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95)
낭선기환담-94화(95/600)
낭선기환담 – 94화
“정말 놀랍습니다. 구전을 통해 들어오기는 했습니다만,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입니다.”
건 장로의 말대로였다.
자신들이 정말로 흉수의 몸속으로 들어온 것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다.
주변은 딱딱한 암벽과도 같아 꼭 거대한 동굴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대군을 이끌고 와도 남을 정도로 방대한 크기로군요.”
“살아생전에 얼마나 거대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습니다. 정말 대단해요!”
태산과도 맞먹는 크기라 하더니 그 말이 과장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도사들은 저마다 놀라움을 자아내며 이런 흉수가 살아 있지 않다는 것에 감사해 했다.
“구린내가 나지는 않을까 싶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것도 신기하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다만….”
도사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를 반기지 않는 놈들도 있는 모양입니다.”
타다 다다닥.
장작이 타들어가는 소리와 흡사했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흉수의 몸속.
그 안에서 흉흉한 안광이 번득인다.
“요충이군요.”
그 생김새는 딱정벌레와도 같았으나 칠흑처럼 어두웠다.
“착장충(錯蟑蟲)! 상대하기 어렵진 않으나 무리 지어 다니는 귀찮은 놈들입니다. 수가 제법… 많을 것 같군요.”
크기는 손바닥만 하지만, 무리 지어 행동하기 때문에 상대하기 번거롭다.
한 번에 수백에서, 수천 마리까지 일심동체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제게 맡겨주시지요.”
낙 부인이 앞으로 나서며 손바닥을 뒤집자 거대한 거울이 튀어나왔다.
거울은 투명한 것이 꼭 무형의 기운으로 이루어진 것같이 영롱하여 신비로워 보였다.
“차부경(嗟茅鏡)!”
낙 부인은 옅게 미소 짓고는 입을 달싹였다. 그러자 투명한 거울이 스르륵 돌아가며 영기의 입자들이 모았다.
이내 모여든 영기들이 거울로 빨려 들어간 순간.
사방이 암전되듯 어두워졌다.
타다다다닥!
어두운 공간 속.
벌레소리만 들리던 그때였다.
키아아아아앙!!
일직선의 거대한 빛줄기가 거울에서 쏘아졌다.
“오!”
착장충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으나 차부경의 빛에 직격당한 놈들은 이내 갑각이 녹아들어 떼거리로 죽어 버렸다.
“생각보다 수가 많소!”
차부경에 의해 환해진 동굴에는 암벽을 빽빽이 메울 정도의 착장충이 득실거렸다.
수가 너무 많았다.
수천은 될 정도였다.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으나 하소연을 하고 있을 때는 아니었다.
환선들은 검을 꺼내거나 각자의 보패를 꺼내 놈들을 향해 휘둘렀다.
이내 폭음이 빗발치고 영충의 파편이 사방팔방으로 흩날렸다.
* * *
저벅저벅.
산군과 장천은 바닥에 흐드러진 벌레들을 보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착장충이군요. 꽤 많은 수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상대하기 어렵진 않으나 숫자가 많다 보니 기력을 적잖이 소비했겠어요.”
장천이 발에 밟히는 영충들의 사체를 보며 담담히 말했다.
산군은 묘한 미소를 흘렸다.
“앞으로도 이것저것 나타나겠죠. 저희는 놈들이 뚫은 길을 천천히 나아가기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걸 보고 손 안 대고 코 풀기라고 하던가요.”
저들이 없었다면 자신들이 처리해야 했을 놈들이다. 게다가 앞으로 뛰쳐나올 놈들 또한 그들이 처리해줄 터.
“하지만 이리 뒤꽁무니만 쫓다가는 육사가 바라시는 천양지보를 눈앞에서 빼앗기실 텐데요?”
산군은 말 없이 조소했다.
아무리 하후미농의 몸속에 숨겼다 해도 덩그러니 놔뒀겠는가.
‘그래도 슬슬….’
산군이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그의 옆에 있던 귀율이 벌레를 손으로 집어 입에 넣으려 했다.
“먹지 마라. 더러운 거다.”
탁!
귀율의 손을 때리니 쌍심지를 켜고 노려본다. 산군은 그것을 무시하며 공정강에서 탐화오공을 불렀다.
“네가 먹어라.”
탐화오공은 신이 난 듯 착장충들을 씹어 먹었고, 귀율은 더욱 죽일 듯 산군을 노려봤다.
“한데 이상하군요. 육사의 말대로라면 이곳을 알아도 들어오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게요. 삼귀가 그리 입을 함부로 놀릴 작자는 아닌데 말입니다.”
이상하다면 이상하다.
하후미농의 존재를 아는 것이야 그럴 수 있다 해도, 이곳에 천양지보가 있다는 사실은 어찌 알았을까.
신기하기 그지없다.
