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63)
낭선기환담-62화(63/600)
낭선기환담 – 62화
“제가 본래 이리 말이 많은 여인이 아닙니다. 그 점을 간과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말씀하세요.”
산군은 진즉 포기한 낯이었다.
그는 사랑채에 가부좌를 틀고 있었는데, 그 가까이에 금명지수 또한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은자의 계략입니까?”
“그게 무슨 개소린지요.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나 방이 하나뿐이라는데 절 더러 어쩌란 말씀이십니까. 애초에 이 방을 구한 것이 사월랑의 육사인데요. 선자의 계략은 아닙니까?”
“남녀가 유별한데! 어찌 제가 그랬겠습니까! 말씀을 조심해주세요!”
그렇다.
지수와 산군은 별 탈 없이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에는 이미 대기하고 있던 사월랑의 육사가 방을 알아뒀다며 안내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방이 하나였던 것이 아니던가! 아무래도 옥서에게 어떤 언질을 받은 듯 했다.
산군은 손가락으로 귀를 틀어막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 불편하시다면 제가 나가겠습니다. 육신통의 길을 걷는 이에게 하루 이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지요. 더불어 사내대장부가 되어서 여인을 밖으로 내쫓을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인간도 아니고, 영수인데 오죽할까.
사흘 밤낮을 뛰어다녀도 문제가 없는 몸이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 불편하게 있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금명지수는 쌍심지를 켰다.
“그것은 즉, 소녀가 불편하시다는 말씀이옵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무엇입니까? 소녀는 사월랑의 피를 받아 청력 하나는 자신할 수 있습니다!”
“청력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무엇이지요? 제가 불편해 나가신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됐습니다. 은자께 그런 우를 범할 수 없지요. 제가 나가겠습니다!”
그리 말하니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나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잠자코 있으니 문고리를 잡은 금명지수가 뒤를 힐끔 바라봤다. 가만히 있는 산군을 본 그녀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것도 예의가 아니지요. 도사께서는 저희 일족의 은자이니 불편함이 없게 모시는 것이 맞겠습니다.”
탁.
문고리를 놓은 금명지수가 성큼성큼 다가와 이부자리를 폈다.
산군은 티도 내지 못하고 속으로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갈대처럼 이랬다 저랬다 말을 바꾸니 괜스레 욕지기가 치밀었다.
‘이 여자는 대체 왜 이러는 거야.’
골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전 욕간에 들어가 멱을 감을 테니 필요한 게 있으시면 부르세요.”
이부자리를 편 금명지수는 궁시렁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그제서야 산군은 숨이 트이는 듯 편하게 있었지만, 혼잣말을 중얼거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산군보다 높은 경지의 영명 육사이다. 본래의 청력 또한 남다르니 무어라 말하면 곧장 그녀의 귀에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금제를 치자니 쓸데없는 영력을 낭비하는 것 같았다. 혼잣말을 하자고 금제를 펼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콧김을 내뱉으며 화를 삭이니 화란이 말을 걸었다.
[산군.] [왜] [제가 본래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리지만, 이번에는 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갑자기?]뜬금없다면 뜬금없었다.
화란은 말한 대로 산군의 몸에서 나와 현현했다.
“예, 처음에는 그저 혼담을 거절당해 심통이 난 듯 했으나, 가만 지켜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있습니다. 아무튼, 제가 알아서 할 것이니 잠자코 계셔보시지요.”
화란은 금명지수가 펴낸 이부자리를 보고는 냉소하더니 그 위로 걸어가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게 뭐하는 짓이냐.”
여인네들 마음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산군은 모르시겠습니까?”
“뭘”
“금명지수는 이곳에서 산군을 모신다 했습니다. 한데, 이부자리는 하나를 폈지요. 이 말인즉슨, 한 이불 안에서 동침하겠다는 소리가 아니겠습니까!”
산군은 생각이 정지한 듯 눈만 꿈뻑꿈뻑거렸다.
“아니 왜?”
어찌 하면 그런 결론이 나오는지 산군의 머리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화란이 이해한 것은 왜 그런 것이고, 그렇다면 금명지수는 왜 그리 한 것일까?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했다.
솔직히 별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 귀찮으니 혼자 있고 싶었다.
“글쎄요. 여인네 마음은 같은 여인이라 할지라도 모르는 법이지요. 허나 확실한 것은 산군의 정조가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산군은 잠시 말이 없었다.
혼담을 거절한 것으로 자존심이 상한 듯하여 불평불만을 다 들어주었는데, 알고 보니 그런 것이 아니다?
