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82)
낭선기환담-81화(82/600)
낭선기환담 – 81화
툭, 데구르르.
떨어져 내렸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머리가.
“제 팔자도 참 박복한가 봅니다.”
공간을 가르고 나타난 여인.
예후는 난데없이 넋두리를 뱉었다.
“잠깐만 한눈팔면 또 다른 여인과 함께 계시니 어찌 제가 마음 놓고 있을 수 있을까요.”
그녀는 홀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역시 어디 못가시게 강시로 만드는 것이 제일인 듯 합니다.”
능청스레 말하며 웃고 있으나 산군에게는 하나도 귀에 닿지 않았다.
그의 눈은 오로지 금명지수에게 향해 있었다.
‘그녀는 영명. 내단이 머리에 몰려 있으니 아직 죽은 게 아니다.’
당황했으나 희망을 버릴 때는 아직 아니었다. 영명 육사는 머리만 남아도 살아남을 수 있다.
그래서 영명인 것이다.
동요할 것 없다.
그녀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리 되뇌던 순간.
귀음나찰의 발이 움직였다.
“그러니까.”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
“다른 여인을 보지 말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녀의 발이 묵뢰를 일으켰다.
검붉은 뇌전이 그녀의 발끝에 모여들어 주위를 검게 물들였다.
쿠르릉!
번쩍임과 함께 우레 소리가 퍼졌다.
“안….”
그의 말이 끝나기 전.
그녀의 발길질이 내려 꽂혔다.
“…돼!!”
콰앙!!
파지직 파직.
폭연 속에서 산군은 엎드린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살 수 있었다.
아직 살릴 수 있었다.
그랬는데….
“사내가 여인을 탐하는 것이야 당연하다지만 너무 호색한 것도 좋지 않습니다. 저라는 여인이 있는데 무얼.”
짐짓 당당한 모습으로 산군을 내려다보는 그녀.
귀음나찰은 희희 웃고 있었다.
그리고 산군은.
더 없이 차가운 눈초리로 그녀를 죽일 듯 노려봤다.
“아끼던 여인이었습니까?”
“…아니.”
원수지간이나 다름없었다.
“그럼 상관없잖습니까.”
“상관없지.”
“그럼 됐지요. 괜찮습니다. 이깟 년 하나 죽었다한들 바뀌는 건 없습니다. 세상은 그대로 혼란과 평온을 반복할 것이고 저는 낭군과 함께할 것이니.”
“이깟 년이라….”
그녀의 말이 맞다.
며칠 전만 해도 때려 죽이고 싶을 만큼 짜증나는 여인이 금명지수였다.
귀찮고.
짜증나고.
치고 박기까지 했던 여인이다.
그녀가 죽는다 하여 아쉬울 건 없다.
다만.
그 마지막에.
그녀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단지 그것뿐이다.
“내가 화를 내는 것은.”
척!
그의 손이 펼쳐졌다.
이내 그의 주위로 수십 개의 청옥이 영롱하게 빛나며 떠올랐다.
산군의 주위를 빼곡하게 수놓은 청옥을 보며 그녀는 비웃었다.
“그것으로 절 어찌할 수 있다 보십니까?”
그가 제련했다지만 청옥으로 그녀를 죽일 수는 없다. 십 수개가 동시에 폭발한다 해도 그녀는 살아남을 것이다.
지금의 그녀는 평범한 마기가 아닌, 붕마기를 다룰 수 있는 식마합일.
태선 둘이 달라붙어도 어쩌지 못할 것이다.
“누가 네년을 죽인다더냐.”
산군은 그녀를 죽이지 못한다.
어찌해도 죽일 수 없다.
원래부터 인간도 아닌 그녀다.
그는 죽이는 것을 포기했다.
“뭐랬더라…. 날 강시로 만든다 했던가? 그래서 뭘 할 거지?”
순수한 물음이었다.
묘한 상황에 귀음나찰이 전율했다.
“평생 함께하며 백 년, 천 년, 영원의 가약을 맺어야지요.”
상상만으로 좋다는 듯 상기된 표정으로 말한다.
그 모습에 산군은 조소를 흘렸다.
“물음은 끝나셨습니까? 일단 한번 죽어주세요. 죽음과 동시에 혼을 묶어둘 터이니 죽어도 죽는 것은 아닙니다. 또 도망가면 안되니까요.”
그리 말한 그녀가 손가락을 들었다.
검지에 묵뢰가 모여들며 번득였다.
“넌 날 갖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가졌는데요?”
어린아이를 달래는 듯한 말투.
산군은 한껏 비웃었다.
“살점 하나 남지 않았음에도 과연 네가 날 강시로 만들 수 있겠느냐.”
삽시에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 떠오른 청옥이 푸르게 빛나며 쩌적 갈라졌다.