“가다 보면 어찌 되겠지요. 일단은 따라가 봅시다. 이곳에 있는 영충들이나 영수들을 처리할 수 있다 해도, 삼귀가 만들어 놓은 금제나 환진에 막히게 될 것이 분명하니까요.”
산군은 귀율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는 입을 달싹거렸다.
귀율은 질색하는 듯 머리통을 흔들고는 허공에 스며들어 사라졌다.
* * *
같은 시각.
여섯의 환선은 거친 숨을 토했다.
그들의 주변에는 영충, 영수할 것 없이 수많은 사체가 득실거렸다.
“생각보다 수가 많군요.”
하후미농의 몸이 거대한 만큼, 그 안에 사는 생물들도 많았다.
대부분 삼통에 준하는 것이었으나, 수백에서 수천에 이르니 죽이는 것도 힘이 들 수밖에 없었다.
“지성이 없는 것들이라 다행입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그 수에 지성이라도 있었다가는 크게 당할 뻔했어요.”
“가시죠! 더 지체하면 피 냄새를 맡고 다른 놈들이 몰려올 테니까요!”
당연히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선 장로는 손을 펼쳐 영기로 응집한 구체를 떠올리고는 나아갔다.
마음 같아서는 비행해서 가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한참을 걸어갔다.
도중에 짤막한 휴식을 제외하고는 그대로 며칠을 내리 걸었다.
어김없이 영충들이 나타났으나 그들의 진로를 막지는 못했다.
“선 장로. 이것이 뭡니까.”
그들 앞에는 돌연 진녹색의 강이 나타났는데, 냄새가 너무 역해 토기가 쏠릴 지경이었다.
“글쎄요. 하후미농의 담즙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정확하지는 않군요.”
“지독하군.”
하후미농이 죽은 지 몇만 년이 지난 건지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다.
한데 놈의 담즙이 강을 이룰 정도니 놀랄 노자였다.
“갑시다. 이게 정말 담즙이라면 고지가 머지않았을 겁니다.”
“먼저 가겠소!”
고지가 머지않았다는 말에 이름 모를 환선 둘이 날아올랐다.
“자, 저희도 갑시다.”
그때였다.
“어어?”
먼저 날아오른 환선 둘이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우아아악!!”
대뜸 비명을 지르더니 돌연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이런!”
선 장로는 화들짝 놀라 소매를 털어 은색 원반을 던졌다.
원반은 이내 십사 척으로 커지더니 떨어지는 환선에게 날아갔다.
하지만.
“이 무슨!”
선 장로의 얼굴이 일그러짐과 동시에 원반의 통제가 그에게서 벗어났다.
연결이 끊긴 원반은 담즙 속으로 낙하했고, 그것은 환선들도 마찬가지.
풍덩!
“끄악! 끄아악!”
“살려! 살려주시오!”
하지만 구해줄 수 있을 리 없다.
허우적거리던 환선들은 이내 터럭 하나 남기지 않고 녹아버렸다.
남아 있는 도사들은 어안이 벙벙해 한참을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선 장로! 어찌 된 일입니까?”
적잖이 충격 받은 듯 낙 부인이 아연실색하며 물었다.
촉문경도 궁금한 것은 마찬가지라는 듯 선장로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라고 알 수 있겠는가.
말문이 막혀 입만 달싹이고 있을 때.
낙 부인과 함께 있던 여인이 돌연 입을 열었다.
“주인이 장난질을 해놓은 모양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환선이라는 작자들이 간단히 떨어져 내렸을 리 없죠.”
“금 소저, 이곳의 주인이라니요? 주인이라면 단연 하후미농이 아닙니까?”
낙 부인이 물었으나 돌아오는 것은 얕잡아보는 눈초리뿐이었다.
“천양지보를 하후미농이 숨겨 놓은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한심하다는 듯 말하자 촉문경의 안색이 의아함으로 물들다 사라졌다.
낙 부인과 금 소저의 관계가 역전되어 있는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장난질이라면….”
“고계 금제입니다. 영력을 동결시킴으로써 비행을 차단하고 보패와의 연결을 끊은 것이지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선 장로는 턱을 쥐고는 골똘히 고민했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담즙의 강을 건너는 일이 쉽지 않게 생겼으니 말이다.
“금제를 파괴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촉문경이 돌연 물었다.
“하책이지요. 금제가 어디에 설치되어 있는지 알지도 못할 뿐더러, 저희가 파괴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정도 금제라면 최소 영…. 아니, 태선 중에서도 후경에 이른 선사가 펼친 금제일 확률이 높으니까요.”
금 소저는 흑발을 귀 뒤로 넘겼다.
“금 소저, 그럼 어찌 이곳을 건너야겠습니까. 그리 말씀하시는 걸 보니 비책이라도 있으신 것 아닙니까?”
“화풀이를 하는 것입니까. 자문을 구하는 겁니까. 확실히 해주세요.”
