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7)
낭선기환담-6화(7/600)
낭선기환담 – 6화
백산의 정상.
산군이 머무는 거대한 동굴. 천호군이라 불리는 그곳에 온몸의 털이 새까맣고 노란 눈동자를 지닌 범 한마리가 올라왔다.
그 범의 눈 한쪽은 세 개의 기다란 자상이 있었고, 풍기는 기운이나 그 풍채가 백산의 산군과 흡사 할 정도였다.
천호군에 오른 흑범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내가 찾아갈 것이라 이르지 않았더냐?]그러자 어느새 나타난 검은 소복의 여인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어찌 전하지 않았겠습니까.”
전에 산군과 만났던 창귀였다.
[한데 왜 산군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것이지?]“혹, 까망호리님과의 대결을 피하시는 건 아닐런지요.”
거대한 몸집의 흑범은 바로 거뭇산의 주인.
까망호리였다.
이 흑범은 이전에 산군과의 결투에서 참패하여 힘을 기르다 다시 도전하러 온 것이다. 미리 언질까지 보내 만전을 기하고 왔는데 있어야 할 산군이 없으니 기운이 쭉 빠지는 게 당연했다.
[그래?]“그것이 아니라면 어찌 백산의 주인인 그분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실까요.”
입 발린 말이었으나 까망호리는 내심 기분이 좋았다.
그 호랑말코 같은 놈이 자신을 피했다! 이 말만으로도 입꼬리가 승천했다.
[그렇군. 이 까망호리가 두려워 도망을 가버린 게야! 으캬캬캬캬!]창귀는 자신의 주인을 잠시나마 한심하게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한참을 우렁차게 웃어재끼던 까망호리가 히죽히죽 올라가는 입꼬리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이번에야말로 산군의 뱃가죽이 하늘로 향하게 하려 했건만……. 뒤로 미루게 되었군! 짜식, 도망이나 가고 말이야…….]“돌아가시렵니까?”
[아니, 그럴 필요는 없겠지. 이곳에서 기다린다! 백산의 주인인양 활개를 친다면 놈도 나타날 수밖에 없겠지!]까망호리는 산군의 천호군에 뱃가죽을 깔고 기분 좋게 미소 지었다.
[놈이 나타날 때가 기다려지는구나. 으캬캬캬캬!]-그리 웃지 좀 마십시오…….
* * *
까망호리가 멋대로 오해하여 기쁨에 젖어 있을 때.
산군은 초아와 함께 길을 떠나고 있었다.
화장마을은 몇 개의 산을 넘어야 도착할 수 있는 곳으로, 평범한 이에게는 위험한 길이었다.
산은 산적이나, 맹수. 그리고 드물게 영수에게 공격당할 수도 있는 위험한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군에게는 그것이 해당되지는 않았다.
영물(靈物)영화(靈和)영결(靈結) 영명(靈命)영겁(靈劫)영원(靈原).
이 여섯 단계 중, 영물의 경지에 이르러 일통(一通)을 이루었기 때문이었다.
영수가 오랜 세월을 겪고 깨달음을 얻으면 영물이 되고, 영물이 되면 내단을 얻게 된다.
그를 일컬어 일통이라 칭하는데, 내단으로 인해 즉시 한 가지 신통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대개는 각 특성에 맞는 신통을 얻게 되고, 환골을 이루어 강인한 신체를 얻게 된다.
그런 산군이기에 인간에게는 위험이 도사리는 산행이라도 개의치 않았다.
“서방님.”
[왜]‘아니, 대답하면 안 되는데…….’
벌써 익숙해져버렸나 보다. 서방이라는 부름에 답해버린 산군은 자괴감에 빠졌다.
“저 사람들 저희 따라와요.”
[안다.]백발의 꼬맹이를 태우고 있는 호랑이가 신기했던 모양인지 힐끔힐끔 쳐다보며 따라오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머리가 새하얗게 쇤 노인 하나와 초아 또래의 꼬맹이 하나.
귀찮게 하는 것만 아니라면 따라오든지 말든지 상관은 없었다.
애초에 산군은 다른 이에게 관심이 별로 없는 범이었고, 갈 길이 바쁜 터라 그들에게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무공깨나 배운 것으로 보이니 지 앞가림은 알아서 하겠지.’
