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그 작곡가가 아직 세계적 거장으로 인정받은 급도 아니고, 우리 콩쿨을 통해 검증된 것도 아닌데, 굳이 우리 문화권의 뛰어난 작곡가들을 두고 먼 동양 소국의 작곡가에게 손을 내밀 필요까지 있을지…
-실력이라면 이미 다른 콩쿨을 통해 검증되지 않았소? 음악가란 무릇 실력으로 이름을 알리는 법. 그는 자신의 곡으로 충분히 그 자격을 증명해 보였소.
위원장은 답답했다.
클래식 음악의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퀸엘리자베스 콩쿨이 그토록 열심히 새로운 작곡가를 발굴하기 위해 애써왔던 이유가 무엇인가.
현대에 이르러 점점 시대성과 미래성을 잃어가는 클래식을 부활시키고자, 현대 음악을 대중들에게 어떻게든 정착시켜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은 전부 실패로 돌아갔다. 그에 어느 순간부터는 작곡 부문도 폐지하지 않았던가.
한데, 이 한서진이라는 작곡가의 등장으로 상황은 기적적으로 달라졌다. 대중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현대 클래식 음악을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이런 존재를 어떻게 놓칠 수 있겠는가. 우리 콩쿨의 파이널 곡으로 마땅히 요청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이들에게 널리 그 존재를 알려야 하지 않겠는가.
-글쎄. 나는 모르겠소. 그리고 설령 그 작곡가가 그리 대단하다 한들, 어디 우리 퀸엘리자베스의 명성에 비하겠소. 굳이 그렇게까지…,
그렇게 말하는 그 역시 순수한 예술가적 관점으로서는 한서진이라는 작곡가의 곡이 마음에 들긴 했으나, 막상 결정하자니 묘한 자존심이 그를 망설이게 했다.
-허허… 거, 참….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지만, 특유의 자부심이랄까 똥고집이랄까, 이 바닥에 원체 이런 이상한 종자들이 많았다.
결국 의견이 통일되지 않은 탓에, 위원장의 강력한 의견에도 불구하고 다른 작곡가가 선택되었다.
자국 벨기에 출신의 그럭저럭 유명한 작곡가.
위원회 측은 콩쿨에 앞서 그에게 의뢰를 넣었고, 곡이 완성될 즈음에 맞춰 모집 요강을 발표하기로 했다.
늘 그랬듯, 콩쿨을 위해 특별히 쓰인 익명의 작곡가의 미공개 악보를 파이널에 맞춰 제공한다고.
한데, 역대급 사건이 터졌다.
악보가 유출된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이 바닥이 원래 한 다리 건너면 다 엮이고 엮여 있는 인맥들, 특히 같은 유럽권 내에서는, 서로서로 다 연이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즉, 꼭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언제 악보 유출 문제가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던 상황이라는 뜻.
이제 콩쿨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뒤늦게 터진 일에 주최 측은 난리가 났다.
부랴부랴 다른 작곡가를 찾아 다시 의뢰를 하기엔 시간이 턱도 없었다. 콩쿨에 필요한 곡이라는 게 그리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바이올린 협주곡이니만큼 다양한 편성을 전부 고려해 작곡하려면 일이 조금 큰 게 아닌데…
위원장이 그토록 밀었던 한서진은 둘째 치고, 누군들 가능할 리 없는 상황.
우연히라도 때마침 아직 발표 전인 곡을 쓰고 있는 작곡가가 있을까 하여 백방으로 수소문해보았지만, 콕 집어 바이올린 협주곡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아무리 급하다지만, 격이 떨어지는 아무 곡이나 구해올 수는 없는 일이니.
-이를 어찌해야 하나…,
-크흠, 이제 와서 악보를 구할 방법이 없을 듯한데….
절대로 미공개 신작의 원칙이 깨질 수는 없는데….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퀸엘의 정체성이나 다름없었다. 최후의 경쟁인 파이널 무대를 앞두고, 뮤직 샤펠에서 다 같이 합숙하며 미공개 신곡을 연습하는 것.
