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네네, 엄마 잘 마쳤어요. 걱정 마세요.”
아들의 공연을 보러 가지 못해 너무너무 아쉽다며, 전화기 너머로 선희는 무척이나 미안해했다.
해외 공연의 경우 대부분 직접 보러 오지 못하는 게 당연했지만, 이번만큼은 꼭 가보고 싶었는데….
– 그 무대가 그렇게 의미 있는 거라며… 엄마가 꼭 가 봤어야 하는데…. 나중에 너튜브에 나오겠지?
늦깎이 대학생이 된 선희는 요즘 뒤늦은 공부에 매진 중이었다. 비록 방통대긴 하지만, 간호사가 되고 싶었던 어릴 적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 중인 것이었다.
선희가 간호사가 되고 싶은 이유는 어릴 적 꿈 때문도 있지만, 무엇보다 아들의 건강을 직접 챙겨주고 싶어서였다.
처음 아들의 지병에 대해 들었을 때 어찌나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는지….
다행히 이성 재단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이제는 한시름 놓았다지만, 그럼에도 걱정이 쉽게 멈춰지지 않는 건 당연했다.
물론 그녀가 간호사가 된다고 해서 아들의 병을 돌보는 데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건강 정도는 살뜰히 챙겨줄 수 있을 터. 피곤할 때 수액을 놔준다거나, 기본적인 컨디션 상태를 체크해 준다거나 등등.
“네. 그럴 거예요. 카네기 홀 공식 계정이 있으니까요.”
아마도 한시적으로나마 스트리밍 서비스를 해주지 않을까 싶었다. 런던의 위그모어 홀에서도 자체 홈페이지나 너튜브 공식 계정을 통해 한시적으로 공연 장면을 공개한 적 있었으니까.
-컨디션은 괜찮고? 너무 힘들진 않았어?
“네. 다 괜찮아요. 조금 힘들긴 했지만, 정말 즐거운 공연이었어요.”
-다행이다. 우리 아들이 그렇게 인기였다니… 엄마는 너무 뿌듯해서 잠도 안 올 것 같아.
공연이 대성공이었다는 말에 선희는 서진보다도 더 기뻐했다. 한류가 인기라고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당연히 단순히 한류 탓만은 아니라(사실 그것과는 별 관계 없었다), 다 우리 서진이의 연주가 너무 훌륭한 탓이겠지만…, 괜히 속으로나마 너무 잘난 척해서는 안 될 것 같아 선희는 최대한 겸허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나저나 엄마 학교 공부는 잘 되어 가세요?”
그런 어머니의 반응에도 서진은 여전히 담담했다.
물론 서진 역시 기쁘긴 했지만, 단순히 그런 것보다는 오히려 나중에는 난감할 정도였다는 게 문제일 뿐.
망할까 걱정했던 게 무색하게도, 센세이션에 가까웠던 관객들의 반응에 카네기 홀 측에서 공연을 몇 회 더 해줄 수 없겠냐는 부탁을 해온 것이었다.
단 한 번의 무대로 아쉬워하는 뉴욕 시민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있을 법한 요청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서진은 바로 다음 일정이 있어 돌아가야 했다.
그 사이 올림픽도 거의 끝나가는 중, 폐막식 무대에 서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휴, 말도 마. 어려워 죽겠어. 다 늙어서 공부하려니 머리가 굳어서 안 되더라. 원래도 잘하진 못하긴 했지만….”
“그런 말 마세요. 우리 엄마 똑똑한 거 제가 다 알아요.”
이후로 이어진 소소한 대화에 서진은 시종일관 미소를 머금으며 어머니와 통화를 이어나갔다.
이렇게 어머니도 자신도,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하고 행복한 일상을 누리고 있다는 게 간혹 믿기지 않을 만큼 회귀가 가져다준 기적은 컸다.
서진은 이런 사소한 모든 일상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회귀라는 기적을 가져다준 이 세계에 대한 보답으로, 저 역시 음악을 통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힘닿는 대로 노력하고 싶었다.
그것이 서진이 음악을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 * *
[카네기홀 최초 공연 ‘동서양의 만남’ – 해금 이윤희와 K 콰르텟] [하루 종일 듣고 있어도 안 질릴 것 같은 음악. 듣고 있으면서도 듣고 싶은, 계속해서 생각나는 그런 음악]뉴욕 타임즈 기사로도 대대적으로 보도된 그 날의 공연은, 입소문이 점점 퍼져 나가는 걸로도 모자라 온갖 관련 기관에서 이슈가 되었다.
“이거 무슨 일이냐….”