산군이 지나고 있는 길은 백산의 근방에 있는 작은 산.
백척곡(百斥谷)이라는 골짜기였다.
옛날 이곳을 넘어 영토를 침범하려 했던 백에 달하는 외적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하여 백척곡이라 불리게 된 골짜기였다.
산군은 그 유래와 그 존재를 익히 알고 있었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백에 달하는 외적들은 모종의 목적을 가진 무인집단이었으나, 운이 없었는지 백척곡에 거주하고 있던 영수에게 몰살당했다.
그러나 그 영수는 이미 이곳을 떠난 지 오래였고, 이 보잘 것 없는 곳에 거주하고 있는 영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안녕!”
초아가 산군의 등에 탄 채로 뒤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노인의 옆에 따르고 있던 꼬마도 마주 손을 흔들며 입꼬리를 올렸다.
총명하게 생긴 사내아이로 보아하니, 노인이 제자 삼아 데리고 다니는 아이 같았다.
쓸데없이 훈훈한 분위기.
산군의 아미가 찌푸려졌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날이 어두워지자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산군은 근처에 있던 눈먼 노루 하나를 잡았다.
범으로 살아가는 산군에게 짐승 사냥은 필수였고, 꽤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에게 이 정도는 간단했다.
“오오!”
하지만 그런 산군이 대단했는지 초아가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흥!]내심 뿌듯한 산군은 고개를 뻣뻣이 들며 뒷다리 하나를 초아에게 던졌다.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노루의 뒷다리를 멀뚱히 바라보던 초아가 산군을 보며 입을 열었다.
“서방님 초아는 날 거 못 먹어요.”
생각해보니 자신과 다르게 초아는 인간이다. 날 것으로 먹어도 상관은 없겠지만, 초아는 아직 어린아이라 탈이 날 수도 있다.
기생충에 감염될 위험도 있고……. 어쨌든 익혀 먹는 것이 좋았다.
‘비리기도 할 거고.’
[불 피우는 법 모르더냐?]“네에…….”
시무룩해진 초아를 떨떠름하게 바라본 산군은 근처에서 노숙을 준비하는 노인과 꼬마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거 하나주고 불이나 얻어 오거라 그럼.]산군은 매끼를 챙겨먹지 않아도 상관없다. 짐승들은 사람과는 달라서 한 달을 굶어도 움직이는 데 지장이 없는 것들도 있다.
게다가 산군은 영물이라 몇 달 정도는 굶주림을 참을 수 있었다.
“웅!”
초아가 자기 몸만 한 노루 뒷다리를 들고 그들에게 달려갔다.
한참이나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 불을 얻어온 초아는 낙엽들을 모아 불을 붙이고, 또 다른 나뭇가지에 살코기를 끼워 구웠다.
[뭘 그리 오래 걸리더냐.]“저 애도 저랑 같은 나이에요. 그래서그래서, 친구하기로 했거든요. 이름은 비청이래요!”
‘비청?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은데.’
비청, 비청……. 잠시 그 이름을 곱씹던 산군이었으나 끝내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지글지글.
살코기가 익어가는 소리가 고즈넉한 밤하늘에 운율을 띄웠다.
코끝을 간질이는 고기 냄새가 들짐승의 코를 벌름거리게 했다.
그러나 초아의 곁에 있는 산군의 기운 탓에 쉽사리 접근하지 못하고 침만 꼴깍 삼켰다.
허나 그것은 초아 또한 마찬가지인지 그녀의 배에서도 꼬르륵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저 배가 많이 고팠구나 하고, 그러려니 했으나 초아는 그것이 영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히고 헛소리를 했다.
“서방님도 차암……. 배가 고프셨으면 어서 진지 드시와요…….”
뜬금없이 산군의 뱃속에서 난 거라 운을 띄우는 게 아닌가!
다른 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저와 산군 둘만 있는데 말이다. 산군은 얼탱이가 없어져 입을 슬쩍 벌리고 초아를 바라봤다.
초아는 새초롬한 표정으로 고기가 익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이 조금 붉은 게 저도 뭔 소릴 한 건지는 알고 있는 모양이다.
[뭔 개소리야. 네 배에서 났잖아.]어디서 약을 팔아 이게.
