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9)
낭선기환담-8화(9/600)
낭선기환담 – 8화
푸우욱, 끄드드드득!!
“크아아아악!! 한낱 범 새끼가악!!”
어라.
아무데도 아프지 않다.
그보다 시끄럽다.
살며시 눈을 뜨자, 팔 한짝을 잃은 노인과 팔을 퉤! 뱉으며 핏물로 얼룩진 범 한마리가 보였다.
그 위풍당당한 모습의 범은, 자신의 낭군.
산군이었다.
[화란!]“예!”
크와아아앙!!
산군의 울부짖음이 동굴을 쩌렁쩌렁 울렸다. 막혀있는 곳이라 그런지 초아의 귀도 먹먹해졌다.
웬 여인에게 안겨 자리를 피했을 때, 귀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고 뒤를 돌아보자 노인과 산군이 싸우기 시작했다.
쾅! 콰작!!
“어, 어떻게…!”
어리둥절한 초아의 모습을 본 화란이 싱긋 웃었다.
“산군님이 무명사(無暝絲)라는 보물로 몸을 숨겨 놈을 습격하셨습니다. 그리고 산비님을 구해낸 것이지요.”
화란이 산군에게 달려가며 꺼냈던 검은 천은 바로 무명사(無暝絲).
산군이 구비해 두었던 보물 중 하나로, 이 천을 두르고 있으면 몸이 투명해져 완벽한 은신을 구사할 수 있는 보물이었다.
없을 무자에 어두울 명자를 쓴 칠흑처럼 어두운 천. 무잠(無蠶)이라는 누에의 실로 짜 만든, 산군이 가지고 있는 4개의 보물 중 하나였다.
추레한 노인이 은신에 능했던 것을 떠올린 산군이 무명사를 꺼내 두르고는 기회를 엿봐 습격했던 것이다!
“그, 근데 언니는 누구에요?”
“저는 산군님의 창귀. 화란이라 하옵니다. 산비님.”
그녀는 초아와 자신을 무명사로 감싸 가리었는데, 천을 뒤집어썼음에도 불구하고 밖이 훤히 보였다.
“사, 산비라니…. 서방님은 제가 싫다고….”
“놈은 아주 위험한 놈이지요. 그렇기에 그리 말씀하실 수밖에 없으셨을 겁니다. 사실 산군님은 산비님을 무척이나 아끼신답니다.”
“저, 정말요?”
“그럼요. 그렇지 않고서야 저리 두려운 적과 싸우시겠습니까? 저는 산군님이 저보다 강한 적과 싸우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근 100년 동안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랬구나.
그랬던 거구나.
믿기 힘든 말이었으나, 그 증거가 눈앞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데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초아는 자신의 가슴께를 쥐어 잡으며 울컥울컥 차오르는 울음을 억지로 억눌렀다.
히끅히끅 눈물을 참아보지만 이놈의 눈물이라는 게 제 마음대로 물을 만들어 눈에서 흘러넘치니 참을 수 없음이었다.
초아는 소매로 눈을 연신 비비며 끅끅 울었다.
“흐아아앙, 히끅! 그, 그것도 모르고오 흐어엉! 초아가 아프로 말 잘 들을게요 흐아아아앙.”
안심의 눈물을 흘리는 초아의 모습은 퍽 귀여웠지만, 지금은 마음을 놓고 울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초아를 이곳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산군이 놈의 팔 한 짝을 물어뜯기는 했지만 그것으로도 안심할 수 없다. 놈은, 이통(二通)을 이룬 영화(靈和)에 단계에 있는 놈이라 했다.
지금은 버티고 있지만 그것은 단순히 기습이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전투가 길어진다면 산군이 위험하다.
콰앙!!
크아아앙!
아니나 다를까 산군이 놈의 발길질에 얻어맞고 암벽에 처박혔다.
“감히 영물 따위가 내게 덤벼!? 내 오늘 네놈의 사지를 잘라버리고 내단을 씹어 먹어줄 것이다!!”
끄득! 끄드드득!!
노인의 몸이 뒤틀리고 뼛조각이 육편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섬뜩하게 들려오는 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놈의 몸이 점점 거대해지고 형체가 바뀌어갔다.
둔갑으로 가둬져 있던 영압이 튀어나오자 살(殺)의 기운이 뒤섞여 귀신인 화란마저도 소름이 돋았다.
[끄윽…. 쥐새끼가 뭐 잘났다고 범 새끼라고 지랄이야.]그렇다.
노인이 본 모습을 드러냈고, 그것은 거대한 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붉게 충혈된 눈동자와 꼬부라진 수염, 그리고 전체적으로 쥐의 모습이었으나 기이하게 그 몸을 뒤덮어야 할 털은 존재하지 않았다.
