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81)
낭선기환담-80화(81/600)
낭선기환담 – 80화
적색의 불길은 검붉은 묵뢰에 맞서며 그 크기를 부풀렸다.
이상하리만치 불길한 화염.
될 대로 되라며 던져버린 항아리에서 나온 불길은 이내 하늘을 뒤덮었다.
‘뭐야, 이건.’
가장 놀란 것은 산군이었다.
곤륜에서 얻었던, 쇠사슬이 칭칭 감겨 있던 항아리.
그것을 던졌더니 봉인구가 부서지며 불길한 적색의 화염이 터져 나왔다.
자신 또한 봉악청화를 다루고 있다지만 저토록 불길한 불길은 처음 봤다.
왠지 모르게 함부로 다가가면 안될 것 같은 기운이었다.
뭐가 뭔진 모르겠으나 일단은 살았다는 안도감이 맴돌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쿠우우오오오오!!
성난 황소 같은 녀석이 자존심이 상했는지 괴이하게 울부짖었다.
이내 한번 더 묵뢰를 쏘아내려는지 묵뢰가 거미줄처럼 퍼덕였다.
그때 놈의 주위에 태선과 환선들이 날아들었다. 모두 악귀 같은 형상의 탈을 쓰고 있는 도사들이었다.
콰쾅!!
지면이 폭발하고 그 충격에 지면이 거세게 흔들렸다. 도망치려면 지금이 기회인 듯 보였으나 은연중 자신을 살피는 놈의 신식이 느껴졌다.
천리를 이동할 수 있다는 천리마양부이나 자신의 신식이 닿는 거리는 고작해야 3,40리.
축지를 한다 해도 결국 신식에 영향을 받으니 어쩔 수 없다. 삼식육계는 하책 중에 하책.
‘차라리 저들을 도와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벌어야 한다.’
그나마 살길이 열리는 것은 환망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
고선을 아끼는 환망이라면 수백 장 묵뢰차우가 마음대로 활보하며 주변을 초토화시키게 두지 않을 것이다.
‘아깝지만 여기서 쓰자.’
삼귀에게 얻었던 독문통술.
파천마격~ 융전가단(隆戰假團).
그때 이후로 산군은 줄곧 가단을 형성해 몸속에 품어 왔다.
삼귀처럼 한 단계 높은 경지의 발돋움은 어려우나 그동안 모아뒀던 영력을 한꺼번에 끌어 모을 수 있다.
산군은 수결을 맺으며 융전가단의 구결을 쉼 없이 읊었다.
뚝!
그의 가슴속에서 둔탁한 소음이 들려 왔다. 적색의 화염과 묵뢰가 경천동지할 굉음을 내며 부딪치고 있으나, 이 순간만큼은 세상이 지워지고 그 혼자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직후.
산군의 적안이 희번덕거리며 몸을 기괴하게 비틀었다. 그와 동시에 방대한 영력이 치솟아 푸른 빛기둥으로 화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아아!
“읏!”
그의 등에 손을 올리고 있던 금명지수가 흠칫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영기의 향연에 놀란 것이다.
“이런 게 있었으면 진작 쓰지!”
불평을 토해냈지만 그녀도 안다.
급박했으니 이런 비술이 있어도 쓸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아미를 찌푸린 그녀가 무언가 고심하는 듯 했다.
뒤로 물러난 금명지수가 소매 자락을 휘두르며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그녀의 모습이 목이 부풀어 오르는 늑대로 바뀌었다.
-카아아아오오오오오!!
난데없이 귀청이 터질 정도로 커다란 늑대 울음소리를 자아낸다.
천지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괴성.
“할 수 있는 건 다 했습니다! 이제 곧 아버님이 당도할 겁니다!”
하지만 그녀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방금 그녀가 한 짓은 사월랑 전체를 불러들인 것. 자신의 일족을 사지로 끌어들인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보다 우선한 것이 산군.
은자의 생존이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족이다.
자신들의 파멸보다 은원을 우선하는 이들이라니. 다른 이들이라면 멍청하 다 비웃었을 것이다.
그녀 또한 여전히 음울한 안색이었으나 한편으로는 후련해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할 수 있는 걸 다 했다.
나머지는 그들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냐는 것.
그때였다.
푸른 빛기둥 사이로 거대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굳건한 두 개의 뿔을 지닌 범.
산군이었다.
쿠웅!
가늘어져 점멸하던 빛기둥이 가시고 나타난 산군은 곧장 정면을 바라봤다.