“아, 아닌데? 서방님 배에서 난 소린데?”
[참나……. 배가 고프면 그런 소리가 날 수도 있는 게다.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아니에요!”
[귀 안 먹었다. 소리 좀 빽빽 지르지 말거라. 그리고 너랑 나랑 둘이 있는데 내 배에서 난 소리도 구별 못 할 거라 생각했느냐?]꼬맹이도 여자는 여자인지 부끄러운 줄은 아는 것일까.
별 시답잖은 짓을 하는 것이 퍽 귀여웠다.
허나 초아는 눈치 없이 넘어가 주지 않는 산군을 보며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서방님은 바보야!”
초아는 그리 소리치고는 손에 쥔 고기꼬치를 손에 꼭 쥐고 수풀로 달려가 버렸다.
그 와중에도 배는 고팠던 모양이다.
[…….]멍하니 수풀로 사라지는 초아를 어이없단 눈으로 바라보던 산군을 향해, 여인네의 청아한 음성이 퍼져 나왔다.
-안 쫓아 가십니까.
[내가 왜.]– 산군의 비 아닙니까.
[비는 무슨 놈의 비. 다 알면서 뭘 그리 놀리려하느냐.]-그렇다 해도……. 오밤중에 어린아이 혼자 산속을 헤매면 큰일이 지 않습니까.
[도모잠이 지켜줄 것이다.]보숭아 향을 머금은 그 보물이라면 웬만한 악귀는 접근조차 못 할 것이다.
-도모잠은 악귀는 젖을지언정 영수를 쫒지는 못하지요. 아직 영력을 개화하지 않은 산비님입니다. 게다가 길을 잃어 헤맨다면 여정이 더 길어지지 않겠습니까.
[……그 또한 그 아이의 운명이겠지.]대책 없는 대답이었다.
-허면 절 이리 만드신 것 또한 운명의 인도였습니까?
[…….]자신을 창귀로 만든 것도 운명이냐는 물음에 산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그리 저 아이를 신경 쓰는 것이냐.]-글쎄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주인을 모시기 싫을 뿐입니다.
[허튼 소릴…….]무어라 하려던 그때.
“허허……. 영수인줄 알았더니 사람 잡아먹는 요물이었구나.”
어느새 다가온 노인이 등에 맨 검 한 자루를 뽑아 들고 산군을 향해 겨누는 게 아닌가!
[뭐냐 넌.]안 그래도 귀찮게 하는 녀석 때문에 골머리가 아픈데 이놈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산군은 언짢은 기분에 꼬리를 들썩거리며 움직였다.
“본인은 곤륜의 청도산이다.”
장삼을 휘날린 노인은 기세를 드높이며 당장에라도 산군을 찌를 듯 노려봤다.
곤륜산.
무공을 연마하는 집단으로서 그 끝에는 도인, 선인이 되기를 목표하는 놈들이었다.
그렇다면 놈이 산군에게 검을 겨눈 것 또한 이해가 됐다.
곤륜산의 무인들은 귀신의 기척에 민감하기로 유명해 귀신을 퇴마하는 것으로 이름을 떨치기도 하는 놈들이기 때문이었다.
‘귀찮네.’
스스슥.
산군의 곁에 어느새 허연 영체가 모여들어 여인의 형상을 이루었다.
검은 소복을 입고 칠흑처럼 어두운 머리칼을 폭포수처럼 늘어뜨린 약관의 나이로 밖에 보이지 않는 여인이었다.
청도산은 산군에게 검을 겨누며 그의 옆에 있는 아리따운 여인을 바라봤다. 겉으로 보면 사람과 다르지 않은 외양이었으나, 강대한 귀기(鬼氣)를 지닌 귀신이었다.
범과 함께 다니는 귀신이라 하면 당연 악질 중의 악질인 창귀.
검을 뿌릴 이유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네놈이 어찌하여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는 것은 모르겠으나, 그 또한 무언가 사특한 이유가 있어서겠지. 내 곤륜산의 이름을 걸고 네놈의 숨통을 끊어주겠다!!”
청도산의 외침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보통 인물은 아닌 듯 다 늙은 모습에도 불구하고 기백이 엄청났다.
