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80)
낭선기환담-79화(80/600)
낭선기환담 – 79화
산군이 피 맛을 되새기고 있을 때.
금명지수는 륜과 함께 전쟁의 양상을 살피고 있었다.
“아비규환 그 자체구나.”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그녀가 중얼거렸다. 륜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의식은 막바지에 들었는지 이제는 완연한 밤이라 해도 믿을 정도.
어두워진 하늘은 전투를 치르는 이들의 신통만이 번쩍거릴 뿐이었다.
“서약은 서약일 뿐이라는 것인가.”
금명지수는 지모사들을 보며 수심이 가득했다. 그들의 말로가 뻔히 보였다.
지금은 저리 저항하고 있다지만….
‘탈에는 지선이 있다.’
땅위의 신선. 지선(地仙) 환망.
그가 나타난다면 제아무리 많은 육사들과 마사들이 있다 한들 죽음을 피하기는 요원하다.
“어찌 저리 무모한 짓을….”
잠시 고민한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이해할 필요조차 없다.
관심도 없을뿐더러 그녀가 걱정할 이유조차 없다.
애초에 그녀의 사명은 한 가지.
‘은자를 도와 혈붕수를 회수할 것.’
오직 그뿐.
“근데 이놈은 대체 어딜 간 게야….”
웬 여선에게 피투성이로 잡혀 있을 때는 간담이 서늘했다. 혹시나 죽은 게 아닐까 싶어 암담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내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 어떻게 구출할까 하는 시점에 저 혼자 알아서 탈출해버렸다.
천만 다행이었다.
거기까지는.
“몸도 성치 않았을 텐데….”
“그러게 말입니다. 그 몸으로 어딜 가셨는지….”
쩌저저저적!
쿠궁!!
하늘의 균열이 더 커졌다.
뭔지는 몰라도 의식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더 애가 탔다.
사월랑은 은원을 중시한다.
개개인의 마음은 다를지라도 사월랑이라는 집단에 속해 있는 한.
은자를 두고 도망칠 수는 없다.
하물며 그것이 공주라면 더더욱.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 작자다 정말.”
그때였다.
금명지수가 돌연 고개를 홱 돌렸다.
순간 머리 위에 늑대 귀가 나타나 쫑긋거리기까지 했다.
그러자 륜의 안색이 밝아졌다.
“찾으셨습니까?”
“……일단 가보자.”
고개를 갸웃하는 그녀를 바라본 륜도 함께 갸우뚱하다 일어섰다.
이내 금명지수가 호신막으로 륜을 감싸 빛줄기로 화해 쏘아졌다.
여기저기서 피 튀기는 혈투를 피해 나아가길 한 식경 즈음 되었을 때.
그를 발견했다.
웬 귀신같은 여인네와 함께.
그는 정신을 잃은 여인을 눕혀두고 산발이 된 머리칼을 쓸어주고 있었다.
금명지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 손길이 퍽 다정다감했다.
자신을 때리던 그 손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아주 달라보였다.
‘육갑을 떨고 있네.’
왠지 모르게 속으로 욕지거릴 내뱉은 그녀가 기침 소리를 내었다.
“오셨소.”
평소와는 다르게 힘없는 음성이었다.
슬쩍 살피니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죽은 듯 자는 여인도 마찬가지.
대충 상황을 파악한 금명지수가 륜에게 턱짓했다.
“은자님. 혈붕수는….”
“찾았소. 이제 이곳에 볼일이 없으니 갑시다.”
그녀들의 낯에 희색이 돌았다.
듣기만 해도 반가운 소리였다.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가. 지금만 해도 하늘 위에서는 핏물이 비처럼 떨어져 내리고, 도사나 육사의 시체가 떨어져 내리는데 왜 안 그럴까.
“지인이십니까?”
살가워진 륜의 물음에 그는 잠시 침묵하다 떨떠름하게 고개를 주억였다.
뭔가 이상했지만 아무렴 어떠랴.
“가시지요.”
금명지수가 기령차를 꺼냈다.
새하얀 마차가 나타나고.
산군이 초아를 안아 드는 그때.
푸석.
