신선들을 멸하려 하지.”
적의를 가지고 나아간 자들은 그곳의 양분이 되어버리고. 선의를 가지고 닿은 자들은 범천에 정착하여 그곳을 더 부강하게 하니.
천존은 결국 범천을 꺾으려는 뜻을 접고 모든 신선들의 발을 묶어버렸다.
그러니 그곳으로 가는 길은 꽤나 매섭고도 두려운 것이니.
목숨이 아까운 자는 한발 떼지 못하였고, 도전하는 자들은 모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하지만 물론, 실리는 완벽하지.”
대라와 달리, 범천은 가혹하지 않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크게는 조금 더 다양한 학문을 익힐 수 있다는 것이요, 작게는 갈등과 살생이 심하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곳으로 가면 묘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도 있다.
“후회가 있으신가?”
범천은 모든 후회의 굴레를 역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꿈에 부푼 그러한 소문이 있다. 물론, 지금 범천으로 향하려 하는 처자에게 그런 것은 관심 없었지만.
“천존이고 나발이고 관심 없으니 범천으로 향할 수 있는 길을 알려줘!”
“아니, 왜 갑자기 반말을….”
“알려주십시오.”
“물론, 알려주는 거야 어렵지 않소. 그런데 이게… 우리도 목숨 걸고 하는 거다 보니 말이오.”
노인은 자신의 손가락을 비비적거렸다.
“얼마면 됩니까.”
“8할.”
현 재산의 8할을 내놓으란 소리.
완전 강도 집단이나 다를 바 없었으나, 범천으로 가게 된다면 새 삶을 사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여인은 별 상관이 없었다.
“여기 있소.”
쿵.
공정강을 내려놓는 여인의 손은 한없이 가벼웠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재산의 8할을 내놓다니.
범천에 가고픈 열망이 대단한 것인가, 아니면 재산이 없는 것인가.
확인해 봐야 할 부분이었다.
“확인을 해 보겠소.”
“얼마든지.”
여인은 자신의 팔짱을 낀 채로 자신의 창을 매만졌다.
“확실하군. 근데 한 가지가 부족해 보이는걸.”
“분명 8할일 텐데.”
“손에 쥔 그거. 그게 없잖소.”
여인의 눈가가 가늘어진다.
가늘어진 눈빛에서 어느새 살기가 어른거린다.
“이건 줄 수 없어.”
“내가 보기에는 그대가 가진 것 중에서도 그게 제일 큰 것 같은데, 과연 재산의 8할이라 할 수 있을지….”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던 여인은 그제서야 심각하게 고심했다.
그러나 창을 더욱 강하게 쥘 뿐.
내놓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길고 곧게 뻗은 창대.
고풍스러운 치장과 두 개의 날을 지닌 기묘한 창.
생김새처럼 오묘한 기운이 실려 있었는데, 꽤나 파멸적이고 강력한 뇌와 화의 기운이 뒤섞여 있었다.
대라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종류의 법기. 아마도 그녀의 선본기이리라.
‘그리고 알 수 없는 것이 하나….’
아무튼 그녀가 지닌 것 중에는 저것이 가장 귀중한 물건일 것이다.
“난 이게 필요할 것 같군.”
툭.
이름 모를 노인이 창을 붙잡았다.
허나 그 즉시.
파지지직!
자색의 뇌전이 마치 뱀의 아가리처럼 노인을 덮쳤다.
“허억!”
콰앙!
쿠당탕탕!!
한바탕 난리가 나고, 누각의 벽면이 부서진다.
날려져간 노인이 벽면 너머에서 일어나고 얼굴이 자색으로 물든 채로 피를 토하기 시작한다.
마치 독에 당하기라도 한 듯 일어나 몇 걸음 걷지 못했다.
곧장 자신의 혈도를 짚으며 독기를 몰아내려 했으나.
“커헉!”
검은 핏물을 토하고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어르신!”
