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리허설을 무사히 마치고,
며칠 후 드디어 실제 공연 날이 되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리허설 때와 구성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차이라면 앙코르의 유무 정도.
공연장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무척이나 뜨거웠다.
교향악 축제라는 글자 그대로 진짜 축제 같은 분위기.
지연과의 듀엣 연주 역시 엄청난 호응을 받았다. 둘이 함께 등장하자 사람들이 유난히 눈을 반짝이며 감상하는 듯한 기분에 약간 의아한 기분이 들 정도로.
아무튼 모든 연주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이어 사람들은 모두 환한 얼굴로 앵콜을 외쳤고, 한참의 박수 만에 서진이 다시 무대에 오르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가볍게 연주되는 앙코르 무대에 관객들은 신나게 박수를 치며 즐겼다.
앙코르로 벌써 두어 번의 곡이 연주되었지만, 관객들은 아직 부족한 듯 다시금 끝없는 박수로 서진을 불러냈다.
‘이번이 마지막인데 무슨 곡을 할까….’
잠시간의 고민이 있었다.
서진은 앙코르에는 자신의 곡을 쓸 생각이 없었다. 앙코르는 주로 대중적으로 가벼운 곡을 다루는 만큼, 생소한 곡을 들려주기보다는 익숙한 곡이 나을 테니까.
또한 자신이 작곡한 낯선 곡을 듣느라 고생했을 관객들에 대한 배려이기도 했다.
아무리 현대 클래식에도 나름대로 익숙해졌다 한들, 그래도 오래 들어오던 기존의 명곡이 나오면 더욱 신나는 법이니까.
오케스트라를 돌아본 서진이 눈짓을 보냈다.
사전에 협의했던 몇 가지 후보곡 들 중에 서진이 고른 것은 몬티의 차르다시였다.
오늘 같은 축제 분위기에 이보다 어울리는 것도 또 없을 터.
장중한 오케스트라의 반주로 시작된 차르다시는 이윽고 바이올린 독주를 위해 살짝 숨을 죽였다.
집시의 애수가 가득 실린 느른한 선율이 너울너울 퍼져나갔다. 애절하고 서정적인 느낌의 느릿한 곡조, 러수(Lassú)였다.
특유의 끈적한 느낌을 살린 느릿느릿한 선율.
‘sul G’라고 친절히 쓰여있는 만큼, 이 곡은 포지션이 생명이었다. 멋대로 이걸 줄을 바꿔 연주하면 느낌이 확 달라진다.
서진은 빠른 템포의 뒷부분보다는 이 부분 표현이 제맛이라며 좋아했다. 그런 만큼 초반의 포지션 이동 부분을 유난히 신경 썼는데, 특유의 맛을 살리기 위해 작정하고 심상 능력까지 사용했다.
덕분에 유독 깊어진 울림.
애수 어린 선율이 사람들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애상 가득한 분위기가 언제였냐는 듯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빠른 템포의 화려함이 돋보이는 프리스(Friss) 부분.
정신없을 정도로 격렬한 연주가 시작되자 객석에서는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자연히 흥이 돋으며 사람들은 리듬을 타며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광장에 뛰쳐나가 신나게 춤을 춰야 할 것 같은 분위기.
때로는 파도처럼 음이 쏟아지다가, 다시 느릿하니 피리처럼 가느다란 고음이 이어지다가, 변화무쌍함에 넋이 나갈 듯했다.
이어지는 오케스트라 투티. 전원이 같은 선율을 연주하며 화려한 음색이 펼쳐졌다. 그야말로 풍성한 곡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연주를 해나가고 있는데,
‘…!’
순간적으로, 갑자기 손가락에 저릿한 느낌이 들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 스쳐 지나간 느낌.
‘…뭐지? 착각인가?’
다행히 온몸을 가득 채운 흥분의 영향인지, 약간의 통증 정도로 삑사리가 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손가락이 살짝 뻣뻣하니 순간적으로 주춤할뻔하긴 했으나, 서진은 특유의 대처능력으로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마음속을 스치는 불안감을 떨칠 수는 없었다.
‘이 느낌은….’
확실히 요사이 너무 무리하긴 했다.
최근 들어서만이 아니라, 거의 일 년여간의 행보 자체가 강행군이었다.
‘특히 해외 일정이 너무 많았지.’
가장 주의해야 할 폭발적인 성장기, 사춘기는 지났다지만, 그렇다 해도 심하게 무리를 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듣긴 했었다.