지면의 잡초가 절로 말라비틀어졌다.
기현상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주변의 식물이란 식물은 전부 메말라 버리고, 숨어있던 들짐승도 갑자기 뛰쳐나와 비명을 지르더니 쓰러졌다.
정기를 빼앗겼는지 기괴한 몰골로 변해버린 채로 이내 뼈까지도 바스라졌다.
“으으! 으으윽!”
그때 륜이 가슴을 부여잡으며 주저앉았다. 고통스럽다는 듯 식은땀을 흘 리며 몸을 덜덜 떨었다.
“륜! 아, 아니 얘가 왜 이래…!”
금명지수가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산군은 초아를 바라봤다.
정신을 잃은 초아의 얼굴도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단시간에 일어난 변화.
산군은 혀를 차고는 검 한자루를 꺼내 단박에 지면에 꽂아 넣었다.
은빛의 목검.
항보사인검이었다.
투웅!
그러자 검의 주위로 반경 넉장의 넉넉한 은빛의 호신막이 만들어졌다.
“이게… 륜! 정신이 들더냐!”
그제야 륜이 정신을 차리며 숨을 헐떡였다. 금명지수는 산군을 보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설명해주길 바라는 듯했다.
“놈들의 의식이 완성된 거요.”
퉁명스러운 답변이었다.
그녀가 미간을 좁히자 그는 작게 한숨 쉬며 말을 이었다.
“붕계가 열렸으니 그 여파로 살아있는 것들이 정기를 빼앗기는 거지. 영명 육사인 그대는 아무렇지 않을지 모르나 그 밑의 경지인 영결이나 비선들은 영각과 내단이 하나로 자리하지 못해 혼과 육신이 분리될 뻔했다는 거요.”
“그럼 은자는 어찌 아무렇지 않은 겁니까? 그대도 륜과 같은 영결….”
그 질문에 산군은 말 없이 지면에 꽂힌 검을 가리켰다.
기이한 문자가 새겨진 검.
그것이 뿜어내는 기운은 틀림없는 항마의 기운.
금명지수는 입을 다물었다.
항보신목은 귀하디 귀한 신목이다.
그 이파리 하나를 구하기도 어려운 것인데 검으로 만든 보패라니.
그 귀한 것으로 검을 만들어 지녔으니 아무렇지 않은 것도 당연했다.
“좋지 않은데….”
그가 중얼거렸다.
붕계가 열리고 하늘에 떠있던 이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내렸다.
도사들은 물론, 거대한 뱀의 모습을 한 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때였다.
돌연 갈라진 균열에서 검은 벼락 한 줄기가 섬광처럼 떨어져내렸다.
쩌저저저저적!!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굉음이 퍼졌다. 벼락이 떨어진 곳은 다름아닌 귀음나찰이 있던 의식의 중심지.
콰과광!!
산군은 즉시 자색호리병으로 녹사를 펼쳐 대비했다. 한차례 폭발음에 둥글게 덮힌 녹사가 꿀렁였다.
이윽고 시야를 가린 녹사를 치우자 보이는 것은, 수백장에 이르는 크기를 가진 검은 물소였다.
“저게 무엇입니까!?”
“만보시대때 멸족했던 영족 중 하나입니다. 묵뢰(墨雷)를 다루는 마수 일족은 그대도 알고 있을텐데요.”
금명지수는 묵뢰라는 말에 다시금 물소를 바라보곤 기함했다.
“묵뢰차우(墨雷嗟牛)…. 하,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묵뢰차우는 저리 거대하지도…. 저리 강력한 마기를 뿜어내지도 않습니다!”
그녀 말이 맞다.
묵뢰차우라 해도 결국 마에 속하는 영수일 뿐이다. 태선들도 서로 눈치만 보고 있을만한 녀석은 아니다.
‘그 물소 뼈가 묵뢰차우의 것이었을 줄이야. 그때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진즉 알았다면 어떻게든 부숴버리거나 빼앗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그리고 벌어져야 했을 일이다.
“묵뢰차우와 마사 한명이 하나가 되었으니 저런 것이지요. 모르긴 몰라도 지금이라면 태선과 맞먹을 힘을 지녔을 겁니다.”