인과가 맞지 않는 소리였다.
“그게 말이 된다 생각하더냐?”
“허면, 이것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화란은 자신이 덮은 이불을 팡팡 치며 물었다.
“아니, 그거야 뭐…. 이불이 하나밖에 없다든가, 아니면 깜빡했겠지.”
정신머리 없는 여인 같으니 자기 이불은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화란은 전혀 아니라는 듯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제 말이 맞을 것이니 잠자코 계시지요.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제 촉이 맞습니다.”
“……그래. 근데 넌 어째서 방해하는 것이냐?”
본래 화란은 산군이 짝을 찾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초아가 나타났을 때에도 옳다구나 하며 혼인하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런 그녀가 산군의 정조가 위험하다고 발 벗고 나서니 의아했다.
“산군에게는 산비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게다가 정식으로 혼인을 치른 것도 아니고, 초야도 치르지 않으셨는데 다른 여인네와 동침이라니요! 당연히 안 될 일이지 않습니까!”
능력 있는 사내가 부인을 여럿 두는 것은 흠이라 볼 수 없다.
그것이 이 세상의 상식이다.
그러나 산군은 정실과 제대로 초야를 치르지도 않았다.
그런 와중에 다른 여인과 정사를 나눈다면 족보가 꼬이게 되니 자신이 나서는 것이라 한다.
혼란스러웠다.
산군은 미간을 주무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딜 가십니까.”
“마실 나간다.”
밤바람이라도 쐬어야 할 것 같았다.
“함께하겠습니다.”
“그러든지.”
달은 불개가 한입 물었다 놓았는지 가늘었다.
하지만 그 은은함이 나쁘지 않다.
초승달은 밤하늘을 비추고, 밤바람이 어우러지니 혼란스럽던 머리도 한결 나아졌다.
산군은 발길 닿는 대로 걸었고, 화란은 말없이 그의 발자국을 따랐다.
“조용하구나.”
겨울이라 그런지 풀벌레 이는 소리도 없이 고요하기만 했다.
“조용한 것인지 쥐 죽은 것인지 모르는 법이지요.”
감성을 박살내는 화란의 화법에 산군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녀의 말대로다.
간간히 올라오는 피비린내와 고약한 탄 냄새가 가득했다. 쇠 냄새가 전역을 진동하니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는 안 봐도 뻔했다. 범인들은 겁에 질렸고, 어린아이들은 피죽하나 먹지 못했는지 피골이 상접했다.
“그런다 한들 나와 무슨 상관이더냐. 범인들의 일이다. 신경 쓸 이유는 하등 없지. 내가 핍박받고 고통 받는 이들을 구원이라도 해야 하더냐? 모두 제 팔자요, 제 운명인 것을.”
그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지 않아 생기는 일이요, 그로 인해 고통 받는 것은 백성이다. 하지만 그 백성이 산군의 백성인 것은 아니하지 않던가.
“내게 중요한 것은 천수일기겁이지 인간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100년 전이었다면 몰라도, 지금의 산군은 여리지 않다. 고작 100년도 살지 못하는 범인이 60년을 살다 죽든 20년을 살다 죽든 그에게 있어서는 찰나에 죽는 인간일 뿐이다.
꺼져가는 생명이 안타까운 것은 매한가지였으나 그것을 좌지우지하고 싶지는 않았다.
“넌 내가 인간이길 바라는 것이냐.”
“그럴 리가요. 전, 그저….”
그때!
수십 쌍의 발자국 소리가 산군을 향했다. 화란이 입을 다물고, 산군이 눈을 가늘게 떴다.
잠시 기다리자 그들은 모습을 드러냈는데, 허름한 갑주를 걸친 병사들로 보였다.
“네놈은 누구 허락을 받고 이 밤중에 마을을 돌아다니느냐!”
병사들 열댓 명이 순식간에 산군을 둘러싸고 장창을 겨누었다.
창날에는 피비린내가 농염했다.
날은 많이 무뎌져 있었고, 그것으로 사람을 많이 해한 듯 싶었다.
“대장, 이놈들은 마을 놈들이 아닙니다. 사내는 몰라도 여인은 곱상한 것이 마을에서 본 적 없던 미색입니다!”
그러자 범인들이 횃불을 화란에게 가져다대며 누런 이를 드러내고는 히죽거렸다.
“안 그래도 영 따분했는데 잘되지 않았습니까!”
병사들이 눈을 빛내며 음욕으로 물든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대장이라 불린 사내는 말없이 산군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산군 또한 사내를 보며 이맛살을 찌푸렸는데 기이한 외모는 둘째 치고.