아무리 스트레스를 별로 받지 않고 즐겁게 연주한다고 해도, 육체의 피로 자체가 없는 건 아니니까.
다행히 공연의 막바지 중에서도 막바지인 타이밍.
원래도 그러려고 했지만, 서진은 무조건 이번 곡까지만 하고 마무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바로 의사에게 가봐야지.
그뿐 아니라 임회장님도 한 번 만나 뵈어야겠다. 분명 신약 개발이 막바지라고 했으니, 좋은 소식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
‘괜찮을 거야. 별일 없겠지….’
* * *
다음 날,
서진은 단 하루의 기다림도 없이 다이렉트로 임회장을 만날 수 있었다.
“그래. 이야기 들었다. 혹시 검사는 다시 해본 거고?”
자리에는 지연도 함께였다.
할아버지한테 듣고는 너무 걱정돼서 염치 불고하고 같이 나왔다는 그녀에게 서진이 해 줄 수 있는 건 괜찮다며, 별일 아니라며 미소짓는 것밖에 없었다.
걱정해주는 지연의 마음이 부담스러우면서 고마웠다.
“네. 그런데 아직 결과가 안 나왔어요.”
“저런… 우리 이성 병원에서 한 게 아니었나?”
“맞는데… 따로 말씀드리진 않았거든요.”
그 말을 들은 임회장은 곧바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서 지시를 내렸다.
“바로 결과를 가져오라 했네. 이런 일이 있다면 날 팔라 했잖은가!? 그 무엇보다 시급을 다투는 일인데!”
“…네, 감사합니다.”
서진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그래도 서진의 입장에서는, 임회장의 호의를 받는 걸로도 모자라 병원에 가서 회장과의 인맥을 과시하며 특별취급을 요청할 염치는 없었다.
“일단…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크게 걱정할 건 없네.”
“약의 개발이 완료된 건가요?”
“거의 막바지야. 임상 시험만 남아있지.”
“아…”
안도의 숨이 새어 나왔다. 옆에서 지연 역시 크게 안도했다는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약 병이 진행되었다 하더라도, 지금 단계는 극초기일 테니까.”
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한 일 없다면 분명 그럴 터였다.
그동안 충분히 조심했으니 갑자기 급성으로 악화할 이유는 없으니까.
띠리리.
그러고 있는데, 임회장의 전화가 울렸다.
드디어 검사 결과가 나온 것이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다행히도 아직은 초기 발병 단계.
‘역시… 너무 무리한 일정이었나.’
최선을 다해 발병을 억제해 왔지만, 늦추는 것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운이 좋다면 평생 발병하지 않을 수도 있다지만, 영원히 몸을 사리고 살 수는 없는 법이었다.
음악을 아예 포기할 게 아니라면,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는 법이니까.
음악가로서 이름을 알린 후에 보인 요 일 년여간의 행보는 서진의 음악 인생에 있어 무척 중요한 시기였다.
원래 성년이 되어 몸이 굳은 후보다는, 뭐든 빠르기 흡수하는 지금 시기가 폭발적인 음악적 성장이 가능한 때니까.
그렇기에 후회는 없었다.
“서진아….”
지연의 얼굴에 먹구름이 가득 끼었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듣게 된 소식.
“괜찮아, 괜찮을 거야.”
“그래.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걱정 말게나. 말했다시피 이제 거의 완료 단계니까.”
서진이 감사의 눈빛을 담아 깊이 고개를 숙였다.
이성의 방계 핏줄에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이 제법 있어 개발을 시작한 것이라지만, 임회장이 약의 개발을 독촉한 데에는 분명 서진을 위함이 컸다.
약의 특성상, 이미 오래전에 발병해서 병의 진행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는 소용이 없으니까.
그리고 발병 조짐으로 미루어 봤을 때, 서진과 비슷한 시기에 발병이 우려되는 가까운 핏줄도 딱히 없었다.
즉 몇 년이나 개발을 앞당긴 것은, 딱 서진을 위함이었다.
“이미 지난번에 들어 알겠지만, 이게 정확히는 완치가 가능한 치료제는 아니네.”
“네. 알고 있습니다. 상태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게 막아주는 약이라지요.”
또한 발병을 예방하는 기능도 없었다.
즉, 약의 효과를 보려면 발병한 후의 상태라야 한다는 뜻.
“그럼 임상 시험이 완료될 때까지, 최대한 조심히 지내게나. 혹시라도 그사이 갑자기 진행되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검사 결과와 함께 주치의가 덧붙인 의견.