묵뢰차우의 두개골을 매개체로 거대 진법으로 붕계를 열고, 일정 지역의 눈먼 생명들을 모조리 제물로 바친다.
‘제물을 받은 놈은 묵뢰차우의 머나먼 선조나 그와 관련된 붕마.’
그렇지 않으면 연결점이 없으니 당연했다. 그리고 붕마의 도움으로 묵뢰차우와 식마합일을 이루었다.
“대단도 하군.”
산군은 주위를 둘러봤다.
한산의 반경 100리에 살아있는 생명은 없어 보였다.
식물은 모조리 메말랐고, 땅은 생기를 잃어 쩌저적 갈라졌다. 짐승들이나 범인들 또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이 또한 일어나야 할 일.
-우오오오오오오오오!!
묵뢰차우의 울부짖음이 우레와 같이 퍼져나갔다.
파지직파직.
놈의 주위로 묵뢰가 퍼득였다.
산군은 초아를 품에 안고 기령차에 올라탔다.
“뭐합니까. 갑시다!”
“아, 알고 있어요!”
금명지수는 륜을 들쳐메고 기령차에 올라탔다. 이내 그들은 하얀 빛줄기가 되어 활공했다.
‘식마합일이 이루어졌으니 이제 곧 환망이 나타나 알아서 정리할 터.’
그리고 그 즈음 궁비호들이 힘빠진 탈쟁이들을 도륙하려 할 것이다.
‘역으로 모조리 당하겠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산군이 관여할 일은 아니다. 고선이 풍비박산 나겠지만 그의 목적은 오로지 혈붕수.
그리고 천수일기겁이었으니까.
‘귀음나찰 그년한테 한방 먹이지 못하는 게 아쉽다만 다음 기회가 있겠지.’
애초에 그녀는 단순한 방법으로는 죽지도 않을 테니까.
생각을 정리한 산군이 품에 안긴 초아를 바라봤다. 선단을 먹여서 그런지 전보다는 혈색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푹 쉬면 금방 낫겠지.’
가만히 바라보던 산군이 돌연 그녀의 콧방울을 검지로 톡 때렸다.
순간 그녀의 아미가 좁혀졌으나 이내 그의 품으로 파고 들어온다.
설마 아직까지 자신을 서방님이라 부를 줄은 몰랐다.
그리고 입맞춤도.
초아가 어릴 때는 어려서 그러려니 무시했었다.
어린시절에는 누구나 그러한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혼인하자.
백년가약을 맺자.
그러던 이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마음이 변하기 마련이다.
그랬기에 산군 또한 그리 생각했다.
‘서방님이라….’
기쁜 마음도 있었다.
자신을 기억하고, 그리워했을 그녀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화를 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기색도 없이.
그리 환하게 웃을 줄은 몰랐다.
그렇기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
‘그럴 때가 아니거늘….’
할 일이 많다.
영명의 진수명화가 이제 눈앞에 당도했고, 그를 위한 준비가 필요했다.
게다가 자신은 영수.
애초에 수명부터가 다르다.
그녀가 혼아혈이라 해도 그 차이에 변함은 없다.
생각 같아서는 대충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이제껏 자신을 기억하고 마음을 전한 여인에게 그런 짓을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사내대장부로서 어찌 그런 죽도 밥도 안 되는 짓을 할까.
“은자!!”
“뭣, 왜 그러시오.”
화들짝 놀란 그가 답했다.
금명지수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는데 상태가 좋아보이지 않았다.
왜 저러는가 싶어 물으려는 찰나.
“꽉 잡아!!”
핑-
소리와 함께 기령차가 재빠른 속도로 빙그르르 돌았다.
“아니 뭘 하는….!”
그때 기령차의 옆으로 거대한 뇌전이 빛살처럼 뿜어졌다.
콰자자자장!!
고막이 먹먹해질 정도로 강렬한 묵뢰가 옆을 스쳤다.
대경실색한 그녀와 산군이 호신막을 둘렀으나 묵뢰의 여파만으로 기령차가 부서져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까아아악!”
쿵!