이것은 퀸엘리자베스 콩쿨의 가장 핵심이 되는 정신이었다.
-차라리 덮는 게 어떻겠소?
-그게 말이 되는 소리요?
-솔직히 말해 참가자들이 어떻게 알겠소. 악보가 유출되었다는 증거 있냔 말이오.
-말도 안 되는 일! 소문이라는 게 어떻게든 나기 마련인데…!
갑론을박 난리였다.
그러던 중,
-…아! 방법이 있을 것 같소!
그러던 중 문득 생각난 것이 있었다. 위원회 인사 중 한 명인 누군가의 말이었다.
스위스 국적인 그는 지난 제네바 콩쿨에서도 심사위원을 맡은 적 있었는데, 당시의 기억으로 머릿속에 스치는 게 있었다.
당시 제네바 콩쿨에서는, 작곡 부문 우승 특전에 따라 서진의 곡이 파이널 연주에 쓰였다. 이미 서진의 우승으로 널리 알려진 그 곡이었다.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어디, 구해올 만한 미공개 악보가 있는 것이오?
-제네바 콩쿨의 악보 말이오. 미스터 한의.
-으음? 그건 이미 공개된 악보가 아니오?
-아니, 하나 더 있소.
당시 제네바 콩쿨은, 퀸엘처럼 콩쿨 방식에 변화를 주어볼까 하는 시도로 서진에게 기존의 우승곡 외 악보를 한 가지 더 부탁했었다. 한 마디로 미공개 신작을 의뢰했던 것이다.
하지만 준비 시간의 부족으로 콩쿨은 기존의 방식대로 진행되었고, 사용되지 않은 미공개 곡은 그대로 남았다. 제네바의 의뢰로 만들어진 곡이었으나, 사용되지 않은 탓에 계약에 딱히 묶이지 않은 미공개 신곡.
때마침 그게 딱 떠오른 것이다. 분명 그 후로 따로 곡을 발표한 적 없으니,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잠들어 있겠지. 지금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먼저 제네바 측과 문제가 생기지 않을지 확인하고, 작곡가 본인에게 협조를 구하면…,
“하아… 이미 저 정도 입지를 이룬 음악가가, 이제 와서 콩쿨에 나올 줄이야….”
그렇게 문제가 일단락되는 듯하였는데, 가장 큰 문제가 터져버린 것.
어느 정도 내부적으로 합의를 봤으니 이제 작곡가 본인에게 상황을 알리고 허락을 구하려는 차, 그 본인이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이걸 막을 수도 없고, 어찌해야 할지 당혹스러웠다.
“그러게 말이오. 이런 상황은 정말이지 예상하지 못했는데…,”
아무리 이름 높은 콩쿨이라고는 하나, 사실 콩쿨이라는 것은 아직 거장으로 인정받기 전의 신출내기 음악가들에게 있어 일종의 등용문인 셈이었다.
즉 콩쿨을 통해 유명해져 거장이 되면 되는 것이지, 이미 거장으로 인정받는 이가 굳이 콩쿨 같은 것에 참여할 이유는 없는 일. 이를테면 이자크 펄이 이제와서 콩쿨 같은 것에 나올 이유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허허허. 그 정도 인물이라면 콩쿨 같은 것에 딱히 의미를 두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파이널 곡의 주인이 직접 등판할 거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
만약 콩쿨에 관심이 있었다면 진즉에 나갔을 테니, 이들로서는 당연히 서진이 관심을 보일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이었다.
물론 그건 그들이 서진의 지병에 대해서 모르기에 한 생각이기도 했다. 딱 콩쿨에 나갔을 법한 나이에 손가락 문제로 인해 다른 일에 열중하느라 타이밍을 놓친 것이었으니.
“흐흠… 이를 어쩐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어쩌다 악보가 유출되어서는…,”
“차라리 처음부터 그에게 미공개 신작을 의뢰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허참….”