단숨에 환선 둘이 명을 달리해서인지 분위기가 이전처럼 좋지는 못했다.
선 장로는 아차 한 표정으로 잠시 입을 다물다가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감정이 격해져 무례를 범했습니다.”
“아닙니다. 저희도 문 장로와 결 장로가 저리 간단히 죽게 될지 알았겠습니까. 충분히 이해합니다. 더군다나 선 장로는 둘과 우애가 좋았으니까요.”
낙 부인이 웃는 얼굴로 타이르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선 장로는 한결 편한 낯으로 다시금 금 소저를 향해 물었다.
“자문을 구하고 싶습니다.”
“좋습니다. 알려드리지 못할 것도 없지요. 동문 장로 둘이 죽었는데 아무렇지 않은 게 이상하겠죠. 비책이라기엔 뭣하지만 방도는 있습니다. 다만….”
금 소저는 긍정했으나 슬쩍 고개를 돌리고는 아미를 좁혔다.
“엿듣고 계시는 분이 있어 말하기 조금 그렇군요. 이쯤 됐으니 그만 나오시지 그러십니까?”
그러자 옅은 웃음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사내 둘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도포를 입은 사내와 금색의 봉을 들고 있는 사내였다.
“꽤 재미난 이야기를 하시기에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넉살좋게 말하는 그를 본 환선들은 서로 눈동자를 굴렸다.
안 그래도 둘이 죽었으니 경계심이 극도로 높아진 상태였다.
모두 같은 경지이나, 자신들은 넷이고 저들은 둘이다.
화근은 미리 뽑을수록 좋은 법.
“천양지보를 노리고 오셨소?”
날선 물음이었다.
그러나 가볍게 웃어넘기며 답한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것도 저 강을 넘어서고 나서의 문제겠지요.”
“방도가 있습니까?”
“없다면 가만히 그대들이 하는 걸 지켜봤겠죠. 어떻습니까. 한번 들어보시렵니까?”
선 장로는 주위를 돌아봤다.
낙 부인과 촉문경은 동의했다.
예상외인 것은 금 소저였는데, 사내를 바라보며 볼을 씰룩거리고 있었다.
그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꼭 웃음을 참고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들어보지요.”
듣는 것 정도야 어려울 것 없으니까.
“들어보니 영력을 동결시키는 금제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은….”
말을 마치기도 전.
“금제가 있는 곳은 찾았습니다만, 꽤 깊숙한 곳에 있어 파괴하려면 적잖이 시간이 걸릴 것 같더군요.”
담담히 말하는 사내의 말에 선 장로는 침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말인 즉슨.
자신은 금제를 찾았고 그것을 파괴할 수도 있으나 시간이 오래 걸리니 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단순한 자기 과시인지 허풍을 떠는 것인지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이라면 대단한 신통의 보유자일 것이고, 허풍이라면 자신의 목숨 줄을 유지하려 발버둥치는 것일 테니.
하지만 그의 고민은 다음에 이어지는 말에 단숨에 날아갔다.
“그러하니 제 복충의 힘을 빌려야 할 듯 싶습니다.”
“복충이요?”
“예, 퍽 영특한 놈인데 이리 발버둥을 치는 걸 보니 저 담즙이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돌연 검은 도포 사내는 공장강의 빛을 뿜어 복충을 꺼냈다.
사람 하나는 단숨에 삼켜버릴 수 있는 거대한 지네 형태의 영충이었다.
크기는 둘째 치고 희미하게 금빛으로 빛나 감탄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사내의 복충은 재빠르게 움직여 강 속으로 뛰어들었다.
“허허….”
복충의 자태에 놀랐으나 그들은 이내 혀를 찼다.
무슨 복충인지는 모르겠으나 환선이 단번에 녹아내린 강이다.
복충이 버텨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복층은 담즙으로 이루어진 강에서 몸을 꿈틀거렸다.
이내 거품과 기묘한 연기가 강 위로 피어올랐다.
몸이 녹아내리고 있는 것이리라.
환선들은 볼 것도 없다는 듯 금 소저를 바라봤다. 이 방법이 틀렸으니 그녀가 지닌 혜안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금 소저는 입꼬리를 올리며 작게 감탄하고 있었다.
“헛….”
금세라도 죽을 듯 꿈틀거렸던 지네가 유유히 헤엄치기 시작했다.
입을 한껏 벌리고 말이다.
“탐화오공이군요. 들어본 적 있습니다. 웬만한 신통은 모두 저놈의 밥이 된다더니…. 하후미농의 담즙도 별반 다르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탐화오공!
그 이름에 모두들 입을 쩌억 벌렸다.
오직 금 소저만이 묘한 낯으로 검은 도포의 사내를 향해 물었다.
“성함이 어찌되십니까.”
사내는 금 소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빙긋 웃으며 말했다.
“유정이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