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67)
낭선기환담-66화(67/600)
낭선기환담 – 66화
환선의 목을 비틀었다.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놈의 몸뚱이가 늘어졌다.
그때였다.
환선의 몸에서 핏빛의 구슬 하나가 쏜살같이 빠져나갔다.
놈의 단령이었다.
영수와 달리 인간의 내단은 하나다.
육체를 내버려도 단령만 무사하다면 살 수 있다.
다른 이의 몸을 빼앗아 목숨을 연명할 수 있으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둔술에 자신이 있는 모양이다.
놈은 벌써 스무 장 이상 멀어졌다.
하지만 산군은 비소를 머금었다.
그의 손가락이 놈을 가리켰다.
그러자 땅 밑에서 금빛이 솟구쳤다.
“아아아악!!”
단령의 비명이 사방을 울렸다.
산군의 입가에 호선이 짙어졌다.
놈의 단령은 금빛으로 이뤄진 금장사에 꽁꽁 묶였다. 탐화오공이 기세등등하게 단령을 고치로 만들고 있었다.
놈은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안간힘이다. 허나 가능할 리 없다.
아무리 환선이라도 육체 없이 단령만으로 힘을 쓸 수는 없다.
더군다나 보구나 다름없는 탐화오공의 금장사를 단령만으로 어찌 끊어낼 수 있을까.
산군은 놈에게 신경 끄고 몸을 돌렸다. 주위에는 어느새 마사들이 그를 포위하고 있었다.
각자의 보패를 꺼내들고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마사들이 일곱.
그리고.
“이제 아홉.”
딱.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어느새 나타난 청옥 수십 개가 사방에서 놈들을 에워쌌다.
류곡자.
그것을 새롭게 제련한 것이다.
수많은 숫자들은 물론, 그가 지니고 있는 사월제항 덕분이었다.
비선들은 이제 아연실색했다.
놈들도 이 청옥이 단순한 것이 아님을 알아차렸으리라.
그가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류곡자에서 가느다란 실이 올올이 풀어졌다. 금장사를 봉악청화로 제련한 실이었다. 산군은 류곡자와 봉악청화, 그리고 금장사를 하나로 만들어 수없이 복제했다.
모르긴 몰라도 이 청옥은 지보에 근접했다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때였다.
푹푹푹푹!! 청옥에서 푸른 실 수십 개가 바닥에 꽂혔다. 비선들은 화들짝 놀라보패를 날렸다.
하지만 산군의 청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달아나려 했지만 주위는 어느새 악귀들이 바글거리는 귀무로 뒤덮인 지 오래다.
그들에게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진퇴양난(進退兩難).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청옥이 천천히 선회했다.
거미줄처럼 얽힌 실들과 선회하는 청옥. 청옥은 제각기 움직이며 선회하자 실들이 서로 엉키며 서서히 공간이 좁혀지기 시작했다.
“말도 안돼!”
비선 하나가 분개하며 소리쳤다.
영성부 수십 장을 꺼내 날려 보지만, 실에 감겨있던 화염에 불살라질 뿐!
“노, 놈을 먼저 죽입시다!”
“맞소! 놈만 죽이면 이것도…헛!”
하지만 산군은 어느새 자취를 감춘 후였다. 비선들은 망연자실했다.
침입자를 포위하려다 오히려 자신들이 궁지에 몰렸다.
쾅! 콰앙!
비선들이 갇혀있는 곳은 한동안 폭음이 난무하고,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그곳에는 조각조각 난 고깃덩이들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그마저도 악귀들의 뱃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산군은 공정강에서 보패 하나를 꺼냈다. 그것은 조그마한 모양의 보탑.
육령비탑이었다!
일월문의 비고(秘庫)에서 찾은 일월이 자랑하는 칠선보구 중 하나였다.
수많은 금제와 결계가 있었지만, 해봉석과 봉악청화가 있는 그가 갖지 못할 리 없었다.
“천양지보 정도는 사용해 줘야 수월하겠지.”
중얼거린 산군이 품을 뒤적거려 부적 하나를 꺼냈다.
그것은 실전됐다던 축지부 중 하나.
천리 밖까지 축지할 수 있다는 영부.
천리마양부(千里摩養不)다.
“내 수준에 천리는 불가능하지만….”
짧은 거리라면 상관없다.
둔술을 쓸 필요도 없다.
공간신통을 빌려 쓰는 것인데 둔술이고 경공이고 무슨 상관일까.
