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102
102화
“하하하! 녀셕, 당돌하니 더 마음에 드는구나. 둘 다 아주 귀엽단 말이지…? 그럼, 물론 그렇고말고! 우리 손녀 딸내미를 어디 한 번 꽉 붙들어 보거라.”
…음?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었는데. 콰르텟 멤버로서 안 놔주겠다고, 앞으로도 쭉 함께 공연을 해야 한다 그런 의미였는데….
“어머, 이제 보니 둘이 아주 잘 어울리는군요…!”
누군가 그렇게 운을 떼자, 너도나도 거들기 시작했다.
어이쿠…, 당황스러워라.
“그러고 보니 예전에 둘이 듀엣으로 연주한 적도 있었다죠?”
그건 또 어떻게 알고… 자선공연 때의 이야기 같은데, 거의 스토킹 수준으로 서진의 이력을 조사해보지 않는 한 쉽게 기억하기 힘든 일일 텐데.
“이참에 혹시… 둘이 함께 연주를 들려주는 건 어떨까요?”
제정신인가? 콰르텟 멤버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나머지 둘은 쏙 빼고 자신과 지연만 듀엣곡을 해달라고?
사실 이번 요청 말고도, 혹시 이 자리에서 한 곡 들려줄 수 있냐며 은근히 서진의 연주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서진은 그러한 요구를 전부 정중히 거절했다. 공연에 이어 열린 연회인 만큼, 우승 기념으로 한 곡 들려주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다른 친구들을 놔두고 혼자서만 주인공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또 그리고,
‘차라리 오브리 연주자로 온 알바생이면 모를까, 동물원 원숭이도 아니고 애매하단 말이지…?’
한 마디로 광대놀음은 사양이라는 것.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 요청했다 하더라도 서진은 웃으며 전부 거절했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건 곤란할 것 같네요. 나머지 멤버들이나 다른 협연자에게도 실례일 테니까요. 연주는 정식 공연을 통해 찾아뵙겠습니다.”
서진과 눈이 마주친 임회장은 매우 흡족한 표정이었다. 흠잡을 데 하나 없는 대답이었다.
짝짝짝.
그러고 있는데, 어디선가 박수 소리가 들렸다.
“이런이런, 나만 거절당한 거였으면 조금 섭섭할 뻔했는데…, 맞네, 맞아. 아무데서나 연주하면 그 가치가 훼손되는 법이지. 하하!”
누군가 했더니 아까 잠깐 인사 나눴던 문체부 장관이었다.
“한서진 군이라고 했나? 더욱 마음에 드는군요. 내 안 그래도 요즘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혹시 제안 하나 해도 되려는지…?”
“제안이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지요?”
“혹시 자네, 평창에는 관심 없는가?”
“…?”
평창?
설마 평창 올림픽?
그러고 보니 동계 올림픽이 그리 멀지 않았다. 듣기로 내년 대관령 음악제는 평창 올림픽과 연계하여 굉장히 큰 규모의 행사로 진행된다고.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 음악감독을 맡기로 한 작곡가가, 그 누구더라… 아, 그래….”
문체부 장관은 느릿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과거 부산 아시안게임 주제곡을 작곡한 것으로 유명한 작곡가 양모 씨가 평창 올림픽의 음악감독을 맡기로 했는데, 피아니스트 출신의 작곡가인 탓에 직접 연주하기로 한 곡이 전부 피아노곡이라는 설명.
한데 오늘 서진의 연주를 듣고 문득 현악기가 들어가는 곡도 몇 곡 편성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개회식과 폐회식에 쓰일 곡을 의뢰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서진 군의 작품에 민속 선율이 쓰인 게 무척 인상 깊었네. 폐회식은 몰라도, 개회식에서는 판소리 공연이 들어갈 예정인지라 말이네. 참, 그리고 이왕이면 연주도 직접 해 주면 더욱 금상첨화겠지.”
“…!”
엄청난 영광이자, 상상도 못 한 기회였다.
“한데… 연주는 저 혼자 말씀이신가요, 아니면 저희 K 콰르텟 다 같이 인가요?”
하지만 이 부분은 꼭 짚고 넘어가야 했다.