[매혹적인 동양의 선율을 선보인 작곡가 한서진, 메트 오케스트라와 협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 아리랑. ‘HAN’을 음악으로 승화한 곡.] [마에스트로 HAN, 한국의 ‘HAN’을 소리의 예술로 선보여….] [메트 오케스트라와 K 콰르텟의 협연. 동서양의 만남을 진정으로 재해석한 결과물…] [그날의 프로그램에 대한 재공연 요청이 잇따른 가운데 카네기 홀 측은 유감스러운 답변을 내놓아…,] [동양에서 온 신비한 음색. 이번 공연의 솔리스트, 해금 연주자가 미국에서 유학하는 곳은!?] [줄리어드, 작곡가 한서진에게 거듭 제의를 보냈던 것으로 알려져…,] [뉴욕 필에서도 보이는 관심. ‘동서양의 만남’ 프로그램의 주역들에 대한 러브콜 잇따라….] [뉴욕 NBC 방송국, 이들 멤버의 초청 원해…,] [센트럴 파크에서의 간절한 러브콜, 뉴욕 시민을 위한 야외무대 마련되나…?]“무슨 일이긴, 너네 이제 맘 편히 관광은 다 했다는 뜻이지.”
“….”
“나는 어차피 이제 내일이 귀국이니, 파이팅이다?”
서진이 어쩐지 홀가분해 보이는 말투로 말했다.
뉴욕에 남아서 일주일 이상 닐리리 관광을 하기로 한 셋과 달리, 공연 딱 이틀 후인 내일 밤 비행기로 돌아가야 하는 서진이었다.
그게 은근히 아쉬웠는데, 다들 보아하니 여기저기서 시달리느라 관광은 그다지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물론 이게 다 엄청난 기회이니 좋은 일이었지만, 희한하게도 다들 질린 표정이었다.
“아, 얄미워. 한서진, 이자식. 언제나 얄미운 놈….”
띠링.
서로 시답잖게 떠드는 동안에도 일행의 핸드폰에는 연신 알림음이 울어대고 있었다. 성공적인 데뷔에 여기저기서 축하한다는 연락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여윽시 인기인~!”
“여자냐?”
“예쁘냐?”
서진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윤수를 바라보았다. 이놈의 자식은 입만 열면 여자 타령이야. 내년이면 군대 끌려갈 놈이.
“어, 예쁘다, 왜.”
서진이 즉답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페르디난트는 아주 예쁘장한 미소년이었으니까.
왠지 지연의 시선이 느껴지는 기분이었지만, 서진은 모른 척했다.
“오오, 누군데? 누군데!?”
“아, 진짜 좀! 페르디난트라고!”
“…아, 그 금발 귀공자?”
제네바 콩쿨 작곡 부문에서 서진과 공동우승을 했던 친구.
그 녀석도 요즘 여기저기서 잘 나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서진만큼은 아니지만 심심찮게 이름이 들려오는 것이.
둘은 공동우승이었던 만큼, 우승 특전으로 주어진 투어 공연도 반반 나누어 함께 했다.
그렇게 일 년여를 함께 돌아다니다 보니 상당히 친해졌는데, 최근 들어서는 한국의 일에 집중하느라 자주 못 보는 상황이었지만 여전히 연락을 자주 주고받고 있었다.
“어. 먼저 카네기 홀 데뷔한 걸 축하한다네. 자기한테도 얼른 곡 하나 써달라는데, 자기가 더 잘 쓰면서 뭔 소리야…?”
그리고 그때 그런 약속을 했었다. 나중에 서로 상대에게 곡을 써서 선물하자고.
“네가 더 잘 나가니까?”
“에이, 그건 아니지.”
자신이 페르디난트보다 상대적으로 이름을 더 많이 알릴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사기에 가까운 심상 능력이라는 치트키, 그리고 언제나 든든히 함께하는 K 콰르텟의 존재 덕분이지, 개인의 재능 차이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뭐, 그 모든 것이 결국은 재능의 일부라고 하면 할 말 없겠지만.
“근데 너흰 콩쿨 안 나가? 페르디난트는 내년에 퀸엘리자베스 나간다는데.”
그러고 보니 페르디난트도 만만치 않게 바이올린을 잘했던 기억이 있다. 지나치게 완벽함에 집착한다는 게 문제였지만, 단점을 극복하고 더욱 정진했다면….
“나는 내년에 차이코프스키 나가려고. 작년에 놓쳤으니까.”
하윤의 대답이었다.