“뇌와 화에 이어 독이라니! 무슨 이런 악랄한 선본기를….”
중얼거렸으나 이미 독에 중독된 상태.
“그러게 누가 함부로 만지랬나.”
안타깝다는 듯 바라본 여인은 헛웃음을 흘렸다.
자업자득이었다.
“이년! 당장 해독제를 내놓아라!”
주변의 사내들이 큰소리 쳤으나 그녀는 안색 하나 바뀌지 않고 도리어 소리쳤다.
“죽고 싶지 않다면 날 범천으로 데려다 놔. 그렇지 않으면 죽을 테니. 조금만 지나면 흘린 피가 무색하게 죄다 재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이년이….”
“싫으면 말든지. 너희 말고도 범천으로의 길을 안내할 놈들은 많으니.”
쌍멸을 치켜든 사천.
그녀의 진득한 살기에 신선들은 모두 꼼짝없이 울상을 지었다.
* * *
“언니.”
“그래, 천. 어찌 됐니?”
새하얀 머리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린다. 그러나 단아하게 머리를 고정한 장식이 그녀의 기품을 더욱 고귀하게 이끌었다.
천은 더욱 큰어머니를 닮아가는 선의 모습에 흠칫 놀라고는 했다.
“알아냈어요.”
두 개의 날이 지닌 창을 등에 멘 당차 보이는 여인.
두 발아래에 자리한 륜에서 내린 사천은 품에서 지도 한 장을 꺼냈다.
“여기가 범천으로 향할 수 있는 단 하나뿐인 곳이래요.”
“이번에는 진짜였으면 좋겠네.”
새하얀 머리칼의 여인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범천에 닿기 위한 수많은 시도와 실패가 서려 있었다.
“아버님은 어째서… 저희를 버리신 것은 아니겠죠?”
“그럴 리가 있겠니. 걱정 말렴. 이 또한 새로운 하늘의 주인이신 분의 자식 된 사명일 뿐이란다.”
“사명이라니…….”
“우리가 감내해야 할 마땅한 일이라는 거야. 그분의 피를 이은 것으로 우리는 상천에서 부와 명예는 물론, 누구나 원하는 혜택을 받았잖니.”
또렷한 말에도 불구하고 사천은 쌍멸을 쥔 채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도 아버지가….”
“또 그러는구나. 이전에도 아버지를 의심했다가 크게 혼쭐이 났으면서.”
사천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하지만 아버지가 만든 하늘에 다가가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잖아요. 이제는 정말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다 뜻이 있으실 거야. 아버지께서 우리를 생각지 않으셨을 리 없잖니. 어머님들도 모두 떠나셨는데 우리를 아무 생각 없이 내치셨을 리 없어. 우리가 감히 생각지 못한 아버님의 의도가 있으실 거야.”
천선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 또한 미혹이 없었을까. 이미 수백. 아니 수천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동생이 모르게 울기도 하고, 화를 내고 원망을 해보기도 하였다.
허나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이 있었는가.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 결국은 나아가는 수밖에.
그래도 적어도 그녀들이 나아가고자 하는 길이 틀린 것은 아니지 않는가. 대라를 넘어선 하늘을 만들어낸 금천진군의 이야기.
사해를 얼려버린 뒤, 가장 먼저 범천으로 닿았다는 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만월당 주인의 이야기.
모두가 이야기하니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은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그렇기에 천선은 자신의 이복자매와 함께 다시 한번 범천을 향해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끝없는 길일지 모르나, 그녀들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하늘이 그곳에 있기에.
나아갈 수밖에.
* * *
범천의 중앙.
시간과 공간이 뒤섞이다 못해 어그러져 보이는 곳.
허나 그 중심에 선 사내는 더없이 편안해 보였다. 자신에게 비추어진 풍경을 바라보던 금색의 눈동자를 한 사내는 옅은 미소와 함께 옷차림새를 바로 했다.
