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92)
낭선기환담-91화(92/600)
낭선기환담 – 91화
가만히 들어보니 헛소리도 이런 헛소리가 또 없다. 본래 말이란 게 입을 거치다 보면 과장되기 마련이라지만 이건 너무 밑도 끝도 없었다.
“그뿐이게! 이건 나만 알고 있는 건데…. 말해줄까?”
“에이, 할아범은 맨날 저 소리더라.”
“떽! 이놈아. 듣기 싫으면 말아! 산군이 들으면 노할까 입을 꼭 다물고 있었거늘, 네놈만 빼고 다 말해줄 게다 고얀 놈아!”
노인이 으름장을 놓자 구경꾼들이 허허 웃음을 터트린다.
“에잇! 뭔데요! 궁금하니까 빨리 말해줘요!”
“흐흐, 맨 입으로 되겠어? 목도 마르고 배도 좀 고픈데.”
능글맞은 미소와 함께 밑에 바가지를 쳐다보자 아이들과 구경꾼이 야유를 보낸다.
그러나 하나 둘, 품에서 씹을 거리를 던져주자 빙그레 웃으며 말을 잇는다.
“옛날. 그러니까 40년쯤 더 됐나. 산군의 노여움을 산 집안이 하나 있었지. 그들은 어찌할까 고민하다 집안에 있던 종 하나를 산군에게 시집보내기로 한 거야, 딴에는 기똥찬 계책이라 했지!”
초아가 산군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이번엔 무슨 이야기를 하나 했더니, 초아와 관련된 내용인 모양이다.
“사람들은 그 계집이 시집가는 날이 곧 제삿날이라며 벌벌 떨었어. 하지만 신기하게도 산군은 그 아이를 죽이지 않고, 자신의 비로 받아들여 혼인을 해버린 게지!!”
“에이, 말도 안돼.”
“정말이래도? 죽었어야 할 종이 언골 마을에서 산군과 함께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아주 유명해, 이 녀석아!”
지팡이로 꼬맹이 머리를 때린 노인장은 뒤로도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놀랍게도 백산을 떠난 산군과 남겨진 산비의 이야기였다.
“너희들 연 선자 알지? 그분이 내게 직접 말씀해주셨는데, 산비는 가끔 백산에 찾아오신다 하시더라. 자신의 낭군을 찾으시는 게지.”
어찌 범인이 저 이야기를 알고 있나 했더니, 연아와 관계가 있는 듯 했다.
“그럼 아직도 산비는 산군을 찾지 못한 거예요?”
한 아이가 궁금하다는 듯 묻자 노인은 주름이 깊게 패이도록 웃었다.
“글쎄다. 어떨까. 어쩌면 이미 백산에 돌아와 산비와 오순도순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렇게 이야기는 두루뭉술하게 끝났다.
구경꾼들은 사라지고, 산군과 초아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재밌는 이야기네요 그쵸?”
“그런가. 난 흐지부지해서 별로다. 결국 산군과 산비가 어찌 됐는지는 모르지 않더냐.”
그리 말하며 노인장에게 다가갔다.
노인장은 주섬주섬 바가지에 담긴 물건들을 챙기며 떠날 채비 중이었다.
“살아 있다는 말은 들었다만, 생각보다 정정하구나.”
“잉? 거 젊은 양반은 누군데….”
시력이 나쁜 것인지 눈을 한참이나 좁히고 나서도 머리를 갸웃거렸다.
“날 알아보지 못하겠더냐.”
“누구기에 자꾸…, 헛! 설마!?”
이내 알아본 것인지 화들짝 놀라며 넙죽 바닥에 엎드린다.
“사, 산군님을 뵈옵니, 니다!!”
인연이라는 게 이처럼 무섭고도 참 질기다. 그 마을에 내려서자마자 백지자를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이쯤 되니 인연은 인연인 듯 싶었다.
“네 이야기는 연아에게 조금 들었다. 그 뒤로 개과천선하여 마을을 위해 힘썼다고 들었는데, 사실이더냐.”
“무, 물론이옵니다! 이 백지자 그 뒤로 한결 같이 산군님을 기리며 살아 왔나이다!”
“네 아들을 죽인 나를 말이냐.”
“…….”
백지자는 몸을 떨었으나 이내 크게 숨을 토하고는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원망도 하기는 했으나,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하나뿐인 아들이었으나 놈이 저질렀던 망나니짓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자식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한 제 탓이요, 그것이 아들을 죽게 만든 것이지요.”
“그러더냐.”
산군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산군께서 돌아오셨으니, 백산은 앞으로 평안하겠습니다. 저 또한 살아 생전에 다시 한번 뵈었으니 여한이 없습니다. 이것도 어찌 보면 인연이라 할 수 있으니 대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대접?”
