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97)
낭선기환담-96화(97/600)
낭선기환담 – 96화
산군이 고민하고 있을 때.
금 소저는 낙 부인을 찾아갔다.
그녀는 튕겨나간 이후, 한쪽 팔이 녹아내린 것을 줄곧 치료하고 있었다.
“괜찮나.”
“괜찮…습니다.”
금 소저는 혀를 차며 신식으로 주위를 살피고는 말했다.
“내가 이딴 몸이 된 원흉이다.”
의미모를 말이었다.
하지만 낙 부인은 눈을 빛냈다.
“그 사내가 말입니까?”
“그래.”
“그럼….”
순간 살기가 번뜩였다.
금 소저는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천양지보를 확보한 뒤가 좋겠지.”
“그렇군요. 선 장로는 어쩝니까.”
“애초에 놈에게 정보를 흘린 것이 나다. 때를 봐서 처리하거나 그냥 괜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살려두어도 상관은 없겠지.”
야광주의 발광에 의지해 길을 걷자 선 장로와 만나게 됐다.
그는 별다른 상처가 없어 보였다.
“오셨습니까.”
“예. 뭐가 좀 보입니까.”
낙 부인이 답했다.
선 장로는 마침 잘되었다는 듯 정면을 눈짓하며 말했다.
“하후미농의 몸속에 참 별의 별 것이 다 있습니다. 저쪽을 보시죠.”
그가 가리킨 방향에는 우거진 나무들과 기괴한 형태의 식물들이 가득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함께 있던 촉문경 또한 혀를 찼다.
“무엇인지는 모르나 섣불리 다가갈 수는 없겠군요.”
하후미농의 몸속에 펼쳐진 숲은 진득한 사기가 한가득이었다.
식물들과 나무가 뿜어내는 것이었다.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시수목(屍囚木)이군요. 한 그루만 있어도 백 리 안팎의 땅을 사기로 물들게 한다는 흉흉한 놈입니다.”
그런 시수목이 숲을 이룰 정도라니.
낮은 경지를 지닌 도사라면 잠깐 들어가는 것으로 생기를 잃을 것이다.
“산 넘어 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촉문경의 말대로였다.
담즙으로 이루어진 강을 목숨 걸고 넘었더니 또 다시 만만찮은 놈이 튀어나왔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시수목이 있다는 것이 꼭 나쁜 징조는 아니지요. 시수목은 본디 사(死)가 횡행하는 곳에서 나타납니다.
이리 많은 시수목이 있다는 것은 저희가 놈의 머리쪽에 가까워졌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요.”
금 소저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차분하게 설명했다.
선 장로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으나 그것은 찰나일 뿐이었다.
“유정 도사는 어디 계십니까? 시간을 지체해서 좋을 게 하등 없습니다.”
그때였다.
“제가 많이 늦었나 봅니다.”
뒤쪽에서 사내 둘이 나타났다.
산군과 행적이 묘연했던 장천이었다.
“크흠, 무슨 일이 있나 걱정했습니다. 도사의 복충이 아니었다면 저희 모두 죽을 뻔하지 않았습니까.”
“그럴 리가요. 제가 아니더라도 금 선자께서 잘해주셨겠지요. 애초에 제 복충만으로는 넘을 수 없었을 겁니다.”
공을 금 소저에게 넘기며 겸양했다.
그러자 금 소저는 피식 웃고는 시수목을 가리켰다.
“시수목으로 이루어진 숲입니다. 마경이나 다름이 없지요. 아마 이곳을 가로질러야 할 테니 적당한 귀물로 몸을 보해야 할 겁니다.”
사기를 내뿜는 숲.
다른 이들은 몰라도 산군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항보사인검을 몸속에 배양하고 있으니 삿된 기운은 그를 해하지 못함이 당연했다.
“여기서부터는 따로 행동하지요. 저와 낙 부인은 먼저 가겠습니다.”
그리 말한 금 소저는 품에서 향로를 꺼내들었다. 이내 향로에서 자색의 기운이 샘솟더니 금 소저와 낙 부인을 감싸고는 숲으로 사라졌다.
말을 붙일 시간도 없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선 장로와 촉문경은 얼떨떨한 얼굴을 하다 이내 둘도 각자 품에서 보호 보패를 꺼내 숲으로 사라졌다.
“예의 복충은 그대로 두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탐화오공을 말하는 것이리라.
“어차피 담즙의 강 속에서 꽈리를 튼 놈을 누가 건들 수 있겠습니까.
그대로 두어도 괜찮겠지요.”