“어디 한번 해보든가. 개 같은 년아.”
청옥은 산군의 주위로 모여들어 부르르 몸을 떨었다.
파괴적인 전조 현상에 그녀의 눈동자도 지진이 일 듯 흔들렸다.
“왜!!”
악을 질렀다.
왜 자기 마음을 몰라주냐는 듯.
가슴을 부여잡았다.
괴로워 보이는 표정.
하지만 산군의 낯은 결연했다.
“손 끝 하나라도 움직여봐라. 이 일대를 전부 날려버릴 테니.”
그래도 그녀는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죽는다.
중요한 것은 그거다.
산군은 지금 무슨 짓을 해도 그녀를 어쩌지 못한다.
그렇다면 시간이라도 끌어야 한다.
더욱이 금명지수가 살려준 목숨.
그 값어치를 잃고 싶지 않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시간을 끈다.
“왜 몰라주십니까! 내가! 내가 낭군을 이토록 바라는데! 왜! 대체 왜!!”
발을 구르며 열을 토한다.
하지만 산군은 냉소하며 말했다.
“네년이 바라니까.”
일그러졌던 얼굴이 거짓말처럼 냉랭하게 바뀐다.
“그리도 싫으십니까….”
“…예전. 아주 예전에는 그리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아했었지.”
“한데 왜….”
“직접 당해 보니 좋아할 수 없더라.”
여러 감정이 뒤섞인 듯한 그녀는 이내 마음을 다잡은 듯 표정을 굳혔다.
“그리 말해도 전 낭군을 가져야겠습니다.”
“좋을 대로”
여유를 품어 뱉은 말.
그때였다.
잠잠하던 독염이 발작했다.
쿨럭!
그녀의 눈이 빛났다.
순간 신영이 신기루처럼 흐릿해졌다.
그와 동시에 토혈을 한 산군이 손을 펼쳤다. 삽시에 청옥들의 균열이 거미줄처럼 갈라져 터지기 직전!
꾸우우웅.
순간 그와 그녀를 감싸는 일대가 잿 빛으로 물들었다.
축지로 산군을 막으려던 그녀도.
청옥을 폭발시켜려던 그도 멈춰 섰다.
아니.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영력이 동결됐다.’
얼어붙은 듯 영력이 움직이지 않는다. 당황한 것은 그녀 또한 마찬가지.
하지만 그는 이내 미소 지었다.
‘드디어 나타나셨네.’
그의 눈앞에는 어느새 한 노인이 무감정한 눈으로 둘을 보고 있었다.
단정하게 틀어 올린 상투.
길게 내려앉은 수염은 세월의 풍파를 겪은 듯 하얗게 새었다.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외모였다.
탈의 대법주.
환망선사.
인간의 정점에 도달한 지선치고는 맥이 빠질 정도로 평범해 보였다.
다만 신기한 것은 바로 앞에 있는데도 그의 기운을 느낄 수 없다는 것.
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은 듯 사지를 덜덜 떨며 자신의 팔뚝을 억세게 붙잡고 있었다.
“추악한 욕심이 부른 이도저도 아닌 것아. 네가 보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기에 이리 참혹한 짓을 하였더냐.”
잔잔히 퍼지는 음성.
단순한 말귀. 그저 말인 줄 알았으나 그녀에게는 아니었다.
그가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압력을 받는 듯 무릎을 꿇었다.
이내 지면에 엎드려 고개만 빳빳이 들고 있었다.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식마합일을 이룬 귀음나찰이다.
한데 그런 그녀를 말 몇 마디로 저리 만드는데 어찌 놀라지 않을까.
지상의 신선이라는 지선(地仙).
그 이름이 아깝지 않은 무위였다.
“…….”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다만 죽일 듯 노려볼 뿐.
“하긴. 껍데기만 살아있는 네가 안다면 무얼 알고 있을까. 네 뒤에 있는 놈이 꾸미는 짓이겠지.”
환망은 그리 중얼거리며 손을 휘적거렸다. 그러자 허공에서 잿가루가 하늘하늘 떨어져 내렸다.
이내 그것이 그녀에게 닿았을 때.
퍽!
“끄아아아아아악!!”
둔탁한 소음과 함께 찢어질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잿가루가 닿자 살가죽이 터져나가며 피분수가 치솟았다.
한동안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그녀는 돌연 안색을 바꾸고 몸을 부풀렸다.
묵뢰차우의 모습으로 변하려는 것이었으나, 그것은 명백한 실수였다.
“어리석은지고”
그녀가 묵빛의 물소로 변하자 잿가루들은 어느새 형태를 바꾸어 수백 개의 말뚝으로 변화했다.
푸푸푸푸푹!
