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74)
낭선기환담-73화(74/600)
낭선기환담 – 73화
금강을 벗어난 산군은 한 손에 안시석을 들고 있었다.
“수상하단 말이지.”
안시석에는 통술 구결이 적혀있었다.
그것은 뿔을 효율적으로 다루는 법이 적혀 있는 구결이었다.
“회천각고(悔天角呱).”
뉘우침이 하늘에 닿으니 뿔이 울다.
이 통술을 창제한 사람이 무슨 잘못을 뉘우치고 만든 것 같았다.
아무튼.
뿔에 관한 통술은 처음이었다.
산군은 애초에 본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라 뿔에 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금명지수와의 싸움 이후로는 그 또한 조금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관련 통술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기쁨보다는 의뭉스러웠다.
이것을 내준 이가 다름 아닌 궁비호의 대장로 요호였으니까.
“줄 이유가 없는데….”
그녀가 이것을 내줄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바란 것도 아니요, 그녀에게 있어 자신은 눈엣가시나 다름없는데 이리 호의를 배푸는 게 수상쩍은 건 당연했다.
더 의아한 것은 이것.
안에 벌레가 갇혀 있는 수정이다.
실처럼 가느다란 몸체에 머리가 뾰족한 기이한 생김새의 영충.
수정 속에서 돌돌 말려 있어, 언뜻 보면 명주실을 감아놓은 듯 했다.
공정강에 담긴 서찰에 적혀있기를.
[장충지태(長蟲漬兌)라는 것으로, 몸 속에서 배양하면 근골을 단단히 해주고 가죽을 질기게 만들어 주는 약충입니다. 그대의 신통이 강대함은 알고 있으나, 혈붕수를 찾음에 힘이 부족한 것은 당연할 테니 이것으로 뜻을 이루기를 바랍니다.]산군은 서찰을 태워버리고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이것만 보면 날 죽이려는 심산이 가득인데….”
참 아이러니하다.
장충지태가 약충이라는 건 산군 또한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약충에 무슨 짓을 해놓았는지도 안다.
‘뭣도 모르고 취하면 내단이 망가져 반병신이 되겠지.’
유정에게 이것을 주었다 역으로 자신들이 당하는 일화가 산군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때는 통쾌하다 했는데 이것이 내 손으로 들어올 줄이야.’
그는 품에서 조그마한 돌멩이 하나를 꺼내어 영력을 불어 넣었다.
그러자 돌멩이 전체에 균열이 일어나며 기이한 빛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이내 장충지태에 깃들었고 이내 빛이 점멸하다 사라졌다.
“수작을 부렸다 한들 해봉석이 있다면 본래의 장충지태로 돌릴 수 있으니 내겐 이득이지.”
비소를 머금은 산군은 장충지태를 잡고 영력을 일으켰다.
그러자 수정이 순식간에 녹아들었다.
놈이 깨어난 몸을 움직이다 영력이 발산되는 곳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날카로운 머리가 손목을 향했다.
이내 장충지태가 손목을 파고들어 속으로 쏙 들어갔다.
장충지태에 걸린 금제를 없애버렸으니, 영충은 산군의 몸속을 돌아다니며 근골과 가죽을 단단하게 해줄 것이다.
‘장충지태로 병신을 만들려고 했다는 것은 알겠는데…. 회천각고는 어째서 준 것이지?’
고민해봤으나 알 수 없다.
회천각고를 익히어 무슨 나쁜 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뿔을 다루는 구결이기 때문에 이걸 익히면 다른 곳에 영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혹시 자신이 모를 구결이 숨겨져 있는가 했으나 그렇지도 않아 보인다.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산군은 떨떠름한 낯으로 회천각고의 구결을 읊다, 문득 탐화오공을 불렀다.
이제는 성장해 십여 척에 이르는 몸체를 갖게 된 영충.
탐화오공.
산군은 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공정강에서 짐승 팔 하나를 꺼내 던졌다.
마도의 환선이 썼던 영수의 팔이다.
자신은 딱히 쓸데도 없으니 먹으라 주는 것이다. 먹이면 먹일수록 점차 강해질 테니.
“산군. 이제 가시지요.”
“그래.”
산군이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 걷자, 금명지수와 륜이 기령차에 올라타고 있었다.