“…허허 그러게 애초에 그런 고집을 피우지 않았더라면…,”
“됐고, 이제 와서 뭐 어쩌겠소. 답은 하나밖에 없지.”
“…?”
난감한 가운데 서로의 시선이 오갔다.
“덮는 것밖에.”
“….”
“….”
참가자 본인의 곡을 지정곡으로 하는 것보다는, 악보 유출 정황을 덮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이제 와서 도저히 곡을 구해올 방법이 없었으니까.
퀸엘리자베스 콩쿨의 전통을 바꿀 수도, 참가자 본인의 곡을 미발표 신곡으로 제공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또 그렇다고 참가 신청을 거부할 수도 없었다.
“…허허.”
“만약 이 일이 새어나가기라도 한다면…,”
설령 그렇다 해도 모르쇠로 잡아떼고 그대로 진행하는 것. 지금은 그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이 일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아직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 * *
음악 저널의 강민지 기자는 드디어 소원하던 서진의 특집 인터뷰를 따냈다.
무슨 바람이 불어 그동안 언론에 코빼기도 안 내비치던 걸 갑자기 이렇게 응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야.
“안녕하세요, 한서진씨!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예,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호호호. 한서진씨,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으셨길래 갑자기 이렇게 수락해주신 건지 무척이나 궁금하네요.”
직설적인 성격답게 강민지는 대놓고 물어봤다.
“별 건 아니고요, 그냥 예전 어릴 때부터 안면이 있던 기자님이고 하니, 자꾸 거절하기도 마음 불편하더라고요.”
실은 이유야 따로 있었다.
뭐 별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 드디어 다음 거취를 결정했음을 땅땅땅 공식적으로 알리는 게 낫겠다 싶어서 내린 판단.
솔직히 귀찮을 정도로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는 탓에 이제는 지칠 지경인 것이다. 공연이든, 자기들 음악원에의 초청이든, 자신을 불러준다는 건 참으로 고마운 일이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면 피곤한 법이었다. 번번이 거절을 전하는 것도 미안하고.
그래서 아예 줄리어드에 가기로 했음을, 그리고 당분간 콩쿨 일정으로 바쁠 예정일 것을 그냥 대놓고 알리려는 심산이었다.
“호호호. 빈말이라도 감사하네요. 우리 서진 군, 아니 한서진씨를 어릴 때부터 봐 왔는데, 이렇게 근사하게 성장해 주어서 정말 제가 다 뿌듯하거든요.”
서진은 쑥스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회귀 직후, 아직 허접한 꼬꼬마이던 시절부터 시작된 역사를 쭉 함께 지켜봐 온 이가 있다니… 고맙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그랬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너무 딴소리를… 중요한 건 따로 있는데. 호호호. 요즘 K 콰르텟이 연주한 곡에 대해 소련의 자부심인 보로딘 악단에 빗대어 칭찬이 자자한데요, 잠시만요. 기사 좀 보여드릴게요.”
강민지는 잔뜩 스크랩해 놓은 기사 및 음악 관계자들의 인터뷰 내용을 가져다주었다.
[소련의 자부심, 전설적인 콰르텟이었던 보로딘 악단을 능가한다는 극찬을 받은 K 콰르텟의 연주!] [보로딘 악단이 소련의 자부심이라면, K 콰르텟은 ‘대한민국의 자존심’. 한서진이 작곡한 6중주로 완벽히 무대 장악해…,] [이번 실내악 축제에서 처음 선보인 한서진의 신곡 현악 6중주. 차이코프스키의 6중주를 능가하는 아름다운 명곡으로 회자될 것으로…,] [K 콰르텟의 6중주. 선명하고 농후한 선율로 다이나믹한 멜로디를 선보여…, 작품의 구조적 해석에 완벽을 기하는 연주로, 주제를 뚜렷이 드러내…,] [정성스럽고 면밀한 표현. 주제가 돋보이는 카덴차…, 실로 신선한, 아니 신성한 연주였다는 평가 가운데…,]그중 유독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