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
“오늘 저는 피터슨 씨의 연주로 무척 행복했는데, 그리고 여기 모여있던 모든 사람도 분명 그러했을 텐데, 피터슨씨도 그런가요?”
“…!”
곰곰이 상황을 되짚어보는 듯 그가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질문에 대한 답은 예스였다.
자신을 좌절시킨 장본인, ‘한서진’의 등장에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점점 그 상황 자체를 즐기게 된 건 사실이었으니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향해 서진이 미소지었다.
“그럼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
“저는… 행복하면 된 거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행복하게 연주하고, 그리고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
아무리 예체능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게 재능이라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특히 음악은 스포츠 쪽과는 또 달랐으니까.
스포츠는 보다 냉정하게 1등이 정해지는 반면, 음악은 개인의 기호라는 게 크게 영향을 미치는 분야. 1등이 아니라도, 재능이 조금 모자라다 해도 얼마든지 자신만의 세계를 펼칠 수 있었다.
“하지만 재능의 차이라는 게…,”
“있죠. 분명히. 부정할 수는 없죠. 하지만 객관적으로 더 잘하는 사람의 연주라고,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 최고인 건 아니니까요.”
“…아.”
“그렇게 치면 콩쿨에서 1등 한 사람 외에는 그 누구도 음악을 하는 의미가 없어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하지만 아니잖아요. 누군가에게는 하이페츠의 연주보다, 피터슨씨의 바이올린이 훨씬 좋게 들릴 수도 있을 테니까요. 분명, 그럴 거예요.”
서진은 이 길을 걸으며 만나게 되는 모두가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렇기에 진심으로 그를 응원했다.
“….”
“그게 바로 음악의 묘미가 아니겠어요?”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었다.
정말로 그에게 해답을 구하고자 붙잡았던 건 아니었는데… 까마득 어린 학생에게 큰 깨달음을 얻게 될 줄이야.
동시에 부끄러웠다. 이런 어린 소년도 아는 것을 자신은 왜 여태 깨닫지 못하고 방황했을까.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가 자신보다 훨씬 월등한 수준의 재능을 가지고 있기에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자는 서진의 말에서 진심을 느꼈다. 흔들림 없는 저 눈빛은 진정으로 예술에 대한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남자가 꾸벅 허리를 숙였다. 자신의 문화권에서는 낯선 행동이었지만, 저 소년의 나라에서는 진심으로 감사를 표할 때 이렇게 한다고 들었다.
“별말씀을요.”
마주 허리를 숙여오는 순순한 얼굴이 봄 햇살에 환히 빛났다.
이곳에 와 보길, 정말 잘했다.
* * *
어느덧 늦봄. 초여름을 앞둔 계절이라 그런지 여기저기 축제 소식이 많았다. 한국에서는 물론이거니와 국제적으로도.
평창·대관령 음악제의 롤모델인 미국 아스펜 음악제,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 루체른 페스티벌, 오래전부터 익히 인연이 있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등등….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쏟아져 들어왔다. 서진 개인에게는 물론이거니와, K 콰르텟에게도 제법 많은 제안이 왔다.
“와우, 우리 올해도 학교 다니긴 텄나?”
“다니다 도중에 휴학하면 등록금 얼마 돌려주더라?”
학교는 학교고, 출결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니 중간중간 해외 일정도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그 외에도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제법 있었다.
“별 걸 다 걱정한다. 그런 것보다는…,”
윤수의 말에 그런 건 상관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려던 서진은 멈칫했다.
어떻게든 졸업시켜줄 테니 출결은 걱정 말라던 교수님의 당부. 그거 혹시 나만 해당되는 거였나…?
“세계 여기저기 공연 다니던 게 너무 익숙해졌나 봐. 겨우 두어 달 한국에 있었다고 벌써 좀이 쑤시네.”
“그러게. 나도 그런데… 아무튼 좀 더 생각해보고 결정하자.”
당장 이번 달에 실내악 축제도 예정되어 있고, 다음 달 내한하기로 한 빈필과의 공연으로도 바쁠 예정이었으니까.