항아리에서 솟아난 불길한 화염.
묵뢰를 한번 막았다지만 그 기세가 꺾인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불길한 화염은 여전히 일렁거리며 세상을 만끽하는 것처럼 보였다.
‘태선도 쉽사리 막기 어려운 식마합일의 묵뢰를 막았다.’
무엇인지 모르나 대단한 보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산군은 곧장 푸른 불길을 일으켰다.
봉악청화가 이내 뇌염으로 변해 그의 몸으로 뒤덮였다.
단숨에 전력으로 뿜어낸 봉악뇌염이 뇌전을 만들고 뜨겁게 타올랐다.
그것은 이내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회천각고.’
궁비호에서 얻은 비전통술이었다.
투두둑!
그의 발톱이 지면을 움켜잡는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영력.
그리고 그것을 상회하는 푸른 뇌염.
그들이 두 개의 뿔에 모여들었다.
하지만 이것으론 부족하다.
산군은 영성이 깃든 것처럼 활발히 움직이는 적화를 끌어들이기로 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적색의 화염은 이내 살랑거리며 그에게 모여들었다.
기이한 화염.
그것은 새로, 나비로, 온갖 것으로 형태를 바꾸다 그의 뿔로 모였다.
뿔 주위로 영기로 이루어진 고리들이 생성된다. 그것이 겹겹이 쌓이며 찬란한 영력이 은은하게 퍼졌다.
언뜻 보기엔 아름다웠으나 그 속에 담긴 기세는 역발산의 기세.
“크으윽.”
침음을 삼키며 고개를 쳐 들었다.
-키이이이이이이이이잉!!
붉은 빛이 세상을 번쩍였다.
뿔에 담긴 뇌염을 하늘로 쏘아냈다.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하늘로 치솟은 붉은 빛줄기가 적룡처럼 쏘아졌다.
어둑어둑한 하늘이 번쩍 빛났다.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붉은 빛.
금명지수는 대체 뭘 한 건지 몰라 불안감에 휩싸였다.
공격을 하려면 놈에게 퍼붓지 애꿎은 하늘에는 왜 쏘아대는가!
의아함이 배가 되는 찰나.
하늘의 붉은 빛이 다시금 나타났다.
쏘아 올렸던 뇌염이 낙하하는 것이다.
금명지수는 그것을 보며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유성이 떨어지는 것 같이 붉은 꼬리를 잇지 않던가.
하지만 한편으로는 소름이 돋았다.
하늘 끝에서 떨어져 내리는 유성에 담긴 기운이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유달리 아름다웠으나 그것이 떨어진 곳엔 오직 파멸만이 함께 하리라.
‘회천각고 – 천성지황(天星地荒)’
하늘의 별이 땅을 뒤덮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궁!!
화악!
단숨에 구름이 메마르고 밤하늘과 같던 마기를 불태워버린다.
하늘이 맑아지고 보이는 모든 것을 태워버릴 것처럼 붉은 빛줄기.
적성(赤星).
그것이 묵뢰차우에게 닿았을 때.
콰자자자자자자자자장!!
하늘이 두 쪽 나는 굉음이 퍼졌다.
붉게 타오르는 화염은 거대한 붉은 운무를 만들었고, 그것이 이내 선회하며 용오름처럼 하늘로 치솟았다.
그것을 보자마자 인간으로 둔갑한 산군이 천리마양부를 꺼내들었다.
빛이 바랜 듯한 회색의 부적.
그것이 마지막 빛을 번쩍였을 때.
산군 일행이 사라지고, 그 주위를 불길한 화염이 뒤덮었다.
잠시 후.
“컥! 쿨럭!”
40리 밖에서 모습을 드러낸 산군이 핏물을 토했다. 검붉은 핏물은 바닥에 닿자마자 산화되었다.
“크으으으윽!!”
그가 가슴을 붙잡으며 쓰러진다.
금명지수는 다가가고 싶었으나 소매로 코를 가리며 멀찍이 떨어졌다.
‘극독…!’
난데없이 독에 당했다?
대체 어디서 당했단 말인가.
“무슨 일입니까.”
“큭…. 방금 그 적색의 화염. 쿨럭! 독염(毒炎)이었습니다…. 그것도 만성독염(萬性毒炎).”
“만성독염!”
천하의 극독을 모아 묵히면 그것이 독염이 된다. 그 독염이 천지의 기운을 머금은 채로 수많은 세월을 타오르면 영성이 깃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만성독염이라는 것이다.