환선을 쉽게 죽일 수 있었던 것도, 축지로 인한 기습이 컸다.
산군은 천리마양부를 품에 넣고 저면을 바라봤다.
이제 남은 건 한 놈.
방금 전의 환선은 초경이었지만, 이놈은 중경 그 이상으로 보이니 방심할 수 없다.
“…….”
뒤늦게 나타난 도사는 빛바랜 회색의 장포를 펄럭거렸다.
환선 중경.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산군이 감지할 수 있는 것은 그 정도.
놈은 말없이 산군이 자아낸 풍경을 바라보다 쏘아봤다. 그러다 그의 손에 들린 탑을 바라보곤 입을 열었다.
“네놈은 무슨 목적으로 이곳을 들쑤시는 게냐.”
놈의 물음에 산군이 답했다.
“네놈들이 고독으로 뭘 만들고, 무슨 짓을 벌이든 나와 상관은 없다. 하지만 그것에 혈붕수가 관계있으니 나로서도 어쩔 수 없지.”
“……그렇군.”
그때였다.
산군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환선이 눈을 치켜떴다.
쇄액! 검풍이 울렸으나 도사는 몸을 던진 후였다.
“호….”
산군이 사라지자마자 일단 몸을 내던진 것이었다.
나려타곤으로 목숨을 건진 도사는 돌돌말린 족자를 펼쳤다.
“나오거라 갈림수(葛林獸)여!”
쿵!
빛이 번뜩이고 둔중한 소음이 터져 나왔다.
멋들어지게 그려진 짐승이 꿈틀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전체적인 외향은 사자의 그것과 퍽 닮아있었다. 거친 갈기와 날카로운 송곳니는 위협적이었다.
거대한 몸집과 기세에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굳고 사기를 잃을 정도.
크기가 얼마나 큰지, 놈의 앞다리 하나가 천년 묵은 소나무처럼 두꺼웠다.
‘그런 놈이 두 마리라.’
산군은 한눈에 갈림수라 불린 복수가 영결이라는 것을 파악했다.
오랜 기간 복수로 길러졌는지 머뭇거리는 틈도 없이 명령에만 복종하는 듯했다. 갈림수를 불러낸 환선은 연신 수결을 맺으며 입으로 법결을 읊었다.
그의 손에는 원숭이의 손으로 보이는 것을 들고 있었는데, 척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물건임을 알 수 있었다.
그때였다.
갈림수 두 마리가 산군을 향해 돌진했다. 서로 교차하며 달려오는 모양새가 용맹하기 그지없다.
놈들의 주위로 기이한 영력이 전방을 주시했다. 보통의 도사라면 느끼지도 못할 기운이었으나, 단령금정과 분합수결을 익힌 산군은 느낄 수 있었다.
갈림수가 짓쳐들어오며 몸을 털었다.
그때 놈들의 갈기가 두꺼운 철침으로 변하며 사방으로 쏟아졌다.
산군은 피식 웃으며 천리마영부를 발동했다.
공간을 넘는다.
스륵.
순식간에 사라진 산군이 넉 장 밖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산군은 숨을 크게 내쉬고 품에서 붉은 염주를 꺼냈다.
염주는 곧장 붉은 구렁이로 변했다.
한껏 입을 벌리고 갈림수를 향해 날아들었다.
-크릉!
성이 나 콧김을 뱉은 갈림수가 구렁이들에게 몸을 털었다. 곧장 예리한 빛의 철침들이 구렁이에게 쏟아졌다.
콰광!
한바탕 맞부딪친 철침과 구렁이가 폭연을 일으키고, 산군의 손에서 청옥 하나가 튀어 나갔다.
푸른 꼬리를 만든 청옥이 그대로 갈림수의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퍼억!
-크와아아앙!
갈림수 중 하나가 울음을 토해냈다.
하지만 이내 분노로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청옥이 몸을 파고들었지만, 놈의 몸집이 넉 장에 이르니 바늘이 꽂힌 것과 다름없음이었다.
붉은 구렁이들은 철침에 당했는지 염주로 변해 바닥에 흐드러졌다.
갈림수가 몸을 추슬렀다.
분노로 인해 몸이 부풀었다.
자신의 털 전부를 철침으로 만들어 산군을 죽이겠다는 기세가 느껴졌다.
그때였다.
파지지직!!
갈림수 한 마리가 푸른 뇌전에 휩싸여 비명을 내질렀다.