금명지수는 산군을 보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아직도 둘의 사이는 여전했다.
그 또한 좋은 마음은 없었기에 무시한 채로 올라탔다.
이내 호신막이 뒤덮이곤 말들이 나타났고 하나의 빛줄기로 화해 하늘을 가로 질렀다.
목적지는 한산.
놈들이 식마합일을 꾸미고 있다면, 그 중축이 되는 곳이 한산일 것이다.
처음엔 무시하려 했으나 그곳에 혈붕수가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로는 식마합일을 위해서 붕계를 여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리 된다면 일이 복잡해진다.
붕계가 열리기 전에 혈붕수를 찾고, 천수일기겁을 받아 영명에 오르는 것이 제일이리라.
‘휘말리는 것은 질색이니까.’
그 뒤에는 일의 수습을 위해 탈쟁이들이 나올 테고, 궁비호들이 나타나 수작을 부릴 것이다.
하지만 무슨 일이 벌어져도 그의 목적은 혈붕수뿐이니 관여치 않으리라.
산군은 계속 힐긋거리는 금명지수를 무시한 채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 * *
한산의 화려한 대궐.
그 중 한 건물에는 검붉은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심드렁한 낯으로 수하의 보고를 받고 있는 귀음나찰이었다.
“그래서.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수하의 말은 이러했다.
108 고독을 시행하는 중, 한 곳이 발각되었는지 환선 둘이 죽고, 비선 여덟이 죽었다는 보고였다.
“몇이었지? 놈의 산통이나 인상착의는?”
“약관의 나이로 보였고, 사내였습니다. 워낙 갖가지 신통과 보패를 보유하고 있어 특정할 수는 없었습니다만…. 푸른 빛기둥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푸른 기둥?”
“예. 뇌염을 다루는 도사인 듯 싶었습니다.”
푸른 뇌염이라.
그녀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누군지 알 듯하다.
“추적은?”
“보고에 따르면 그 뒤에 궁비호들이 몰려와 그들을 데려갔다 합니다. 그 이후의 일은 아직….”
궁비호.
궁비호라….
툭툭.
검지로 입술을 두드린 그녀는 반대 손아귀에 들린 소녀를 놓았다.
철퍽.
피 웅덩이에 쓰러진 소녀는 미동도 없었다. 귀음나찰의 주위는 수십 명의 어린 계집들이 죽어 있었다.
어디 하나 다친 것도 아니건만 혼이라도 빠져나간 듯 미동도 없었다.
“붕계를 여는데 차질은 없나?”
“붕마소환까지는 문제가 없습니다만, 식마합일을 이루는 데 문제의 여지가 있는 걸로 사료 됩니다.”
“어떤 문제?”
“부교주님의 안위에 관한 것이라….”
“그런 것이라면 상관없다. 어차피 죽지도 살지도 않은 몸인데 무슨 상관일까.”
“의식에 잡아먹힐 수도 있습니다.”
식마합일은 보패화 시킨 요수.
그것을 몸에 이식하는 것.
힘에 취해 의식이 먹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상관없다.”
“부교주님….”
“네 눈에는 내가 살아있는 것으로 보이더냐?”
“그건.”
수하는 입을 다물었다.
귀음나찰은 코웃음을 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딜 가십니까.”
“벗이 될지, 적이 될지 모르는 여인을 만나러.”
* * *
배련과 비청은 빙궁의 소개로 한산의 궐에 머무르고 있었다.
비청이 말했던 곳이 한산의 궐이었기 때문이었다. 백련과 비청은 호화로운 일상을 보냈다.
비청은 회포를 푼답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 그녀를 귀찮게 했지만,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백련에게도 비청은 하나뿐인 동문.
벗이라 할 수 있는 자였으니.
그렇게 궁에서 이틀.
한가로이 정원을 거닐던 백련.
그녀의 안색은 꽤 좋아보였다.
추침판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당연했다. 방곡 주변에 비하면 고선은 도사들에겐 손바닥만 한 지역이니 찾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남은 것은 비청에게 무어라 말을 하고서 찾느냐는 것인데….
그때였다.
돌연 등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검을 뽑았다.
스릉!
“안녕하십니까, 도사. 여기서 또 만나네요?”