앞으로 한국에 정기적으로 내한할 테니, 그 대신 서진을 꼭 협연자로 함께하게 해달라는 요청.
물론 정말로 그런 특약조항을 넣거나 한 건 아니니 올 때마다 반드시 그래야 하는 건 아니었다.
‘변함없는 사랑에 고맙긴 한데….’
저쪽도 이왕이면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이는 편이 좋지 않겠나 싶은 마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오래전부터 함께했던 정도 있고 하니 최대한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다.
그 유명한 빈필을 상대로 이런 태평한 소리라니… 남들이 들었으면 기겁할 만한 고민이었다.
“왜왜? 너 빈필 협연 때문에?”
“아니. 그건 아니고, 얼마 전에 내년도 콩쿨 요강 발표되었잖아. 다들 슬슬 콩쿨 준비에 집중할 테니까.”
“아….”
어느 정도 규모 있는 콩쿨이라면 보통 1년 전에는 요강이 뜨게 마련이었다.
서진이야 벌써부터 콩쿨 준비에 올인할 생각이라곤 조금도 없었지만,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니까.
특히 지연은, 이번 콩쿨에 바이올린이 많이 몰린다는 말에 벌써부터 초조한 기색인 것이다.
“심지어 넌 올해잖아. ARD 나간다고 하지 않았어?”
“어, 어어… 그렇지.”
소위 아아르데(ARD) 라고도 불리는 뮌헨 국제음악 콩쿠르.
흔히 말하는 3대 콩쿨만큼 잘 알려져 있지는 않았지만, 비올라 분야에서는 상당한 권위의 콩쿨이었다.
게다가 비올라는 콩쿨이 흔하지 않기에 더더욱 중요한 기회였다. 제네바 콩쿨 비올라 부문의 차례가 언제 돌아올지는 모르는 상황이었으니.
“난 이번엔 일단 참가에 의의를 두려고. 똑 떨어지면 내년에 막스 로스탈 나가면 되지 뭐.”
막스 로스탈. 베를린에서 열리는 콩쿨로, 마찬가지로 병역특례가 적용되었다.
“아무튼 올해와 내년은 여러모로 콩쿨의 해가 되겠네.”
한예종을 비롯한 전국의 음대가 떠들썩한 상황.
하지만 학생들의 사정은 사정이고, 수업은 수업이었다.
“아, 오케 수업 싫다. 괜히 신청했나 봐.”
떠드는 사이 소강당 앞에 도착한 둘은 온갖 악기 소음으로 가득 찬 안으로 들어섰다.
시간표에 맞춰 대충 넣었던 건지, 아니면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 넣었던 건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지만, 이왕 하게 된 거 서진은 열심히 할 생각이었다.
이미 거장이나 다름없는 실력을 가진 입장에서 크게 배울 건 없겠지만, 협연자가 아닌 단원으로서의 경험은 서진 역시 그리 많지 않기에 나름대로 의의를 두는 수업이었다. 예전에 장명훈의 지휘하에 서울시향과 함께했던 게 마지막이었으니까.
“야, 오늘부터 교수님 바뀌었대!”
“으잉? 왜?”
“맹장 터져서 수술하셨다는데?”
“헐. 대박.”
정말로 잠시 후 지휘봉을 들고 등장한 교수님은 한예종에서 못 보던 얼굴이었다.
시끌시끌한 가운데 그가 자기소개를 했다.
“…해서, 앞으로 2주간 잘 부탁하네.”
서진은 그를 알았다. 임시 교수로 오게 되었다는 그는 우연히도 장명훈과도 꽤 친분이 있는 지휘자였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수업.
당연하다는 듯 악장의 자리를 떠맡고 있던 서진을 향해 그가 대뜸 말했다.
“자네.”
“네?”
“이거.”
그가 뜬금없이 건넨 것은 지휘봉이었다.
“…?”
“한 번 지휘해 보게.”
“…제가요?”
“그래. 오케스트라 수업으로는 더 이상 배울 게 없어 보이는군.”
“….”
사실 그렇긴 했다.