다행이라면 다른 영충들이나 도사들이 건들 수 없는 담강 속에 있다는 것.
그것이 아니었다면 탐화오공을 이리 내버려두고 올 수 없었을 것이다.
얼마만큼 걸릴지는 모르나 뭣 하면 천양지보를 얻은 후에 이곳에 거처를 만들고 잠시 기다리면 될 일이다.
“저희도 가지요. 사기의 농도가 진하긴 하지만 제게 소용 없으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산군은 손을 뒤집어 구환도를 꺼낸 이후 사기가 요동치는 시수목의 숲으로 경쾌하게 들어갔다.
* * *
휘이잉.
음산한 바람이 목덜미를 스친다.
저도 모르게 목을 움츠려든 낙 부인은 무표정한 낯으로 길을 거니는 금소저를 보며 물었다.
“어째서 떨어지신 겁니까.”
조심스레 묻자 입꼬리를 움찔한다.
“시수목이 왜 생겼는지는 몰라도 이곳은 많은 영들이 모여 있다.
생전의 하후미농이 잡아먹고 소화시키지 못한 혼들이 아주 많지. 그러니 시수목이 생겨난 것 아니겠느냐.”
“그, 그렇지요.”
시수목의 성장과정이 그러하다.
죽음이 모이는 곳에는 항상 시수목이 존재한다는 말도 있으니까.
하지만 낙 부인은 그것과 따로 떨어져 행동하는 것이 무슨 연관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곳에 마귀들이 모여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 어림잡아도 며칠은 헤쳐가야 할 숲이고, 천장까지 나무들이 치솟아 비행을 하기도 적합하지 않은 곳이다. 담강에서도 그런 술수를 부렸던 놈이니 이곳에도 뭔가 하지 않았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구나.”
“그럼….”
“죽을 놈은 죽겠지.”
음산한 미소를 흘린 금 소저는 낙 부인을 보며 조소했다.
“왜, 겁이 나더냐?”
“저희도 안전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금 소저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렇게 따로 떨어져 다니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었다.
“걱정 마라. 그렇기에 이 향로를 꺼낸 것이니. 마귀들은 우리의 존재조차 눈치를 채지 못할 것이니라.”
자색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향로를 흔들며 금 소저는 숲길을 가로 질렀다.
* * *
같은 시각.
“육사.”
“알고 있습니다.”
장천은 영 못미덥단 눈으로 그를 바라봤으나 산군은 자신만만했다.
시수목이 이렇게 많은데 제대로 된 숲일 리 없는 게 당연했다.
사기가 똘똘 뭉쳐 악귀들이 생겨나기에 딱 좋은 곳이니 말이다.
‘삼귀가 뭘 해놨겠지.’
뻔 할 뻔 자였다.
으스스스스스.
아니나 다를까 음산한 소리가 울려퍼지며 발밑에서부터 사기가 꿈틀꿈틀 올라오기 시작했다. 산군은 기꺼워하며 구환도를 지면에 꽂아 넣었다.
푹.
이내 칠흑 같은 귀무가 뿜어져 나오며 구환도 속에 자리 잡은 악귀들이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먹어치워라.”
귀무는 순식간에 숲 전역으로 퍼지며 사기를 갉아먹고 그 속에 자리하던 귀신들을 찢어 먹었다.
그것도 모자라 시수목 자체를 부러트리고 씹어 먹는 귀신들도 있었다.
“무슨 짓을 해놨는지 모르겠지만 다 쓸어버리면 상관없겠지.”
시수목의 사기를 흡수한 악귀들은 물론, 구환도 자체의 사기가 증가할 테니 그에게 시수목의 숲은 위험요소가 아니었다.
‘내겐 이득이야.’
이곳의 사기를 전부 흡수한다면 구환도는 한층 더 강력한 사기를 뿜어 댈 것이다. 오래 사용한 보구가 더 강해진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산군은 더 신명나게 구환도의 귀신들을 조종해 사기를 흡수하고 숲을 먹어치웠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기에 민감한 것이 하나 더 있다.
“귀율.”
스르륵.
나타난 양파두 머리의 날카로운 눈매의 소녀였다.
귀율은 눈에 띄게 안절부절 못했는데 구환도와 마찬가지로 이리 농염한 사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체질이었다.
고개를 주억이자 귀율 또한 몸에서 사기를 뿜어내며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녀의 사기가 시수목이 뿜어내는 기운을 끌어당겼다.
귀율은 참 기이한 강시였다.