익숙한 음색에 반쯤 뽑았던 검을 다시 집어넣은 백련은 떨떠름한 낯으로 답했다.
“당신이 어째서….”
그녀는 고선으로 향하는 산을 넘으며 잠시 말동무를 했던 여인.
“예후 선자 아니십니까.”
예후였다.
“예! 절 기억해주고 계셨군요!”
예후는 기쁘다는 듯 미소 지었다.
백련 또한 경계심을 늦추려 했으나 그녀에게서 풍기는 혈향에 아미를 좁혔다.
“아, 별 것 아닙니다. 이 궐에 친분이 있는 이가 있는데, 썩은 뿌리를 잘라내 달라 해서요.”
어딜 가나 부패한 이들은 있는 법.
하지만 온몸에 혈향이 배어 있는 것이 좋아 보일 리는 없다.
백련의 머릿속에서 예후의 인상이 급변하는 순간이었다.
“……그렇습니까.”
“예! 그건 그렇고 인연은 인연인가 봅니다. 이런 곳에서 다 만날 줄은 몰랐어요! 잠시 차라도 하시렵니까?”
조금 의심스럽기는 하나 거절할 이유는 없다.
비청을 기다리고 있던 그녀는 근처 궁녀에게 언질한 뒤 그녀를 따랐다.
잠시 후.
연못 앞에 자리한 아름다운 정자 위에서 꽃 같은 여인 둘이 함께 앉았다.
“찾던 이는 찾으셨습니까?”
주어가 빠졌지만 어찌 모를까.
낭군에 대한 이야기거늘.
“……애석하게도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분이시라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하지만 다시금 흔적을 찾았으니 괜찮습니다.”
“그것 참 다행입니다.”
“예후는 어떠십니까.”
“음….”
할 말을 고르는 듯 눈동자를 굴린다.
하지만 묘하게 입매가 올라간 것을 보니 답을 알 듯 했다.
“축하드립니다.”
“아니요, 아직 얼굴을 뵙지도 못했는데요. 워낙 눈에 띄는 분이시니 가만히 있어도 절 찾아오실 듯 합니다.”
가만있어도 찾아온다라.
백련은 그녀의 대답이 참 부러웠다.
“한데 제가 이곳에 있는 것은 어찌 아셨습니까?”
“하핫, 백발의 선녀 같은 여인이 있다고 궐 안에 소문이 무성한데 어찌 모를까요. 저 또한 많은 이들을 만나 본 것은 아니지만 선자처럼 선녀 같은 여인은 본 기억이 없어요.”
“과찬입니다. 어릴 때는 손가락질 당했던 색일 뿐이에요.”
“그럼 어찌 가리시지 않고요? 선자 성격상 눈에 띄는 것을 바라지는 않으실 텐데.”
“지아비가 절 기억하실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더니 이것밖에 없더군요. 혹시라도…. 찾아오시지 않을까 그냥 두고 있습니다.”
덕분에 요수들도 잘 찾아오지만.
“그러셨군요. 아, 혹 선자의 님께서 어떤 외관을 지니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제 수하들이 고선에 발이 넓으니 인연이 닿는다면 찾을 수도 있지요.”
“괜찮습니다. 그런 수고를….”
“수고라니요! 이리 만난 것도 하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괘념치 말고 한번 말해보세요.”
백련은 난감했으나 예후가 붙임성 좋게 닦달하자 결국 입을 열었다.
“남자답고. 잘생기셨지요. 눈은 적안이시고…. 아, 그러고 보니 커다란 흑도를 지니셨습니다. 그리고 청염을 다루시기도 하지요. 모르긴 몰라도 같은 경지에서는 제 서방님을 당할 자는 없을 겁니다.”
볼을 붉히며 말하는 그녀의 말이 이어질수록 예후의 낯은 딱딱하게 굳었다.
한동안 미동도 없자 백련이 고개를 갸웃했다.
“예후 선자. 왜 그러십니까?”
“아, 아닙니다. 그…러셨군요.”
평정을 가장하고 있으나 움찔거리는 입꼬리를 감출 수는 없었다.
“혹…. 선자께서 찾는 이의 성함이.”
“대호, 대호입니다.”
예후.
아니, 귀음나찰의 입꼬리가 찢어질 듯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