번쩍번쩍거리는 뇌전이 뱀처럼 뒤틀리며 갈림수를 옭아맸다. 저항해보려 발버둥을 쳤으나, 이내 눈을 까뒤집고 쓰러졌다. 뇌전만 있는 것이 아닌, 청염까지 함께 자신의 몸속에서 터져 나오니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갈림수가 쓰러지자 뇌전은 잠잠해졌고, 이내 청염이 피어올라 재 하나 남기지 않고 태워버렸다.
그때 놈의 몸에서 청옥이 튀어나와 남은 한 마리를 노렸다.
동료의 죽음에 당황했으나 긴장하고 있던 갈림수는 펄쩍 뛰어 청옥을 피해 냈다.
그때였다.
그 틈을 놓칠 리 없는 산군이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바닥에 흐드러져있던 붉은 염주가 뱀처럼 튀어올라 놈의 목에 감겼다. 순식간에 염주로 돌아가 목을 옭아매자 갈림수가 고꾸라졌다.
-크아아아앙!
쿵!쿠웅!
일어나보려 발버둥을 치지만, 거대한 영수의 신체라도 붉은 염주를 이겨낼 도리는 없다.
“후- 아서라. 나한테도 감아 봤지만 꿈쩍도 안 하더라.”
폐관수련을 할 때, 붉은 염주의 기능을 시험하려 자신의 몸에 염주를 건 적이 있었다. 그때 산군은 사흘 정도 끙끙거리다 겨우 빠져나왔다.
화란이 금명과 만삼이를 부르고, 탐화오공을 부리지 않았다면 며칠은 더 꼼짝도 못했을 것이다.
“아차.”
잠시 숨을 내뱉으며 중얼거리던 산군이 몸을 비틀었다.
쾅!!
수십 장을 날아가며 주변 나무와 건물들을 부숴버린 산군이 암벽에 부딪쳐 겨우 멈춰 섰다.
후두둑, 녹사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자동 방어 보패인 자색 호리병이 없었다면 크게 다쳤을 것이다.
“크으…”
머리를 툭툭 때린 산군이 전방을 주시했다. 어느새 의기양양해진 마사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인간의 몸에 맞지 않는 짐승의 손을 두르고 있었다.
뻣뻣하고 수북한 털과 보랏빛으로 물든 손톱이 인상적이었다. 척 보아도 아까 손에 들고 있었던 짐승의 손인 듯했다.
“몸에 이식하는 보패인가?”
“그래. 네놈의 신통이 대단하다만 그런다 하여 네놈이 환선인 것은 아니지! 무슨 영문으로 이 사달을 벌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네놈을 도륙한 뒤에 들어도 상관은 없을 터.”
놈은 이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있더냐?”
그 자신만만한 태도에 산군의 입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한마디 뱉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지막 말이라….”
잠시 고민하던 산군은 옷자락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말했다.
“위를 한번 쳐다보는 걸 추천하지.”
자신의 거대한 팔을 움직여보이던 환선이 비웃음을 흘렸다.
“그런 얕은 수에 당할 것 같으냐?”
“싫다면 어쩔 수 없고.”
어깨를 으쓱인 산군은 슬쩍 주변을 둘러보며 ‘어디까지 날아온 거야.’라고 중얼거렸다. 그 태연한 모습에 도사는 헛웃음을 흘리며 한걸음 내디뎠다.
하지만 그 한걸음으로 도사의 얼굴에 웃음기가 싹 가셨다.
“뭐, 뭣!”
어느새 그의 주변은 어둠이 자리 잡았다. 아직 태양이 중천에 있었는데 어찌 이런 조화가 일어났을까.
그것은 하늘을 쳐다보고 난 후에야 알 수 있었다. 하늘에는 수십 장에 이르는 탑이 그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젠장!”
놈은 당장 벗어나려 지각을 밟았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아무리 뛰고 날아 봐도 자신을 뒤덮은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초조함은 극에 달았고, 순간 다시금 위를 올려 보았을 때 그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도 그럴게.
탑의 밑바닥에는 알아볼 수 없는 문양의 환진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쉽게 부수어질 환진도 아니었을 뿐더러, 이제 코앞까지 다가와 그럴 시간도 없다.
그때 그의 귓가에 비아냥거리는 사내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러게 말했잖아. 위를 보라고.”
도사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지는 것과 함께.
“젠자아아아아아앙!!”
산군의 육령비탑이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