하지만 산군은 그런 노인의 기백에도 시큰둥하게 바라보다 여인에게 눈짓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란. 네 탓에 온 놈이니 알아서 하거라.]“그러지요. 산비님을 뫼시러 가는 겁니까?”
화란이라 불린 여인은 목걸이에 걸려있는 보석에 손을 대어 검 한 자루를 꺼냈다.
꺼낸 검은 이빨이 다 빠져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한 낡은 검이었으나, 여인이 목에 걸고 있는 것이 노인을 놀라게 했다.
“공정강(孔停陸)!”
공정강이라니.
도선(道仙)에 달하는 도사들이 가지고 다닌다던 크기에 구애받지 않고 무엇이든 넣을 수 있다는 신외지물의 보물이 아니던가!
[쉬기엔 글렀으니 소화나 시킬 겸 가는 것이다.]“예, 그러시겠지요. 가는 김에 초야도 치루고 진정으로 비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떠신지요.”
[말도 안 되는 소릴.]노인이 놀라든 말든 관심 없다는 듯 대화를 끝낸 산군은 수풀로 사라지고, 산군의 창귀. 화란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노인을 보며 싱긋 웃었다.
다 늙어빠진 노인도 홀리기 충분한 어여쁜 미소였으나 그녀가 흘리는 귀기는 음산하기 짝이 없었다.
“사, 사부님! 저도 돕겠습니다! 저놈들이 초아에게 몹쓸 짓을 하려는 것이었겠지요!”
“물러나 있거라! 네가 나설 자리가 아니다!”
둘 사이에서는 이미 산군과 화란이 나쁜 놈들이고 초아는 그에 속아 넘은 희생자로 치부된 모양이다.
어이가 없어 화란이 피식 웃자 비청이란 꼬마의 아미가 찌푸려졌다.
“한 가지 물어도 되겠소?”
공정강을 보고 난 이후라서 그런지 노인의 말투가 꽤 공손해져 있었다. 그 변화를 모를 리 없는 화란은 피식 웃으며 노인에게 검을 겨눴다.
“도인들은 무엇이 궁금하면 상대를 제압한 이후에 묻는 것이 법도가 아니었습니까?”
도인을 싸잡아 비아냥거리는 여인의 말투에 노인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렇다면 그리 하지.”
노인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란의 뒤에서 나타났다.
곤륜산이 자랑하는 용형보(龍形步)로서 용의 움직임을 따라 만들었다는 보법이었다.
‘끝이다!’
제 아무리 상대가 신외지물의 보물을 가지고 있다지만 자신의 실력 또한 부족하다 느낀 적은 없다.
그는 마음을 다잡고 살기를 내뿌렸다.
그녀의 목덜미로 향하는 검에 한 치의 흔들림은 없었다. 단숨에 그녀의 목을 베고 몸과 머리를 분리시키리라!
캉!!
“이럴 수가!”
끼긱끽!
불똥을 튀기며 검을 맞부딪친 그녀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노인을 비웃었다.
“무술 좀 배웠다는 이들은 항상 그런 표정을 짓더군요. 막을 수도 있는 건데 항상 놀라 자빠지고 경악하죠. 경지를 논하고 그것에 차이는 없나 봅니다.”
화란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 저으며 검을 흩뿌렸다.
* * *
콰앙! 쾅!
‘오랜만에 싸운다고 신났네.’
산군은 뚱한 얼굴로 초아의 냄새를 추적하며 설렁설렁 걸었다.
이놈의 꼬맹이는 어두운 산속이 무섭지도 않은지 멀리도 가버렸다.
잠시간의 시간이 지나고.
고목나무 밑에서 빵빵하게 볼을 부풀린 채 고기를 뜯어먹고 있는 초아를 보며 산군은 눈살을 찌푸렸다.
[맛있냐?]“히끅!”
깜짝 놀라 고기가 목구멍에 걸렸는지 가슴을 톡톡 두들겼다.
한참을 얼굴이 시뻘게져서 가슴을 때리던 초아가 겨우 고기를 삼키고 자신을 부른 이를 바라봤다.
“서방님!”
토라졌다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은 걸까? 자신을 찾아온 산군을 보며 해맑게 웃는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홱! 돌리며 콧소리를 낸다.
“흥!”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으나, 삐치긴 삐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