지난번 검사 때에는 주의하라는 정도의 소견이었던 것에 비해, 앞으로 주기적으로 관찰하며 검사를 받는 것이 좋겠다는 말이었다.
“저, 회장님. 제가 임상 시험에 자원해 보고 싶은데요.”
“뭐!? 임상 시험…!?”
서진의 말에 임회장은 펄쩍 뛰었다. 지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진아, 그게 무슨 소리야!? 위험하게 뭐하러 그런 일을…!”
두 조손이 펄쩍 뛰었지만 서진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임회장의 말대로 약을 기다리는 몇 달 사이 상태가 악화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앞으로 몇 달간의 스케쥴을 전부 취소하기엔 너무 임박한 일정들이 많은 상황.
물론 정말로 큰 건강상의 이유나, 예기치 못한 사고 – 교통사고라거나 – 등이 있다면 당일에도 펑크가 날 수 있는 일이라지만, 이건 또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면…,
“믿으니까. 그리고 필요하니까. 아직 평창 일도 남아있고….”
일단 지금 벌려놓은 일까지는 어떻게든 하고 싶었다.
물론 해외 일정은 다 취소할 생각이었다. 아직 제안만 받고 확답하지 않은 것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장시간 비행에 시차에… 아무리 퍼스트 클래스라도 그 자체로 몸에 피로가 쌓이는 일이니까.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래. 그건 절대 안 될 말일세. 생동성 시험도 아니고 임상 시험이라니!”
아무리 자신이 개발을 지시한 약이라지만, 효과 및 부작용이 100퍼센트 입증되지 않은 만큼 임회장 역시 반대했다.
하지만 서진은 오히려 약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회귀 전, 이 약이 문제없이 출시되었다는 걸 알기에 망설임이 없는 것이다.
출시 후 같은 병을 앓는 환자들 사이에서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약.
당시, 병을 앓고 있던 만큼 서진은 이성 제약에서 만들었다는 신약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었다. 효과 및 부작용은 물론 개발 과정까지도. 분명 임상 시험에서 불합격해서 다시 보완해야 했다거나 한 적은 없던 기억이 있었다.
물론 그때보다는 몇 년 앞당겨 개발한 만큼 완전히 똑같은 상황이라고는 보장할 수 없지만, 얼마 전 임회장을 통해 자세한 정보를 접한 개발 내용도 기억과 다르지 않았다. 약의 기전이나 성분표, 구조식 등등, 조금의 희망이라도 가져보고자 회귀 전 그때 죽어라 알아봤던 그것과 똑같은 것이다.
‘애초에 예산을 퍼부어 속도를 냈을 뿐, 방향을 바꾼 건 아니었을 테니까.’
그러니 괜찮다. 어차피 통과할 임상 시험. 마침 딱 필요한 시기에 참여할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회장님. 이성에서 개발한 약을 이성에서 믿어주지 않는다니요.”
“그런 문제가 아니잖나.”
서진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누군가는 돈 때문에 알바로도 하는데, 그렇게 위험한 일이라면 애초에 임상 시험의 자원자를 받는다는 게 불법이지 않았겠는가.
“그래. 하지만 임상 시험이라는 게 그리 안전한 일만은 아니네.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모르니까.”
대부분은 돈 몇 푼에 위험을 감수하는 것뿐, 그런 걸 전혀 상관없는 남도 아니고 서진에게 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치면 어차피 부작용 없는 약은 없으니까요. 중요한 건 그 약이 보일 효과죠.”
이쯤 되니 임회장도 더는 서진을 설득할 수 없었다.
개발이 완료되어 시판이 결정될 때까지 얌전히 몸 사리며 기다릴 게 아니라면, 차라리 그사이에 더 악화되는 걸 막는 편이 나았다.
음악 활동을 하겠다는 서진을 억지로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임회장 역시 평창을 포기하지 않고 싶어 하는 서진의 마음을 이해했다. 비록 동계 올림픽이라고는 하나, 언제 다시 한국에서 열릴지 모르는 올림픽이 아닌가.
평창 올림픽이 벌써부터 폭망 분위기인 것과는 별개로, 그 상징성만큼은 남다르니까. 그 개막식과 폐막식 무대에 선다는 것은 그야말로 나라를 대표하는 일이었다.
“그럼 이렇게 하지.”
결국 서진의 고집을 꺾지 못한 임회장이 절충안을 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