-아아아아악!!
잿빛의 말뚝 수백 개가 놈의 몸을 꿰뚫었을 때.
“그냥 죽이면 안됩니다!”
산군이 소리쳤다.
그녀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온갖 실험으로 탄생한 보패와 인간의 혼합물. 정당한 혼을 가지지 않은 생물로서 죽여도 죽지 않는다.
여기서 죽여도 본체가 있는 곳에서 다시금 태어날 것이다.
그녀에게 죽음이란 말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그런 외침에도 환망선사는 그를 냉랭히 쳐다보며 말했다.
“알고 있다.”
이내 환망이 손을 움켜쥐자.
귀음나찰에게 박힌 말뚝들이 잿빛을 뿜어내며 진동했다.
-뭐, 뭘 하려는 게냐!! 그냥 죽여라!!
허나 환망은 냉소할 뿐이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생각한 귀음나찰이 발버둥 쳤으나 도저히 빠져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말뚝은 빽빽하게 자신의 몸을 관통했고, 자신의 몸을 좀 먹듯 힘을 잃어간다. 영력을 동결되어 신통을 부릴 수조차 없다.
“네게 죽음이란 삶이기도 하니, 영원한 삶만이 너의 죽음이로다.”
키이잉!
푸와아악!!
거대한 묵뢰차우의 주변으로 회색 빛 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이 개자식!! 죽이겠다!! 네놈만큼은 반드시 죽여 버리겠어!!
그녀는 발버둥 쳤으나 끝끝내 말뚝을 뽑아내지 못했다. 산군은 희미해진 안광으로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다.
-낭군!! 내 반드시 찾아갈 겁니다!! 부디 기다리세요! 내 모든 걸 바쳐 그대를 찾아내 제 옆에 둘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정말 지긋지긋한 여인.
산군은 눈살을 찌푸렸다.
끄아아아아아아!!
다시금 비명이 터져 나오고 공간 속에 빨려 들어가듯 선회했다.
광대한 광풍이 몰아치고 뇌전이 몰아치던 순간.
툭.
그녀는 이내 잿빛의 옥으로 변했다.
‘봉인술….’
봉인구는 이내 환망의 소매로 자취를 감췄다.
자연스레 산군은 목울대가 꿀렁였다.
한편으론 분하기도 했다.
이처럼 간단히 모든 걸 종결시킬 수 있으면서 어찌 이제야 모습을 드러냈단 말인가.
조금만 더 빨랐다면.
그랬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
산군은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둔갑이 풀렸는지 머리를 잃은 늑대 한 마리가 쓸쓸히 누워 있었다.
‘내 탓이다.’
모든 것을 알고 있으나 그렇다 하여 모든 것을 대처할 수 있지는 않았다.
자신은 그리 특별한 존재가 아니니.
“삶에 연연하지 말라. 삶이란 탄생과 죽음이 함께 만들어진 것이니.
삶이란 죽음까지의 길.
삶이 곧 죽음이라 할 수 있노라.
삶은 여명이며.
동시에 황혼이니.”
담담히 말하는 환망의 말귀에 산군은 쓰게 웃으며 답했다.
“삶의 끝은 시작이기도 하지요….”
그렇다 해도 입맛이 썼다.
황혼은 다시금 여명이 된다지만, 그렇다 하여 슬퍼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망연자실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지금은 슬픔에 잠겨 있을 때가 아니다. 귀음나찰은 봉인됐다지만 더 강력한 적이 될지도 모르는 이가 눈앞에 있으니 말이다.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속을 꿰뚫어 보았는지 무정한 음성이 그의 귓가를 찔렀다.
“살아남을 자신은 있더냐.”
역시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하지만 이 정도는 예상했다.
“있으니 이리 있겠지요.”
입가에 흐르는 핏물을 훔친 산군이 쓰게 미소 지었다.
“네놈의 발자취는 익히 보았다. 능히 세상을 어지럽힐 겁을 지녔더구나. 네놈이 몰고 다닐 피바람이 적지 않으니 삭주굴근하여 뿌리를 뽑는 게 옳다 생각하는데…. 어찌 생각하지?”
억울하다면 억울했다.
자신이 벌인 일도 아니요, 애초에 이곳에 당도하지 않았어도 붕계는 열리고 고선은 풍비박산 났을 것이다.
그저 혈붕수를 찾으려고 했을 뿐인데 그런 처사는 너무했다.
하지만 익숙하기도 했다.
이곳에 떨어졌을 때부터.
그는 인간이 아님이었음에.
“저에게 신경 쓰기보다는 방비를 굳건히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호오….”
더 말해보라는 듯한 표정.
산군은 비릿하게 미소 지었다.
“범이 사라진 굴에는 여우가 들어앉는 법이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