수수한 선비 옷차림과 갓을 바로 쓰고 등에는 화살통과 화살을 맸다.
“어딜 가십니까.”
사내의 뒤에 꽃과 같은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가 묻자 그가 답하기를.
“어디로 향한다 한들, 나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니 의미가 없다.”
알다가도 모를 말.
허나 사내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다채로운 풍경들을 보았다.
어느 곳에서는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부인들이 자리하고.
또 어느 곳에서는 자신의 발자취를 찾으며 고군분투하는 자식들의 모습이 내비친다.
이윽고 저마다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동료들도 눈에 내비치고, 아직도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적의 가득한 존재의 눈초리도 느껴진다.
그는 금천.
또는 범천이라 불리는 자.
하나의 존재이며, 하나의 하늘이 되어버린 자.
바로 금천진군 천범이었으니.
“나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언제나.
하늘이 움직인다 하여, 하늘이 아니게 되던가.
그가 하늘이고, 그가 밟는 것이 땅일지니 향한다 하여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는 하늘일지니.
“그렇다면 어째서 활을 드십니까.”
“후회는 언제나 자리 잡는 것이니. 어쩌면 존재했을지 모르는 화목을 위해 잡았다.”
그의 눈에 또 다른 풍경이 비춘다.
높디높은 산.
그중에 꼭대기가 새하얗게 물든 백산이 보인다. 허나 그마저도 스쳐 지나가자 산기슭에 자리 잡은 범 새끼가 하나 보였다.
배부르게 먹이를 먹었는지 고롱고롱 맛나게도 잠에 취해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여인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변화라는 것이 언제나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니지요.”
변화는 성장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변질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가 일으킬 변화의 바람이 그의 뜻대로 될 보장이 없다는 것.
평생을 함께해온 여인의 경고에 사내는 피식 웃으며 시위에 화살을 먹였다.
“이전의 나 또한, 변화를 위해 활을 잡았다.”
그때의 생각을 알 수는 없다.
절박함에 시위를 당겼을 수도 있고, 그저 욕심에 화살을 쏘았을 수도 있다.
“그러니 한 번, 나의 바람을 쏘아내 볼 요량이다.”
허나 변화를 위한 마음.
더 나아지고자 하는 바람만큼은 그때와 지금이나 같을 것이다.
그것이 또 다른 후회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렇다 한들 후회란 마음속에 남아 독이 될 것이니.
그는 화살을 쏘아 날렸다.
하늘 높이 쏘아낸 하나의 화살이 높은 포물선을 그리다 범의 등에 빨려 들어가듯 박혔다.
푹!
-크아아아아앙!
화들짝 놀란 범이 펄쩍 뛰어다녔다.
허나 뒤로도 몇 발의 화살을 더 쏘아낸 그는 피투성이가 되어 정신이 혼미한 호랑이를 보고야 활을 거뒀다.
“이것이면 되겠지.”
그리고 한 발자국 내딛자.
다시금 풍경이 뒤바뀐다.
이내 피죽도 먹지 못해 다 죽어가는 아이가 눈에 밟힌다.
작은 여아를 구해낸 그는 하얀 산의 부유한 집안에 데려다 놓았다.
그리고 다시 한 발자국 내딛자,
어느새 백산의 산군과 백혈귀수라 불리울 아이가 마주한다.
산군은 아이를 밀치고.
아이는 그에게 매달린다.
본래라면 그대로 쳐내고, 버려지는 것이 아이의 운명일 터.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귀찮기는.]“헤헤! 산군님!”
산군은 향하지 않는다.
아이를 버리기 위해 여행길을 떠나지도, 위험을 마주하지도 않으니.
그저 평온하기만 하다.
어떤 위험이 있다 한들,
그것이 둘을 떼어놓지는 못하니.
커다란 범과 어린아이는.
그저 평화를 만끽할 뿐이다.
낭선기환담
(浪仙奇幻談)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