“지난날을 반성하여 검소하게 살고 있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산군께서 그 모습을 보아주셨으면 합니다.”
미간을 좁혔으나 이내 뜻을 알아차린 산군이 조소를 머금었다.
“네 아들이 죽은 후에도 후사가 있었나 보구나. 그때도 적지 않은 나이였거늘 용케도 자식을 낳았군.”
“그런 이유에서만은 아닙니다. 부디 노부의 청을 거절치 말아주소서!”
“나이 처먹으면 뻔뻔해지는 법이지. 됐다. 네 아들은 지금 어디 있더냐.”
“예? 지, 지금이라면 첫째는 수행을 하고 있을 것이고, 둘째는 마을의 경비를 서고 있을 것입니다.”
그새 둘이나 낳았다니.
노인네가 힘도 좋다.
“수행? 도사를 목표로 하더냐?”
“예, 예! 연 선자께서 제 아들이 자질이 있다 하여 수행 중이옵니다!”
내심 놀라워하며 노인에게 아들의 용모를 들은 산군은 이내 신식을 널리 퍼트려 비슷한 용모의 사내를 찾았다.
“이놈이군.”
딱.
손가락을 튕기자 돌연 사내 하나가 허공에서 나타나 엉덩방아를 찧었다.
“헉!!”
“헛! 아, 아버님!”
맞게 데려온 모양이었다.
“이, 이게 대체 어찌 된… 헉!”
백산에서 수행을 한다면 산군의 외양이나 그 기운을 모르지 않을 터.
그가 단박에 산군을 알아보고 대경실색하며 넙죽 엎드렸다.
“그래. 네가 백지자 아들이구나.”
사내는 백지천이라는 이름으로, 10살이 됐을 때부터 연아에게 가르침을 하사 받았다고 한다.
혼란스러워하는 사내의 손목을 움켜쥔 산군은 눈가를 씰룩였다.
“자질이 썩 나쁘지 않구나. 연아가 데려가 키웠을 만해. 하지만 몸에 맞지 않는 공법을 수련하고 있구나.”
“예, 예?”
정순한 나무 영력을 지니고 있는데, 화신통을 수련하고 있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셈이었다.
산군은 백지자를 한번 노려보곤 탐탁지 않은 낯으로 말했다.
“어차피 네놈이 네 자식들을 보여줄 셈이었던 것은 진즉에 눈치챘다. 혼구녕을 내줄까 했으나 네 아들의 자질이 아까우니 한번은 넘어가도록 하마.
그러나 다음은 없을 것이다.”
백지자는 몸을 떨며 지면과 하나 되게 조아렸다. 백지전도 제 아비가 무엇을 했는지 깨닫고는 사색이 되었다.
산군은 품에서 경전 하나를 꺼내 백지천에게 넘겨주고 등을 돌렸다.
그가 지니고 있던 상급의 목신통이 적힌 공법이었다.
백지천은 경전을 받아들고 오체투지하여 감사를 전했다.
“됐다. 너와 같은 이들이 퍽 많을 듯하니 이참에 다 한 번씩 봐줘야겠다.”
그리 말한 뒤, 산군은 초아를 품에 안고 연기처럼 사라졌다.
백지자와 백지천은 한참이나 그가 사라진 방향으로 멀뚱히 있었다.
꿈이라도 꾸는 듯 했다.
이내 아비와 아들은 부둥켜안으며 죽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이후, 백마을에서는 백산의 주인이 돌아왔다며 축제가 벌어졌다.
* * *
이후, 산군은 백산에 기거하는 이들을 한데 모아 몸에 맞는 통술과 공법을 전해 주었다. 어차피 그에게 남아 도는 공법은 많았고, 그것들은 쓸모가 없는 것들이니 이리 하는 게 맞았다.
저들이 후에 수행을 쌓아 백산의 도사와 육사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 된다면 연아가 짊어지는 부담도 덜어질 테니 나쁠 것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감복하여 산군을 주인으로 받들거나 사부로 모신다 하였으나 그는 질색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저리 좋아하는데 살갑게 대해 주시면 좀 좋아요.”
“내가 좋은 게 아니라 내가 지닌 것을 좋아하는 것이지 않더냐.”
백산에 기거한다 하여 저들에게 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이 땅에서 애착이 있다 하면 당연 백산을 꼽을 것이니,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행하는 일일 뿐이다.
자신이 자리를 비웠을 때.
우란 같은 놈이 쳐들어와 풍비박산 내놓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백산은 영산으로서의 영기를 되찾았고, 이곳에 기거하는 영수들이나 도사들 수는 더 많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백산은 하나의 집단으로 발돋움할 것이고, 백산의 주인인 산군에게는 그것이 곧 힘이 될 것이다.