“그야 어떤 곡으로 작곡할지에 따라, 서진 군에게 달려 있겠지. 나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네. K 콰르텟의 연주 역시 인상 깊었으니.”
어느새 서진의 옆에서 귀를 쫑긋이고 있던 K 콰르텟 멤버들의 얼굴에 흥분기가 돌았다.
“어떤가? 한번 해 보겠는가?”
“기회를 주신다면 영광일 따름이지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그야 당연하다마다.
멤버들의 표정을 확인한 서진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K 콰르텟의 연주도 연주지만 일단 작곡 의뢰다 보니, 작곡가인 서진이 찬성하지 않으면 저들로서는 냉큼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것이다.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었다.
‘이거 빈필에 고마워해야겠는걸?’
따지고 보면 이게 다 빈필과 콜라보한 덕분이었다. K 콰르텟만의 공연이었다면, 아무리 VIP초청권을 뿌린다 한들 장관씩이나 되는 인사가 직접 연주를 보러 오지 않았을 확률이 높으니까.
또한 두 회장님들에게도 무척 고마운 마음이었다.
기업 메세나니 어쩌니 해도, 유럽 및 선진국들처럼 국가적 지원이 탄탄한 편이 아닌 한국 음악계에서 아직까지는 재단의 지원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카네기 홀이나 록펠러 재단도 그렇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과 예술의 만남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서진은 그런 것에 거부감이라고는 딱히 없었다.
다른 멤버들과 찬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서진은 충분히 값진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 * *
예술의 전당에서의 서울 공연을 마친 서진 일행은 이어 부산을 찍은 후, 곧바로 해외 출국을 앞두고 있었다. 콩쿨 우승 특전인 유럽 순회공연 일정 때문이었다.
부산에서의 공연 역시 성황리에 이루어졌다.
빈필의 첫 부산 방문에 열광했던 관객들은, 정작 공연을 겪고 나자 오히려 빈필보다 서진의 열렬한 팬이 되어버렸다.
원래부터 팬덤이 두터웠던 찬윤은 말할 것도 없었고, K 콰르텟 역시 상당한 인기와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
“벌써 끝이라니 아쉽네.”
“앞으로도 함께 무대에 설 기회는 많을 테니까요.”
K 콰르텟 멤버가 아닌 찬윤과는 여기에서 끝이지만, 앞으로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는 날들이 많음을 알기에 아쉽지 않았다.
이번 생에는, 오래도록 음악을 할 거니까.
“그럼 잘 다녀와. 멋지다, 정말. 벌써부터 해외 공연이라니.”
“아하하, 형도 곧 남 일이 아닐 텐데요 뭐.”
머잖아 반 클라이번 콩쿨에서 당당히 최연소 1위를 차지할 미래를 아는 서진은 입이 근질거릴 따름이었다.
게다가 콩쿨 우승과 상관없이, 찬윤 역시 조만간 해외 독주회가 잡혀있는 걸로 안다. 일정 탓에 보러 갈 순 없지만, 같은 유럽 땅에서 멀리서나마 응원해야지.
“그러게. 아무튼 우리 서로 힘내자.”
“네!”
파이팅을 외치며 찬윤과 작별인사를 나눈 서진은 K 콰르텟의 멤버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제 곧 출국이네. 다들 준비는 마쳤어?”
“응. 며칠 안 남았는데 다시 서울 찍고 가려면 바쁘겠다. 서진이 넌?”
“나야 뭐. 준비랄 게 있나.”
사실 출국 준비도 준비지만, 그 전에 할 일이 있었다.
“그럼 출국 날 보자. 다들 늦지 말고. 저번처럼 비행기 놓칠까 봐 난리 치고 싶지 않다고.”
출국일에 맞춰 공항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 멤버들은, 그동안 수고했다며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쿨하게 흩어졌다.
정말로 요 몇 달, 치열하게 살긴 했다.
서진은 그조차 행복했지만, 그래도 휴식은 소중한 법.
“벌써 헤어지고 왔어?”
“네. 다들 1초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었나 봐요.”
멀리서 기다리고 있던 선희가 서진의 팔짱을 끼며 다정히 물었다.
엄마와 함께 걷기 시작한 서진은 호텔로 돌아가는 대신 어딘가로 발걸음을 향했다.