지면으로 낙하해 떨어진 산군 일행이 흙먼지 속에서 일어났다.
정신이 없었으나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한시라도 빨리 도망쳐야 했다.
“아니 저게 왜….”
산군은 망연자실하게 중얼거렸다.
이쯤이면 환망이 나타나야 할 텐데.
어찌 묵뢰차우가 자신을 쫒는가!
자기 말고 다른 표적은 넘치도록 많을 터인데!
“뭐하십니까! 이리 오세요!”
금명지수도 정신이 없어 보였다.
묵뢰차우는 10리 밖에 있었지만 워낙 거대한 모습에 선연히 보였다.
그뿐일까.
묵뢰를 뿜어대며 성난 황소마냥 돌친하고 있는데 모를 리 없다.
그리고 그 표적은 다름아닌 산군.
‘도망칠 수 없다.’
놈이 뿜어대는 묵뢰의 크기는 본신을 드러낸 산군을 한입에 삼킬 정도.
스치는 것으로 뼈도 못 추스르리라.
‘죽는다.’
묵뢰차우가 자신을 쫓는 이유는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다.
식마합일 한 귀음나찰 때문일 터.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였다.
도망친다 해도 비행보패를 잃어버린 지금이라면 어차피 죽을 것이다.
천리마양부로 축지를 사용한다해도 이 인원이라면 그리 멀리까지 축지할 수 없다. 설사 축지한다 해도 놈 또한 축지하여 따라 붙을 것이다.
태선과 동급이라는 것은 공간 신통 또한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니!
“뭐 합니까! 죽고싶으신 겁니까!”
“닥쳐! 지금 도망쳐봤자 죽는 건 매한가지다!”
산군의 일갈에 그녀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녹사로는 못 막는다.’
구환도의 귀무 또한 마찬가지.
붉은 염주는 청옥이든 금장사는 묵뢰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봉악뇌염 또한 같다.
한순간에 묵뢰에 집어 삼켜진다.
‘육령비탑이라면….’
영력은 선단을 복용해 4할 정도 차올랐다. 하지만 부족하다.
“금명지수! 내게 영력을 넘겨라!”
“죽는다고!”
“닥치고 내놔!”
고민은 짧았다.
그녀 또한 일이 어찌 돌아가는지 대강 파악했으리라.
“죽으면 평생 원망할 거야.”
금명지수가 그의 등에 손을 뻗었다.
이내 정순한 영력이 등을 타고 그에게 전해졌다.
이거라면….
“죽으면 다 끝이니 맘대로 해라!”
쿠르르르릉!
묵뢰가 우레 소리를 자아낸다.
검붉은 묵뢰가 그 크기를 부풀렸다.
그리고 이내 놈의 뿔에 맺혔을 때.
산군의 눈앞에 육령비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번쩍! 콰가가가가강!!
묵뢰와 육령비탑이 부딪쳤다.
하지만 곧장 느꼈다.
‘부서진다.’
육령비탑의 양 옆으로 검붉은 뇌전이 앙상한 가지처럼 넓게 퍼졌다.
그 직후 뱀처럼 이지러졌다.
육령비탑은 굳건했으나.
그것은 찰나였다.
빠드드득!
부서진다.
탑에 균열이 일었다.
그 속으로 묵뢰가 침투한다.
산군은 죽음을 예감했다.
쉼 없이 영력을 주입하고 있으나 역시나 묵뢰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지금의 묵뢰차우는 태선과 동급.
아무리 칠선보구라도 놈의 일격을 막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꾸드드득! 끼이이익!
탑이 비명을 내질렀다.
콰앙!
탑이 반파되며 그 속에서 묵뢰가 먹잇감을 노리는 뱀처럼 출두했다.
‘안돼.’
죽을 수 없다.
여기서 이리 허망하게 죽을 순 없다.
생각해라.
생각해라.
죽지 않을 방법을.
여기서 죽는다면.
자신은 답조차 할 수 없지 않는가.
콰지지지지자자작!
고막을 강타하는 굉음과 함께 산군의 손이 움직였다.
이내 무언가를 꺼내 던졌다.
그리고.
세상이 붉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