독염은 화염이나, 동시에 독이니 존재만으로 해악이다. 쉼 없이 불타며 독을 흩뿌리니 재앙이 따로 없는 것이다.
게다가 영성까지 얻어 자유자재로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는 놈이니 위험하지 않을 수 없다.
‘봉인되어 있던 이유가 있었어….’
뿔에 만성독염을 잠시 담았던 것으로 몸이 불타고 터져나갈 것 같았다.
화정지체를 연마하고 봉악청화를 다루고 있는 자신이 말이다.
취령주를 취해 만독불침이라 자신해 왔던 육신도 정상이 아니다.
“끄윽!”
찌이익!
도복을 찢어 상체를 보자 붉은 반점이 생겨나 썩어가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강력한 독이기에 잠시 뿔에 담았던 것으로 이리될까!
산군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겨우 살아났다 싶었더니 독 때문에 곧 죽을 판이다.
‘내단까지 침식 당하진 않았다.’
봉악청화를 담은 내단까지는 독이 침투하지 않았다.
천만다행이었다.
그렇다면 살아날 구멍은 있다.
“금명지수! 호법…!”
하지만 그때.
귀를 찌르는 파공음이 들이닥쳤다.
-꺄아아아아아아!!
고개를 돌리니 묵뢰차우가 거칠게 몸을 흔들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놈의 몸 주위에는 불길한 화염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쾅! 쾅! 쾅!
한번 뛰어 오를 때마다 땅이 갈라질 것처럼 충격이 일었다.
하지만 만성독염은 꺼지지 아니하고, 놈의 살을 불태우며 더 키워졌다.
그때였다.
돌연 움직임을 멈춘 묵뢰차우가 고개를 털어대며 콧김을 뱉었다.
그러자 몸이 허공에 빨려 들어가듯 이지러지며 한 점으로 바뀌더니, 일순 화산처럼 폭발했다.
놈의 마기가 광역으로 비산하니, 꼭 먹물로 그린 새가 날개를 펼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산군의 낯은 거무죽죽해졌다.
왜냐면 마기가 비산하고 남은 그 자리에는 묵뢰를 번득이는 여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인은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돋아난 상태였고, 그녀의 몸은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은 상태였으나 온통 검은색이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상황파악이 되지 않은 산군이 얼빠진 모습으로 있을 때.
100리 이상 떨어져 있던 여인이 돌연 산군을 쳐다보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오싹!
그녀의 신식이 그를 훑고 지나갔다.
‘……설마 지금까지는 식마합일을 통제하지 못했다는 건가?’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식마합일은 도사와 영수, 또는 보패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
그것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짐승의 모습을 했던 것이고…. 이제 통제에 성공해 인간의 모습이 된 것일 터.
“빌어먹을….”
그게 왜 하필 지금이란 말인가!
만성독염은 또 어떻게 떨쳐 낸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알 수 있는 건.
이대로 있으면 안된다는 것.
“일단… 큭, 자리를….!”
산군이 자리에 일어서려는 순간.
묘하게 공간이 일렁였다.
순간 그의 얼굴이 딱딱이 굳었다.
천리마양부를 자주 사용하기에 안다.
아무 전조 없는 공간의 일렁임은 축지의 반동.
‘제기랄.’
욕지거릴 내뱉었을 때.
순간 그의 몸이 무언가에 밀쳐졌다.
툭.
시간이 느려진다.
자신의 시야가 기울어진다.
그와 동시에 한 여인이 눈에 보였다.
평소라면 꼴도 보기 싫은 얼굴.
금명지수.
그녀가 보였다.
‘왜….’
처음은 의아함.
그리고 그것은 이내 경악성으로.
그녀의 옷자락이 펄럭였다.
그리고 그녀의 뒤로 검붉은 머리칼의 여인이 홀연히 나타났다.
그 뒤.
묵뢰가 사선으로 그어졌다.
푸확!
선혈이 허공에 흐드러졌다.
길고 긴 머리칼이 꽃처럼 만개하며 휘적거렸다.
산군의 적안이 치켜떠졌다.
동공은 더 없을 정도로 커졌다.
있을 수 없는 것을 본 것처럼.
이내 그의 망막에 무언가 비쳤다.
장난스레 꺾은 한 떨기 꽃 마냥.
그것은 이내 던져지는 꽃 마냥.
그녀가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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