“근데 우리 어디 가는 거야?”
“백화점요. 우리 쇼핑가요.”
“쇼핑? 갑자기 웬?”
왜긴 왜겠는가. 어머니한테 좋은 것 좀 사드리려고지.
“아들이 이제 돈도 많은데, 엄마 호강 좀 시켜드리려고요.”
“얘는…! 돈 그렇게 허투루 쓰는 거 아냐. 엄만 됐어.”
“허투루라뇨! 엄마 그냥 오늘은 다른 생각 마시고 그냥 사고 싶은 거 다 사세요!”
통장 내역을 딱히 신경 쓰고 살지 않아 정확히는 모르지만, 돈이라면 꽤 많이 쌓여있었다.
‘오늘 하루 정도, 가격표 안 보고 백화점에서 쇼핑할 정도는 될 테지.’
명품관까지는 무리일지 몰라도, 일반적인 쇼핑이라면 얼마든지 괜찮았다. 어차피 명품이라면 어머니 측에서 먼저 기겁해 사양하겠지만.
“가요, 엄마!”
아들의 성화에 선희는 못이기는 척 발걸음을 떼었다. 당연히 조금도 싫을 리 없는 표정이었다.
* * *
다행히 백화점에서 서진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여기저기 미디어에 얼굴을 내비치긴 했다지만, 아직 본격 공중파에 출연한 적은 없는 덕분(?)이었다.
“서진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과해.”
하도 돌아다녔더니 다리가 아파 위층 식당가의 카페에 온 모자. 산더미 같은 쇼핑백을 든 서진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얼굴이 되어 있었다.
“과하긴요. 다 잘 어울리는 거로만 심혈을 기울여 골라드린 거니까, 저 없다고 절대! 환불하거나 하시면 안 돼요! 알았죠!?”
“그래도….”
“저 뭐뭐였는지 다 기억하니까, 돌아와서 꼬옥 확인해 볼 거라고요.”
며칠 후 출국하는 건 맞으나, 그렇다고 유럽에 쭉 머무는 건 아니었다.
콩쿨에서 제공해 주는 특전의 핵심이 대략 2년간의 콘서트 지원이었는데, 그것 때문에 내내 유럽에 머물 수는 없는 일.
평창 일을 맡기로 한 것도 있고, 벌써 국내에서 K 콰르텟의 공연 일정도 두 개나 잡혀있고 해서 자주 왔다 갔다 할 예정이었다.
거기에 더해 서울시향이랑 언젠가 한 번 협연하기로 했던 이야기도 있고, 또 솔로 무대에 대한 요청도 강력한지라 그것도 고민 중에….
‘앞으로 비행기 지겹게 타겠네.’
아무리 퍼스트 클래스라도 우주방사선은 매한가지일 텐데, 건강 괜찮겠지? 하하….
“어휴, 알았어. 시어머니다, 아주. 시어머니야.”
이런 시어머니라면 열이라도 환영이겠지만.
선희 역시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아들이 손수 골라준 선물들이 싫지 않은 모양이었다.
옷은 평범한 2층 여성복 매장에서 샀지만, 그래도 가방은 좋은 걸 드시라며 명품관에서 골라준 서진이었다.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명품백을 모시게 되었다며 선희가 배시시 미소지었다.
서진 역시 빙그레 마주 미소지었다.
서진이 막 회귀했을 무렵 삼십 대 중반밖에 되지 않는 젊은 나이였던 그녀는, 약 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40대에 접어들며 슬슬 흰머리가 생기기 시작하는 중이었다.
어머니의 흰머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서진은 새삼 이 모든 것에 감사했다.
모두 건강하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것만큼 소중한 게 또 있을까.
* * *
한편,
서진이 모친과 오랜만에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이, 인터넷은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와, 그때도 쩔었는데, 깊이가 다르네
-저기서 더 발전할 게 있다니 믿기지가 않는데, 정말이네.
-같은 곡 어릴 때 연주 VS 현재 버전. 확실히 소리가 다르네, 달라.
빈필과의 협연 소식으로 유명해지며, 서진이 그동안 연주한 여러 곡들의 영상이 너튜브에서 다시금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예상외로 상당한 이슈를 몰고 왔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