산군은 품에서 육령비탑을 꺼냈다.
반파되어 부서져버렸으나 희미한 영기가 남아 있었다.
“요호에게 가봐야겠지.”
칠선보구 중 하나인 육령비탑이다.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년에게 망가져버렸지만, 조금 수리한다면 백산을 지키는데 유용할 것이다.
‘애초에 육령비탑은 무언가를 지키는 것에 특화되어 있으니까.’
그는 푸른 빛줄기로 화해 요호가 기거하는 관일봉으로 내려섰다.
백산에서 두 번째로 높다하는 봉우리를 차지한 요호.
그녀의 거처는 의외로 평범했다.
벽에 구멍을 뚫어 석실을 만들었고, 그 앞에는 작은 정자와 연못이 있었다.
석실 바깥에는 강력한 금제가 걸려 있었는데, 잘못 건들었다가는 순식간에 사지가 갈가리 찢길 수도 있었다.
“풍속성 금제로군.”
-들어오시지요.
그때 금제가 사르륵 녹아내리며 석실 안쪽에서 나긋한 음성이 들려왔다.
산군은 이내 마음을 다잡고 석실로 들어섰다. 은은한 불빛을 발하는 야광주가 그를 인도했다.
그것을 따라가다 보니 이내 요호를 발견했다. 그녀는 거대한 궁비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쩐 일이십니까.]날개로 몸을 덮고 있었다.
퍽 안락해 보였으나, 왠지 모르게 그녀의 몸짓과 음성이 교태스러웠다.
[여인네 침소에 함부로 들어오시니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본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상냥한 어조였으나 산군은 시큰둥했다.
제 딴에는 큰 기대를 하고 있는 듯했으나 범의 모습으로 무엇을 한들, 산군은 아무 감흥이 없었다.
“부탁할 게 있어 왔습니다. 이것을 좀 봐주시지요.”
품에서 부서져버린 육령비탑을 내보이자 요호의 눈가가 서늘해졌다.
[다 부서진 보구가 뭐 어쨌다고 그러십니까.]“칠선보구 중 하나인 육령비탑인데, 수리할 수만 있다면 한시름 놓일 것 같아서요.”
요호는 인간으로 둔갑해 부서진 육령비탑을 바라보다 입꼬리를 올렸다.
“본래의 영기를 잃었다지만, 부군이 쓰실 용도로는 고칠 수 있겠어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하지만 요호는 빙긋 웃었는데, 묘하게 사람 불안해지는 미소였다.
“허나 적잖은 수고가 들어가겠지요. 무엇으로 제 노고를 갚으시렵니까.”
요호는 뱀이 기어가는 듯한 눈으로 산군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러다 어느 지점에 눈을 멈췄는데, 몹시 탐욕스러운 눈빛이었다.
“부끄러움도 없소. 어디라고 그리 지그시 보는 것이오.”
“제가 그런 사사로운 감정을 따질 때로 보이십니까. 제 감정보다는 대의를 위할 때임이 맞기에 그런 것입니다. 알면서도 그리 묻는 부군이야말로 절 희롱하는 것이 아닙니까?”
원래는 이렇지 않았거늘, 어쩌다 이런 뻔뻔한 여인이 되었는지.
“개소리도 정도껏이요.”
“개소리라니, 말씀이 심하십니다.”
“그대가 내 정을 원한다 할지라도, 서로 간에 나눌 정이 없는데 그것을 어찌 행하겠소.”
“그렇다면 정을 나누도록 하지요. 뭐 어려운 것이라고 마다하겠습니까.”
요호는 육령비탑을 소매 속으로 집어넣고 그의 품에 와락 안겨들었다.
얼떨결에 품을 내준 산군은 어이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뭐 하는 짓입니까.”
“정분이 나도록 하고 있습니다. 본래 몸이 가까워야 마음도 가까워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보구의 수고비라 생각하고 이리 있어주시지요.”
육령비탑의 수리비로 잠시 껴안는 것뿐이라면 당연 이득이었다.
‘가녀리구나.’
영겁의 경지에 있다 해도 여인이다.
이 가녀린 몸으로 멸족당한 일족을 일으키려는 것이다.
동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 매일 품을 내주십시오.”
“뭐요?”
“설마 백산의 주인이라는 자가 포옹 한 번으로 입을 닦으실 겁니까?”
연민의 감정이 단박에 사라졌다.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여인이다.
“매일은 무리겠지요. 최소 사흘에 한 번. 수행으로 인해 어렵다면 보름에 한번이라도 절 안으러 와주십시오.”
오해하기 딱 좋은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