뭐든 성실히, 열심히 하는 서진이었기에 다른 일정이 없는 한 수업에 참여하고 있었지만, 빈필과 뉴욕필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던 서진의 입장에서 학생들의 수준이란 하품이 나올 수준이었다. 아니, 거기까지 갈 것도 없이, 한때 서진이 직접 객원으로 몸담았던 서울시향의 실력과 비교해도 엄청나게 차이가 났다.
솔직히 말해 서진이 너무 말도 안 되게 잘난 것이지, 아무리 한예종의 영재들이라 해도 결국 학생은 학생일 뿐이니까.
“작곡을 하는 녀석이니 총보 정도야 익숙하겠지. 자, 여기.”
일단 얼떨결에 지휘봉을 받아들긴 했는데….
뜬금없이 제게 갑자기 왜 지휘를 시키는 건지, 이 수업은 더 이상 배울 게 없어서 그런다 쳐도 그게 제게 지휘를 가르쳐야 하는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지휘를 해본 경험이 협연자로서 능력 함양에도 도움이 될 게다. 지휘자로서의 위치에 서 봐야 더욱 전체가 잘 보이는 법이니까.”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할 말이 없어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하니 교수님이 월급루팡을 하고자 자신에게 일을 떠넘기려는 건 아닐 테니까.
사실 짚이는 구석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지휘자 장명훈과 그가 친분이 있는 사이라는 건 서진 역시 익히 아는 일. 어쩌면 따로 언질을 받은 걸지도 모른다.
‘분명 예전에… 서울시향 객원 활동을 할 때 그런 이야기를 듣긴 했었지. 조금 더 전체를 보고자 한다면 언젠가 나중에 지휘를 꼭 배우는 게 좋을 거라고….’
그렇게 서진은 얼떨결에 지휘자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그의 말대로, 이 자리에 서니 정말로 감회가 남달랐다.
단상에서 내려다본 오케스트라의 모습은….
자신의 손끝으로 어루만져 피워낼 예술작품의 원재료를 보고 있는 느낌, 이랄까.
서진은 홀린 듯 손에 들고 있던 지휘봉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서울 어느 음대의 연습실.
이곳 역시 여느 예술대학과 마찬가지로, 속속들이 뜨기 시작한 콩쿨 요강에 떠들썩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수많은 이들의 뒷목을 잡게 한 소식이 있었으니….
“으아아! 미쳤어, 아아악! 왜 하필 이번에!”
내년, 제네바 콩쿨의 파이널 제시곡으로 지정된 서진의 곡.
과거 작곡 부문 콩쿨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바로 그 곡이 올해의 콩쿨곡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 사실 자체야 원래 작곡 부문 우승 특전으로 명시되어 있던 것이었으니 딱히 새로울 건 없는 일이었지만, 문제는 그 곡의 난이도에 있었다.
“아, 망했다. 완전 망했다고…!”
“차라리 진즉에 그러지!”
그랬으면 내년도 콩쿨을 준비해 온 자신과는 상관없었을 텐데.
하지만 매년 부문을 바꿔가며 주최하는 제네바 콩쿨의 특성상, 스트링 콰르텟으로 작곡된 곡이 그다음 해에 바로 쓰일 수는 없어 하필 내년으로 딱 당첨된 것이었다.
“진심… 적나라하게 비교되는 영상이 박제되고 싶지는 않다고!”
“내 말이!!!”
그 소식에 다들 기겁을 한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서진의 곡이, 그 심미적인 요소와는 별개로 또 한 가지 이유로 매우 유명한 탓이었다.
원작자가 아니면 저렇게 소리 내는 것이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
대충 흉내는 낼 수 있겠지만, 절대로 저런 연주를 보일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렇기에 다른 악기라면 몰라도, 바이올린을 하는 이들이라면 주저할 수밖에 없는 것. 특히나 그 곡이 바이올린이 메인인 곡이라면 더더욱.
“미치겠다, 진심….”
몇 년 전, 한국인 우승자의 소식에 몇몇 이들이 악보를 구해 바로 곡을 연주해 본 적이 있었다.
그 결과는 단체 멘붕.
저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연주였다. 그 누구도 절대 저 영상처럼 소리를 낼 수 없었으니까.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