퀸 엘리자베스는 작년부터 첼로 부문도 추가되었는데, 작년엔 아직 준비가 덜 되어 참가하지 않았었다. 다시 첼로 부문이 열리려면 아직 몇 년이나 남았기에, 그보다는 내년의 차이코프스키 콩쿨 쪽을 노려보는 게 나을 듯하다고.
“난 고민 중. 나도 일단 내년을 노리고 있긴 한데, 서진이 너랑 안 겹치는 데로 나가려고.”
지연의 대답. 혹시 해서 물어봤는데, 다들 계획이 있었다.
내년에는 우연히 해가 겹쳐, 퀸엘리자베스와 차이코프스키 콩쿨 모두 바이올린으로 참가 가능했는데, 한서진과 같이 나가면 1등은 빼앗길 게 뻔할 것 같아 피하고 싶은 심산이었다.
한데 그건 그거대로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차라리 나가지 말까 고민도 드는 상황.
“윤수 너는?”
“차이코프스키? 비올라는 없잖아.”
“아니 꼭 거기 아니더라도 다른 거 나가면 되잖아. 퀸 엘리자베스라든가… 아, 비올라는 없나.”
“어. 없어. 진심 비올라는 어쩌라고… 진짜 군대 끌려가는 것밖에 답이 없나….”
“뭐, 바이올린 부문이 없는 콩쿨도 있는걸.”
대표적으로 제네바 콩쿨에는 바이올린 부문이 없었다.
있었는데, 없어졌다.
“그럼 제네바 다시 나가면 되잖아.”
지연이 물었다.
“그렇긴 한데… 으으… 그 짓을 또 하려니…”
“왜, 그래도 제네바는 퀸엘처럼 2주간 가둬놓는 것도 아니고, 그 정도면 천국이지.”
“으응. 그건 그런데… 그냥 전에 다 같이 나갔을 때와 달리 멘탈 관리도 힘들 것 같고… 전부 혼자 감당해야 할 텐데 자신이 없네.”
윤수가 답지 않게 약한 모습을 보였다.
사실 윤수는 최근 들어 상대적으로 서진과 비교되는 자신의 모습에 은근히 의기소침해 있었다.
그나마 같은 바이올린이 아니라 천만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이렇게 악기가 다른데도 기죽이게 만드는 저 악마 같은 재능에 자신이 너무나 작게 느껴졌다.
서진도 윤수의 그런 심경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자신이 나서서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안타까운 마음만 들 뿐이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역시 대중들의 환호인데….’
독주회라도 열거나 하려면 결국 콩쿨 우승 등의 타이틀이 필요할 테니, 어떻게든 스스로 극복해내야 하는 문제였다.
“그나저나 서진이 넌 돌아가기 전에 뭐할 거야? 내일 비행기 시간 늦으니까, 오늘내일 1박 2일은 놀 수 있잖아.”
“난 미국까지 온 김에 IMG 쪽이랑 직접 만나 보려고. 계약하기 전에 이왕이면 한 번 봐서 나쁠 것 없으니까.”
“징한 놈…. 진심 대단하다, 대단해. 여기까지 와서도 일 생각밖에 없냐. 뉴욕에 가볼 곳이 얼마나 산더미인데!”
“혹시 궁금하면 같이 가볼 사람?”
서진은 꿋꿋이 말을 이었다.
개인 자격의 계약이야 각자 알아서 할 일이었지만, 콰르텟으로서 맺는 계약은 친구들의 의견도 들어보아야 했다.
하지만 다들 서진을 굳게 믿는 것인지 별 관심 없는 눈치였다.
“나는 그냥 네 의견에 따를게.”
“정말 괜찮겠어?”
“응. 패스!”
셋 모두 비슷한 얼굴이었다. 믿었던(?) 지연마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눈치였다.
“알았어. 난 어차피 개인적 계약 때문에라도 만나려 했으니까. 남은 시간은 그냥 호텔에서 수영이나 하고 쉬려고. 참, 그리고 마침 내일 저녁에 링컨 센터에서 뉴욕필 공연이 있다는데… 가기 전에 공연이나 하나 보고 가려는데 혹시 같이…,”
혹시 지연이라면 관심 있어 하지 않을까 싶어 그녀 쪽을 돌아보며 막 물어보려는데, 호텔 전화기가 울렸다.
띠리리리.
“응?”
“밖에서는 딱히 전화 올 데가 없는데… 컨시어지인가?”
서진의 방에 모여있던 일행은 모두 지연을 바라보았다. 이중 영어를 제일 잘하는 사람.
대표로 전화를 받은 지연은 몇 마디 하더니 금세 끊었다.
“뭐래?”
“밑에 누가 와 있다는데? 서진이 널 찾아왔다고.”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