화란은 초아가 보지 못하게 눈을 가려주었고, 그대로 동굴 밖으로 뛰었다.
-조금만 기다리시죠. 산비님을….
산군에게 전음을 보내던 화란이 발걸음을 우뚝 멈췄다.
-산비 아니다!
쾅! 콰아앙!
천지가 요동치듯 싸우던 산군이 그 와중에도 산비임을 부정하며 툭 튀어나온 앞니에 고개를 젖혔다.
콰앙!
놈의 기다란 앞니가 암벽에 처박히고, 산군이 앞발에 발톱을 세워 놈의 목덜미를 할퀴었다.
촤악!!
산군의 얼굴로 핏물이 튀겼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려던 찰나. 이상하게 놈의 핏물이 뜨겁다는 걸 느낀 산군이 고개를 털며 뒤로 물러났다.
“끽끼끼끽!”
목덜미에 피를 흘리고 있는 쥐 영수가 기분 나쁘게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그 모습에 산군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거대한 털 없는 쥐의 형태를 하고 있는 놈은 한눈에 보아도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앞다리 한 짝은 산군에게 뜯겨나간 지 오래요, 목덜미는 발톱에 상처가 나 핏물이 꿀렁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헌데 기이하게도 놈은 전혀 위축된 모습이 아니었다.
‘핏물이 뜨거운 건 그럴 수 있지만 이건….’
산군은 앞발로 자신의 얼굴로 쓸어내리고 피를 혀로 살짝 핥아봤다.
[퉷]‘젠장 독이잖아.’
어쩐지 재수 없게 웃더라니.
“이제 알았느냐? 푸흐흐흐, 허나 이제 와 안다 한들 어찌하겠느냐!”
산군은 놈의 주위를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며 생각했다.
‘털 없는 쥐. 피에는 독….’
혈묘서자(血猫鼠資).
[그는 혈묘서자(血猫鼠資). 고양이에게 죽은 쥐들의 원혼이 만들어져 탄생한 요수로 고양이의 피를 즐기며 한이 지독해 잔인하기 그지없는 요물이었다.]산해발산고의 한 구절을 떠올린 산군은 쯧, 혀를 찼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에게 죽임당하는 적으로 나오는 녀석이지만, 자신은 어찌하지 못하고 있으니 분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면, 그가 기억하는 혈묘서자는 영결(靈結)급 영수였지만, 지금 놈은 영화(靈和)급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힘에 부치는 상대인 것은 확실했으나, 영결 급 보다야 영화 급을 상대하는 게 나을 것이다.
‘그나마 승산이 있지.’
우우웅!
그때 혈묘서자의 곁에서 피 웅덩이가 기묘한 소음을 내며 꿀렁거렸다.
그 피 웅덩이들이 살아있는 듯 움직이더니 이윽고 서서히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산군의 앞발만한 크기의, 핏물로 만들어진 혈서(血風)들이었다.
조그마한 쥐 형태 생쥐들.
혈묘서자의 신통력이었지만, 그 수는 산군이라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십…, 백…, 점점 늘어난다.’
혈묘서자의 신통력으로 만든 조그마한 쥐 형태의 소환수들이었다.
작은 크기지만, 잔뜩 늘어난 그 수는 산군이라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피 웅덩이들은 모두 혈묘서자의 것. 그렇다면 저 쥐들 또한 독으로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혈서들에게 뒤덮여 깨물리다 보면 독이 온몸에 퍼져 꼼짝도 하지 못할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뇌리를 스치니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염병할…. 진짜 뒈지겠네.’
“네놈도 내 혈서들을 보며 겁에 질렸나 보지? 어찌 범이 쥐 따위를 두려워해 꼬랑지를 만단 말이냐! 푸흐흐흐!!”
뻔히 보이는 도발이었다.
가만히 있었으면 몰라도, 저리 도발을 해대니 녀석의 상태가 그리 좋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잃어버린 앞다리에서도 연신 핏물이 떨어져 나오고, 얕게 베인 목덜미도 피가 멈출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놈도 급한 것이다.
아무리 영화의 경지에 달한 놈이라 해도 저 정도 중상을 입었으니 초조한 것은 매한가지.
자신이 혈서와 싸우고 있는 틈을 타 기습하거나 도망치려는 요량이겠지.
산군은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며 거리를 벌렸다.
놈에게 유효타를 먹이기 위해서는 근접전으로 가야만 하는 상황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저 수백의 혈서 무리들을 뚫고 가야 했기 때문이다.
‘화란이 빨리 와야 할 텐데.’
무명사마저 화란에게 넘겨준 뒤다.
전투에 사용할만한 보물은 전부 화란이 가지고 있다. 그가 부릴 수 있는 유일한 신통력은 한번 사용하면 그날 두 번은 사용하지 못한다.