“인간 같지가 않은데?”
그리 중얼거리자 창을 겨누던 사내들이 흠칫 놀랐다.
“사내는 필요 없다! 죽여 버려!”
병사들의 장창이 산군의 몸과 목덜미를 향해 찔러 들어왔다.
“이상하네.”
중얼거린 산군의 눈이 적안으로 번뜩였다. 이내 또 하나의 동공이 나오고 그가 발을 대디뎠다.
쉭.
“헛!”
“뭐야!”
순간 산군의 신형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병사들이 헛바람을 들이키고 주위를 살폈다.
산군은 어느새 대장이라는 사내 앞에 당도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원으로 둘러쌌는데 언제 빠져나갔다는 말인가.
“너…”
무어라 하려던 때.
사내가 먼저 움직였다.
곧장 검집에서 검을 빼내 휘둘렀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검결은 날카로웠고, 사람을 즉살하기 위한 검로였다.
하지만 산군은 냉소하며 날아드는 검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팅!
툭!
귀를 찌르는 소음과 함께, 그를 향해 날아들던 검은 목표를 상실하고 애꿎은 나무로 날아가 박혔다.
“여기서 이런 놈을 보네.”
“무엇인데 그러십니까.”
어느새 다가온 화란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곧 알게 될 거다.”
“으아아아악!!”
아니나 다를까 검이 두 동강 난 사내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두 눈이 붉게 충혈되고 온몸에 푸른 핏줄이 울긋불긋 섰다. 그것이었다면 그러려니 했을 터.
하지만 사내의 상태가 기이했다.
팔뚝에 털이 돋고, 검은 비늘이 돋아나 외형이 변화하는 게 아닌가!
“대장! 안됩니다!”
“지금 여기서는 안돼요!”
사내들이 무어라 소리쳤지만, 놈에게 들리지 아니한 듯했다.
산군은 신기해하며 놈의 공격을 한끝 차이로 피했다. 황소처럼 달려들던 놈이 나무에 처박혔다.
꽤 빠른 속도였다만 그래봤자 영물 수준이었다.
쿵!
우지끈!
놈이 나무에 들이박고는 성에 못 이겨 나무를 뿌리 채 뽑았다.
“말려라! 저대로 뒀다간 여기 놈들 오늘 다 죽는다!”
“대장이 저리되는 걸 어찌 말려! 말리다 나 먼저 골로 가지!”
그들은 발을 동동 굴렀으나, 대장의 안위에는 걱정이 없는 듯 했다.
놈은 뽑아낸 나무로 산군을 향해 휘둘렀다.
쿵!
충격음이 들려왔다.
병사들은 눈을 질끈 감으며 피죽이 됐을 사내를 떠올렸다.
“헛!”
하지만 웬걸.
사내의 곁에는 웬 녹색의 모래가 나무를 막아서고 있었다.
“아직 때가 아닌데.”
어째서 이런 놈이 여기에 있는 걸까.
산군은 그런 의문을 품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녹사가 거대한 손 모양으로 변해 놈을 단번에 움켜쥐었다.
“으윽! 으아아아악!!”
놈은 이미 이지를 상실했는지, 그것이 아니면 본래 그런 것인지 악다구니를 쓰며 발악했다.
“화란.”
“예.”
“저들은 필요 없으니 죽여라.”
그리 말하며 산군은 구환도를 넘겨주었다.
화란은 고리들이 짤랑거리는 구환도를 들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바라보던 것도 잠시.
이내 사내들의 비명과 매화향이 피비린내와 섞이다 사라졌다.
산군은 녹사에 감긴 사내를 바라보다 주술을 외웠는데, 그의 곁에 법결 문자들이 떠올랐다 사내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놈은 저항하려는 듯 발버둥 쳤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순식간에 의식을 잃고 축 늘어지고 나서야 산군이 놈을 풀어줬다.
“귀찮게 됐는데.”
보는 것은 처음이라 신기해했지만,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혼아혈인가 싶었지만 전혀 아니다. 이놈에게서는 혼아혈 특유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을 뿐더러 한줌의 영력도 느껴지지 않는다.
혼아혈이 아니다.
그런데 어찌 반절은 영수의 몸을 가지고 있을까.
“이제는 말씀해주세요. 이놈은 무엇 입니까.”
“혼괴(混怪).”
혼괴?
산군보다 긴 세월을 살아온 화란도 들어본 적 없는 것이었다.
“마도 놈들이 벌인 인형놀이의 부산물 중 하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