수천의 아기들로 이루어진 삼척귀동마가 하나 되어 탄생한 강시다.
그러면서 자아가 생겨난 듯 보이는 것은 길조일지, 흉조일지 알 수 없으나 산군은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지금은 사춘기 소녀마냥 반항적이지만 잘만 길들인다면 그의 큰 힘이 되어줄 것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온몸을 영수화 시켰으니 지금도 웬만한 환선은 능히 대적할 수 있는데 지금보다 강해지면 얼마나 더 힘이 될지 궁금하기도 했다.
“가시죠. 명령을 해놨으니 때가 되면 알아서 찾아올 겁니다.”
“거 참…. 알겠습니다.”
그렇게 둘은 시수목 숲을 가로질렀고 사흘이 지났을 때 숲을 완전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중간중간 강력한 힘을 지닌 악귀들이나 마귀로 화한 존재를 만나긴 했으나 항보사인검을 지닌 산군에게 단칼에 절명하기 바빴다.
항마의 기운을 지닌 사인검은 마기를 지닌 존재들에게는 극독이나 다름이 없었으니 당연한 이치였다.
그 뒤.
일행과 합류한 산군을, 초췌한 낯의 선 장로와 촉문경이 맞이하였다.
“무탈하셨습니까.”
“예. 한데 선 장로와 촉 도사는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얼굴빛이 영….”
“하하, 창피하군요.”
말하기를 꺼려하는 것을 보니 적잖이 심한 꼴을 당한 듯 보였다.
여기저기 찢겨진 도포를 보니 말하지 않아도 대강 사정을 알 듯했다.
고개를 돌리니 금 소저와 낙 부인은 그래도 전과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금 소저는 영 못마땅한 눈초리로 산군을 바라봤다.
장천은 묘한 낯으로 그녀를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나흘을 더 걸었을 때. 그들은 발견했다.
“허….”
하후미농의 뇌수에 꽂혀 있는 하나의 검집을 말이다.
“저, 저것이 정녕 천양지보가 맞습니까? 검도 아니고 검집뿐이라니….”
선 장로가 말꼬리를 흐리며 탄식했다. 다른 이들도 반신반의하는 낯이었으나 산군만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회색의 거대한 뇌수 속에 꽂혀 있는 검집은 유독 평범했다.
외양이 특별한 것도 아니었으며 그 기운이 범접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대충 보기엔 그저 평범한 검집.
“잘못 본 것이 아닙니까?”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저것이 천양지보가 확실합니다.”
오직 금 소저만이 확신을 가지며 짐짓 진지한 낯으로 말했다.
그러자 상황이 조금 묘해졌다.
금 소저가 어찌 천양지보가 확실하다 저리 단언할 수 있는가.
그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앞전부터 느끼던 것이오만…. 금 소저는 꼭 이곳에 대해 알고 있던 사람 같소. 분명 하후미농과 천양지보에 관한 정보를 알린 것은 저인데 말이오.”
생각해보면 이상했다.
낙 부인과 금 소저의 관계라든지, 금 소저가 꼭 이곳에 와본 적 있는 듯 말하는 것이라든지.
그동안은 잠자코 있었으나 천양지보가 눈앞에 있으니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그것보다는 천양지보가 누구 손에 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할 텐데요!”
맹점이었다.
그런 것보다는 천양지보가 누구 손에 쥐어질 것인지가 더 중요했다.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눈앞에 보물이 있는데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도사들은 서로 눈동자를 굴리며 묘한 긴장감을 만들었다.
우스운 일은 선조의 시신을 가지러 왔다고 했던 촉문경 또한 그 틈바구니에 끼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믿을 놈 하나 없네.’
산군이 혀를 차고 고개를 돌렸다.
장천은 팔짱을 낀 채로 못 볼 꼴을 보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과유불급이거늘.”
그 말에 백 번 동의하며 산군은 뒷짐을 지며 구경하기로 했다.
그러자 장천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
“천양지보를 탐내던 것이 아니었습니까? 손 놓고 있다가는 뺏기실 텐데요.”
허나 그의 말에도 산군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천양지보가 떡하니 놓여있는 게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소립니까.”
“아니…. 척 봐도 함정 같아서요.”
삼귀가 애를 쓰며 숨겨둔 곳이다.
그런 것치고는 너무 간단하다.
이내 산군이 단령금정을 펼쳤다.
동공이 확장되고 또 하나의 눈이 생겨나니 영기의 흐름과 특유의 성질이 단숨에 파악됐다.
그가 보는 시선에.
검집 같은 것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