빗맞추기라도 하면 그때야말로 자신의 명줄이 끊기는 순간일 터!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화란이 있으면….’
그리 생각하던 때!
혈묘서자가 더 이상 지체하기는 힘들었는지 일갈했다.
“그대로 겁먹은 쥐새끼 마냥 뒷걸음질이나 치거라!!”
놈은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으려는 듯 혈서들을 조종해 산군에게 달려들었다.
수백의 혈서들이 범에게 달려드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
그러나 그들의 공격을 받게 된 산군은 치가 떨릴 정도였다.
[이 새끼들이!]쾅!
혈서 수 마리가 공중으로 비산하여 핏물로 화했다.
하지만 수백 마리 중 조족지혈에 달하는 숫자였다. 산군이 이를 짓씹었다.
콱!
잠시 한눈판 사이 혈서 한 마리가 산군의 뒷다리를 물었다.
빠르게 퍼져나가는 독에 따끔거리는 감각조차 희미해지고 있었다. 산군은 화들짝 놀라며 뒷다리를 털어 혈서를 떨어트려 발로 밟아 죽였다.
하지만 핏물로 변한 혈서는 그 자체로 독.
발바닥에 혈독이 묻은 산군은 눈살을 찌푸렸다.
[지저분한 새끼.]뭔 놈의 쥐새끼가 이렇게 지능적인 신통력을 부리는 건지.
천천히 말려 죽게 만드는 잔인한 수법이기 그지없었다.
산군은 비교적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앞다리를 거칠게 흩뿌려 혈서들을 쳐 죽였다.
앞발로 열댓 마리를 터트려 죽였으나, 벌떼처럼 모여드는 놈들을 모두 죽이는 것은 그로서도 힘든 것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앞발로 때려 죽이면 옳다구나 하고 핏물로 화해버려 발에 묻으니, 서서히 독에 중독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푸흐흐! 제대로 된 신통력 하나 부리지 못하는 것이 영화 영수인 날 죽일 수 있을 성 싶더냐!”
산군에게는 자신을 얕보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얕본다는 것은 즉, 방심한다는 것.
산군은 최대한 몸을 놀리며 혈서들을 피했고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녀석들을 때려 핏물로 만들었다.
서서히 앞발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미처 피하지 못한 뒷다리도 독에 중독되어 갔다.
놈들의 수는 많았고, 결국 상실된 감각에 몸이 기우뚱 넘어지려 했다.
“프흐흐! 두 동강을 내 줄 것이다!”
이때다 싶어 혈묘서자가 한쪽 앞다리를 휘둘러 짓쳐들어왔다.
죽었구나 싶었을 그때!
불현듯 산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파앗!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검은색 천이 펼쳐지고!
[죽여 버려라!]힘껏 도약해 혈묘서자의 등에 올라탄 화란이 녹슨 검을 들어올렸다.
그때였다.
번쩍!
녹슬고 이빨 빠진 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무엇이든 베어버릴 예기를 지닌 보검으로 탈바꿈하였다.
“안돼!!”
놈이 화란의 존재를 깨닫고 고개를 뒤로 돌렸으나, 화란의 검은 이미 놈의 목덜미를 향해 내려쳐졌다.
촤아아악!!
“끄아아아아아악!!”
“얕았습니다!”
화란은 얼굴을 구기며 발광하는 녀석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목을 베기는 했으나 완전히 잘라 내지 못했다. 일순, 혈묘서자 목을 기이하게 꺾었기 때문이었다.
그 짧은 순간에 길지도 않은 목을 어찌 저리 꺾은 것인지, 일반 영수였다면 그것만으로 목뼈가 부러져 죽었을 것이었다.
질긴 명줄에 산군이 혀를 내둘렀다.
반이 잘려 덜렁거리는 목을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온갖 지랄발광을 떨고 있었다.
[그냥 좀 뒤지지.]산군은 움직이지 않는 몸을 죽을 힘을 다해 움직였다.
앞다리를 움직이고, 뒷다리를 움직인다. 몸의 감각은 대부분 마비되었으나 한 번의 도약 정도는 가능할 거라 믿었다.
순간 펄쩍 뛰어오른 산군이 앞발을 하늘 높이 들었다.
화르륵!
앞발에는 어느새 푸른색 화염이 뒤덮고 있었다. 산군이 일통을 이루고 얻은 유일한 신통력 봉악청화(鳳惡靑火)!
그의 신통에 야명주로 빛나던 동굴이 푸르게 잠식됐다.
[청염호조(靑炎虎爪).]청염이 가열차게 불타오르는 범의 발톱이 놈에게 쇄도한다.
“빌어먹을 범 새끼가아아아악!!”
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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